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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127화 (12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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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선발대전 개최!

“들킨 모양이군요.”

거리를 거닐던 발린은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눈치채곤 귀엣말을 건넸다.

옆에 있던 에블린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가면을 썼지만 발린은 약간의 변장만을 마친 맨얼굴로 다니고 있었다.

황도의 사람들 대부분이 경기장이나 밖에서 경기를 지켜본 만큼 발린의 얼굴을 한 번은 본 셈, 시선이 모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또요? 벌써 스무 번째네요.”

여러 기념품을 사 들고 있던 에블린이 지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처음 칭찬을 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몇십 번 연속으로 남자들의 시선이 몸을 훑는 건 저절로 에블린의 얼굴을 찡그려지도록 만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건 너무 심하군요. 아무래도 골렘을 내보낸 게 생각보다 큰 인상을 줬나 봅니다.”

발린은 고개를 양 옆으로 저었다.

하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다른 출전자들마저 모조리 얼굴을 굳혔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지금의 순간은 별개다. 발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 여자는 그럼 골렘 마법사와 계약한 귀족인가? 웰...뭐시기 백작가에.”

“잘 빠졌네. 우리 마누라는...”

“예끼. 더 말 말아. 내가 자네 마누라 모를 줄 아나?”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 몇몇이 웃어제꼈다.

그걸 신호로 발린은 에블린의 손을 잡으며 인비저빌리티(투명화) 마법을 외웠다.

스르륵.

순식간에 든 짐째로 발린과 에블린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이미 아래로 움직여 다른 골목길로 파고든 둘이 눈에 뜨일 리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주변을 살핀 발린이 인비저빌리티를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짐 없이 뛰는 것도 힘든데 기념품을 들고 움직이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처음 나올 땐 이런 건 예상 못했는데...”

옆에 선 에블린이 처량한 표정으로 불평했다.

그녀가 축제를 즐긴 건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

게다가 황제선발대전의 승자란 타이틀도 없었으니 지금과는 환경이 상당히 달랐다.

이미 이 상황을 예상하던 발린은 거 보라는 듯 말했다.

“저는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생각보다 좋진 않을 거라고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그러게요. 발린 님 말을 들을 걸 그랬어요.”

에블린은 한숨을 내쉬며 시장에서 산 몇 가지 기념품을 들어 보였다.

싸구려 구슬 목걸이나 모자, 가면 따위의 흔히 구할 수 있는 물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뭐...후회는 안 해요. 오랜만에 다니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좋았거든요.”

“옛날 생각이라...어릴 적에 축제를 돌아다니셨나 봅니다?”

“네. 아직 아버님께서 살아 계실 적에...”

옛날을 회상하던 에블린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괜스레 분위기가 슬퍼지자 발린은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고로 승리 후에는 마음껏 즐겨야 전투력이 상승하는 법.

괜시리 옛생각에 빠져 사기가 저하됐다간 다음 날 지리멸렬히 패배할 뿐이다.

발린은 황급히 사기를 돋울 방안을 생각했다.

‘오늘 전투 얘기를 꺼내볼까? 아니야. 그건 너무 심각해. 레벤 대신관 얘기? 그건 역효과잖아! 어, 그러니까...아!’

고민하던 도중 팔에 실린 기념품들을 본 발린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번갯불에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한편 에블린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빛에 물들어 검지만 밝은 밤하늘, 그녀가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움직이던 축제날도 하늘은 저런 모양새였다.

“...하.”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던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걸 떠올리던 에블린은 어느새 눈앞이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발린이 에블린을 부른 건 바로 그 때였다.

“에블린 님.”

“네?”

사뭇 심각한 목소리에 에블린은 저도 모르게 반문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런 목소리는 단 한 번, 국경지대에서 암살자들이 여관을 포위했을 때 들은 뒤 처음이었다.

‘혹시 다른 귀족들이 암살자를 보낸 건가?! 하지만 어떻게!!’

만약 암살자가 왔다면 우선 몸을 피할 곳부터 알아봐야 했다.

얼굴을 굳힌 에블린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가면을 쓴 채 무술가나 할 법한 괴이한 자세를 취한 발린이 있었다.

“어?”

