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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실력행사
날이 밝자 솔디안 영지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남작의 아들 루퍼스는 물론, 마을의 젊은 청년이 한꺼번에 열일곱 명이나 자취를 감춘 것이다.
급히 수소문을 해 봐도 얻을 수 있던 건 숲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제보뿐이었다.
“ 어서 찾아라! 빨리빨리 움직여! ”
상황을 접한 솔디안 남작은 평소답지 않은 엄한 표정으로 명을 내렸다.
무장을 마친 남작가의 병사들이 지휘에 따라 주변 숲으로 흩어졌다.
영지민들 중 건장한 사람도 수색조에 포함됐는데, 발린도 그 중 한 명에 포함됐다.
“룰루~”
물론, 그것도 발린이 의도한 대로였다.
남작가의 사병들이 숲의 초입부부터 샅샅이 뒤지는 사이, 발린은 주저없이 깊은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금방이라도 몬스터가 나올 듯한 울창한 수림.
어제의 그 장소에 도착한 발린은 씨익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 잘 있었어? ”
물론, 그 대상은 땅에서 머리만 내놓은 루퍼스와 17명의 왈패들이었다.
“ 쿨럭! 커헉! 제,제발 꺼내줘. ”
간밤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말도 제대로 못 잇는 왈패들.
얼굴 곳곳이 퉁퉁 부은 걸 봐선 온갖 벌레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시달린 모양이었다.
미리 쳐 둔 결계 밖에는 온갖 모양의 발자국이 가득했다. 보아하니 간밤에 몬스터라도 다녀간 듯했다.
“어이, 루퍼스.”
“힉. 힉! 네!”
“이 녀석들에게 어제 내가 말했던 것들 전부 숙지시켰어?”
발린의 물음에 루퍼스는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당부해 왔다. 아무리 왈패 놈들이 멍청하더라도, 그렇게나 말했으면 알아들어야 정상이다.
“그럼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도록 할까.”
“가, 감사합...”
"만약 이 일을 남한테 말한다면, 그 순간 금제가 너희들의 목숨을 거둬갈 거야. 죽기 싫으면...알지?”
“예! 저,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
살벌한 엄포에 18명 모두 이구동성으로 비밀을 지킬 것을 다짐했다.
왈패들을 꺼내주는 건 손짓 몇 번으로 끝났다. 무영창 덕에 주문을 외우지 않고 마법을 쓰자 땅이 다 파이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일을 마친 발린은 짧은 한숨과 함께 등을 나무에 기댔다.
“ 후우. ”
캐스팅을 무한정 할 수 있다고 해도 거기 드는 마나는 엄연히 본인 부담.
아직 마나량이 충분치 않은 발린으로서는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땅 속에서 벗어난 왈패들은 헐떡이며 숨을 골랐다.
그들에게 있어 지난 밤은 그 어떤 악몽보다도 더 무서운 시간이었다. 얼굴에 꼬여드는 벌레들에다, 멀리서 들려오는 맹수의 울음소리까지.
게다가 새벽나절에는 거대한 몬스터들마저 이 주변을 어슬렁댔다.
발린이 오기 전까지는 삶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으니 그 고충은 굳이 말 안 해도 느낄 수 있었다.
“적당히 쉬었으면 이제 내려가도록 하지.”
“예, 예.”
불과 하룻밤만에 완전히 달라진 태도.
역시 이런 놈들을 제압하는 덴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게 가장 잘 통하는 방법이었다.
왈패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가던 발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작의 병사들을 만났다.
“무, 무슨! 도련님!”
“끄흐으윽...”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괜찮으십니까?!”
놀란 병사들이 루퍼스를 부축하는 뒤로, 발린은 천천히 따라내려왔다.
열아홉 명은 그대로 솔다인 남작에게 안내되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의례나 격식은 완전 생략!
소식을 들은 솔다인 남작은 마을 입구에서 모두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정말이로구나! 루퍼스야! 틀림없는 루퍼스라고!! ”
일행을 확인한 남작의 두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꼴이 말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전원 생환!
남작은 입을 찢어질 듯 크게 벌리며 기뻐했다.
“으하하하!! 내 아들이 살아 돌아왔구나! 아이고, 이 녀석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레이안 님께서 우릴 도우셨어!”
속을 무던히 썩이긴 해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다.
소식을 들은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걱정을 했던지.
불과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 남작의 안색은 급격히 나빠져 있었다. 몇 시간만 더 지났다면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변할 뻔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누구지? ”
한참 기뻐하던 남작의 시선이 발린에게로 향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멀쩡한 모습에 관심이 동한 듯 했다.
옆에 있던 시종이 즉시 말을 받았다.
“아, 시종 라덴의 아들 발린입니다. 약초를 캐다가 도련님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
“그래...? 그렇다면 자네가 우리 아들 녀석의 은인이로군!”
짧게 중얼거린 남작이 말에서 내려 다가왔다.
예를 갖추는 발린에게 남작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고맙네!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어. 내 후히 사례하도록 하지. ”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하하. ”
‘사, 사례?! ‘
꾀죄죄한 몰골로 서 있던 루퍼스의 눈이 홱 돌아갔다.
자신들을 이 꼴로 만든 게 발린이거늘, 벌은 받지 않을망정 사례금을 받아?
루퍼스의 입장에서 보면 절로 이가 갈리는 일이었다.
허나 오늘 일에 대해선 절대 발설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그걸 어기면 몸 안에 깃든 금제가 단숨에 목숨을 앗아가고 말 것이다.
금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눈을 희번득대는 것밖에 없었다.
