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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 사절단의 방문
“사파이어 타워와 토파즈 타워의 학술 교류 방문? 이건 또 뭐야?”
사파이어와 토파즈 타워는 다른 왕국의 마탑들이다.
발린과 엘리아가 있는 루비 타워는 파이오니어 왕국의 마탑이고, 각 왕국마다 한 개나 그 이상의 마탑이 있었다.
마탑은 국가와 귀족들의 지원을 받으며, 그 대신 국가를 위해 마법의 힘을 빌려준다.
이런 관계는 다른 왕국도 마찬가진데, 사파이어와 토파즈 타워는 그 중에서도 꽤나 수준이 높은 마탑으로 유명했다.
“내 아티팩트 때문인가...”
문서를 읽어내려가던 발린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티팩트를 통해 전대륙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건 좋다지만.
그래도 따라오는 절차가 영 귀찮은 건 별개의 사실이었다.
“거절할 수는...없겠지?”
“그런다고 될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엘리아의 말대로, 먼저 이 쪽에서 사절한다 해도 저 편에서 내버려둘 리 없었다.
아티팩트를 찍어내는 아티팩트라는 것은 그만큼 커다란 발견이었다.
아마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방법을 알아내려고 기를 쓸 것이다.
당장 발린이 저쪽 입장이 되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니 틀림없었다.
발린이 하는 수 없이 승낙 표시를 할 무렵, 소용돌이를 확인했던 다른 한 사람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가 있던 곳은 지하 깊은 어둠 속.
정확히는 흑마법사들이 세운 마왕군 거점의 최심부였다.
“설마 안드로포스가 그랜드 마스터가 될 줄이야...”
그랜드 마스터는 세 명의 공작도 힘겨워하는 상대.
그 필두이자 현재 마왕 대신 군을 이끄는 공작 자-쿨카가 나서야 상대가 될까말까였다.
그런 게 있어서야 붉은 오크의 습격이고 키메라고 통하지 않을 게 뻔했다.
“골치 아프게 됐군.”
남자, 다크니스는 조용히 뇌까리며 눈을 감았다.
지금 그가 있는 곳 주변에선 철수 준비가 한창이었다.
완성된 키메라들은 비밀 통로를 통해 수도의 바깥으로 움직이고.
미완성된 녀석들이나, 빠져나갈 수 없는 녀석들은 아깝지만 직접 처분한다.
모두가 빠져나간 뒤엔 나중을 위해 깊이 봉해두거나, 혹은 파괴할 예정이었다.
비단 이곳 거점뿐만 아니라, 다른 왕국에 위치한 마왕군의 수하들도 마찬가지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랜드 마스터’ 라는 존재는 위협적이었다.
“다크니스 만인장님,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그래? 아주 잘 해줬네.”
바깥에서 들려온 보고에 남자는 몸을 일으켜 움직였다.
거대한 공동과 그 주변은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그러나 만인장이라 불린 그 자의 눈엔 똑똑히 보였다.
커다란 광장, 대공동은 물론 주변 토굴에 가득히 설치된 수많은 마나선!
곳곳의 요충지마다 배치된 키메라들과 흑마법사들.
이들 모두가 죽음의 함정의 구성원이었다.
“그럼 이제 슬슬 왕실을 움직이도록 하지.”
“예.”
으스스한 한마디와 함께 남자는 몸을 돌렸다.
역시 이대로 이 곳을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게 그의 의견.
그래서 다크니스는 이 곳을 버리는 대신, 누구라도 한번 들어오면 나올 수 없는 죽음의 함정으로 개조했다.
그 목표는 물론 루비 타워에 웅크리고 있는 발린!
왕실을 움직여 발린을 마탑에서 끌어내 왕궁으로 오게 한 뒤.
이 곳과 연결된 지하미궁으로 유인해 처리하려는 속셈이다.
“카스트로와 케인후프가 죽었을 땐 그냥 성가신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약간 거슬리지만, 그렇다고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클리든에게 맡겨 두고 다른 일에 치중했는데, 그게 틀린 모양이다.
안 그래도 루비 타워가 통제에서 벗어나 커 가는 게 염려스렵던 차였다.
더 이상 루비 타워가, 그리고 그 녀석이 성장하기 전에.
이 지하무덤에서 끝을 낸다!
그로써, 계속해서 틀어지기만 하던 계획을 바로잡을 셈이었다.
마침 시기와 날씨도 그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올해의 가을은 각별히 풍요로워, 왕국 전역에서 풍년 소식이 전해졌다.
게다가 삼황자와 사절단까지 있으니, 이를 빌미삼아 수확제를 열고 발린을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발린, 네 녀석이라 해도 왕성에서 보내는 초대장을 거절할 순 없겠지. 킬킬킬!!!”
어두운 웃음소리가 대공동 안에서 울려퍼졌다.
파이오니어 왕국은 세계의 남쪽 끝, 아르덴 왕국은 노스트라 제국 아래의 북방대산맥과 경게를 마주한다.
그 가운데에 있는 카르샨 왕국에 있는 마탑이 바로 사파이어 타워.
예로부터 루비 타워의 호적수이자, 항상 루비 타워를 물먹여왔던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항시 자신감에 차 있던 사파이어 타워였으나, 요즘은 그 기세가 어째 예전같지 않았다.
“크아아앗!!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독기밖에 남지 않은 비명이 복도에 메아리쳤다.
동시에 한 명의 신형이 바닥 위로 털썩 쓰러졌다.
쓰러진 신형을 향해 먼저 누워 있던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너도 쓰러지는군. 잘 왔다.”
“후후, 이걸로 5층의 마법사들이 전부 당한 건가?”
힘이 쭉 빠진 어조로 말하는 마법사의 위로 불빛이 비쳤다.
