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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9화 (9/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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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우는 어둠의 손길

발린이 루퍼스와 왈패들을 구해 데려간 지 어언 두 달이 지났다.

남작령이라 하더라도 산골짜기에 있기에 마을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열여덟 명이나 되는 건장한 청년들의 실종은 굉장히 큰 일. 허나 두 달이나 지난 지금은 그저 간간이 나오는 얘깃거리가 되었다.

"그거 들었어? 저번에 산 속에 들어갔던 놈들, 아주 착하게 변했다더라고. 일도 곧잘 돕고, 건들거리지도 않고 말이야."

"그으래? 역시 사람은 고생 좀 해야 변해. 안 그러면 그대로지. 암!"

끼리끼리 모여 떠들던 마을 사람들, 그 중 몇몇이 성으로 향하는 한 소년을 보았다.

"저기 봐. 저 녀석, 그 사이에 아주 부티나게 변했네그려?“

“그러게. 저래서 사람은 꾸미고 봐야 하나 봐. 예전엔 칙칙해서 영 보기 싫더니만 그새 인물이 확 살았어.”

“허 참, 운도 기가 막히게 좋아. 설마 약초 캐던 길목에 걔네들이 딱 엎어져 있을지 누가 알았나?”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 내용은 점점 소년에 대한 질투로 변해갔다. 성으로 걷던 발린은 조용히 손가락을 튕겼다.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는 수군거림, 소리 증폭 마법이 사라지자 귓가가 한 결 가벼워졌다.

‘이건 언제 써도 영 찝찝하단 말이지.’

성으로 향하던 발린은 살며시 혀를 찼다. 소리 증폭 마법은 몇 번을 사용해도 뒷맛이 썼다.

천재에게 항상 따라오는 시기를 받아내야 하기 때문일진 몰라도. 좋은 말이 들려온 건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를 하나 했더니, 결국 부럽다는 것 정도인가.'

굳이 그런 이야기를 엿듣지 않아도 등 뒤에서 오는 시선에 담긴 질투를 느낄 수 있었다.

자기들보다 가난하게 살던 집 아이가 한순간에 바뀌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발린은 누구에게도 안 보이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마왕군과 뱀파이어들의 공작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전생의 배신자들은 이번에도 칼을 거꾸로 쥘 것 같아서였다.

수군거리던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일로 돌아갈 때쯤, 발린은 남작 저택의 연무장에 서 있었다.

두 달 전, 솔다인 남작은 발린에게 무술과 마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파격적인 은혜를 제안해 왔다.

발린이 선택한 것은 당연히 검술 부분, 그 후로 발린은 마법 수련과 검술을 동시에 배워 왔다.

스승은 다름아닌 솔다인 남작 본인. 아들의 은인을 위해 남작령 내 최고수인 그가 직접 목검을 빼 들었다.

물론 업무상 여러 가지로 바쁜 남작이기에 실제로 직접 배우는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시간을 채워주는 건 수하 기사들의 몫이었다.

덕분에 발린은 다양한 스타일의 상대들을 골라 가며 수련을 할 수 있었다.

남작에게만 배우는 게 좋다고 할 수도 있었으나,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던 발린에겐 오히려 이 편이 훨씬 나았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남작님.”

“그 동안 어느 정도나 늘었는지 한 번 볼까! 오너라!”

오늘은 솔다인 남작이 직접 나섰다. 둘의 수련 방식은 오로지 끝없는 실전 대련. 첫날 발린과 검을 맞대 본 남작이 내린 결정이었다.

“차핫!”

먼저 공격하는 것은 제자의 권리.  발린은 이를 거부하지 않고 힘차게 땅을 박찼다.

세로로 내려오는 매서운 검격! 목검이었으나 실린 힘은 절대 예사롭지 않았다. 배운 지 몇 개월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솜씨였다.

제자의 성취에 미소지은 솔다인 남작은 능숙하게 검을 맞부딪히며 손목을 튕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발린의 검격 전체가 옆으로 빗겨나 버렸다. 기세와 힘 둘 다 사라져버린 목검은 바로잡을 새도 없이 바닥을 쳤다.

