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293화 (292/335)

293화 중원 속 고구려 (6)

연개소문의 본대 좌우로 요하군을 통솔하는 양만춘과 말갈군 3만을 거느리고 온 동북면 책성부 연타인이 말을 타고 섰다.

“거란의 위상을 보여라!”

“중원의 비옥한 땅을 우리가 차지하라!”

이세민 사후, 성을 되찾아 대하씨 부락 연맹의 수장이 된 대하아진충과 그의 처남 손만영이 이끄는 무리도 거란 부족을 통일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고구려 진영으로 참전하여 1만 1천의 거란군을 일으켰다.

동돌궐에서도 3천의 기병이 오랜 협력 관계인 양만춘의 요하군에 합류했고, 고구려에 포섭된 흉노, 해 족속 2천여 기가 더해졌다.

요동과 요서의 장정뿐 아니라 말갈군에 이어 범상치 않은 이민족 군사들이 속속들이 모이자 연개소문이 대도를 뽑아 들어 외쳤다.

“도성의 군사들이 선봉에 서거라! 요동과 동북면, 이민족 무리에게 후방의 군사들이라 기강이 서지 않았다는 소문이 거짓임을 너희가 스스로 증명해 보여라!”

연개소문의 으름장에 평양 본대에 속하는 소부손, 생해, 뇌음신, 연남생이 각각 1만 5천의 군사를 맡아 임유관의 정문을 열고 나가 발해만을 따라 중원으로 진군했다.

“나를 따르라!”

남은 본대를 이끄는 연개소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양만춘의 요하군과 동북면의 말갈군, 대하아진충의 거란군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와아아아!

고구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정군이 관문의 정문을 열어 중원으로 직접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임유관을 점령한 남산이 녀석 덕분에 흥안령 산맥을 넘거나 보급로가 끊어질 만큼 긴 고원을 넘을 필요가 없어졌구만.’

몸소 임유관을 지나면서 느끼는 연개소문의 생각은 그러했다.

북방 민족이 중원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산맥을 통하여 만리장성과 함께 거용관 등 난공불락의 주요 관문들을 넘어야 했으나, 요동과 요서의 주인인 고구려는 동쪽 끝 임유관만 뚫어 내면 중원에 무혈로 진입할 수 있었다.

과거 이를 막고자 임유관을 빼앗긴 당군은 2, 3년간은 임유관에서 유주로 향하는 길목에 함정이나 목책을 설치하기도 했으나, 막상 고구려군이 넘어오지 않자 오히려 대병을 거느린 당군이 임유관 수복 진군에 방해가 되면서 철거하는 수고가 더해졌다.

그 덕분에 이날 연개소문과 고구려군은 임유관의 성문을 열고 진군을 방해받지 않은 채 무사히 중원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해안가를 따라 쭉 내려가면 평지나 다름이 없어서 전연, 후연, 북연이 근거지로 삼은 유주까지는 겨우 반나절 진군이면 충분했다.

‘광개토태왕의 군사가 그린 옛 지도와 다른 것이 거의 없구나.’

광개토태왕 때 후연을 끝장냈을 당시 고구려 포로들을 해방하고 고려 마을이 세워진 곳이 바로 장성 이남, 유주였다. 평양의 태학에는 당시의 지도와 지형이 남아 있었기에 이를 숙지한 연개소문은 지도를 바라보며 평지나 다름없는 임유관 길을 따라 내려갔다.

“멈춰라.”

그렇게 100리쯤 진군할 무렵 마침 대응하고자 나타난 당군과 남쪽의 발해만을 배경으로 대치했다.

“개금, 이놈! 중원에 코빼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연유가 7년을 비축하여 이리 많은 군사를 한꺼번에 몰기 위함이었느냐?”

산동으로 회군하느냐, 유주에 남아 지키느냐 갈팡질팡한 유인궤는 유심례의 말을 듣고 연개소문과의 대치를 택했다. 산동으로 회군한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으며 자칫 위에서 내려오는 연개소문과 아래에서 올라오는 연남산에게 포위를 당할 위험이 있었고, 운이 나쁘면 장안의 소환령으로 싸움다운 싸움조차 해 보지 못하고 산동을 빼앗긴 책임으로 목을 내놓을 수 있다는 유심례의 충고가 이런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

“그대가 정도(正道)를 걷다가 지방으로 좌천만 거듭했다는 유인궤로구나.”

“오호, 내 이름을 아는구나! 개금아. 나도 제 임금을 시해했다는 오랑캐의 두목은 아느니라.”

콧수염을 비비며 말하는 유인궤의 도발에 소부손과 연남생이 각기 철퇴와 장검을 뽑았다.

