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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비밀 회담.
빼액 소리지르는 엘리아를 앞에 둔 발린은 살짝 입맛을 다셨다.
그녀가 이러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당장 자신도 ‘의도는 좋았다.’ 같은 경우를 숱하게 겪어본 바 있었다.
“후우.....”
발린은 깊이 한숨을 내쉰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내가 말해봤자 결과적으로는 사상자만 늘었을 거다.”
“.....”
엘리아의 눈길이 이 편으로 향했다.
설득이 먹혀들어간다 느낀 발린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그 곳에서 본 것, 그리고 싸운 적 모두 지금의 마탑으로서는 상대하기 힘든 난적이야. 억지로 사람을 끌고 가 봤자 큰 도움은 되지 못했을 거다. 그러느니 내가 세워 둔 계획대로 혼자...”
순간 더 이상 참지 못한 엘리아가 폭발했다.
“저희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탑 전체를 뒤흔들었다.
거인족이 노호성을 내지르면 이럴까, 여자아이가 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발린은 숨이 멎을 듯한 느낌 속에서도 어떻게든 사일런스 마법을 써 탑주실을 바깥과 격리시켰다.
“탑주님! 괜찮으십니까?!”
“침입자인가! 어디 있지!”
울음소리를 들은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발린은 스리슬쩍 움직여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봐요.”
눈 앞에는 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제각기 스태프를 들고 있었다.
발린이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면, 금방이라도 문을 부수고 쳐들어올 듯한 기세였다.
한편 마법사들도 갑자기 나타난 발린의 얼굴에 감짝 놀랐다.
오자마자 탑주실로 향했기에 마법사들 대다수는 발린이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앗, 발린 님!”
“어떻게 된 겁니까? 탑주님께서는...!”
순서를 앞다퉈 물어오는 마법사들 앞에서 발린은 가볍게 머리를 긁적였다.
사일런스 덕분에 우는 소리는 막고 있으니, 이제 엘리아를 보이지 않기만 하면 되었다.
“별 거 아닙니다. 탑주님께서 피곤하시다 보니 잠깐 쓰러지신 것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야...”
사정을 들은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직속제자인 발린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마법사들 중 한 명이 문득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아, 발린 님. 그 업무가 끝나면 바로 사절단 분들을 만나러 가셔야 하십니다.”
“사절단? 그 사람들 다 돌려보내지 않았습니까?”
발린은 예상치 못한 소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도 전체가 무너지는 큰 일이 터졌으니 당연히 돌아갔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비단 그게 아니더라도 사절단의 방문 기간은 사흘 혹은 나흘.
8일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게...각 탑에서 대표로 한 분씩 남아서 꼭 발린 님을 뵙고 가야겠다고 하는 통에...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발린은 문을 닫으며 입맛을 다셨다.
어째서 그들이 자신을 굳이 만나려 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재해 때문에 당초 스케줄이 어그러진 것 때문인가? 아니면 혹시 내가 삼황자랑 싸웠다는 게 들켰나?’
몇 번을 생각해도 직접 듣기 전에는 답이 안 나오는 문제였다.
일단 직접 만나 해결하기로 결심한 발린은 당장 눈앞에 온 문제를 향해 돌아섰다.
마법사와 이야기하는 동안 시간이 꽤 흘렀건만 엘리아는 아직도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흐으으으윽!!! 으끄윽! 흐어어어엉! 우에에엥!!”
책상 위에 엎드렸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엘리아, 주변에는 서류 더미가 눈물콧물에 젖어 흐트러져 있다.
그 동안 혼자 열심히 업무를 처리해 온 엘리아였기에, 그만큼 배신감이 두 배 세 배로 클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업보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이게 발린의 잘못임은 틀림없었다.
어째 마왕만큼 강력해 보이는 이번의 적 앞에서 발린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기, 엘리아.”
“으아아아앙!!”
“.....어.”
“흐아아아앙!!”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걸 느낀 발린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어려운 마법이었다면 어떻게든 해석이라도 해 볼 텐데 이건 도저히 해결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바로 그 때 성녀 크리스텔의 조언이 떠오른 것은 참으로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여자친구 사귄 적 있어요?’