‘이런!!’

본능적으로 마법을 쓰려 하던 발린의 손을 이성이 붙들었다. 급한대로 목검에 힘을 줘 보았으나, 이미 목덜미에 남작의 목검이 먼저 닿아 있었다.

“성급한 공격은 여러모로 위험하지. 자신보다 더 센 상대에게 하는 건 특히.”

“이번엔 조금 통할 줄 알았는데...역시군요.”

발린은 짧은 헛웃음으로 아쉬운 척을 해 보였다. 그 모습을 향해 솔다인 남작은 씨익 미소지으며 한 마디를 건넸다.

“걱정하지 마라, 두 달만에 이 정도라면 충분히 소질이 있는 편이니까.”

표정을 보아선 안심시키려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발린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멋쩍게 웃었다.

이미 발린이 마법적인 면에서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는 걸 알면, 과연 남작은 어떻게 반응할까?

“왜 그런 표정을 짓느냐? 역시 마법을 배우고 싶었던 게냐?”

“네? 아! 아닙니다.”

남작의 물음에 발린은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갤 끄덕이던 남작에게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하하하하, 그야 그럴 테지. 불러온 마법사는 자넬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저었으니까!”

그 의미인즉슨, 발린에게는 마법의 소질이 전혀 없다는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무려 다섯 개의 서클을 몸에 만들어낸 발린. 몸도 전생에서 대현자로 불렸던 그대로다. 마법에 소질이 없다니, 그것이야말로 있을 수 없는 얘기였다.

“어쩔 수 없지요. 전 괜찮습니다.”

“너무 상심 말게. 항상 세상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진 않는 법이야. 훌륭한 기사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일부러 마법 부문에 관련된 능력을 숨기지 않는 이상 말이다.

“예.”

호흡을 가다듬은 발린은 다시 한 번 검을 세웠다. 둘의 몸이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곧 연무장 전체가 툭탁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한바탕 대련을 마친 뒤, 발린은 기진맥진한 채 누웠다. 온 힘을 쏟아 부딪혔기에, 졌음에도 딱히 후회가 없었다.

그 앞에 선 솔다인 남작이 껄껄 웃으며 발린을 칭찬했다.

“조만간 나보다 더 강한 스승을 붙여 줘야겠어. 왕도에라도 보내야 하나.”

“그건 아드님에게나 베풀어 보십쇼. 저는 됐습니다.”

짧게 대꾸한 발린은 문득 루퍼스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매일 성에 방문하는 동안 최소한 한 번은 보러 왔었는데,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 오늘은 라돈 시에 갔어.”

“라돈 시에...? 무슨 일로 간 겁니까?”

“근신시킨 지 두 달이나 지났거든, 충분히 반성한 듯 하기에 큰 도시에서 기분전환이나 좀 하라고 보냈다. 왜, 같이 가고 싶었느냐?”

“아뇨, 그럴 리가요.”

고개를 끄덕이던 발린의 눈빛 속에서 독기가 스쳤다.

겉으로 보기엔 남작의 말에 흠잡을 데가 없었다. 솔다인 남작령은 객관적으로 볼 때 굉장한 시골, 대산맥의 지류랑 경계를 맞대고 있는 깡촌 중의 깡촌이다.

그런 곳에서 놀 만한 게 있을 리 없으니, 크게 놀란 루퍼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선 큰 도시에 보내줄 법도 했다.

하지만 발린은 왠지 모르게 찜찜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설마 그 녀석, 그렇게까지 해 줬는데 꿍꿍이를 품은 건 아니겠지? 다른 마법사를 찾아가는 일은 없길 바란다. 루퍼스.’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용서없이 처리할 것이다.

아무리 정체를 숨기는 게 중요하더라도, 그런 화근은 미리 싹을 짓밟는 게 상책이니까.

그러나 슬프게도, 루퍼스는 발린이 상상한 그대로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소문으로 듣던 그 해결사인가 하는 사람인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 루퍼스. 그 옆에는 그날 밤 같이 있던 왈패 중 한 명이 앉아 있다.

