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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시연회
교단은 분명 자신을 경계하고 있었다.
로버트 대신관의 반응을 봐선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발린은 여기 온 레벤을 향해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무슨 생각으로 여기 온 거지...?’
“발린 공, 발린 공!”
“아, 예.”
잠깐동안 생각에 빠졌던 발린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하면 되죠?”
“이쪽으로.”
질문해오는 레벤의 손을 잡은 발린은 그대로 그녀를 안쪽으로 이끌고 왔다.
모두의 시선이 둘에게 쏠리는 와중, 발린은 남몰래 그녀에게 눈짓을 했다.
‘도대체 무슨 속셈입니까!’
레벤은 그저 의미모를 웃음만 흘렸다. 한숨을 쉰 발린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방패를 넘겼다.
“후, 이젠 모르겠습니다. 조심해서 잡으십시오.”
“와...방패. 알겠어요.”
레벤은 아무 의심 없이 방패의 손잡이를 잡았다.
순간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따끔함! 다급히 손바닥을 놓치려는 레벤의 두 손을 발린이 억지로 잡아 고정시켰다.
“아...!”
“안 죽습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꽉 잡은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본 발린은 그제서야 손을 뗐다.
천천히 손가락을 편 레벤은 손가락을 찌른 바늘과, 거기에 맺힌 핏방울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아야야, 미리 말 좀 해 주시지.”
“.....”
미안하다고 말하길 바라는 듯 했으나 발린은 대답 대신 말없이 방패를 들어 보였다.
흥미진진한 광경 앞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귀족들, 그 필두에 선 산토스 공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보면 되는 거지?”
모두의 궁금증을 한 몸에 담아 쏟아내는 그 말.
발린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이 아티팩트의 효능을 보시면 됩니다. 공작각하.”
방패를 들어 보이며 새로운 아티팩트라 말하는 발린, 귀족들은 그 뜻을 이해 못하고 물음표를 띄워 보였다.
“새 아티팩트라니? 무슨 소린가?”
“그 방패는 아무리 봐도...그냥 쇠로 만든 방패 아닌가.”
아티팩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상에 인챈트를 해야 한다.
이는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공정히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저 모형틀에 다른 기능이 있는 건가?”
“딱히 그래 보이진 않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반응을 지켜보던 발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 본다면 발린이 하는 말을 이해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가 만들어낸 아티팩트는 무려 70년동안 진보했던 마도 기술의 산물, 즉 미래의 발명품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옆에 서 있던 레벤은 갑작스레 다가온 발린을 보며 입을 벌렸다.
“어...?”
“자, 들어 보십시오.”
레벤은 순간 반박할 새도 없이 방패를 받아들고 말았다.
그러자 발린은 그녀와의 거리를 벌리며 귀족들에게 말했다.
“이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십시오. 피하지 말고! 신에게 기도하지도 말고! 그냥 가만히 있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만들어내는 것은 놀랍게도 커다란 파이어볼이었다.
의도적으로 위력을 조절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제대로 맞으면 사람 한 명쯤은 죽일 수 있는 강력한 마법!
순식간에 귀족들 주위로 몇 겹의 실드가 쳐지고, 그 앞을 기사들이 막아섰다.
사방에서 치솟는 살기, 그러나 발린은 그 앞에서 태연히 캐스팅을 마쳤다.
“네 녀석, 무슨 속셈이냐.”
“감히 이 분들게 위해를 가하려 한다면...국왕폐하께서 인정한 마법사라 한들 자비 없이 참할 것이다!”
으르렁대는 기사들을 흘긋 본 발린은 태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저는 다만 아티팩트의 효능을 보여드리기 위해 움직일 뿐입니다.”
말을 마친 발린의 눈길이 옆에 있던 레벤을 슬쩍 훑었다.
태연한 척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지만, 창백한 얼굴과 그 위의 식은땀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푸훕.’
회귀가 아니었다면 저런 모습은 한 번도 못 봤겠지.
발린은 절로 피어오르는 미소를 감추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절대 움직이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방패만 들고 계셔야 합니다.”
“그, 그런...!”
파이어 볼은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맨 몸으로 맞으면 무조건 즉사, 아무리 방패로 막는다 한들 최소한 어디 하나는 날아가는 부상을 입는다.
무어라 항변하려던 레벤에게 발린은 지체없이 파이어볼을 날렸다.
순간 귀족들의 아우성과 레벤의 비명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꺄아아악!!!”
“우와앗!!”
“이, 이봐! 이거 갑자기 무슨!!”
마도 시연회이니만큼 마법을 쓰는 것 가지고는 아무도 이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게 사람을 향해 쏘아졌다는 것.
