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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18화 (1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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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오크들의 습격

다음 날, 아침해가 뜨기도 전에 내려온 오크들의 물결이 파도처럼 남작령을 덮쳤다.

처음 그걸 발견한 약초꾼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이마에 도끼를 맞아 죽었다.

물밀 듯이 밀고 내려오는 붉은 오크의 떼. 솔다인 남작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영지민들이 성 안으로 대피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예!”

긴급상황이니만큼 남작이 직접 검을 뽑아들고 나섰다. 그 뒤로 완전무장한 기사들과 영지병들이 줄줄이 오와 열을 맞췄다.

병사들의 수는 대략 이백여 명 남짓.

기세만은 날카로웠으나 상대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전력이었다.

적들의 수를 확인한 솔다인 남작은 재빨리 옆에 대기중이던 기사 한 명에게 명령했다.

“아카디안!”

“예! 남작님!”

“너는 즉시 내 말을 타고 라돈 시로 가라. 가서 지원군을 요청해!”

“알겠습니다!”

남작령의 사람들을 다 모아봤자 천 명도 채 안 됐다.

보이는 것만 해도 천 마리가 넘는 오크 전사들의 무리,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추가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리라.

“으아아아!!”

“뀌이이익!!”

병사들과 오크들이 맞부딪히며 큰 소리를 냈다.

양측이 부딪히는 사이 영지민들은 몸만 챙긴 채 성 안으로 대피했다.

꾸역꾸역 몰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린은 끄응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저 놈들, 분명 자신을 찾아온 게 틀림없었다.

아마 후환을 미리 없애두려는 마왕군 상층부가 시켰을 테지.

그렇지 않고서야 삼 년 후 나타날 붉은 오크들이 이렇게나 일찍 산맥을 내려올 리 없었다.

“오빠!”

수런대는 사람들 사이로 발린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돌아본 발린은 울먹이는 밀리아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여기 있으면 위험해! 안쪽 방에 들어가 있어.”

“지금 안 위험한 데가 어디 있는데? 다 똑같은 거 아냐?”

핵심을 찌르는 말에 발린은 입맛을 다셨다. 마침 사람들이 더 들어와 둘 사이를 자나갔다.

“아까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마을에 오크가 가득하대. 우리 이제 어떻게 해? 다 죽는 거야?”

“걱정하지 마, 남작님과 기사분들이 지금 열심히 싸우고 계시니까. 오늘 점심쯤이면 오크들을 몰아내실 거야.”

말을 하는 본인도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걸 눈치빠른 밀리아가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아빠아아...으아아앙...!”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밀리아.

그것을 시작으로 성 안에 모여있던 영지민들 사이에서 온갖 소리가 났다.

모두가 이게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걸 체감하기 시작했다.

붉은 오크들이 갑자기 쳐들어오고, 마을이 불타며 사람들이 죽고 있다.

이 모든 게 실제의 상황이었다. 그걸 깨달은 사람들은 더욱 동요하기 시작했다.

“으음.”

발린은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곧바로 숙소로 올라가 자세를 잡으며 눈을 감았다. 온 몸의 마나가 흐름에 맞춰 돌며 신경을 자극했다.

그렇게 있기를 대략 5분, 순환하던 마나의 속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발린의 눈이 뜨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마나의 예열이 완료된 걸 확인한 발린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탁, 탁. 화르륵!

허공에 떠오른 파이어 볼이 혀를 날름거렸다. 불순물이 섞인 티라곤 하나도 없는 순수한 불꽃이었다.

싸울 준비는 전부 끝났다. 발린은 성 밖으로 비치는 붉은 오크의 무리를 바라봤다.

전생의 시간대에서 저들이 오는 것은 삼 년 후.

한창 마탑에서 수련에 열중하던 도중 비보를 받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왕국을 등지고 도망쳐야 했던 기억.

그 후로 겪은 수많은 고난들이 스쳐지나가듯 떠올랐다.

‘이미 미래는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느냐가 놈들을 없앨 열쇠겠지...’

침을 꿀꺽 삼키던 발린, 그의 마나가 복도에서 훌쩍이는 작은 인기척을 감지했다.

발린은 입 안에서 그 이름을 짤막하게 굴렸다.

‘루퍼스 솔다인...’

미운 녀석이다. 하지만 그 아버지인 솔다인 남작이 베푼 친절은 그대로 넘길 수 없었다.

마침 전생의 원수까지 있으니, 등장으로는 이만한 무대가 없다.

‘어려운 길이 될 거야.’

각오는 했다. 발린은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리며 방에서 걸어나왔다.

한편 성 바깥에서의 전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크아아악!!”

“이런, 코룬!”

동료의 이름을 부르는 병사의 어깨 위로 솔다인 남작의 손이 얹혔다.

