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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 그리고 정보조사.
슬프게도 발린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우선 오러블레이드까지 피워 올리는 둘을 진정시키고 2층으로 올리는 게 하나.
그 과정에서 놀란 손님들과 파손된 여관 기물들을 수습하는 게 둘.
마지막으로 둘 사이에 얽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는 것이 셋.
이 세 가지 업무를 동시에 하는 사이 발린의 스태미나는 거의 바닥까지 치달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게 세 번째 일. 레이안 교단의 대신관과 마족 사이를 화해시키는 것이니만큼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야. 소냐가 마왕군과 엮일 일 없다는 건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고, 소냐 당신도 안심하십시요. 레벤 대신관은 제가 믿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니까요.”
“...알았다냐.”
“발린 공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도 일단은 이 분을 믿어보도록 할게요.”
설득 끝에 레벤과 소냐는 양쪽 모두 서로에 대한 적의를 거두었다.
열심히 설득하던 발린은 일이 잘 끝난 것 같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레벤이 개방적이고 소냐가 어둠의 마나가 없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에서 끝났지, 자칫하면 여관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발린 공, 에블린 백작영애 때도 느꼈지만 정말이지...하아.”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본 레벤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발린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능동적으로 끌어들인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소냐 쪽에서 다짜고짜 찾아온 것 아닌가.
“여하튼 서로에 대한 건 아까 대략적으로 들었지? 이쪽은 교단 대신관 레벤, 이쪽은 케틸 공작의 수양딸 소냐.”
“아까는 미안했어요. 소냐. 제가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어요.”
“아니다냐. 네가 한 대응, 괜찮았다냐. 아마 대장벽이었다면 스승님께서 크게 칭찬하셨을 거다냐.”
말을 마친 소냐는 히죽 웃었다. 그제서야 발린은 남은 긴장을 완전히 풀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더 이상 둘이 싸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소냐는 이미 레벤을 받아들인 것 같고, 레벤은 애시당초 소냐에게 큰 적개심이 없었다.
단지 발린을 노리는 마족이라 생각하고 세이크리드 오러를 피웠을 뿐이다.
“잘 된 거겠죠?”
“믈론입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에블린의 물음에 발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아군임이 판명되었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소냐를 믿어줄수록 훨씬 더 좋았다.
마족이라는 편견 때문에 그녀의 능력이 필요한 데 쓰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웃긴 일이었다.
‘어둠의 마나를 쓰기라도 하면 모를까, 순수한 무력으로 소드마스터 최상급에 오른 인재를 무시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소드마스터 최상급, 그 정도의 인물은 인류 연합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수가 적다.
거기에 한 명이 추가된다는 것은 그만큼 승리가 가까워진다는 것.
게다가 소냐를 아군으로 끌어들임으로서 얻는 이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적의 힘을 줄이고 나의 힘을 늘인다. 승리를 위한 최선의 방식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일이다.’
전생의 세계에서, 소냐는 레-호트의 본신육체를 담게 된다.
허나 이번 생에서 발린이 미리 그녀를 거둔다면, 레-호트는 장차 최강의 육신을 하나 잃게 되는 셈이다.
더욱이 나아가서는 소냐와의 친분을 이용해 케틸 공작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처음부터 몰랐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미 알게 된 이상 절대 내버려둘 수 없지.’
대장벽은 분명 중요한 요충지이나, 거기에서 마왕군을 막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 곳의 정예병을 살려 이용한다면 추후 이어지는 장기전에서 큰 패를 하나 더 얻는 셈.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발린의 눈 앞에 어떤 광경이 보였다.
순간 발린은 이도저도 못하고 굳을밖에 없었다.
“귀엽다냐아아아아~”
“웁! 우웁! 우우웁!!”
