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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81화 (8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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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수여식

“그렇다면 좋아요. 당신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그걸로 저를 제압하는 정도야 간단한 일이겠죠?”

“레이디를...제압하는 것 말씀이십니까?”

그 말을 들은 테네스 후작의 감정선에서 황당함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졌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지금 눈앞의 소녀는 자신이 누군지 들어 놓고도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나한테...그냥 넘어가긴 너무 쉬운 듯 하니까 한 번 튕겨보겠다. 이거 맞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일단 진정한 테네스 후작의 눈이 레벤의 몸을 슥 훑었다.

미적인 관점이 아니라 그녀의 무술실력을 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 마음은 채 1초도 가지 않고 정욕에 밀려 사라졌다.

‘어디 보자. 후후. 탄탄한 허벅지에 필요한 부위에만 살이 있다니, 이거 완전...’

그야말로 이상적인 용모였기에 테네스 후작은 본능에서 오는 경고를 그대로 무시해 버렸다.

레벤의 몸에서 단련의 흔적을 발견하긴 했으나, 그걸 단순한 호신술 정도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확실히 귀족가의 여식들이 몸매 혹은 호신을 위해 무술을 배우는 건 그리 드물지는 않은 취미 중 하나였다.

좋은 몸을 갖추는 건 부모 측에서도 나쁠 게 없기도 하니, 이런 것 하나 정도야 그냥 넘겨도 문제 없을 것이다. 후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신중했다거나, 조금만 더 수도의 일에 대해 자세히 알았다면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레벤은 단순한 귀족가 여식이 아닌, 교황청에 소속된 소드마스터 급 비밀병기였으니 말이다.

“호오, 검술이라고? 그 말인즉슨 레이디...검술로 저를 쓰러뜨리시겠다. 그 말씀이신지요?”

“검술...로 해도 상관없지만, 저 지금 무기가 없어서 그러는데. 대신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말하며 레벤이 제안한 것은 매우 단순한 내기였다.

드레스 가슴팍에 옷핀 하나를 꽂고 격투술로 대결을 펼친다.

만약 테네스 후작이 레벤의 가슴팍에 있는 옷핀을 뺀다면 그의 승리.

옷핀을 빼지 못하고 넉다운된다면 레벤의 승리

놀라우리만치 간단한 규칙에 테네스 후작은 입맛을 다시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옷핀 하나 빼는 건 일도 아니지. 그래도 레이디를 무안하게 할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밀리는 척은 해 줘야겠군.’

“좋습니다. 꽤나 어려운 조건 같은데, 그래도 제 불타는 열정을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꽤나 어려운 조건이라...맞아요. 꽤나 어렵죠. 제 옷핀을 빼내는 거. 한 번 기대해 볼게요.”

열의를 불태우는 테네스 후작을 격려하던 레벤이 한층 더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둘의 격투 대련이 성사되자 장내의 귀족들은 새로운 구경거리에 열광했다.

레벤의 정체를 아는 귀족들도 그녀의 자세한 전투력에 대해선 정확히 알지 못하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마족을 잡을 때 큰 활약을 했다던데...그래봤자 소드마스터 앞에서는 별 수 없겠지.’

‘우리 후작님께서 좋은 볼거리 하나 만들어 주셨군. 크큭.’

비록 레벤이 삼황자를 잡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는 하나, 그 내막을 모르니 레벤의 진정한 무력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단 한 명, 그녀와 같이 싸운 사람이자 지금 간신히 웃음을 참고 일어선 발린을 제외하면 말이다.

“쯧쯧.”

발린은 이미 성사된 결투를 보자마자 두어 번 혀를 차며 동정심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 의미를 오해한 밀리아가 날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오빠 왜 그래! 레벤 대신관님께서 당하시는데...뭐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가만히만 있으면...”

“밀리아. 내가 지금 동정하는 쪽은 레벤이 아니라 테네스 후작이야.”

발린의 말을 들은 밀리아는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편 발린은 정원 쪽으로 향하는 테네스 후작을 보며 한번 더 혀를 찼다.

‘멍청한 작자야. 스스로 제 무덤을 파다니.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나?’

