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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22화 (2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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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으로.

“마탑?”

발린은 그곳이 어딘지 다 알고 있음에도 짐짓 모르는 척 반문했다.

테네스 후작이 말하는 마탑. 파이오니어 왕국에 하나뿐인 마탑인 루비 타워다.

아예 대놓고 낙후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잘난 부분은 어디에도 없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인 곳.

원래대로라면 2년 뒤에 발린이 들어가 마법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다.

‘역시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단신으로 수천 마리의 붉은 오크를 격퇴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미 발린은 수준급의 마법사이다.

파이오니어 왕국 입장에서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정도의 특혜라도 모자랄 정도였다.

어쨌거나 발린은 굳이 후작의 제안을 거절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힘을 드러낸 이상 자신을 보호해 줄 울타리가 필요하던 참이다.

왕국의 수도에서 마탑에 있다면, 적어도 대놓고 죽이러 오지는 못할 테니까. 마음을 굳힌 발린이 입을 열었다.

“그러죠.”

“아 참, 혹시 후견인을 묻는다면 내 이름을 대게나. 부담은 갖지 말고.”

말을 마친 테네스 후작이 큰 소리로 웃어젖힌다. 발린은 뻔히 보이는 속셈에 속으로 조소했다.

후견인을 후작으로 댄다는 건 곧 후작의 세력에 든다는 걸 뜻한다.

그 말인즉, 발린이라는 원석을 발굴해낸 공과 그걸 보석으로 키워내어 얻는 이득.

이 모든 게 테네스 후작의 것이 된다는 말이었다.

전생의 발린이었다면 순수하게 감사했겠지만, 지금은 그러기엔 아는 게 너무 많았다.

‘뻔히 보이는 의도지만,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지. 실제보다 부푼 명성이니만큼 이용하기에도 쉬울 테고.’

하지만 바로 받아들이면 안 됐다. 그의 눈길이 나머지 둘을 훑었다.

저들을 의식해서라도 어느 정도 튕겨주는 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발린은 테네스 후작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호의엔 감사드립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렇군. 좋은 대답 바라네.”

당연히 즉각 받아들일 줄 알았는지, 후작의 말은 살며시 떨려 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자 로버트 대신관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린은 움직이는 셋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너도 그러려무나.”

막 대답하던 로버트 대신관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는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발린이 목에 건 목걸이를 응시했다.

‘잠깐만, 저건...설마?!’

“얼른 나오세요. 대신관님.”

“아, 아아! 미안하네들.”

등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대신관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지우려 해도 발린이 걸고 있던 목걸이는 더욱 뚜렷하게 떠올랐다.

‘그 목걸이, 분명 교황청에 보관되어 있던...!’

두어 달 전, 대신관 이상의 최고위 인물에게만 알려진 비밀.

교황청의 가장 깊은 곳에 보관중이던 신의 성물 중에서도 가장 철저히 관리되던 것.

인과의 목걸이라 불리던 최고위 성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은 전혀 없었지만, 없는 걸 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그 때부터 은밀히 사람을 풀어 찾았는데, 천만뜻밖에도 여기서 그걸 찾은 것이다.

‘...섣불리 행동하지 말자. 일단 교황청에 연락을 취해야 해. 수도까지는 참자. 수도까지는 참자. 으으읏!’

마음을 다스린 대신관은 애써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원래 저녁엔 조사단을 맞이하여 연회를 열기로 했었으나, 열악한 사정 때문에 간단한 만찬 정도로 끝났다.

그 만찬에서 발린은 솔다인 남작을 직접 언급하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이는 지금까지 베풀어 준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의사표현이었다.

남작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테네스 후작과 세이라는 훈훈한 장면에 박수를 보냈다.

이상하게도 로버트 대신관은 무슨 일인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는데, 물어봐도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다고만 할 뿐이었다.

어느정도 밤이 깊어갈 무렵, 테네스 후작이 파티의 끝을 알렸다.

“내일 곧바로 수도로 향할 것이니, 오늘은 이만 해산하지들.”

“알겠습니다.”

이렇게 만찬은 끝! 발린은 특별히 혼자 큰 방을 배정받았다.

단신으로 영지를 구해낸 영웅에 대한 당연한 예우.

그렇게 들었지만 정작 혼자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이면 수도로 출발하는군. 그 때부터 노출되는 건가.”

혼잣말을 해 본 발린은 양 손에 마나를 모아 보았다.

생각과 함께 형태를 갖춘 푸른 마나.

강력한 힘이지만, 상대에 비하면 아직 여러모로 부족했다.

라덴과 밀리아에 대한 얘길 굳이 꺼내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특별히 요청을 하지 않는 한, 수도에서 마탑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발린 한 명뿐.

나머지, 예를 들면 가족이나 친척들은 말을 하지 않는 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라덴은 몰라도 밀리아는 꽤나 아쉬워할 것 같았다.

당장 오늘 저녁 만찬상에서도 수도를 보고 싶어 한껏 들떠있던 게 눈에 보였었으니 말이다.