“...오옵! 오오옵! 오옵!”

한쪽 발은 발가락만으로 땅을 지탱하고, 양쪽 무릎을 꼬아 반가부좌를 만든 채 손을 움직이는 발린.

표정, 얼굴, 몸에 건 기념품 장식까지 완벽하게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에블린은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어요.”

“슬픈 게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발린은 반가부좌 자세를 계속한 채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가 취한 모습은 파이오니어 왕국 축제와 어릴 적 마을 축제에서 본 가짜 마술사를 흉내낸 것이었다.

다른 방법이 안 떠올라 웃겨나 보려고 시도했는데 다행히 어찌어찌 먹힌 듯했다.

“그나저나 그 모습은 뭐예요?”

“아, 흔히 이런 축제에 보이는 가짜 마술사를 흉내낸 겁니다. 저도 예전에 이런 거 몇 번 본 적이 있어서요.”

마왕군의 침공이 본격화되고 북방에서 군병이 내려올 때는 더 이상 이런 광대를 볼 수 없었다.

진짜 마법사도 살 수 없는 세상에서 가짜 마법사가 살 수 있을 리 만무했으니 말이다.

그 전, 모두가 평화롭던 시절 보였던 광대의 모습이 지금의 발린에게서 약간이나마 묻어나왔다.

에블린은 눈물까지 흘리며 깔깔 웃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건 진짜 남쪽 수림 속에서 사는 원시 부족 사람들 같잖아요! 진짜 그 사람들 보고 온 것 같아! 아하하하!”

“그렇게 잘 꾸몄습니까...?”

생각보다 큰 반응에 발린은 떨떠름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었다.

그 모습마저도 더없이 축제의 가짜 마법사를 닮았기에 에블린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그녀의 근심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겨우 진정한 그녀는 발린에게 앞으로 그 차림으로 움직일 것을 지시했다.

“그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재밌겠네요! 선발대전 출전자라는 것도 들킬 일 없을 테고. 시선이야 좀 받겠지만 그거야 저도 좀 꾸미면 되잖아요.”

“...제발 그것만은 좀 참아 주십시요.”

발린은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한 번 꽂힌 에블린의 관심은 가실 줄을 몰랐다.

결국 발린은 궁여지책을 하나 쓰기로 했다.

“가짜 마법사 차림이 그렇게 보고 싶으시다면, 대신 진짜 마법사는 어떻습니까?”

“진짜 마법사요? 그거야 여기 제 눈앞에 마법사님이 계시지 않아요?”

에블린이 물어오자 발린은 살며시 고개를 양 옆으로 저었다.

“아니요. 저는 가짜 마법사고, 진짜 마법사는 따로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뜻밖의 대답에 에블린이 궁금증이 동한 목소리로 반문해 왔다.

예상대로의 전개에 발린은 씨익 웃으며 준비해뒀던 대사를 꺼냈다.

“모르셨습니까? 진짜 마법사가 있다는 걸?”

“...그게...무슨.”

당혹한 에블린을 향해 발린은 목청을 가다듬은 뒤 진지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잡았다.

“그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세상의 미래를 예지하며, 하늘과 땅, 산과 바다가 보여주는 지표를 통해 기쁜 일을 불러오고 슬픈 일을 막습니다. 종이 몇 장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보고, 또한 종이 몇 장으로 그 인생을 바꾸기도 하지요. 그런 기적을 부리는 사람들이 진짜 마법사지, 저나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은 모조리 가짜입니다.”

길게 늘어뜨린 미사여구 속에서 에블린은 눈이 팽팽 도는 걸 느꼈다.

“그, 그런 사람들이 정말 있다고요? 진짜 마법사가?”

“물론이죠. 이 근처에도 한 분 계시네요.”

“!!”

깜짝 놀란 에블린이 눈을 빛내며 발린에게 달라붙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에블린의 온기에 발린은 황급히 몸을 뒤로 물리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제가 이런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면 진짜 마법사님을 만날 수 없는데.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갈게요! 진짜 마법사님! 꼭 만나뵙고 싶어요.”

완전히 넘어온 에블린을 향해 발린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좋습니다. 진짜 마법사를 만나러 움직이죠.”