테네스 후작은 예전부터 소드 마스터 중에서도 최약체였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레벤은 반쯤 그랜드 마스터라 해도 될 만큼 막강한 삼황자를 상대로 선전한 이력이 있었다.

신성력과 어둠의 마나 간 상성이 있었다고는 하나, 레벤이 보여 준 정도면 충분히 실력을 인정할 만했다.

결코 테네스 후작 따위와 비교할 사람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지금 두 사람, 검이 아니라 권으로 싸우는 것 같은데, 이거 완전히 레벤 녀석의 홈그라운드로군.’

혹여 테네스 후작이 그랜드마스터로 각성하지 않는 한 레벤을 이길 길은 요원할 것이다.

그렇게 결론지은 발린은 옆에서 따져묻는 밀리아에게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설명해주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나을걸? 어떻게...가서 볼래?”

“그야 당연하죠! 만약 무슨 일 생기면 오빠가 책임지는 거예요?”

날카롭게 따져 묻는 밀리아에게 발린은 허허로이 웃음지은 후 정원 쪽으로 향했다.

그 뒤를 묘한 눈길로 지켜보던 엘리아가 따라 걸었다.

‘발린 스승님...한 번 같이 싸운 것만으로 레벤 대신관님을 그렇게 잘 알게 되신 거예요?’

이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엘리아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양입술을 꾸욱 내리눌렀다.

정원으로 나온 둘은 연무장에 가는 대신 가을꽃이 져 가는 잔디밭 위에 자리잡았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조건을 약속해 봅시다.”

잔디밭에 원을 그린 테네스 후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단순 결투만으로 끝나면 안 되니 확실하게 조건을 걸어 약속해 버리려는 심산이었다.

레벤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럼 각자 이겼을 때 어떻게 하실지를 조건으로 걸죠.”

“이겼을 때라...후후.”

테네스 후작의 입꼬리가 점점 더 올라갔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들어와 달라고 하는데, 거절할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제가 승리하면 레이디는 저와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셔야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오오!!!”

지켜보던 귀족들의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테네스 후작은 장차 왕국 권력의 중심이 될 인물.

장차 그에게 쓰임받으려면 이런 때를 기회삼아 눈에 들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귀족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테네스 후작은 느긋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이제 레벤이 자신의 승리시 공약을 말할 차례였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곧 좋은 게 생각났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럼 저는 이렇게 할게요. 만약 제가 이긴다면, 후작님은 한 손으로 코를 막은 뒤 돼지 소리를 내며 처소까지 가시는 거, 물론 알몸으로요.”

“......”

“...어?”

둘을 빙 둘러싼 채 내용을 듣던 귀족들이 순간 입을 떡 벌렸다.

무슨 말을 들었나 생각하려 해도 내용이 워낙 파격적인지라 그 때마다 눈 앞이 흐릿해졌다.

멀리서 지켜보던 발린을 비롯한 셋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바, 방금 레벤 대신관님이...”

“오빠, 저거 그...마을에서 톰이랑 켄트랑 하던 놀이 같은데??”

밀리아의 말에 발린은 난처한 기색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확실히 저건 어린애들 장난에서나 나올 법한 벌칙이지, 이런 자리에서 오르내리기에는 유치한 감이 있었다.

‘레벤이 초강수를 두었군. 이제 조금씩 낮춰 부르려나?’

처음부터 무리한 조건을 내놓는 건 협상장에서의 전략들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발린은 이제 테네스 후작이 그걸 거절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허허. 굉장히...굉장히 용기있는 발언이군. 레이디.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소?”

“어머, 후작님. 방금 전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꽤나 어려운 조건이지만 기대해 보겠다고요.”

레벤은 13세라고는 믿기지 않는 눈웃음을 보이며 후작을 도발했다.

안 그래도 달아올라 있던 테네스 후작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의 수에 넘어가 버렸다.

“큭큭...좋습니다. 레이디. 다만 그런 조건을 건 이상 오늘 밤, 편안히 지내실 수는 없으실 겁니다.”

“그럼 합의된 거죠? 룰은 이 원 안에서, 그리고 마나나 오러를 쓰는 건 금지. 무기도 금지. 이 정도면 됐나요?”

“...물론!”

테네스 후작의 고개가 끄덕이는 걸 시작으로 결투가 성립되었다.