“조금만 참아주려무나. 이 할아비가 아직 그만큼 강하지 못해서 말이야. 헐헐.”

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노인 말투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발린.

깜짝 놀라 입을 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다행히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발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지금 수준으로는 안 돼, 본신의 능력을 성장시키는 건 슬슬 느려질 테니, 이제부터는 다른 방향으로도 힘을 키워야겠다.’

마법의 클래스가 높아질수록 다음 경지로 가기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다.

그것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구간이 바로 5클래스에서 6클래스까지의 구간.

이 구간이 어찌나 벽이 큰지, 여기서부터는 하늘이 허락해야만이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무리 한 번 올라가봤던 길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처럼 한두달 만에 올라갈 수는 없는 험난한 길.

물론 천천히 그 길을 올라간다면 좋지만, 지금은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

‘당장은 내 힘을 강하게 해 줄 아티팩트를 얻거나, 나와 같이 싸울 아군을 만들어야 해.’

아티팩트는 단순한 물건이니 아무거나 선택한다 쳐도 아군은 신중히 선택해야 했다.

지금 선택한 사람이 추후 마왕과도 같이 싸워줄 파트너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한참 고민하던 발린의 귓가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스윽 고개를 돌린 발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의 창문이 열려 있었다. 그 편으로 다가가던 발린의 귓가에 이번엔 뜨거운 바람이 닿았다.

“?!”

“후후, 귀여운 아이구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적발의 여인이 후후 웃는 게 보였다.

얼굴을 확인한 발린은 경계를 한결 느슨하게 하며 상대방을 살폈다.

여인의 정체는 바로 루비 타워에서 온 마법사, 세이라였다.

“이 밤에 여긴 어쩐 일이시죠?”

“그야, 이 누나가 너한테 볼 일이 있어서겠지?”

의미심장하게 웃는 세이라의 눈이 요사하게 빛났다.

요사하게 눈을 빛내며 찾아온 세이라

그러고 보니 그녀의 복장도 확실히 이상했다.

낮에 입고 있던 붉은 로브는 어디 가고, 은밀한 부위만을 아슬아슬하게 붉은 비단으로 가렸다.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온 절세미녀의 과감한 복장! 밤의 분위기와 어우러지자 무시무시한 색기를 뽐냈다.

그러나 발린은 거기서 매력 대신 불안감밖에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손을 내밀었다.

“무슨 말씀이신진 잘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그러시면 다른 사람을 부를 겁니다.”

“섭섭해라, 아직 어려서 그런가? 너무 차가운데.”

쿡쿡 웃던 세이라의 전신에서 보이지 않는 파동이 흘러나왔다.

발린은 재빨리 마법 방벽을 쳤으나 파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통과해 왔다.

“앗!”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파장이 몸에 닿자 순식간에 전신의 힘이 빠져나갔다.

털썩 쓰러지는 발린의 시야 위로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흡혈귀의 특징인 송곳니와 핏빛 눈동자를 드러낸 세이라.

그림자 너머로 비쳐 보이던 그녀가 그대로 몸을 숙였다.

“혼자서 마왕군의 케인후프를 잡았다길래 기대했는데, 결국 이렇게 쉽게 제압당하네. 우웅. 어쩔 수 없나?”

“다,당신...뱀파이어였나?”

바닥에 누운 발린에게서 기운없는 목소리가 나왔다.

셀리아는 쿡쿡 웃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응. 노스트라 제국 소속 자작이자 뱀파이어, 세이라 벨린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발린.”

“...크으...”

이를 갈던 발린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세이라.

계획대로 은밀히 뱀파이어가 가진 매혹의 권능을 거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자신과, 그녀가 섬기는 뱀파이어 일족은 새로운 수하 한 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것도 15살에 4클래스를 마스터하는 놀라운 재능의 불의 마법사를!

“후후, 영광으로 알려무나. 내 주인님께서는 능력 있는 자에게는 그만큼의 대우를 해 주시거든. 배경이니 신분이니 뭐니 하는 인간들과는 달라. 나중엔 이 순간을 좋게 기억하게 될 거야.”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발린과 눈을 마주친 세이라가 비웃음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등 뒤에서 청남색 눈동자 한 쌍이 빛나고 있는 걸 알지 못했다.

한 쌍의 눈동자에게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발린의 것이었다.

“노스트라 제국의 세이라 벨린 자작이라...네 주인은 누구지?”

“내 주인? 알고 싶어? 후후, 아쉽지만...삼황자님. 삼황자님이야.”

요염하게 말하다가도 발린이 요구한 정보를 모조리 털어놓는 세이라.

그녀의 패착은 발린의 고유 능력에 대해 전혀 모르고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발린이 시작부터 부여받은 고유 능력인 에픽급 능력 고결한 영혼.

어떤 정신계 공격이든 전부 흘려보낸다는 능력은 뱀파이어의 권능에도 예외없이 작용했다.