돌아보는 병사에게 남작은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저 녀석은 포기하게. 이대로는 자네도 죽어!”

“크흐윽!!”

피눈물을 삼키며 발길을 돌리는 병사들의 뒤로 붉은 오크들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미 마을의 모든 집은 하나같이 오크들의 손에 들어간 뒤.

남은 건 솔다인 남작의 성 한 채뿐이었다.

피난민들이 들어간 걸 확인한 남작은 재빨리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성 안으로 들어왔다.

성문을 급히 닫아걸은 그에게 병사 한 명이 다가왔다.

“저, 저기 남작님.”

“뭐야, 무슨 일이냐?”

숨을 헐떡이던 남작에게 병사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그게. 지원군을 요청하러 가던 아카디안 경이 오크들에게 당했습니다.”

“뭐야!!”

절망적인 소식에 남작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보고를 하던 병사는 그 모습에 놀라 움츠러들면서도 하던 말을 이어갔다.

“막 언덕길을 넘어가던 도중 오크 떼가 화살인지 창인지를 마구 쏘아 아카디안 경을 넘어뜨리고 덮쳤습니다. 어떻게 할 수도 없이 그만...”

“됐다.무슨 말인지 알았어. 영지민들에게는 비밀로 해 두도록.”

솔다인 남작은 닥쳐오는 허탈함을 억누르며 지시를 내렸다.

이 일이 영지민들에게까지 들어가면 질서를 유지할 방도가 없었다.

안 그래도 절망적인 상황, 거기다 추가로 일을 늘리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남작의 명을 들은 병사는 확답 대신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았다.

그 모습에 의아해하던 남작의 눈길로 한 줄기 불안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병사를 붙잡은 솔다인 남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이미 영지민들 사이에도 소문이 퍼졌습니다.”

“맙소사...!”

솔다인 남작은 재빨리 성 안을 크게 둘러봤고, 깨닫게 되었다.

지친 듯이 가만히 늘어진 영지민들에게서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전개 중 최악의 전개였다.

차라리 영지민들이 이 사실을 몰랐다면 지원군에 대한 희망으로라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지원군도 오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모든 걸 포기하고 드러눕고 있었다.

절망감에 허탈하게 웃던 남작이 문득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오크들이 전술까지 쓰게 됐나. 세상 참 많이 변했군. 우리 할아버지 대에는 짐승이랑 다를 바 없던 놈들이었는데 말이야.”

단순히 허탈감에 한 말이었지만 꽤나 심각한 사실이기도 했다.

오크들은 날 때부터 인간을 능가하는 힘을 가진다.

거기다 마나를 다루는 오크들까지도 있으니 그냥 맞부딪히면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크가 인간들에게 밀려나고 토벌당하기만 한 이유는.

바로 체계적으로 오크들을 다뤄 주는 대장이 없어서였다.

예전의 오크들은 늘 그랬었는데, 지금 밖을 포위한 오크들의 움직임은 뭔가 달랐다.

철저하게 주변을 포위하는 것은 물론, 지원군이 오는 걸 막기 위해 전령을 죽이는 치밀함까지 보여준다.

저 정도의 훈련도라면 잘 훈련된 사병집단에도 비벼볼 수 있을 정도.

저런 오크들이 더 늘어난다면 어쩌면 왕국 전체가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순간 성벽 바깥에서 걸걸한 공용어가 들려왔다.

“성 안의 인간들은 들으라! 취익! 그대들이 솔다인 남작령의 사람이라는 건 다 알고 있다! 뀌이익!”

적의가 담기지 않은 말에 영지민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애써 통제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들리는 이상 애시당초 무리였다.

소란이 커지는 사이 벽 너머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케인후프! 뀌이익! 아라톨 부족의 대족장 케인후프다! 너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췩! 너희들의 우두머리를 데려와라!”

모두의 시선이 순식간에 솔다인 남작에게로 향했다.

절망감에 빠져있던 솔다인 남작의 고개가 들렸다.

무슨 일인진 모르지만, 저 대족장 오크는 자신과 대화를 하길 원하고 있었다.

어차피 다 죽을 것 같은 지금,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게 옳았다.

남작은 성벽 위로 올라가 소리쳤다.

“내가 솔다인 남작! 너희들이 말하는 이 곳의 우두머리다! 케인후프는 누군가!”

“여기 있다! 췩!”

성벽 아래에서 붉은 오크 한 마리가 손을 들었다.

남작의 뒤를 따라 올라온 기사들이 그의 모습을 살폈다.

다른 오크들과 다를 바 없는 키와 팔다리.

어찌나 평범하던지, 몸에 가득한 문신만 아니었다면 일반 오크 전사와 구분하지 못할 뻔했다.

