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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의 비밀
츄라라락! 촤아아악!!
고체처럼 보이던 보석 주변에서 붉은 촉수같은 살덩이들이 마구잡이로 솟구친 것이다.
퍼억! 퍽!
촉수들은 보석 주변에 붙어있던 검붉은 살들을 마구 밀어냈다.
그 때마다 수조 주변으로 붉은 핏물이 연신 튀어올라 교황과 대신관의 몸을 적셨다.
“이제 시작이야! 좀 더! 좀 더 강하게!”
“예!”
스아아악.
살덩이를 밀어낸 촉수들은 이제 저들끼리 뭉쳐서 새살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 사이로 나타나는 건 흰색의 무언가였다.
잠시 이를 지켜보던 발린은 흰색의 정체를 알아채자마자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뼈...! 뼈와 살이다! 저기 솟구치는 건 뼈와 근육, 그리고 살이야!’
고오오오.
놀라운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순간, 성법진이 빛을 발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린은 반응을 보이지 않기 위해 몸을 바닥에 붙였다.
그러자 닿은 면적을 통해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움직이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그 규모는 거의 9클래스급, 마왕과 싸울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엄청난 양의 힘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읏...!’
저도 모르게 움츠리면서도 발린의 눈은 교황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파바박! 츄와악!
형태를 만들고 커지는 살덩이에 가려 이미 보석의 빛은 사라진 지 오래.
허나 바닥에서 나오는 빛이 워낙 커서 그걸 알아채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방금 전엔 어째서 실패한 것 같나.”
“응집력이 부족했습니다. 너무 흐늘흐늘했어요.”
“그럼 이번엔 그 방면에 조금 더 신경쓰지.”
살덩이가 자라는 사이에도 둘은 의견을 계속해서 교환했다.
신성력이 움직이는 사이 발린은 그 순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머릿속에 담았다.
다음 순간, 그들 사이로 그림자처럼 나타난 누군가가 살덩이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
촤학!
이미 피는 많이 튀었으나, 그 위로 뜨끈한 핏물이 한 번 더 튀어올랐다.
백색 오러블레이드에 묻어난 피가 타들어가는 사이, 발린은 새로 나타난 사람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백색 중갑옷에 거대한 체구, 그리고 저건 틀림없는 세이크리드 오러로군.’
새로이 나타난 세 번째 남자는 한눈에 띌 정도의 거구였다.
온 몸에서 피어오르는 신성력을 봤을 때 성기사라는 건 확실했으나, 그 외의 정체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성기사를 살펴보던 발린이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들고 있던 무기는 놀랍게도 메이스도, 창도, 망치도 아니었다.
‘조각칼? 아무리 봐도 저건 조각칼이잖아!’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발린이 숨을 참는 사이, 교황과 넴로드 대신관은 들고 있던 살덩이를 내밀며 말했다.
“마침 딱 맞춰 왔군.”
“그럼, 부탁드립니다.”
백색 갑옷의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각칼을 놀렸다.
그 때마다 살점과 근육, 심지어는 뼈마저 툭툭 튀어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겉보기로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다지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교황과 대신관, 그리고 성기사라는 점을 알고 보면 굉장히 난감한 기분이 든다.
‘교황청 지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줄이야...’
발린은 지금까지 생각중이던 교황청에 대한 평가를 대폭 수정했다.
방금 본 것을 추가하면 교황청은 어쩌면 마왕군,노스트라 제국과 함께 쓰러뜨려야 할 제 3의 적이 될지도 몰랐다.
‘도대체 저건 뭐지...?’
발린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도살의 현장을 살폈다.
교황과 넴로드 대신관이 만들어내고, 의문의 성기사가 조각칼로 베어내는 과정이 점차 뚜렷이 보였다.
잠시 만들어지는 모양을 관찰하던 그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저건...사람의 형상이잖아! 저 놈들 지금 무얼 만들고 있는 거야!?’
살덩이가 베어지며 갖춰지는 윤곽은 놀랍게도 인간의 형상.
그것도 태아가 아닌 5~7세 정도로 보이는 아이였다.
머리카락이나 눈 같은 건 없이 손가락,발가락만 만들고 있었으나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무언지 특정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끝났습니다.”
신들린 듯 조각칼을 휘두르던 성기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엄청난 신성력을 움직인 탓에 교황과 넴로드 대신관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다.