둘이 앉은 곳은 작고 구석진 술집의 가장자리 테이블. 주변의 눈길을 받지 않도록 공들여 선정한 자리였다.

“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마법사가 필요하시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

맞은편에 앉아 있던 검은 로브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간드러진 목소리로 여유로이 떠드는 남자. 바로 그가 요즘 이 근방에 소문이 자자하다는 해결사였다.

수 개월 전 라돈 시에 터를 잡아, 그 때부터 여러 가지 의뢰를 처리하기 시작한 마법사.비록 뒷세계에서만 활동한다고는 하나, 그 실력 하나만큼은 무섭도록 뛰어나다고 했다.

용병들의 부탁을 해결해 주는 건 물론. 내로라하는 귀족들의 뒤처리까지 해준다고 할 정도. 해결사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2개월 동안 복수심을 키워 온 루퍼스. 그가 이런 소문을 듣고 그냥 넘어갈 리 만무했다. 두 달 동안 집안 패물을 팔아 기회를 만들었고, 그 덕택에 마침내 이 자와 접선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를 만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이신지요?”

“ 그건 이 녀석에게 들으라고. 이봐, 말해.”

루퍼스는 해결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자리의 왈패를 툭 쳤다. 후드 아래로 드러난 왈패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루, 루퍼스 님. 죽기 싫은데...흐윽.”

“됐으니까 빨리 말해! 안 그러면 네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내가 아버지한테 말만 좀 하면...”

살벌하기 짝이 없는 엄포. 일전에 놈들에게 반쯤 휘둘리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벌벌 떨던 왈패는 결국 포기한 어조로 더듬더듬 용건을 말했다.

“실은 저희가 어떤 저주에 걸려 있습지요. 그래서 고명한 마법사님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고요.”

“흐음, 저주입니까? ”

해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해 왔다. 울먹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왈패. 그것만으로도 무슨 저주인지 대충 예상이 되었다.

“아마 내용을 발설하면 몸에 위해가 가는 저주 같은데. 잠깐 확인을 좀.”

말을 마친 해결사는 곧장 몸을 숙여 루퍼스와 왈패의 얼굴에 손을 갖다댔다.

둘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한 줄기 스산한 기운이 전신을 훑었다.

“헉!! ”

“으읏!”

짧은 신음성이 교차하는 가운데, 검사를 마친 해결사가 입을 열었다.

“지금 두 분에게 딱히 걸려있는 저주는 없습니다. 누구에게인진 모르지만, 두 분께서는 그 사람에게 속으신 겁니다. 안심하십시요.”

"뭐라고?“

“그게 사실입니까!”

청천벽력 같은 선포에 루퍼스와 왈패 둘 다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그놈의 저주 때문에 2개월간 속만 썩혔는데, 이제 보니 저주 같은 건 애시당초 없었댄다.

지금껏 노심초사하던 시간을 생각하자마자 루퍼스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그동안 두려움에 억눌려있던 분노가 마구 솟구쳤다.

그는 주먹이 하얗게 변하도록 세게 쥐며 이를 갈아붙였다. 그 원한이 해결사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이 저주를 건 상대, 혹시 이미 늙어 죽거나 해서 더 이상 복수할 수 없기라도 한 겁니까?"

"무슨 헛소리야? 아직 성인도 아닌 자식인데 어떻게 죽어? 빌어먹을 자식! 감히 나를 속여?"

"..."

호기심이 한층 더 거세게 타올랐다. 단순한 일에서 개인적인 관심사로 변할 만큼.

해결사는 눈앞에 놓인 술잔을 옆으로 치웠다. 심상찮은 느낌을 감지한 루퍼스가 시선을 그 편으로 두었다.

"혹시 그 상대방에 대한 것, 최대한 자세하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해결사의 두 눈, 그 안에서는 숨길 수 없는 어둠의 마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덕에 행복합니다.

그래서 한 편 더 들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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