“용건을 말하라!”

솔다인 남작은 짐짓 배에 힘을 주어 말했다. 여기서 얕보이면 마지막 기회마저 날리는 셈이 된다.

무슨 수를 써서든 케인후프를 기세에서 제압해두면, 적어도 그게 통하는 시간만큼은 버틸 수 있으니까.

“거기 우두머리! 퀴익. 네게 아들이 하나 있다고 알고 있다!”

“아들...? 그야 있지.”

예상치 못했던 물음에 남작의 기세가 흐트러졌다. 주변의 기사들이 황급히 남작을 가렸다.

그러나 케인후프는 딱히 솔다인 남작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씨익 미소짓더니 드디어 본론을 말했다.

“취익. 그 아들을 우리에게 넘겨라.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절대 건들지 않으마.”

“뭐, 뭐야!?”

솔다인 남작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며 외쳤다.

그 모습을 보던 케인후프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덧붙였다.

“방금 한 말 그대로다. 뀌익. 우리는 그 녀석에게만 볼일이 있다. 취익. 다른 녀석들은 아무래도 좋다. 그러니 놈만 내놓으면 살려 주겠다!”

케인후프의 목소리는 성 안에까지 들릴 만큼 충분히 컸다.

한 명만 내놓으면 나머지는 모두 살려 주겠다. 솔깃한 제안에 영지민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저거, 루퍼스 도련님만 내놓으면 다 살려 준다는 거 맞지?”

“그런 것 같은데...허어.”

단 한 명의 죽음으로 모두가 살 수 있다는 건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게다가 그게 항상 영지민들을 괴롭히던 루퍼스라면 더더욱.

영지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솔다인 남작을 향했다.

졸지에 자식을 죽이게 생긴 남작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틀거렸다.

양옆의 기사들이 즉시 부축하는 동시에 병사들이 애써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감히 루퍼스 님을 내놓으라니! 남작님, 당장 거절하십쇼! 들을 가치도 없는 소립니다!”

꿈도 꾸지 말라는 듯 소리지르는 병사들, 그러나 이미 영지민들의 시선엔 갈등이 어려 있었다.

시끄러워지는 성 안의 분위기는 바깥에 서 있던 오크들에게도 잘 느껴졌다. 케인후프의 입술 위에 있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의 예상대로 이 심리전은 제대로 먹혀들어갔다. 성 안의 혼란은 이제 커지면 커졌지, 절대 작아질 일은 없었다.

만약 저들이 제안을 받아들여 루퍼스를 내놓는다? 그럼 그를 안전하게 확보한 뒤 나머지를 전부 죽이면 된다.

만약 내놓지 않는다고 해도 차후 성을 칠 때 훨씬 쉽게 공략할 수 있을 터.

어느 쪽이든 자신들이 손해보는 건 하나도 없었다. 케인후프의 노림수가 제대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노림수가 있는 것도 모르고 옆에 서 있던 붉은 오크들은 영문을 모르고 눈만 끔벅거렸다.

“취익, 대족장. 언제 공격합니까? 준비 다 됐습니다.”

“췩. 잠깐만 기다려라. 어차피 지원군은 오지 않아. 지금 놈들이 약해지고 있으니 조금만 더 참아라.”

“크르르, 알겠습니다.”

말을 묻던 붉은 오크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물러섰다. 마을에서 가져온 의자에 앉은 케인후프는 느긋하게 성문을 바라봤다.

그의 생각대로 성 안은 바야흐로 폭동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였다.

살고 싶다는 욕망에 가득찬 영지민들은 우르르 솔다인 남작에게 몰려들어 항의했다.

병사들은 애써 사람의 물결을 막았다. 그러나 그중 몇몇은 영지민들의 말에 동조하는 눈치였다.

‘루퍼스 자식, 맨날 버르장머리 없게 기어오르던데, 대신 우리 좀 살려주라. 응?’

‘젠장맞을, 어째서 그 녀석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되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솔다인 남작이 이를 악물었다.

난산으로 죽은 부인이 유일하게 남기고 간 혈육.

그만큼 소중하게 키우고 아껴 왔건만 이제 스스로 그 아들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모두가 보는 앞이라 애써 눈물을 참고 있지만 속은 갈기갈기 찢어져만 갔다.

“...루퍼스를 데려와라.”

“남작님!!”

입술 사이로 나온 말을 들은 기사들이 대번에 외쳤다.

그러나 남작은 눈을 부릅뜬 채 계속 말했다.

“그 한 명을 던져 모두를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래야지. 설령 그게 내 아들이더라도!”

핏발 선 눈으로 말하는 솔다인 남작에게서 칼날 같은 기운이 뿜어져나왔다.

============================ 작품 후기 ============================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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