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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25화 (2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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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으로.

발린이 이르는 것은 병사들과 세이라에게 들었던 라덴의 학대 소식.

소상하게 자초지종을 아뢰는 사이, 주변의 공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단순히 라덴이 테네스 후작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 정도에서 끝났다면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차가워지진 않았을 것이다.

귀족이 제 본위대로 평민을 치는 것이야 눈살이 찌푸려지긴 해도 그들만의 권리였으니까.

하지만 발린은 거기다 한 가지 요소를 더해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왕국의 국민으로서 왕국의 존망을 위해 성심성의껏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결과가 이런 괴롭힘이라니요! 이건 폐하, 장차 왕국의 멸망을 바라지 않고서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만행입니다! 이래서야 추후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해 움직이겠습니까!”

왕국의 멸망. 그 말이 입에 오른 순간부터였다. 주변의 분위기를 싹 가라앉히는 위압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감히 국왕 앞에서 멸망을 입에 담는다는 것. 그만큼 각오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발린은 여유만만했다. 애시당초 이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히 왕국의 위기를 알리러 온 백성을 탄압한 자가 있단 말이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냉기. 국왕은 진심으로 화가 치밀어올랐는지 눈에서 불을 켜내며 말했다.

“...예.”

“이런 고얀! 내 반드시 자초지종을 파헤쳐, 시시비비를 철저히 가릴 것이야!!”

왕이 분노했다. 의도했던 대로 되자 발린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후작을 살폈다.

예상대로였다. 테네스 후작의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해져 있었다.

“테네스 후작!”

“예, 예!”

황급히 명령을 받잡는 테네스 후작, 그의 어깨 위로 왕의 명령이 얹히는 게 보였다.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눈에 띄게 가라앉는 어깨. 발린은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이 소년의 말이 사실인지 직접 조사하여 그 주범을 가려내고, 엄히 문초하도록 하라!”

“...예에.”

다 죽어가는 듯한 후작의 목소리.

명령을 따르면 스스로를 사슬에 묶어 제출해야 하고, 그렇다고 다른 희생양을 내세우자니 수작질이 들켰을 때가 두려웠다.

진퇴양난에 빠진 테네스 후작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발린은 가만히 있던 세이라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매혹 마법으로 엮인 탓에 발린의 의도를 충분히 알아들은 세이라.

그녀는 왕에게 다가가 예법에 따라 몸을 숙이며 입을 열었다.

“왕이시여, 루비 타워의 마법사 세이라가 드릴 말씀이 있사옵나이다.”

“무엇인가? 말하는 것을 허락하노라.”

“실은 방금 전 들었던 것에 대해서 말인데, 제가 본 바로는...”

세이라는 거기서부터 그녀가 봐 왔던 부분을 상세히 말했다.

누가 발린의 아버지, 라덴을 그렇게 들들 지지고 볶았는지.

어떤 식으로 괴롭히고 무슨 말로 면박을 줬는지.

듣고 있던 테네스 후작은 이보다 더 창백할 수 없는 안색을 하고 있었다.

그는 중간중간 몇 번이고 손을 들어 세이라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국왕의 눈길이 후작의 입을 막았다.

이것이 바로 발린이 테네스 후작을 위해 준비한 마법사의 복수였다.

세이라의 이야기가 끝나자 정원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해졌다.

“테네스 후작, 이게 무슨 일인지 직접 해명해야 할 것이야...! 감히 왕국에 불순한 마음을 품다니!”

“그, 그것이 아니오라...”

후작은 연신 땀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단순한 분풀이라고 여겼던 게 지금 와서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을 담아 세이라를 쳐다봤으나, 세이라의 붉은 눈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맑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후작의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아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도 아니었던 마탑의 마법사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올 줄이야!

무어라 따지려 들고 싶어도 지금은 사태 수습이 먼저였다. 후작은 호랑이 앞에 선 토끼처럼 떨며 왕을 대면했다.

“마법사는 타워로 돌아가 보고하고, 그대는 아티팩트 보관소에 가 보상을 받게나. 후작. 공은 여기 잠시 남게나.”

북방의 눈보라보다도 차가운 한 마디!

테네스 후작은 고개를 푹 숙이며 명을 받들었다.

국왕은 발린을 내보냈고, 그렇게 보고를 겸한 알현 시간이 끝났다. 문이 닫히는 뒤로 국왕의 노호성이 들리는 건 덤이다.

비록 그다지 길진 않은 시간이었으나, 여러모로 쓸모있는 시간임은 틀림없었다.

보상을 얻었고, 세이라의 매혹 마법을 한 번 더 시험해 봤으며, 마지막으로 테네스 후작의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쳐 주었다.

발린은 킥킥거리며 안내인의 뒤를 따라갔다.

