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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오다.
“역시...! ”
발린은 탄성과 함께 마나를 손 안에 모았다.
이대로 계속 마나를 불어넣으며 천천히 목걸이의 구조를 분석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바로 다음 순간 브로치의 반응이 사그라들었다.
‘이런?’
이건 아닌가 하는 낭패감이 발린의 얼굴 위로 스쳐지나갔다.
그 때였다.
삐잉!
검은 보석이 빛을 내며 어떤 네모난 창틀을 띄웠다.
직사각형의 창, 그 안엔 익숙한 글자가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 이건...? ”
발린은 눈을 가늘게 뜨며 글자를 읽어내려갔다.
한 번, 두 번.
몇 번이고 그것을 확인하던 발린의 표정이 차차 바뀌어갔다.
“ 이건...나의 능력을 모아 표시한 것인가. ”
이름과 나이, 성별 등의 간단한 정보 아래로 여러 가지 상태창이 엿보인다.
마침 시간도 있겠다, 발린은 그것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갔다.
이름 : 발린
나이 : 15
성별 : 남
클래스 : 견습 약초꾼.
[일반 능력]
[등급 : 노말]
[레벨 : 1]
[제목 : 약초 채집]
[내용 : 발견한 약초를 채집할 수 있습니다.]
- 오늘 채집한 약초
종류 : 0
숫자 : 0
[일반 능력]
[등급 : 노말]
[레벨 : 1]
[제목 : 탄탄한 기본]
[내용 : 육체적인 수련을 통해 체력이 붙었습니다.]
[일반 능력]
[등급 : 노말]
[레벨 : 3]
[제목 : 마나 흡수]
[내용 : 마나를 받아들여 몸 안에 자연스레 축적합니다.]
[고유 능력]
[등급 : 에픽]
[레벨 : 1]
[제목 : 고결한 영혼]
[내용 : 당신은 진리를 깨달은 고결한 영혼입니다. 현혹,매혹,유혹,환상 등의 효과를 가진 모든 것에 대해 저항력을 갖습니다.]
“허...!”
네모난 창은 거기서 끝이 났다. 지금 가진 게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보여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
방금 과거로 돌아왔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막상 그 모든 능력을 잃어버렸다 생각하니 드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생각이 그 쪽으로 흘러가자 왠지 모르게 화가 치솟았다.
땅의 맥을 뒤틀고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천재지변의 능력.
손짓 한 번으로 산처럼 거대한 마나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권능.
이 모든 것을 과거에 두고 왔다고 생각하니 참으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역시 힘에 대한 욕망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군.'
힘에 대한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깨달음은 검사의 것이다.
모든 것을 버려야만이 그 빈 자리에 새로운 검을, 자신만의 검을 채워넣을 수 있기 때문.
허나 마법사는 다르다. 무한히 많은 지식이야말로 마법사들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원천이었다.
여하간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만약 힘을 가져온다면, 그 반대급부로 멸망의 미래도 똑같이 가져와야 할 테니 말이다.
손을 툭툭 털며 욕심을 없앤 발린은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네모난 창에 올라온 글귀를 곱씹어 보았다.
‘보아하니 등급은 능력 자체의 가치를, 레벨은 그 능력의 숙련도를 나타내는 것이군.’
마나 흡수의 레벨이 3인 걸 보면, 그 능력은 회귀 전에 만들어진 몸의 영향을 받은 듯했다.
‘고유 능력은 이 목걸이의 힘을 쓴 나만이 가진 특별한 힘일 테고.’
새삼 이 목걸이가 얼마나 값진 아티팩트인지 느껴졌다.
세계를 과거로 되돌리는 것도 모자라, 개인의 능력 수치화. 거기다 고유의 능력 부여까지.
“괜히 레벤 대신관이 그렇게 소중히 여긴 게 아니었군.”
연구 좀 하게 달라 해도 주신의 성물이라며 내놓지 않던 모습.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한 때의 추억이었다.
“뭐, 좋아. 당신의 기대대로 움직여 주지!”
누군가를 향해 독백한 발린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 기억하는 대로의 마나 흡입을 시작했다.
“흐읍!!!"
숨을 들이마시자 몸 안에 모여 있던 마나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름을 잇기 위해서 새 마나를 밖에서 흡입하니 금방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 느낌이 계속되던 도중, 한순간 커다란 충만감이 온 몸을 가득 채웠다.
