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현자가 회귀함-29화 (29/337)

0029 / 0264 ----------------------------------------------

마탑 개혁.

은밀히 퍼져나가던 마력장의 흐름이 몇 곳에서 갑자기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럴 때마다 발린은 그 장소들을 기억해 두었다.

스캔 결과, 마력장이 일그러지는 곳은 방 전체에서  열 곳이 조금 넘었다.

발린은 두어 번 혀를 찬 뒤, 새로운 마력장을 은밀히 퍼뜨렸다.

스스스-!!

차가운 물의 마나와, 끈끈한 흙의 마나가 섞인 새 마력장.

방 전체에 퍼지자 순식간에 방 안이 서늘해졌다. 순간 곳곳에서 파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숫자를 세던 발린의 입가에 어이없어하는 웃음이 피어났다.

“뭐? 아무도 못 들어와? 감시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가 열 개가 넘개 설치되어 있는데?”

이 정도라면 거의 24시간 행보가 노출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 자는 것부터 옷 갈아입는 것까지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보고 있었으리라.

“갑자기 감시 마법이 깨졌으니 꽤나 놀랐을 텐데, 어쩌나? 아직 놀랄 건 한참 남았다고.”

발린은 계속해서 두 개의 마력장을 펼치며 안쪽으로 향했다.

마법사들의 개인실은 생활 구역과 연구실로 이루어져 있다.

생활 구역은 방금 발린이 들어온 거실, 그리고 화장실과 침실이다.

두 곳을 전부 둘러본 발린은 혀를 내두르며 걸어나왔다.

지금까지 그가 처리한 감시 마법 아티팩트는 서른 개가 넘었다.

아티팩트 한 개의 가격을 생각했을 때, 그 정도면 거의 수도의 고급 저택 한 채 수준이었다.

“소리만 듣는 것에, 시야까지 보는 것. 얼씨구?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녀석도 있네? 이건 B급 아티팩트로 알고 있는데, 잘 됐다.”

발린은 탁자 위에 그것들을 늘어놓고 보관소에서 가져온 장갑으로 마나를 흡수했다.

하나하나가 적지 않은 양인지라 30여 개를 전부 흡수하니 마나가 넘치도록 쌓였다.

“음, 아주 좋아. 아주 좋아.”

만족스런 미소를 유지한 채 실험실로 들어서자, 그 곳에서도 여러 개의 감시장비가 발린을 반겼다.

발린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감시 장비들을 걷어냈다.

실험실의 장비들은 전부 B급 아티팩트였다. 그것들을 먹자 양질의 마나가 순식간에 차올랐다.

이대로 수련에 돌입한다면 6클래스에 돌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발린은 그 대신 실험실을 정리하고 두 조각으로 갈린 레드 에이어를 가져와 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6클래스로 가고 싶지만, 일단은 이것부터 고치는 게 급선무다.”

탑주의 권위를 세워두는 게 먼저다. 그렇게 생각한 발린은 신속하게 준비를 마쳤다.

탑주 전용의 실험실엔 숨겨진 장소와 재료가 많았고, 발린은 전생의 기억들을 이용해 아낌없이 고급 재료를 털어 와 쌓았다.

“우선, 이 녀석을 개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장갑을 개조해서 새로운 기능인 아티팩트 가공을 일깨워야 레드 에이어를 수리할 수 있었다.

발린은 장갑을 벗어 실험대에 놓은 뒤 마나석을 들어 용해시켰다.

용해시킨 마나석은 액체가 되었는데, 그걸 수작업으로 장갑에 그려넣어 부여된 마법을 변형하는 게 이번 작업의 목표였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몇 개월 동안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일. 하지만 발린에겐 탑주로서의 지식과 요령이 있었다.

용해된 마나석을 크림 짜듯 눌러주자 새로운 회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발린은 숨도 쉬지 않고 작업에 집중했다. 몸에 가득한 마나를 아낌없이 써서 마나석의 흐름을 조절했고, 장갑이 손상되지 않을까 철저히 보호했다.

사아악, 사아악. 스스스스슷.

치이이익!! 우우웅. 치이이익!!

양손에 담을 만큼 많았던 마나석이 거의 다 떨어져갔다. 이에 비례해 발린의 안색도 급격히 파리해져 갔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엘리아가 방문을 열었다. 그녀는 실험실 안에서 나는 소리에 조심스럽게 그 쪽을 들여다보았다.

실험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제자리에 정리해뒀던 실험기구들은 모조리 끌어내어져 있고, 실험대 위엔 녹은 마나석과 조각, 실험도구와 시약들로 어질러져 있었다.

“지금 뭐 하고 계신 거예요!?”

“여, 왔냐?”

엘리아의 비명같은 물음에 지친 채 누워있던 발린이 손을 흔들었다.