한편 그 시각, 병환을 핑계로 보고를 빠진 로버트 대신관은 대신전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의자에 앉을 새도 없이 탁자 위에 있는 수정구를 붙잡은 대신관, 그는 지체하지 않고 구슬에 순백의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우웅!

수정구가 빛을 내며 흔들렸다. 얼마 후, 수정구 너머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 로버트 대신관은 헐떡이며 명령을 내렸다.

“파이오니어 왕국 연락 아티팩트 담당 신관 밀론입니다. 혹 로버트 대신관님 되십니까?”

“그래, 날세. 시간이 없어. 지금 당장 교황성하를 불러 주게.”

“예? 예. 한데 무슨 일로...”

의문성을 표하는 신관에게 로버트 대신관은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부엌의 쥐를 찾았다. 이렇게만 전하면 될 걸세.”

부엌의 쥐, 성물을 훔쳐 간 도둑을 이르는 그들만의 암호다.

신관이 사라진 사이, 로버트 대신관은 긴 숨을 내뱉었다.

무슨 수로 교황청의 최심부까지 침입했는진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단 꼬리가 밟혔다면 결코 쉬이 도망치지는 못할 것이다.

"반드시 잡아서 그 배후를 캐내리라...마법사!"

로버트 대신관의 눈이 번득였다.

***

새로 붙은 안내인은 발린을 보자마자 고갤 숙이며 정중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했다.

“근위기사단의 티보르입니다. 폐하께서 발린 님을 아티팩트 보관소로 안내하라는 명을 내렸기에, 이렇게 대령했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그럼 안내 부탁드릴게요.”

“이쪽으로.”

발린은 티보르가 앞서는 뒤로 여유롭게 걸음을 떼어놓았다.

파이오니어 왕국의 왕성은 왕국들 사이에서도 꽤나 크다. 하지만 규모에 비해 그 내부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덕분에 걷는 동안 딴생각을 해도 큰 문제 없는 건 큰 장점이었다. 내성 안편으로 들어가는 사이, 발린은 남몰래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조금 무리해서라도 세이라에게 안내를 부탁해야 했나.’

매혹 마법이 걸려 있는 세이라라면, 숨기는 것 없이 모든 아티팩트를 보여 줄 수 있을 터.

처음 보는 이 기사와는 달리, 그녀는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다. 매혹 마법이 걸린 이상 어떤 수작질도 못할 테니 말이다.

‘이 기사도 마왕군의 손길이 뻗쳤을지 모르지. 확실한 건 아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도착했습니다. 발린 님.”

“고마워요.”

도착했다는 말에 시선을 돌리자 눈앞에 있는 문이 보였다.

양옆으로 기사 여럿이 지키는 두꺼운 금속문, 보석으로 된 장식이 가득했으나 그것보다는 사이에 숨겨진 마법 술식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이 바로 파이오니어 왕국의 아티팩트 보관소.

중요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장소답게 국왕의 주변을 제외하면 가장 경비가 삼엄했다.

“국왕폐하의 명령이시다. 여기 있는 발린 공에게 원하는 아티팩트 하나를 하사하라고 하셨지.”

“명령서를.”

“여기 있네.”

입구를 지키던 기사의 말에 티보르는 품 속에서 준비해둔 종이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기사들은 토씨 하나까지 철저히 훑어본 후에야 비로소 통행 허가를 내렸다.

“명령서에 의하면 가져갈 수 있는 아이템은 하나, 그 이상 욕심을 낸다면 적으로 간주하겠소.”

“확실히 말해두리다. 그럼 들어가겠소.”

문을 지키던 기사들은 받은 통행서를 문 옆에 있는 홈에 밀어넣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금속으로 된 문이 양 옆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열린 문 안으로 마법 등이 하나둘씩 켜지자, 길게 펼쳐진 회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제 뒤에 딱 붙어 주십시오.”

말을 마친 티보르가 심호흡을 하더니 먼저 걸어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던 발린의 눈에 수많은 아티팩트가 보였다.

오직 최고급 아티팩드들만 모아 엄선한 모습. 과연 왕국에서 가장 엄중히 다루는 곳에 걸맞는 위용이었다.

“발린 님, 아티팩트의 등급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앞서 가던 티보르의 물음에 발린은 일부러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전생에서부터 배웠기에 알고야 있었지만, 그대로 말했다간 쓸데없는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

모른다는 말에 티보르는 두어 번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간단히 설명을 드릴 테니, 구경하시면서 들어 두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대뜸 팔을 들어 마법등 하나를 가리켰다.

벽에 걸려 은은히 빛을 뿜고 있는 구체들. 티보르는 그걸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티팩트의 등급은 C급부터 A급까지, 그리고 그 위에 S급 아티팩트가 있습니다. C급이 가장 낮은 등급, S가 가장 높은 등급이지요.”