튕겨나온 매혹 마법은 그대로 세이라에게 향했고, 이런 게 처음이던 그녀는 단숨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이 모습. 그녀는 발린에게 매혹 마법을 걸었다는 환상 속에 빠진 채 알고 있는 정보들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발린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몇 번 더 문답을 진행해 보았다.

결과는 모두 성공! 묻는 대로 전부 말하는 것으로 보아 마법에 걸린 척하며 역습할 기회를 노리는 건 아닌 듯했다.

“그럼 지금 제국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신중히 노스트라 제국의 정세에 대해 묻는 발린, 세이라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으응, 지금 제국에서는 황위 계승전이 벌어지고 있어. 폐하께서 자신의 황금혈을 세 후계자분 중 승리자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셔서...”

황위 계승전이라는 말에 발린의 눈이 번득였다.

노스트라 제국이 마각을 드러낸 것은 발린의 나이가 40줄에 들어설 무렵.

그 전에는 카딤 연방제국과 맞먹는 강국임에도 내부는 철저히 비밀에 싸여 있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때를 기다리며 웅크린 거라 알고 있었는데.

단순히 그런 게 아니라, 제국 내에서도 한바탕 소용돌이가 불어닥치고 있었다면?

처음 듣는 정보에 발린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물었다.

“계승전이라면,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건가?”

“예전에는 그렇지만 이번 계승전은 특별히 명령이 내려왔어. 제각기 세계에서 더 강한 수하를 더 많이 권속으로 거둬서 가장 강한 수하를 거둬온 분이 승자라고 하시던걸?”

“...뭣.”

내심 서로 창칼을 휘두르는 내전을 기대했었던 발린.

알고 있던 의미와는 다른 내용에 순간 헛숨을 내뱉고 말았다.

“그럼 가장 권속을 많이 가진 자는...”

“새로운 폐하가 되시지. 전대 폐하의 황금혈을 물려받아서 말야.”

세이라의 말은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노스트라 제국 지배층의 계승 방식,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결과물까지.

발린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전생을 회상했다.

마왕군과 노스트라 제국이 경쟁하듯 인류 연합을 치던 시기.

그 때, 노스트라 제국의 황제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통치력을 선보였다.

아군은 결속시키고, 적들은 분열시키며.

최대한 효율적인 것만 추구하는. 마치 마법사와도 같은 모습.

‘하틀러 체페슈 황제.’

노스트라 제국 황가의 일원들은 이름조차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특급 인물들.

단지 황가의 자손은 이남일녀가 전부라는 것만이 세계가 아는 유일한 정보였다.

하지만 발린이 초점을 둔 방향은 황제가 될 후계자가 아닌, 그들이 계승전 동안 모아 온 수많은 권속들.

세계 곳곳에서 인류 연합을 방해하던 배신자들. 발린이 걱정하는 건 바로 그들이 또다시 제국의 편에 서는 것이었다.

“그럼, 한 명이 황제가 되면 나머지는 뭘 하지?”

“궁금증이 많은 아이로구나. 으으응. 계승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으니, 황제에게 충성하다가 황제가 만든 새로운 후계자들과 같이 다음 계승전에 나가.”

“여러모로 제국에 이익이 되면 됐지, 손해는 없는 방식이로군.”

“후후, 내가 말했잖니. 제국은 철저히 능력 위주의 인사진행을 한다고. 이제 우리들에게 진심으로 협조할 의향이 좀 생기니?”

조소하는 세이라를 앞에 둔 채 발린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노스트라 제국의 뿌리가 이런 식으로 크기를 키웠다면.

전생의 세계에서 인류 연합이 결국 무너진 것도 이해가 갔다.

실속있는 뿌리는 다 빼내가고, 남은 건 죽은 가지들뿐인 거목이 그 때의 인류 연합.

그 정도의 수준으로는 아무리 굳건하게 버텨 보려 해도 넘어가는 건 한순간이다.

인류 연합의 전력을 이런 식으로 송두리째 뺏어갔다면, 거의 신의 경지에 다다른 마왕을 상대로도 일전을 벌일 수 있을 정도.

물론 그 꼬리를 밟아버린 이상, 순순히 응해 주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발린은 의미심장하게 웃은 후, 세이라를 향해 명령했다.

“나는 네 세뇌에 완벽히 걸려들었고, 그동안 본 인재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그렇게 네 주인에게 전하도록. 이제 자러 가라.”

“응? 그렇게 할게. 후후. 나중에 보자구.”

끝까지 자기가 환영 마법에 당한 걸 깨닫지 못한 세이라가 창문을 통해 사라졌다.

홀로 남은 발린은 그제서야 편안히 침대에 누우며 웃었다.

“잘 됐군. 황위 계승전에 노스트라 제국 삼황자까지. 월척이 굴러들어왔어...!”

아마 다른 황자들도 제 권속을 펴거나, 혹은 직접 세상 곳곳에 개입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감히 제국을 벗어나 그러고 있는 것.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 대현자 발린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 작품 후기 ============================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하나하나 보면서 힘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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