놀라 다가오는 엘리아에게 발린은 손에 끼고 있던 검은 장갑을 흔들어 보였다.

“됐어. 성공이야.”

“네? 성공이라니요?”

영문을 몰라하는 엘리아에게 발린은 히죽거리며 웃으며 말했다.

“마나석 남는 것 좀 준비해 줘, 가능하면 최대한 좋은 걸로. 한 덩이만.”

“마나석이요? 그걸 어디다 쓰려고요?”

묻고 답하는 사이 어느 정도 체력이 돌아왔다. 발린은 천천히 일어나서 마나 서클을 움직였다.

그 많던 마나가 모조리 사라지고, 원래 있던 마나 서클의 마나마저도 거의 다 비어 있었다.

아티팩트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회로를 약간 고치는 데 이 정도의 마나가 든다.

그러니 직접 만들어내는 아티팩트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장갑, 매직메이커만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발린은 실험대 위에 올려진 지팡이를 보며 말했다.

“어디다 쓰긴, 내일부터 저걸 고칠 거니까, 거기에 쓰려고 그러지.”

“네에!?”

엘리아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발린은 대답해주지 않고 비싯비싯 웃기만 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마법사들 사이엔 한 가지 소문이 퍼졌다.

“들었어? 새로 온 그 녀석 말이야. 인성이 개차반이라서 탑주님한테 반항하기가 예사래.”

“지금 탑주는 솔직히 그럴 만도 하잖아. 키도 쬐끄만해서는! 솔직히 전 탑주님 손녀딸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하긴 나라도 그러겠다. 기껏 기대감에 차서 왔더니 탑주란 사람이 지보다도 어린 꼬맹이면...”

소문의 정체란 발린의 행태에 대한 것, 정확히는 발린이 탑주를 업신여기고 제 멋대로 움직인다는 내용이었다.

말리는 사람도 없겠다. 소문은 하루만에 탑 전체에 퍼졌다.

그걸 뒷받침한 건 업무 때문에 탑주실을 찾아간 몇몇 마법사들의 증언이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아예 탑주실에도 안 나오고, 저 혼자 힘들다고 개인실에서 쉬고 있다고요?!”

“놀랍지만 사실이네. 탑주실엔 엘리아 님밖에 안 계시고, 그 분께 물어보니 쉬고 있다고 하더군.”

“이런...버릇없는!!”

소문이 사실처럼 왜곡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버릇없는 천재의 이야기에 루비 타워에 있던 마법사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 중 먼저 움직인 건 클리든의 세 지지대 중 한 명, 심화마법교관 칼 모텐슨이었다.

모든 수습 마법사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에 발린은 온 첫날부터 싸그리 결석했다.

안 그래도 바깥에서 떠드는 소리 때문에 기분나쁜데, 이래서야 손을 쓸 명분만 주는 꼴이다.

칼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움직였고, 얼마 후 카론과 규율집행부가 직접 탑주실로 향했다.

“탑주님, 어제 들어온 탑주님의 제자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평소와 달리 여유가 보이는 엘리아의 모습에 카론은 속으로 흠칫 놀랐다.

항상 탑주의 업무 속에 파묻혀 지쳐가던 열두 살 어린아이가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해 보인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어제 들어온 탑주님의 제자, 발린에 관한 처벌을 논의하고자...”

“기각할게요. 제가 시킨 거거든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한 거절의 목소리가 탑주실 안을 울렸다.

우물쭈물대는 수하들을 뒤로 한 채, 카론은 차가운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아무리 탑주님이시더라도 탑의 규율을 어기게 명령하실 순 없으십니다, 이렇게 행동하신다면 나중에 더 힘들어지신다는 걸 모르십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할 문제지요. 이만 나가보세요.”

그 제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엘리아는 전혀 주눅들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마주칠 때마다 벌벌 떨던 그 소녀는 이제 없었다.

‘곤란하군.’

별 수 없이 돌아서는 카론의 뒤로 규율집행부의 마법사들이 따라나갔다.

혼자 남은 걸 확인한 엘리아는 그제서야 긴장이 풀려 울먹거렸다.

“하아, 흐윽, 읏, 으욱.”

“뭘 울긴 울어, 저딴 게 뭐가 무섭다고.”

구석가에 숨어 있다 나오는 발린에게 엘리아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몰라서 그래요! 카론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요.”

목소리를 높이는 그녀에게 발린은 대답 대신 씨익 웃어 보였다.

아무리 카론이란 마법사가 무섭다 한들 그건 탑 안에서의 이야기.

활동무대 자체가 달랐던 발린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감흥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건 또 뭐야? 줘 봐.”

“아, 아. 네.”

걸어나온 발린은 엘리아가 하고 있던 서류를 그대로 빼앗아 들여다보더니, 이내 완벽한 해답을 적은 뒤 치워버렸다.