레벤을 푹 파묻듯이 양가슴 사이로 묻은 소냐, 그녀의 양 팔은 마치 감옥처럼 레벤의 등 뒤를 막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마치고 시선을 움직이던 도중, 갑작스레 소냐가 레벤을 향해 달려와 온몸으로 포옹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냐는 레벤과 비슷한 경지의 고수, 그녀가 작정하고 기습한다면 레벤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레벤은 속절없이 양가슴 속에 얼굴을 파묻어야 했다.
오러를 이용해 밀어내려 해도 적이 아니니까 그럴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맨몸의 힘만으로 밀자니 체급 차이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했고 말이다.
“바, 발린! 잠시 이 분 좀 말려...”
난생처음 겪는 찐한 포옹에 레벤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따뜻하고 포근하다냐! 나 레벤 좋다냐!”
“...하아. 하는 수 없지요.”
몇 번이나 밀어내려던 레벤도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얌전히 안기는 길을 택했다.
지켜보던 발린은 어느 정도 스태미나가 회복된 것 같자 슬며시 일어나 말했다.
“그나저나 둘 사이가 정리됐다면 슬슬 약속대로 움직이고 싶은데. 소냐...말을 놓아도 되려나?”
“나는 상관없다냐. 어차피 인간으로 따지자면 내 나이는 대략 10세 정도라고 들었다냐.”
“10세? 묘인족의 수명이 어떻게 되길래?”
처음 듣는 마족의 생태에 발린은 문득 호기심이 동했다.
전생의 발린이 마물들에 대해 아는 것은 놈들의 약점이나 공격방식 정도가 끝이었다.
당장 눈앞에 온 녀석을 죽이기도 바쁜데 놈들의 생태에 대해 연구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만큼 마족들의 수명이나 사회상에 대한 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대략적으로는 200세에서 250세 사이라고 들었다냐.”
“200세...”
듣고 있던 에블린은 두 배가 넘는 수명이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200세면 고조부에서 손자까지의 가계가 이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대다.
그만큼의 시간대가 한 명의 수명이라니 놀랍지 않은 게 비정상이었다.
“200세라...그럼 네 나이는 대략 20세 정도인가?”
한편 상대적으로 발린은 묘인족의 수명에 대한 놀라움이 덜했다.
그도 그럴 게 발린은 이미 전,현생을 거치며 온갖 싸움을 해 왔던 몸.
그동안 상대했던 네임드들 중엔 무려 천 세가 넘는 노괴물도 수두룩했다.
200세라는 것에 놀랄 나이는 이미 옛날에 지나친 것이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냐.”
소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케틸 공작에게 거둬졌다 들은 게 대략 이십 년 전의 일이다.
갓난아기 때 주워졌다 한 만큼 거기서 큰 오차는 없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발린은 서슴없이 결정을 내렸다.
“그럼 좋습니다. 아무래도 에블린 님 외엔 다들 존댓말을 써야할 것 같군요.”
“아니다냐. 인간처럼 따지면 열 살 정도라 했으니 말 놓아도 된다냐.”
“그런가...?”
발린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종족과 인간의 나이 차이에 대한 고민은 전,현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게다가 나도 나를 이긴 사람이 내게 말을 높이는 건 거북하다냐.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냐.”
“그렇다면야 하는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인 발린은 몸을 일으켰다.
정할 걸 정하고 이야기도 마쳤으니, 이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
꿀벌집 여관의 뒷마당, 평소라면 잡일이나 빨래 등을 할 법한 곳에 오늘은 이상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긴장감의 근원은 마주 선 두 사람, 발린과 소냐였다.
아직 저녁 기온은 꽤나 서늘한 편이나, 그럼에도 둘의 몸에선 훈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발린의 말에 소냐는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냐. 더 하고 싶다냐. 발린의 검술 신기하다냐!”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소냐, 허나 발린은 무심히 자신의 연습용 검을 거뒀다.
아까 전부터 지금까지 한 시간, 그 동안 둘은 쉬지도 않고 대련을 해 왔다.
아직 체력은 충분히 남아 있었으나, 밤의 잠행을 위해서는 더 이상 대련을 하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만. 더는 안 돼.”