기사들이 재빨리 검을 뽑아들었으나, 그것은 그대로 레벤에게 향하더니만 방패에 맞자마자 펑 하고 터졌다.
“이런!”
“늦었나...!”
사상자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사들이 혀를 차는 순간, 연기 속에서 멀쩡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 우와아...”
“뭣!”
“어어!!”
귀족들이 한층 더 놀라는 사이 완전히 걷힌 먼지구름 너머로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다.
원래는 피흘리며 쓰러져 있어야 할 레벤이 멀쩡히 서 있는 것도 모자라.
그녀가 든 방패 위로는 우윳빛의 반투명한 막이 둥글게 쳐져 있었다.
반투명한 막의 정체를 눈치챈 귀족들 몇몇이 일제히 소리쳤다.
“잠깐만, 저건 실드 마법!!”
“이게 어떻게 된 게냐!!”
“분명 방금 전 쇳물을 부어 만들어낸 방패였을 텐데!”
“어디, 어디 다른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친 실드는 아니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귀족들은 이내 마법사들을 불러 마법 감지를 해 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봤자 없는 마법사가 나타날 리 없었다.
“어디...어디...어? 없는데? 없습니다! 다른 마법사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참 동안 마나를 퍼뜨리던 마법사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리번거리던 귀족들의 눈길이 하나둘씩 발린을 향해 모였다.
그러자 발린은 가볍게 웃으면서 자초지종을 밝혔다.
“그러니까 계속 말씀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 방패, 아티팩트라고 말예요.”
“이, 있을 수 없어.”
“그게 어떻게 가능한...”
모두가 놀라워하는 사이, 이번엔 삼황자가 입을 열었다.
“한데 그 방패, 아티팩트가 맞다고 해도 마나가 충전되지 않은 것 아닌가? 어떻게 된 건가?”
어떤 아티팩트이건간에 작동시키기 위해선 최소한의 마나를 불어넣어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없이 마법을 끌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 점을 찌르는 삼황자의 질문에 귀족들은 물론, 방패를 직접 들고 있던 레벤마저도 시선을 모았다.
“글쎄요?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걸까요?”
발린은 짐짓 어조를 높이며 시선을 피했다.
“빨리 말하게! 어떻게 된 건가!”
“설마 속임수를 쓴 건 아니겠지?”
한껏 관심을 보이고 있던 귀족들의 입에서 일제히 추궁이 튀어나왔다.
그 중 몇 명은 실제로 칼이라도 뽑아들 것만 같은 기세였다.
더 이상 뜸을 들였다간 큰일날 것 같은 상황. 발린은 웃음기를 거두며 말을 이었다.
“비결은 방패 손잡이에 있는 바늘입니다. 여기, 이 아가씨의 손이 보이시는지?”
“흠.”
귀족들의 눈길이 피 묻은 레벤의 손으로 모였다.
손잡이에 있던 바늘에 찔려 피가 나오던 손은 핏기 가 다 빠져 창백해져 있었다.
“본래 생명체의 피에는 어느 정도의 마나가 깃들어 있는 것, 다들 알고 계시겠죠?”
“허어, 그렇다면...”
“예. 피를 받아들인 방패의 마법진이 그 속의 마나로 실드 마법을 만든 겁니다.”
설명을 전부 들은 귀족들은 너나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알을 굴렸다.
때로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접하면 머리가 하얗게 되곤 한다.
인간들이 가진 본능적인 자기 방어의 조치인데, 그 상태에서는 설령 눈앞에서 세계가 멸망한대도 태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의 모습이 딱 그 짝이었다.
“그, 그 방패. 우리가 늘상 쓰는 쇠로 만든 방패가 맞는가?”
무리 안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질문, 발린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던 전방의 대귀족 한 명이 아무 생각없이 말을 이었다.
“그럼, 저 아티팩트만 있다면 내 중장보병들 전원을 실드 마법이 걸린 방패로 무장시킬 수 있다는 거잖아?”
생각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오자, 귀족들 모두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중장갑을 입은 보병들 중 한 쪽은 실드가 켜지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는다.
당장 화살 공격을 막는 것에서부터 그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 힘을 모으면 적측 마법사의 공격 마법도 막아낼 수 있었다.
비록 필연적으로 약간의 부상을 강요한다고는 하나, 없는 것과 생각해봤을 때 너무나도 압도적인 효율.
제정신을 차린 귀족들은 이 자리가 삼황자를 접대하는 자리란 것도 잊고 발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봐! 이 아티팩트, 나에게 넘기게! 원하는 건 뭐든지 주지!”
“아니, 나에게 줘! 이건 내 중장보병들에게 가장 필요한 아티팩트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는 사람들 속에서 발린은 계획대로 돌아가는 상황에 미소지었다.