벽에 걸려 은은히 빛을 뿜고 있는 구체들. 티보르는 그걸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게 바로 제가 말했던 C급 아티팩트입니다. 꼬마 마법사님. 바깥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시장에서도 유통될 만큼 값싸고 약한 아티팩트지요.”

말을 마친 티보르는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 딴에는 적절한 설명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발린의 입장에서는 꽤나 웃기는 일이었다.

티보르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팔을 내밀어 B급 아티팩트의 예시를 들었다.

C급 아티팩트보다 확연히 강해, 아무렇게나 취급할 수 없는 것들을 B급 아티팩트라 한다. 티보르가 입고 있는 금빛 갑옷이 그 예였다.

"어지간한 화살이나 창 같은 건 전부 막을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이만한 게 없지요."

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갑옷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물품이긴 하나, A급 아티팩트는 그것보다도 더 희귀했다.

수로 따지자면 한 나라를 통틀어서 10개도 되지 않을 정도. 이 시대에서는 분명 그랬다.

“그 위에 S급 아티팩트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이 보관소에도 없을 겁니다. 전설 속에나 나오는 것이니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전설 속이라, 그럼 내가 있던 미래는 전설이라고 봐도 되겠군.’

검왕 팔리아스, 신궁 이샨타. 성녀 크리스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영웅들은 각자 한 개 이상의 S급 아티팩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다 마왕군과 노스트라 제국, 그리고 각국의 수장들까지.

이들이 가진 S급 아티팩트를 모조리 합치면 열 손가락으로도 다 셀 수 없았다.

그만한 수의 아티팩트가 모두 전설 속에나 있다니.

뜬금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발린은 입꼬리를 슬몃 올렸다.

그 반응이 이상했는지 티보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저는 당신이 기왕이면 높은 등급의 아티팩트를 얻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이 창고 안에서 썩어가던 녀석들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이지, 이런 낭비도 또 없습니다.”

하나만 모습을 보여도 세상을 뒤흔들 만한 아티팩트들.

그런 것들이 무더기로 이 곳에서 잠자고 있으니, 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가만히 썩히다가 마왕군이나 마물에게 모조리 뺏기는 것보단 차라리 빼내 쓰는 게 낫겠지.

“설명은 이쯤해서 끝입니다. 어디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신지요?”

설명을 마친 티보르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왔다, 그 덕분에 발린은 한 번 더 아티팩트에 대해 복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의 일. 살짝 고개를 저은 발린은 짐짓 머뭇거리는 어조로 물었다.

“됐어요. 그런데 혹시 저 혼자 천천히 둘러봐도 될까요? 혼자서 마음을 편안히 하고 고르고 싶어서요.”

“헛, 그건 조금 곤란합니다. 저는 폐하의 명을 받았기 때문에.”

눈에 띄게 당황하는 티보르, 그만큼 왕의 명령이 엄중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발린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티보르가 붙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그만큼 컸다.

“부탁드릴게요. 어차피 이 곳의 입구는 저 문 하나뿐이고, 제가 아티팩트를 써서 왕성을 다 부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혼자 느긋하게 둘러보고 싶을 뿐인데, 이 정도 부탁이라면 국왕폐하께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으실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기면 100퍼센트 제 책임이라 말할 테니 제발.”

몇 번이고 거절해도 끈덕지게 붙들며 늘어진다. 한참 고개를 젓던 티보르도 결국 그 끈기에 두 손을 들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이 곳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구도이니, 양옆의 아티팩트 중 아무거나 하나 들고 오시면 됩니다. 그 아래에 제각기 효능이 적혀 있으니, 쓰임새에 맞는 걸 가져 오시면 됩니다.”

대략적인 구도와 아티팩트의 효능을 보는 법을 가르쳐 준 티보르.

다음 순간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발린의 반응을 살피던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발린은 그가 말하는 걸 유심히 들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손해보는 건 자신이다.

“한 개 이상 가지고 나오면 안 됩니다. 그럴 시 저 밖의 근위기사단이 즉각 마법사님을 공격할 겁니다.”

“네, 네.”

“또한 이 안에서 아티팩트를 작동시키셔도 안 됩니다. 자칫하다간 큰 사고로 이어집니다.”

“명심할게요.”

“시간이 되면 부를 테니, 그 전에 고르셨다면 들고 나오십시오. 저는 그럼 이만.”

그것을 끝으로 티보르가 몸을 일으켰다. 결국 발린의 청을 받아주고 만 것이다.

살짝 그 편을 향해 목례한 발린, 이제 이 보관소 내의 아티팩트 중 가장 쓸모있는 걸 들고 가야 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 댓글에서 마왕이 되겠다...라 했는데요

어둠의 마나가 없어서 아마 안 될 겁니다. 네.

상단전 관련해선 머리니 심장이니 이런저런 말이 있는데...제가 예전에 봤던 다른 글에선 심장을 그렇게 하더군요.

인상깊어서 쓰다가 그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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