단호한 의사표시에 소냐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권갑을 거뒀다.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레벤이 양쪽 선수에게 제각기 물을 건넸다.
“잘 봤어요. 예전에도 느꼈지만, 발린 공은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어째서 익스퍼트 하급이 못 되는지 모르겠네요.”
“그러게 말이다.”
발린은 내밀어진 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한 시간 동안 격렬히 움직인 몸이 물을 받아들일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그 검법은 도대체 뭐다냐? 처음 보는 움직임이다냐.”
옆에서 물을 다 마신 소냐가 물어왔다. 만류의 검과 맞서면서 강렬한 호기심을 느낀 것이다.
확실히 만류의 검은 그럴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랜드마스터의 검을 기반으로 쌓아올린 수많은 강호들의 검술.
거기다 발린이 직접 휘두르면서 단점을 없애고 장점을 보완시켰다.
역시 레전드 등급, 얻을 수 있는 고유 능력의 등급 중에서도 최강이란 등급에 걸맞는 능력이었다.
“내 검술. 별 거 아냐.”
하지만 정작 그걸 펼친 발린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발린은 무려 한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싸웠으나 묘리를 얻긴 커녕 실마리도 볼 수 없었다.
수련치는 꽤나 올랐으나 정작 얻어야 할 게 보이지 않으니 불만스러운 것도 당연했다.
“그나저나 발린도 엄청 빠르고 강하다냐. 그러면서 왜 마법을 배웠는지 모르겠다냐.”
“그야 마법으로 속도를 강화시켰으니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단련된 일반인 수준밖에 안 돼.”
발린은 퉁명스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속도와 힘은 수십 번의 헤이스트와 스트렝스를 중첩시켜 낸 것.
무영창이 없이는 흉내도 못 낼 뿐더러, 그렇게 싸우고 나면 항상 그 후유증으로 몸 이곳저곳이 아파 온다.
빠른 시일 내에 검술의 경지를 익스퍼트 상급까지는 올려 놓아야 했다.
그래야 더 이상 마법으로 몸을 강화하는 것의 부작용을 겪지 않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검술을 연마하며 얻은 깨달음이 새로운 마법의 경지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말이야.’
생각을 마친 발린은 남몰래 목걸이 안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소냐와 대련하기 전과 그 후의 능력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능력치들이 펼쳐졌으나 발린은 신경도 쓰지 않고 스크롤을 내렸다.
그가 멈춘 곳은 바로 만류의 검이 나타난 부분. 발린은 천천히 변화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고유 능력]
[등급 : 레전드]
[레벨 : 2]
[제목 : 만류의 검(검법)]
[내용 : 균형이 되는 솔다인 검법을 기반으로, 전생에 경험했던 수많은 전투경험을 녹여넣은 특별한 검법.
수많은 영웅들의 영향이 엿보이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검왕 팔리아스의 흔적이다.]
[성취도 : 61/100%(레벨2)]
‘61퍼센트라...’
황제선발대전에 오는 도중 습격자들과 싸울 때 확인한 성취는 6퍼센트에 머물러 있었다.
선발대전에서 여러 경기들을 지켜봤다고는 하나, 짧은 사이에 55퍼센트나 오른 건 분명 고무적인 성과였다.
‘여기에 케틸 공작의 검법을 추가하면 레벨 업은 확실하겠군. 좋아.’
발린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첫 날엔 별다른 성과가 없었지만, 사실 하루만에 성과를 얻길 바라는 게 도둑놈 심보였다.
수련검이나 경기에서 본 여러 검법들은 한 번만에 얻었다고는 하나, 그건 그것들의 경지가 일천해서일 뿐.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능력이니만큼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소냐고 아르낙스고 전부 만류의 검에 관심을 보이던데...역시 그랜드마스터의 묘리라 이건가.’
뒷마당에 남은 발린은 천천히 만류의 검법대로 검을 움직여 보았다.
안정감을 갖춘 채 움직이는 검을 바라보던 발린은 순간 아리송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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