“우선 이건 내 마음의 표시일세! 받아두게. ”
허리춤을 뒤진 남작이 금화가 든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대략적인 액수를 파악한 발린은 살며시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금화 여섯 개, 이 정도면 몇 달은 아무것도 안 해도 편히 살 수 있을만큼 많은 돈이었다.
“감사히 받아두겠습니다.”
“아, 그리고. 보아하니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돌아서는 발린의 등 뒤로 남작의 말이 이어졌다.
“혹시 그럴 의향이 있다면, 내 자네에게 검이나 마법을 배울 기회를 주고 싶은데, 어떤가? ”
“검술..이랑 마법입니까?”
머뭇거리는 발린을 향해 남작은 피식 웃었다.
“보아하니 꽤나 흥미가 있는 모양이군. 하기야 소질이 있다면 단숨에 귀족 직위에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니까 말이야. ”
“아, 예에.”
발린의 목적은 남작이 말한 것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개인적인 출세와 세계의 구원 간의 차이였으니까.
조만간 연락을 취할 테니, 그 때 한 번 소질을 검사하도록 하지. ”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없는.. ”
“내 아들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이 정도도 못해줘서야 어쩌겠나! 아무 걱정 마시게. ”
무어라 반박할 새도 없이 말을 돌리는 솔다인 남작.
멍하니 서 있던 발린은 애꿎은 돌멩이만 차야 했다.
‘ 나한테 마법을 가르친다고? 하하. ’
전생의 자신을 스승으로 둔 거나 마찬가지인 지금.
발린을 가르치려면 전설상의 드래곤 정도는 데려와야 구색이라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솔다인 남작이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미안하지만 괜찮다고 해야겠다. 마음씀씀이는 고맙지만, 그러느니 그냥 나 혼자 수련하는 게 몇 배는 더 고효율이야. ’
뒤돌아걷던 발린은 문득 자신이 한 가지 사실을 빼먹은 것을 깨달았다.
솔디안 남작은 마법과 검술 중 소질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였지, 마법을 콕 집어 가르쳐주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둘 중 무엇을 배울지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정할 문제.
그렇게 본다면 이건 뜻밖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확실히 체계적인 검술 스승이 있다면 눈에 띄는 성취가 있을 테지.’
지금까지 발린이 생각한 검술 수련계획은 극히 단순했다. 애시당초 검술의 필요성을 얼마 전에 자각한 만큼, 체계적인 계획이 나올 리 없었다.
기존의 계획은 이랬다. 전생에서 봐 왔던 수많은 대검호들의 싸움방식.
그것들의 장점을 조합하여 강력한 검법을 만들어낸 뒤, 이를 통해 검술의 성취를 이룬다.
처음엔 마법처럼 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막상 실제로 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단순한 몸놀림인 줄 알았던 움직임들.
그것들 모두가 깊은 이치를 담고 있었다.
아무리 발린이 천재라 할지라도.
단순히 곁눈질로 엿본 것만으론 금방 한계가 드러날 만큼.
그것들을 소화시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단순 흉내만으론 불가능.
그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필요했다.
“ 체력적인 면에서도 상승을 기대할 수 있겠고, 검술을 배움으로써 여러모로 응용도 할 수 있을 거야. ”
반쯤 결정을 내린 발린은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 안에서는 밀리아가 애타게 발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끼익 -
“ 누, 누구..아. 발린 오빠. ”
초조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어젯밤 솔다인 남작이 전 영지민을 소집한 이후 계속 이 상태였다.
보나마나 숲으로 들어간 발린과 라덴을 계속해서 걱정했을 터.
발린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루퍼스...님과 다른 아이들은 찾았으니까. ”
“찾았어?! 그럼 더 이상 숲에 안 들어가도 되는 거야? ”
“그럼, 물론이지. ”
울먹이는 밀리아 앞에서 발린은 허허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렇게 밀리아를 진정시킨 발린은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풀었다.
“오빠, 그 돈은 무슨? ”
“아하, 루퍼스 님을 찾은 게 나라서 남작님께서 보상금을 주셨어. ”
“포상금? 얼마? ”
돈 냄새를 맡자마자 밀리아의 안에 있던 살림꾼 기질이 발동했다.
순식간에 몇 배는 날쌔진 그녀.
어차피 숨길 것도 아니었으니 발린은 순순히 주머니를 빼앗겨 주었다.
“그, 금화가..하나. 둘...우와..금화 여섯 개! 6골드! 6골드나 받은 거야? ”
“그런가 보구나. ”
“와아아! 오빠! 정말 좋아해!! 오늘 저녁은 푸짐하게 차릴 수 있겠다!! ”
“쓸 생각부터 하냐. 살림을 튼실하게 하려면 그래선 안 되지.”
핀잔을 날리면서도 발린의 입꼬리는 위로 올라가 있었다.
회귀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소소한 행복들.
여기에 만족하고 있어선 안 되는 걸 앎에도.
그 유혹이 너무 강했다.
‘ 뭐,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는 발린.
레벤이 알았다면 길길이 날뛰었을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과거로 돌아온 건 레벤이 아니라 자신.
그럼 자신이 하는 일에 딴죽을 걸어선 안 되는 게 맞는 거다.
"그러는 오빠는 귀한 약초고 뭐고 모조리 헐값에 팔고 있잖아! 오늘은 기쁜 날이니 쓰는 거라구."
"그래그래, 알았다."
발린은 따지고 드는 밀리아에게 허허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라덴도 문을 열고 들어왔다.
루퍼스를 찾은 남작이 수하들에게 이틀 간의 휴가를 내준 것이다.
발린 일가의 행복은 그야말로 최고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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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