마나가 충분히 찼다는 뜻. 이를 확인한 발린은 곧바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가득 찬 마나를 온 몸에 고르게 퍼뜨린 다음 아랫배 쪽으로 모았다.
일반적으로 마법사들은 서클을 만들 때 심장에 마나를 모은다.
심장 주변에 마나원이 한 개가 덮어씌워지면 1서클, 그 상태에서 쓸 수 있는 마법을 1클래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건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의 얘기. 발린은 심장 대신 아랫배에 마나를 모았다.
아랫배의 빈 곳에 안착한 마나는 곧 둥근 구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 위로 몇 겹으로 얹힌 새 마나가 궤도를 따라 빙빙 돌았다.
그 수는 심장과 아랫배에 각각 하나. 총 두 개의 마나 서클이 지금까지의 성과였다.
“ 흐읍!! ”
마나가 안착한 걸 확인한 발린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스팟 전체의 공기가 일렁거렸다.
마나를 한껏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는 새로운 흡입!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압력을 못 버티고 그대로 몸이 터져나갔을 것이다.
허나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전무후무한 대현자였다.
“ 하아! ”
짧은 기합과 함께 새로 들어온 마나도 있어야 할 곳으로 향했다.
흐름에 따라 움직인 그것들이 자리를 잡은 곳은 각각 심장 아래의 두 곳과 머리의 중심.
이 다섯 곳이 마나 서클을 만들 수 있는 모든 부위였다.
다섯 부위에 전부 마나를 받아들인 다음은 집중의 시간.
발린은 세심하게 공을 들여 서클의 모양을 다듬어 갔다.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서클들은 완벽한 원형으로 형태를 갖췄다.
이제 이 서클에 마나를 모으고, 각 속성의 마나를 각인시키면 그 때부터 마법사의 길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원래대로라면 수 년 후 자연스레 깨우쳐야 하는 것이다. 전생의 발린이 그랬듯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하루빨리 능력을 키워 마왕군의 마수를 벗겨내야 했다.
“ 으음. ”
눈꺼풀을 올린 발린의 눈에서 한 줄기 섬광이 빛났다.
마나 스팟에서 얻은 마나를 이용해 다섯 개의 서클을 만드는 데 성공! 거기다 마나 스팟에서 얻은 마나를 완전히 소화시키기까지 했다.
첫 날의 성과치고는 굉장한 소득이었다.
눈을 빛내던 발린의 머릿속으로 새로운 사실이 떠올랐다. 마치 잊어버렸던 것을 기억하든 자연스러운 느낌이었지만, 정작 그 지식의 내용은 난생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 클래스 : 마법사를 획득하셨습니다.
- 일반 능력 : [멀티 서클]을 획득하셨습니다.
- 고유 능력 : [무영창]을 획득하셨습니다.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였다는 말에 발린은 곧장 목걸이를 확인했다.
신상명세의 클래스 란에 추가된 마법사란 세 글자.
그리고 그 아래로 난 스킬 가운데 멀티 서클과 무영창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일반 능력]
[등급 : 레전드]
[레벨 : 1(MAX)]
[제목 : 멀티 서클]
[내용 : 몸에 여러 개의 서클을 만들어 여러 속성의 마법들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현재 서클 수 : 5 ( MAX : 5 ) ]
- 각 서클별 속성 / 숙련도
머리 : 번개 / 1클래스 입문자.
심장 : 불 / 1클래스 입문자.
상단전 : 물 / 1클래스 입문자.
중단전 : 바람 / 1클래스 입문자.
하단전 : 대지 / 1클래스 입문자.
* 공용 마법은 모든 서클에서 전부 사용 가능합니다.
[고유 능력]
[등급 : 레전드]
[제목 : 무영창]
[레벨 : 1(MAX : 1)]
[내용 : 강대한 영혼의 깨달음 덕에 습득한 모든 마법을 캐스팅과 시동어 없이 발사할 수 있습니다.]
[효과 : 사용가능한 모든 마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즉시 시전 가능합니다.]
“ ...음? ”
창을 읽어내려가던 발린의 얼굴이 움찔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자신은 단지 마법을 쓰겠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
아직 시험해보진 않았지만 그게 맞다면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었다.
‘고유 능력이란 말이 있는 걸 보면, 이 능력은 아티팩트의 힘으로 과거로 돌아온 덕분에 생긴 것이군.’