***

하늘의 별을 보고 미래를 예지하며, 자연의 신호와 사람의 모습을 통해 운을 보는 자.

겉보기에는 진짜 대현자들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 실체는 굉장히 단촐하고 아담했다.

“진짜 마법사 분이 여기 살고 계세요?”

“여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계실 겁니다. 오늘은 축제날이니까요.”

말을 마친 발린은 눈앞에 있는 허름한 천막문을 걷고 들어갔다.

천막 안엔 의자 몇 개가 옆으로 나란히 놓인 뒤로 긴 직사각형의 테이블 하나가 있었다.

테이블 위로는 염소수염을 길게 기른 안경잡이 노파 한 명이 앉아 있었는데, 겉보기부터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허어, 그대들은 누군고?”

“진짜 마법사님을 뵙고 세계가 보여 준 지표를 해석하러 왔습니다.”

사뭇 진중하게 말하는 발린, 그 옆에서 에블린은 당혹감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허, 치켜세워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손님. 발리다만의 점술집에 잘 오셨어요.”

“...점술집?”

그제서야 발린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왔는지 깨달은 에블린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진짜 마법사님을 뵈러 가자 하시더니...”

“왜 그러십니까, 진짜 마법사분 맞지 않습니까. 하늘을 보고 미래를 해석하고...종이 몇 장으로 인생을 보고...큭큭.”

능수능란하게 말을 잇던 발린이 순간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흘리고 말았다.

화내려던 에블린은 순간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하기야 발린이 한 말 중에서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한 것은 단지 점술사를 진짜 마법사라고 믿게 하기 위해 온갖 폼을 잡은 것 뿐이었다.

‘...괘씸하지만...뭐, 그래도 재밌으니까.’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로 한 에블린이 옆 의자에 앉았다.

둘이 숨을 고른 것을 확인한 노파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엇을 알아보러 여기 오셨나요? 손님들? 출세? 부귀영화? 강한 힘? 미래? 아니면 혹시...두 분간의 금슬?”

“그런 거 아니예요!!”

에블린이 깜짝 놀라 노파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확실히 둘 사이를 오해한 노파가 낄낄거리며 수정구슬과 카드 몇 장, 그리고 주사위 등의 도구를 늘어놓았다.

“히히히, 잘 어울려요! 두 분! 보아하니 여자분께서 기운이 세셔서 남자분 내조를 아주 잘 해 줄 거예요!”

“아이참, 그런 거 아니라니까...”

에블린이 계속 얼굴을 붉히자 보다못한 발린이 나서서 용건을 말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말씀해 주십시요. 잘 듣겠습니다.”

동시에 발린은 손 안에 미리 준비해뒀던 금화를 꺼내 내밀었다.

엄청난 돈을 받은 점술가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어이구야! 오늘 황도궁의 열두 별이 재신이 내려올 거라 노래부르더니만, 역시 오시긴 오시는구려. 잠시만 기다리슈.”

말을 마친 뒤 안쪽으로 사라진 점술가는 이내 낑낑대며 몇 가지 도구와 약제 등을 들고 나타났다.

점술집보다는 마법사의 실험실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약초들도 꽤나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 봅시다. 우선 두 분 각각의 미래...이 가루를 두 분이서 직접 구슬에 뿌리시고, 여기 카드를 마음대로 섞으셔서 한 장 고르시구랴.”

점술가 노파가 시킨 대로 움직이자 가루를 맞은 구슬이 은은하게 빛났다.

발린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마나가 움직이지도 않고 신성력이나 어둠의 마나도 없는, 단순 조잡한 속임수였다.

하지만 그걸 이렇게 진지하게 하고 있자니, 왠지 실제로 점괘가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께서 한 번 더 후기란을 방문해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아, 기쁜 소식이 하나 있네요. 다름아니라...친절하신 독자분께서 제 소설 팬아트를!

그려주셨다고 합니다.

그 인물은 우리의 인기많은 레벤...큭큭.

노블레스 작품인데 팬아트가 나올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 못했는데

행복해요.

그런고로 더 쓰고 쓸 겁니다. 건필해야죠. 후후

여러분도 좋은 하루 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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