천진난만하게 물어오는 그녀에게 없다는 대답을 하자 돌아온 한 마디.
‘여자 마음을 모르고 이해시키려고만 하니까 그런 거죠. 자고로 여자란...’
생각을 이어가던 발린이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연애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건 아니지만, 머리로만 아는 것과 실제 행동하는 것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발린으로 말하자면, 80세가 넘을 때까지 마법과 사명에 힘쓰느라 단 한 번도 연애를 겪은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저, 엘리아.”
“흐윽. 으윽. 우우....흐응..”
한창 눈물을 쏟아내는 엘리아에게 다가간 발린은 살며시 손을 들어올렸다.
삼황자와 싸울 때처럼 신속한 움직임은 온데간데없이 딱딱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든 엘리아의 눈에 서러움 외의 다른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린?”
마치 목각인형처럼 어색하게 움직이는 발린이 걱정된 듯 엘리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순간 발린은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그대로 엘리아를 제 품 속으로 끌어당겼다.
“흐우웁!!”
갑자기 몸을 폭 덮는 냄새와 기척에 엘리아가 눈을 크게 뜨고 발린을 올려다보려 했다.
그러나 온 몸으로 느껴지는 따뜻함과 탄탄한 몸 앞에서 그녀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러고 있는 게 그다지 싫지도 않았고 말이다.
한편 발린은 처음 느껴보는 감촉에 눈을 크게 떴다.
크리스텔이 말한 대로 힘껏 껴안고 아무 말도 않고 있긴 했는데,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펑펑 울어대는 건 그쳤으니까 된 거겠지?’
반신반의하다 다른 방도가 없어 그대로 시행하긴 했지만, 막상 반응이 오니 약간씩 자신감이 붙었다.
‘그럴 땐 그냥 확 안아버리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제일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너무 늙어서...’
크리스텔의 조언을 마저 생각하던 발린은 문득 살며시 화가 나는 걸 느꼈다.
아무리 늙었어도 그렇지, 그걸 눈 앞에서 직접 말해버리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나 큰 상처였다.
“흐윽. 흑. 끄으윽. 으으으...흑!”
차차 사그라들던 울음이 훌쩍임으로 변하자 발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발린 나름 자신감이 붙었기에 할 수 있었던 대처였다.
“너희들이 열심히 하는 거야 알고 있어. 내가 직접 가르치는데 설마 모르겠냐.”
“.....”
엘리아는 품 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반응이 없자 조바심이 난 건 발린 쪽이었다.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러니까 이게...’
이렇게 껴안고 있으니 이상야릇한 기분이 드는데, 정작 그걸 벗어나려고 해도 방법을 모르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힘을 주어 풀어낼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떼어내려 하면 엘리아 쪽에서 손에 힘을 준 탓이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엘리아가 서서히 떨어졌을 때, 그녀의 울음은 완전히 그쳐 있었다.
“됐어요. 스승님이 뭐 그렇죠.”
삐진 듯 고개를 홱 돌리는 엘리아였으나, 약간 보인 그녀의 입꼬리는 틀림없이 올라가 있었다.
발린은 눈물콧물로 흥건한 로브를 내려다보다 문득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앞으로는 안 그러마.”
“정말요?”
고개를 돌리고 있기에 표정을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목소리만큼은 어느 정도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크리스텔의 조언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니! 발린은 자신이 한 수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그래. 앞으로는 반드시 그러마.”
순순히 승낙의 말을 한 것도 그런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서일 것이다.
확답을 들은 엘리아는 가볍게 웃더니 손을 들어 문을 가리켰다.
“...?”
“가서 사절단 마법사님들이랑 이야기하실 게 있어요. 일정이 밀리신 분들이니만큼 최대한 빨리 처리해 주세요.”
사절단에 대해서 말할 때 엘리아도 거기에 대해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순간 발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그 때 엘리아는 정신없이 울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자신과 마법사가 하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발린 스승님.”
“어?”
엘리아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거짓말처럼 의문이 사라졌다.
그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 해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로브랑 안에 셔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가는 거 잊지 마시고요.”
“...!!”
발린은 화들짝 놀라 엘리아의 눈물콧물이 묻은 옷을 거뒀다.