교황이 제아무리 신성력에 관해선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고는 하나, 이 정도의 마법진을 움직이는 건 그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군. 오늘은 이 정도...”
완성된 형태를 바라보던 교황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마치 갓난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레 살덩이를 수조 안에 밀어넣었다.
찰박.
일을 마친 셋은 동시에 나가떨어지듯 엎어졌다. 지켜보던 발린도 기진맥진한 건 마찬가지였다.
“역시는 역시군요. 교황성하. 아무리 드래곤 하트라고는 하나, 이 정도까지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처음 말을 들을 때부터 알고 있지 않았나.”
교황과 넴로드 대신관은 외부자가 있는 것도 모르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조 반대편에서 엎드려 있던 발린은 숨도 쉬지 않고 둘의 말을 기억하는 데 집중했다.
‘드래곤 하트? 그럼 살덩이가 튀어나오는 저 보석의 정체가...’
“예.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자네에게는 미안하네. 실패만 거듭하고 있군 그래.”
“...아닙니다.”
교황과 넴로드 대신관은 어느 정도 숨이 진정되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때쯤 되자 빛을 발하던 성법진도 어느새 처음처럼 돌아가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셋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일제히 몸을 돌려 입구 편으로 걸어갔다.
“볼 일은 다 끝났으니, 이제 추후 확인하는 것만 남았군.”
“이번에는 틀림없이 성공하실 겁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목소리가 멀어지다가 이내 완전히 끊겼다. 그러나 발린은 곧바로 목소리를 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천천히 숫자를 셌다. 1부터 천까지. 그렇게 세 번을 셌음에도 지하 광장엔 발린 외의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후아아...”
그제서야 발린은 기척차단 마법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지하광장에 들어왔을 때부터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계속 피냄새를 맡고 있었더니 머리가 저절로 어지러웠다.
전생의 몸이었다면 이 정도엔 눈도 꿈쩍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의 발린은 무시무시한 대마법사! 마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현자라는 칭호를 얻긴 했지만, 전쟁 이후의 그는 살아 움직이는 자연재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허나 지금 그는 16세 소년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피냄새에 익숙해지는 건 영혼이 아니라 몸이 해야 하는 일. 아무리 의식 속에서 다그쳐도 되는 게 아니었다.
“으윽...”
밀려오는 구토기를 간신히 참은 발린은 메스꺼운 느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수조로 향했다.
이 곳에 구토를 해 버린다면 토사물이 남을 것이다.
그 흔적이 교황에게 보이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여하튼간...이 안에 있던 그 보석이 드래곤 하트라 그건가?”
발린은 떨떠름한 목소리를 내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실제로 보진 못했어도 드래곤 하트라면 그도 잘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천 년 전 나타난 마왕을 봉인하는 통에 멸족된 드래곤들의 심장!
그들은 심장의 마나를 가져다 신의 경지에 이른 마법을 썼다고 전해지며, 그 힘도 거기에 걸맞게 무지막지하게 강력했다고 한다.
한데 지금 이 수조에 들어있는 게 놈들의 심장이란다.
궁금증이 절로 솟구쳤다. 너무 솟구쳐서 팔과 다리가 주체 못하고 부들부들 떨렸다.
“...어디...”
이미 소매도 걷었겠다. 발린은 붉은 물로 가득한 수조 안으로 손을 넣었다.
철퍽.
묽고 끈끈한 덩어리가 손가락 위로 만져졌다. 마치 막 도살한 사람의 장기를 파헤치듯 역겨운 느낌이었다.
“...욱!”
영혼은 이미 수없이 겪은 일이나, 과거의 신체가 가진 방어기제가 어김없이 작동했다.
발린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손을 놀렸다. 그 때마다 저녁 때 먹었던 음식물이 목구멍으로 올라왔으나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았다.
손놀림에 따라 움직이던 살덩이 사이로 단단한 무언가가 만져진 건 조금 후.
순간 발린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단순 보석이라 생각했던 드래곤 하트에 얼마나 많은 힘이 담겨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이, 이건...’
힘의 정체는 마나가 아니라 에테르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농밀하게 정제된 에테르.
드래곤 하트에는 발린이 지금껏 만들어 왔던 에테르보다 훨씬 강력한 에테르가 빼곡하게 차 있었다.
이 힘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면 무시무시하게 강해질 수 있었다.
산도 손짓 하나로 부술 수 있고, 번개를 내리는 건 일도 아니리라.