드러난 장내의 광경은 놀라웠다.
푸른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 수십 명, 왕국의 엘리트라 불리는 그들 모두가 초췌한 몰골로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다, 다른 곳은? 뭔가 발견이라도...”
“4층에서...”
“4층에서? 4층에서 뭐! 그 아티팩트에 대한 실마리라도 잡았대!?”
먼발치서 들려온 한 마디에 누워있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펄떡였다.
그러나 이어 들려오는 말은 그들의 의욕을 단숨에 꺾어놓았다.
“마지막 마법사가 쓰러졌대. 이젠 힐링 포션도 다 떨어져서 탑주님께서 직접 후원금을 구걸하신다고...”
“끄으윽...!”
충격적인 비보에 마법사들의 기세가 단숨에 꺾였다.
그들이 이러는 이유는 하나, 얼마 전 루비 타워에서 들려온 소식 때문이었다.
‘발린이란 신참 마법사 놈이 엄청난 걸 만들었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마법사들 대부분이 피식 웃었다.
이미 사파이어 타워는 그 쪽의 부탑주가 골렘을 만들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정도야 뭐...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당장 만들라고 하면 못 만들 것도 없어.’
골렘을 만드는 건 분명 굉장히 어려운 일이나, 마탑의 예산을 모조리 모으면 안 될 것도 없었다.
허나 소식통이 마저 소식을 전한 순간, 사파이어 타워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아티팩트를 만드는 아티팩트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나온 건 일반인도 쓸 수 있답니다!’
처음엔 대다수가 무슨 헛소리냐며 웃고 넘어갔다.
그러나 며칠 후, 그 소식이 곳곳으로 퍼지자 다들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부터 탑주 아래 전 마법사가 잠도 안 자고 거기에 매달렸다.
며칠 동안 이어진 밤샘 강행군이었으나, 그 결과는 보다시피 지친 마법사들과 바닥을 보이는 예산이었다.
“끝났군...크큭.”
쓰러진 마법사들 상당수가 허탈하게 웃었다.
더 이상은 연구를 이어갈 여건이 되지 않으니, 이제 남은 건 인정뿐이었다.
항상 한 수 아래라 깔봤던 루비 타워가.
이번에야말로 자신들을 완전히 굴복시켰다는 사실을.
“왔다! 루비 타워에서 답신이 왔어!”
모두가 쓰러져있는 사이로, 또다시 새로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좀비처럼 몸을 일으키는 마법사들. 견습 마법사는 그들을 깨우기라도 하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든지 환영이니 자세한 인원명단 정해서 알려달랍니다! 너무 많지만 않으면 된답니다!”
“...!!!!!!”
견습 마법사의 외침은 네크로맨서의 주문은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효과를 선보였다.
“가도...된다고?”
“언제든지?!”
꽁꽁 숨기고 거절할 줄 알았는데, 정작 답신을 보니 흔쾌히 허락하고 있다.
무슨 꿍꿍인지 의심은 가지만, 그것보단 의문을 해소하는 게 먼저였다.
“내가, 내가 가겠다!”
“아니. 이 몸이!”
소란스러워진 탑 전체를 지켜보던 노인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부탁하네.”
“...예. 클로드 님.”
그의 눈앞에는 한 청년이 부복해 있었다. 진녹색 머리카락을 단정히 다듬은 그에게선 이지적인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일어나게.”
“예.”
노인의 명에 남자가 몸을 일으키자 훤칠한 신장에 균형잡힌 몸매가 드러났다.
마법사를 하는 대신 사교계에 나갔다면 꽤나 커다란 파동을 불러일으켰을 법한 모습이었다.
“이번 사절단 파견은 우리 마탑의 사활을 건 중대사. 그만큼 자네의 역할이 중요하게 됐네. 알베르토.”
“알고 있습니다.”
즉각 대답하는 젊은이, 알베르토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노인, 클로드는 믿음직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마침 그 곳에 노스트라 제국의 인물들도 있다고 하니, 그들과 접촉하여 얻어올 게 있다면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걸세.”
노스트라 제국은 인간과 이종족을 구별 없이 지배하는 곳,
당연히 새로운 마법 체계가 많았으니, 그들과 접촉해서 그걸 확인하는 것도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알베르토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그건 안 됩니다. 탑주님.”
“음?”
의아한 기색을 보이는 클로드에게 알베르토는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지금 저들과 접촉하는 것은 곧 국왕폐하와 귀족들의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의심?”
설마 그렇게까지야...하고 말끝을 흐리는 클로드에게 알베르토가 질문을 하나 던졌다.
“저들이 어째서 파이오니어 왕국에 왔겠습니까.”
“어째서냐니, 당연히 파이오니어 왕국과 우호 관계를 맺기 위해서겠지.”
“그럼 노스트라 제국이 파이오니어 왕국에게 그러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그야 물론...억!!”
무심결에 대답하던 노탑주의 얼굴이 순간 사색이 되었다.
질문에 대답하다보니 순간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노스트라 제국이 원하는 것은 주적인 카딤 연방제국을 뒤에서 쳐 줄 동맹.
섣불리 거기에 손을 뻗치면 왕국 전체를 그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는 게 된다.
게다가 카르샨 왕국은 꽤나 북방에 있으니, 노스트라 제국이 온다면 당장 싸워야 하는 입장.
그런 짓을 했다간 단순 트러블을 넘어 마탑 전체가 화를 입을 수 있었다.
헐떡이던 노탑주의 숨이 가라앉자 알베르토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저희는 철저히 루비 타워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설령 그 비밀을 풀지 못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배울 게 많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자네만 믿고 있겠네.”
전폭적인 신임을 보내는 클로드에게 알베르토는 나
지막하게 대답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껏 그 말을 몇 번이고 해 왔었으나, 알베르토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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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