돌아서며 그가 느낀 건 한 가지, 여자는 마법보다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깨달음은 잠시고 할 일은 많았다. 발린은 서둘러 자신을 기다린다는 사절단을 향해 찾아갔다.
발린 보려고. 조만간 왕성에서 작위도 내리고 마탑 내부 직책도 줄 거라 함.
그 쪽으로 가던 발린은 문득 자신이 한 가지를 빼먹은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삼황자의 난동은 모두에게 알려졌을 텐데, 설마 내가 놈을 잡았다는 게 들통난 건 아니겠지?’
삼황자를 칠 때 썼던 융합마법은 발린이 가진 비장의 수 중 하나.
언젠간 드러날 수밖에 없다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접견실 앞으로 가자 문 안에 있는 인기척들이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발린은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걸 느끼며 문을 열었다.
여자를 상대하는 건 어려울지 몰라도, 마법사를 상대하는 건 그의 전문분야였다.
“헉.”
“대신전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하더니, 상처는 어떻소?”
“걱정해주신 덕분인지 지금은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발린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아직 부상이 다 나은 건 아니었으나 오늘 새벽 한 번 마나호흡을 해 둔 덕에 어느 정도는 버틸 만 했다.
“그럼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발린은 조용히 알고 있던 사일런스 마법의 캐스팅을 읊었다.
스으윽.
보이지 않는 차단막이 방 전체를 감싸자 발린은 씨익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발린 공?”
초조해하던 라시드가 입을 열었다.
지난 일주일 간 그는 궁금증에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뒹굴거렸다.
그건 다른 탑주들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일정을 넘기고 여기 남은 것이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그야 당연히...! 8일 전에 있었던 그 지진이랑 전투! 분명 깊이 관련되신 것 같은데, 같이 알읍시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발뺌하는 발린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 앞에서 발린은 가볍게 한숨지은 뒤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이 궁금해하시는 것, 저도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죠.”
“그럼 어서...!!”
말끝을 따라붙던 라시드에게 눈총을 준 발린이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마법사를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
그렇기에 저들이 지금 지식욕에 물들어 있다는 것도 훤히 보였다.
발린은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편한 자세를 만들었다.
정보를 쥔 게 이 쪽이니만큼 자신은 꿀릴 게 없었다.
“자, 그럼 협상을 시작해 보죠. 여러분이 들을 정보의 값어치가 어떨지 각자 예상하시고, 그에 맞는 대가를 제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
잔뜩 기대하고 있던 대표들의 눈빛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 앞에서 발린은 무얼 바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어 보였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고요.
독자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과,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 가지 질문은 19세 이상의 H씬을 소설에 삽입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이고.
나머지는 제가 일방적으로 드리는 말씀인 것 양해바랍니다.
1. 댓글창, 1편 코멘트 관리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내용이 적혀 있는 코멘트, 부족한 내용을 지적하거나 보충해주는 코멘트는 제가 자양분으로 삼아야겠지만, 그런 것도 없이 무작정 욕을 써놓거나 근거없는 비난을 하는 코멘트는 다른 독자분들의 독서행위에도 폐가 될 수 있기에 결정했습니다.
2. 대현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동이다.
이런 내용의 댓글 숱하게 받았는데요.
전 제 소설 안쪽에 분명 '대현자'라 불린 이유를 써 두었습니다.
현자라고 해서, 현자에 걸맞은 행동과 깊은 생각을 보인 게 아니라.
마법의 체계에서 멀티 서클, 에테르 개발 등의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기에 현자의 칭호를 받았다고 말이죠.
해당 후기 읽어 주시면 더 이상은 그 부분으로 말씀하지 않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불법 텍스트 관련해서.
여러 곳에 문의했는데, 사실상 고소,고발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포기하고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에 대한 예의겠지요.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글 읽다가 후기에서 갑자기 분위기 잡게 되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작가 늘푸르 올림.
*그리고 이건 정말 여담인데, 저도 얼른 정산금 나오게 되면 그걸로 노블 결제해서 다른 작품들 좀 보고 싶네요! 재미있는게 많아 보이던데! 진심 기대하고 있습니다~덕분에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