그야말로 신! 사용법을 알고 있으니 쓰기만 한다면 신처럼 있을 수 있었다.
‘...가져갈까?’
순간 드는 것은 강렬한 욕망이었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더 이상 마왕군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어진다.
이 힘이라면 마왕을 제외하고 삼공작이나 노스트라의 황제가 온다 해도 걱정없었다.
에테르의 사용법을 제대로 아는 발린이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이라면 세계를 지킬 수도, 멸망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진 발린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을 내뱉었다.
눈 앞에선 자신을 믿고 여관까지 와 준 레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이걸 가져간다면 세상을 구하는 건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 악을 척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의, 한 번 잃어버린 신의만큼은 어떤 권능으로도 회복할 수 없었다.
“...레벤은 나를 믿고 후보자 귀족까지 데리고 여관에 와 주었지.”
발린은 아까와는 달리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독백했다.
교황청에 잠입한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쳐도, 이것은 그 범위를 아득히 벗어나는 짓이었다.
상대하기 불편하고, 때로는 짜증나고. 어떤 때는 자신마저도 제압당하는.
그런 상대이지만, 동시에 이번 생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
그 사람을 배신하는 행위 앞에서 발린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억제하지 못했다.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 하나가 속삭였다.
‘애시당초 레벤을 배신하지 않을 거였다면 여기 오지 않아야 하는 것 아냐? 이미 진작에 각오한 일인데 왜 이제 와서 망설이는 거야? 잡아! 잡아서 가져가! 너의 것으로 만들어!’
목소리는 계속해서 발린을 충동질했다.
구구절절 논리적인 설득으로 무장한 그것은, 이제 전생의 경험까지 끌어와 발린에게 말하고 있었다.
전생을 반복하고 싶지 않으면, 이 힘을 취하라고.
‘너는 사람들을 믿었지. 그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어둠과 맞서 싸우는 데 협력할 거라 생각했어. 그 결과가 뭐야? 네 동료들은 모두 죽었고, 너는 최후의 최후에 몰려 과거로 돌아와야 했어! 그럼에도 또다시 반복할 셈이야?’
“...”
발린은 구구절절히 대답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었고, 그는 이미 그 점을 꿰뚫고 있었다.
거울을 향해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짓이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세수 한 번을 더 하는 게 이로웠다.
발린은 조용히 핏빛 수조 속을 바라보았다.
붉은 물 위로 전생의 세계가 얼핏 비쳤다.
목소리의 말대로, 자신은 사람을 믿었고, 편법 대신 정공법을 고집했다.
그 결과는 불확실한 신의 힘을 이용해, 불확실한 과거로 회귀해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가는 것이었다.
이번 생에서만큼은! 이번 생에서는 악을 멸망시키고 세계를 지키겠다고 그렇게 절절히 외친 자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자신을 향해 신의를 지켜 준 사람들을 배반할 이유가 되는가?
자신부터 더러워지고서 세계를 지키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답이 나올 수 없는 과제 앞에서 발린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눈 앞에 놓인 드래곤하트는 여전히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나를 가져가라고 유혹하는 듯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는, 아니. 모든 무인에게 있어 이 드래곤하트는 매혹적인 미녀 이상이었다.
가져가서 쓰기만 하면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어떤 미녀보다도 아름답고, 어떤 잠보다도 달콤한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그 절대적인 유혹 앞에서 발린은 손가락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신의를 어기고 쉽게 세상을 구원하느냐. 신의를 지키고 어려운 길을 가느냐. 그 사이의 문제로군.”
손가락의 힘을 풀기까지는 한 세월이 걸렸다.
너무 힘을 주었던지 손가락들은 거의 부러질 것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 아픔의 끝에서 발린은 드디어 결정할 수 있었다.
심호흡을 한 그의 손이 드래곤 하트를 품 속으로 잡아당겼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오늘의 연재편수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도 후기 코멘트란에서 뵙게 되어서 삼가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어제 어떤 독자분께서 여러 개의 댓글을 달아주셨고, 그걸 보면서 제 자신의 부족감을 통감했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그런 오류를 지적받지 않으려고 힘을 주다 보니 편수 작업이 두 편으로 줄어든 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내일은 컨디션과 속도, 둘 모두 회복하여 3편 연재 페이스로 원상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불초 늘푸르 다시금 인사올립니다. 죄송하고,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