누구나 방법만 알면 만들 수 있는 멀티 서클과 달리, 무영창은 발린 본인만이 얻을 수 있는 능력.
스스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약간 껄끄러운 느낌도 있었으나, 마왕군을 막기 위해선 그런 걸 구분할 때가 아니었다
창을 전부 읽은 발린은 미련없이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있었다. 당장 조금 더 마나 수련을 한다 해도 얻을 것도 없으니 이만 돌아가는 게 맞았다.
더 오래 있으면 밤이 될 테고, 그러면 밀리아나 아버지가 자기를 찾아 숲으로 올 수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관심을 끄는 건 이 편에서 사양이었다.
충분한 힘을 갖추기 전에는 철저히 비밀을 유지해야지, 그렇지 않았다간 마왕군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럼 가볼까.”
자리에서 일어선 발린은 몸에서 느껴지는 퀴퀴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몸에 배어 있던 노폐물이 비어져 나온 모양이다.
“집에 가서 목욕물부터 길어야겠군.”
투덜대던 발린의 신형이 속도를 올리자,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마나를 사용하기 전에도 빠르게 움직이던 몸인데, 마나를 사용하니 그 속도는 거의 날랜 토끼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가기를 십여 분 후, 집이 보이는 근처의 언덕에 내려선 발린은 해가 거의 사라진 걸 확인했다.
아슬아슬하게 늦진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창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막 집으로 들어가려던 발린의 시선에 언덕 저 편에서 움직이는 십수 명의 기척이 잡혔다.
혹여 고블린의 무리일까 싶어 눈에 힘을 주자, 그들 모두가 사람인 게 보였다.
‘저 녀석들은?’
발린은 천천히 그들의 면모를 살폈다. 아무렇게나 입은 옷과 제각기 든 연장, 어디가나 있는 흔한 왈패들이었다.
산에 올라가나 싶었지만 수군대면서도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분명 이 편에 볼일이 있는 게 맞는 듯 했다.
‘보아하니 마을 쪽 건달패들 같은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침착하게 놈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 사이에서 눈에 확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부티나는 옷에 살찐 체형, 건장하고 근육이 탄탄한 다른 왈패들과는 꽤나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다른 녀석들 사이에서 당당히 움직이고, 심지어 그 녀석들을 통솔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뚱보 녀석. 기억을 뒤지던 발린의 눈 앞에 어떤 이미지 한 개가 스쳐지나갔다.
아주 어릴 적. 전생의 유년기에서 봤던 이미지. 순간 발린은 저 뚱보 남자애의 정체를 눈치챘다.
“아, 저 녀석이 루퍼스로군.”
어렸을 적의 기억은 한평생을 보내며 거의 잊어버렸었다. 그렇기에 저 녀석이 누군지 기억해내는게 약간 늦었다.
저기 오는 저 뚱보가 바로 저기 모인 왈패들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솔다인 남작의 외동아들인 루퍼스 솔다인이었다.
루퍼스의 정체를 알아채자 드는 것은 왠지 모를 아련함, 행복한 과거를 생각하니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떠오른 건 활활 타오르는 궁금증이다, 남작의 아들이나 되는 녀석이 당최 무슨 일로 이 밤에 여기까지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밤의 숲은 낮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아무리 왈패 무리를 이끌고 있다 해도 안심할 수 없는 장소다.
그럼에도 이 시간에 들어왔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 잠깐 생각하던 발린의 귓가로 왈패들의 목소리가 다가왔다.
“헉, 헉. 그냥 내일 다시 오는 게 어떻습니까? 해도 지고 하는데...”
“안 돼. 녀석은 감히 나와의 약속을 빼먹었다. 죄는 바로바로 물어야 잊어버리지 않지.”
왈패들의 불평에 루퍼스는 헉헉거리면서도 뜻을 꺾지 않았다.
풀숲 속에 있던 발린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녀석들, 어째 자기한테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당최 무엇 때문인지 도저히 기억나지가 없었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면 마법으로 처리하면 되고.’
결심을 굳힌 발린은 지체없이 몸을 일으켰다.
부스럭 소리와 함께 수풀 위로 나타나는 신형.
그 쪽으로 눈을 돌린 왈패 무리가 씨익 웃으며 양옆으로 물러섰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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