정원에 나온 귀족들은 이 세기의 구경거리를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후작은 입고 있던 예복을 풀어헤쳐 움직이기 편하게 만든 뒤 자세를 잡았다.

금방 레벤의 옷핀을 떼고 다시 입으려는 심산이었다.

한편 레벤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그대로 원 안에 섰다.

움직이기 꽤나 불편할 텐데도 그녀는 아무래도 좋다는 모습이었다.

“그럼, 준비! 시작!!”

지켜보고 있던 귀족 한 명이 시작 소리를 외치자 둘은 제각기 자세를 취했다.

테네스 후작은 씨익 웃으며 레벤의 자세를 살폈다.

‘흐응? 그래도 자세는 그럭저럭 하는데? 하지만...그래봤자 자세지.’

호신술을 꽤나 열심히 배운 것 같았지만 그래봤자였다.

테네스 후작은 넓게 몸을 편 뒤 천천히 레벤에게로 좁혀들어갔다.

후작을 바라보던 레벤의 눈이 반짝였다.

이미 그녀가 후작을 대하는 모습은 여인으로서가 아닌 투사로서 대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곳에도 허점, 저 곳에도 허점. 흐응. 생각보다 더 말석인데?’

방심한 테네스 후작은 삼황자에 비하면 태양 앞에 선 반딧불이나 다름없었다.

레벤은 천천히 가장자리를 붙들고 돌려 했다.

순간 더 이상 참지 못한 테네스 후작이 드디어 땅을 차올렸다.

“차앗!”

“웃챠.”

갈대가 바람에 휘날리듯 가볍게 공격을 피한 레벤, 덕분에 후작의 손은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놀라는 귀족들을 향해 미소지은 레벤은 보란 듯이 다리를 움직였다.

퍽!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옆구리를 정통으로 맞은 테네스 후작이 비틀거렸다.

“헉...”

“오오...”

모두가 놀랐으나 가장 놀란 건 바로 테네스 후작이었다.

아무도 몰랐지만 사실 그는 방금 몸 안에 오러를 끌어올려 신체능력을 강화시킨 상태였다.

단숨에 레벤을 잡아채기 위해 그리했건만, 그녀는 자신의 손을 피한 것도 모자라 옆구리에 유효타까지 먹였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레벤을 보던 테네스 후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믿을 수 없다. 아무리 방심했다고 한들 이런 굴욕을!’

그는 몸 안에 깃들어 있던 오러를 한꺼번에 끌어올렸다.

오러는 몸 안에 운용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히 초인의 힘을 낼 수 있었다.

소드마스터의 무서움은 뭐든지 베어 버리는 오러블레이드뿐만 아닌, 그 초인적인 신체능력에서 기인했으니 말이다.

“하압!”

방심을 걷어낸 후작의 신형이 번개처럼 레벤을 향했다.

그러나 이는 레벤도 이미 예상하고 있는 바였다.

레벤은 아까보다 훨씬 가볍게 후작의 돌진을 피했다.

갈 곳을 잃은 후작의 몸이 잔디밭 위를 볼썽사납게 굴렀다.

“...이, 이게?”

방금 전 상황을 본 귀족들이 넋이 나간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든 후작도 후작이지만, 그걸 피한 레벤의 능력은 가히 사기급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렇게 생각한 건 테네스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테네스 후작의 눈엔 더 이상 방심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 계집...평범한 귀족가의 여식 따위가 아니다!’

그가 본 레벤은 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하지만 후작의 기감은 그에게 눈앞의 상대는 결코 여자 따위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최소한 자신과 동급, 아니. 그 이상의 강함이 느껴진 것이다.

테네스 후작은 정체를 캐묻는 대신 온 몸에 힘을 주었다.

자칫하다가는 자신이 정말로 질 수 있었다.

순간 아까 걸었던 패배 시의 조건의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절대로, 절대로 그것만큼은 안 돼!’

오늘은 평상시도 아니고 개선식과 승전연이 겹친 축제일이다.

그런 때 알몸으로 돼지 흉내를 내며 움직인다는 건, 자신의 명예를 완전히 갈아버린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테네스 후작은 비명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레벤에게 덤벼들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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