예상대로 70년 후의 마도 아티팩트 기술은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끌어들였다.
심지어 삼황자까지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얼만가! 얼마에 넘길 텐가!”
“이이이...이런 세기의 발견을! 으아아아!!”
거의 광란의 도가니로 쏠려가는 대귀족들의 머리에서 클리든의 부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티팩트 제작의 상식, 더불어 마법의 상식이 깨지는 현장.
세기의 대발견을 해 낸 발린을 향해 모두의 칭찬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어어? 무슨 일이야?”
“거기 뭐 큰 일이라도 났습니까?”
한 곳에 엄청난 양의 사람들이 모이자 마법사들의 관심도 거기로 쏠렸다.
규율집행부의 마법사 몇몇을 필두로 루비 타워의 마법사들마저 그 대열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한편 모인 사람들의 인파 가장 안쪽에서는 산토스 공작과 삼황자가 같이 귀족들을 진정시켰다.
“역시 대단하군.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할 줄은 몰랐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과연 소문이 헛되지 않았군.”
산토스 공작의 치하에 대답하던 발린의 귓가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린은 고개를 들어 삼황자의 눈빛을 마주했다.
잠시 숨을 내쉰 발린은 평온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아무렴요, 이 정도는 되어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대...그래, 기대에 부응해야지.”
겉으로는 그저 간단한 대화일 뿐이지만 그 속에서 날카로운 검격이 몇 번이고 오갔다.
그리고 그 대결의 승자는 누가 봐도 발린이었다.
삼황자가 물러간 뒤에도 귀족들의 관심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만 갔다.
그 사이사이에 낀 마법사들을 통해 입소문은 계속해서 퍼져만 갔다.
“발린 녀석이 엄청난 걸 만들었대!!”
“뭐야? 뭘 만들었는데?”
학구열만큼은 세계에서 첫 순위에 드는 게 마법사들.
아무리 발린을 안 좋게 생각한다고 한들 지금의 추세를 막을 순 없었다.
“뭐야!?”
수하에게서 보고를 받은 클리든은 대경실색하며 저 편을 바라봤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했던 구석의 구석자리.
그러나 지금은 저 곳이 마도 시연회장 전체를 통틀어 가장 붐볐다.
“녀석이...아티팩트를 찍어내는 아티팩트를...만들었다고?”
“그, 그렇습니다.”
“...그게...말이...되는...”
발린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던 클리든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는 힘없이 수하에게 가 보라는 손짓을 한 뒤, 아무도 없는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골렘을 칭찬하던 대귀족들은 어느샌가 발린에게 가 버린 지 오래.
혼자 남은 클리든은 힘없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눈가를 훔쳤다.
‘졌다. 내가 졌어. 완벽하게...진 거야.’
수 달에 걸친 완벽한 준비, 스스로도 엄청난 노력을 했고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을 모조리 썼다.
게다가 그 남자에게까지 손을 뻗어 기어이 골렘을 완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발버둥친들 절대로 넘지 못할 거라 확신했는데.
재능을, 빛나는 자질도 넘을 수 없다는 게 있다는 걸.
그걸 똑똑히 새겨주며 마탑을 얻으려고 했는데.
설마 저딴 식으로 자신의 계교를 벗어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
허탈하게 웃던 클리든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이미 끝난 승부,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일어서는 그의 눈동자는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자식, 감히 내게 이딴 굴욕을 줘?”
그 속에서 지나가는 것은 발린이 아니라 후드를 뒤집어쓴 한 남자.
그에게 골렘의 제조에서 부족한 점을 알려주고.
자신을 여기까지 올려 준 한 사람이었다.
클리든은 누구의 인사도 받지 않고 마탑 안으로 사라졌다.
한편 몰려드는 인파를 멀리서 바라보던 엘리아의 눈동자에 무언가에 띄었다.
“어?”
사람들 사이로 슥 올라온 손 하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 손이 누구의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저 안에서 척 하고 엄지를 치켜드는 건 단 한 사람만이 할 수 있을 테니까.
“와아.”
그녀는 박수를 치는 것으로 거기에 응답했다.
맞부딪히는 손바닥 사이로 지금까지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사라져 갔다.
단순히 억울하게 엮인 동년배에서 무서운 힘을 가진 마법사로.
그리고 처음 보는 수련법을 억지로 강요하는 차가운 스승에서.
끝내는 마탑의 상징을 세우며 신기원을 연, 모두가 우러러보는 대마법사까지.
마지막 기억이 지나가자, 그 자리엔 붉은 지팡이를 든 자신이 있었다.
엘리아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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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어, 네. 많은 오류들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천히 수정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