탑주 업무를 수행하기에 무리가 있는 나이인 엘리아를 대신하여, 발린이 전생의 경험을 살려 업무를 처리해주고 있는 것이다.

“됐다. 다음 업무 천천히 보고 있어. 나는 좀 쉬고 있을게.”

“어제는 고생하셨어요.”

제자리로 돌아가던 발린의 등 뒤로 진심어린 감사 인사가 닿았다.

발린은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 흔들어준 뒤 벽장 속에들어가 마나 수련의 자세를 잡았다.

어제 기진맥진할 정도로 마나를 꺼내쓴 까닭에 빈 마나 서클을 채우려면 하루종일 새 마나를 흡입해야 했다.

‘그래도 저 장갑이 있으니 이제부턴 마나 부족으로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겠군.’

혼자 독백한 발린은 벽장 안에 쌓아둔 마나석에 손을 댔다.

곧 충만한 양질의 마나가 손을 통해 몸 안으로 가득히 빨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시각, 부탑주실.

“이런 미친!!”

거센 함성과 함께 값비싼 도자기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당혹해하는 칼에게 클리든은 연신 소리를 높이며 으르렁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칼! 그 많던 감시 아티팩트가 전부 어디 갔어!!”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외치는 클리든의 전신에서 강력한 마나가 일렁거렸다.

칼은 몸을 움츠리고 그 분노가 자신을 피해가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탑주의 방에 설치한 감시 아티팩트는 총 58개. C급 아티팩트가 쉰 개에 B급 아티팩트가 8개다.

거의 성 한 채급의 재산을 탑주실에 둔 거나 다름없었는데, 그것들 전부가 날아갔다니 저러는 게 당연했다.

허나 분노를 피해 웅크리던 칼은 강렬한 궁금증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C급 아티팩트는 몰라도, B급 이상의 감시 아티팩트는 발견해내기가 극히 어렵다.

그걸 전부 찾아내 파괴하는 건 미리 설치해 둔 장소를 알고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보는 게 맞았다.

마침 클리든도 똑같은 궁금증을 가졌다. 한창 으르렁거린 뒤 심호흡하는 그의 눈은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어나.”

“네, 넷!”

대외적으로 둘은 같은 등급의 마법사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칼은 클리든의 말에 감히 반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단순한 인맥과 권력구도의 차이였다면 이렇게까지 굽신대지 않았을 것이다.

칼은 절로 떠오르는 두려움에 꿀꺽 침을 삼켰다.

‘도대체 어떻게 7클래스의 벽을 뚫은 거지? 아무리 깨달음이 갑작스럽다곤 하지만 그걸 고작 몇 주 만에 뚫어버린다고?! 있을 수 없어!’

수 개월 전, 클리든은 전대 탑주가 쓰러진 지 수 주만에 견고하던 7클래스의 벽을 단숨에 뚫어 버렸다.

그 전에도 파벌의 중심이었던 건 맞으나, 7클래스와 6클래스로 격차가 벌어진 후엔 완전히 클리든의 수하로 입지가 굳어져 버렸다.

단순히 납득하려 해도 6클래스가 단숨에 7클래스가 되는 건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다.

마법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눈앞에 그 산 증인이 있으니 어찌할 수도 없다.

그 후로 클리든은 지금까지 마탑주의 지위를 위해 동분서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들에겐 6클래스의 마스터로 알려져 있는 그의 진짜 경지.

그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이미 탑주의 직책은 클리든의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바로 어제, 발린이라는 꼬맹이 녀석이 탑주의 제자로 오기 전까지는!

일어선 칼에게 클리든은 매서운 추궁의 말을 날렸다. 그 내용은 영상이 끊기기 전 무언가 알아낸 게 있냐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무것도 못 봤나? 뭐라도 좋으니 말해 봐.”

“그, 그게 저도 잘...그 시간엔 아침 교습을 감독하고 있어서!”

벌벌 떨며 말하는 칼에게서 더 이상의 정보를 얻어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그 꼬마 녀석이 했다고 하기엔 아퀴가 안 맞는데.’

왕실에서 온 세이라가 말해준 정보에 따르면, 발린은 도저히 그럴만한 녀석이 되지 못했다.

5클래스의 불의 마법사. 그게 전부라면 아티팩트를 해제하긴 커녕 감지하지도 못해야 정상이다.

그 뒤에 무언가가 있는 게 확실했다. 클리든의 두 눈에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어떻게, 이걸 가지고 추궁해 봅니까?”

“지금은 그냥 있어. 괜히 나섰다가는 제 목을 조르게 된다.”

어차피 흐름은 이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마법사들의 지지도 굳건하고, 뒤쪽의 연줄들도 그렇다.

클리든은 칼을 내보낸 뒤, 마나 수련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여기까지 읽어주시는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삼가..흠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