“저 서토의 오랑캐 놈이 감히!”

“소장이 직접 저놈의 목을 치겠습니다! 아버님.”

연개소문이 묵직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서라. 당군의 진형에 빈틈이 보이질 않으니 기병만으로 돌진했다간 큰 낭패를 볼 게다.”

임유관에서 출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양 본대의 실력을 요동과 동북면, 이민족들 앞에서 보여 주리라고 다짐한 연개소문이었으나 곧 단념했다.

연개소문은 군사를 통제하는 것이 엄정하고 철두철미한 유인궤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역으로 해안가에 상륙하여 당의 수군 기지를 기습할 수 있었음에도 연수영이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가 중원의 노련한 장수 유인궤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소정방이 안심하고 먼 서돌궐 원정에 나섰던 것도 경륜 있는 유인궤의 존재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군사는 10년을 하루같이 훈련에 힘써 온 정병이요, 그대의 군사는 그대가 수년간 직접 훈련한 1할을 제외하고는 모두 훈련이 부족한 군사이니, 승패는 정해진 바나 다름이 없다. 이만 투항을 하는 것이 어떠한가?”

“닥쳐라! 개금아. 막상 네가 우리와 대치하더니 겁을 먹은 게 아니냐?”

연개소문을 능멸하는 유인궤가 믿는 구석이란 당의 국력이었다. 연개소문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나 양군의 수는 엇비슷했다. 전선이 길어 중원의 정병이 서돌궐 전선과 북방 전선으로 크게 양분돼 있다고는 해도 중원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는 산동과 화북 일대의 징병은 고구려가 7년간 준비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병력을 단숨에 상회하고도 남았다.

거기다 고구려군은 장마가 막 끝나 더위에 지쳐 있을 터이니, 훈련과 상관없이 전술 운행만으로도 우위를 점칠 수 있었다. 기선만 제압한다면 임유관까지 치고 올라가는 것도 가능했다.

‘연개소문을 막고 장안의 원군과 더불어 위아래로 치고 내려가면 그 아들까지 진압할 수가 있다!’

유주를 지키기로 결정한 유인궤는 산동을 지키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벗어나 연개소문 부자를 꺾어 군공을 세우기로 마음을 정해 두었다.

“왜 덤비지 않는 게냐? 고구려의 선봉은 너희가 아니었느냐? 말갈 놈들이나 거란 놈, 아니면 양만춘이가 선봉에 서는 게냐?”

유인궤는 계속해서 연개소문과 고구려군의 유인을 시도했다. 여기까지 야심 차게 준비해 왔다면 호전적인 고구려의 장수들이 알아서 본색을 드러낼 것이 뻔함을 짐작했다.

“이 서토의 오랑캐 놈, 내 아버님을 모욕한 네놈의 말을 더 이상은 못 듣겠다!”

“전진하라! 공격하라!”

아니나 다를까,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이 고연수와 함께 1만 5천의 선봉대를 이끌고 덤벼들었다.

천하의 연개소문조차 막 중원에 입장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자 온 혈기왕성한 젊은 아들과 장수의 판단을 막을 수 없던 것이다.

“수레를 내세워라!”

“밧줄을 잡아당겨라!”

고구려군의 돌격에 유인궤와 유심례가 명을 내렸다.

당군이 미리 준비한 수레를 내세우며 방벽을 세우고 밧줄을 당기며 돌격해 오는 고구려 기병의 다리를 정조준 했다.

연남생군이 밧줄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쓰러지자 당의 노수가 쇠뇌를 쏘기 시작했고, 보병들은 장창을 내지르며 쓰러진 고구려 기병을 노렸다.

“아군을 엄호하라!”

“중리위대대형을 지켜라!”

대오를 가다듬은 소부손과 생해가 연남생의 퇴각을 도왔고, 뒤따라오는 양만춘의 보병들이 물러서는 고구려군을 무사히 후방으로 인도해 냈다.

“개금아! 치사하게 네 아들만 보내고 너는 오지 않는 것이냐?”

연남생과 고연수가 움직여 피해를 주었다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고구려군이 유인책에 걸려들지 않자 유인궤가 연개소문을 더욱 자극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연개소문이 입을 열었다.

“이놈, 내 아들과 수하들 앞에서 날 욕보인 것을 승리로 갚아 주마.”

“그게 무슨 소리냐? 개금아.”

“네 뒤를 보거라.”

유인궤가 연개소문이 가리키는 검지를 따라 뒤를 보자 첨벙첨벙 하며 거대한 함성이 울렸다.

와아아아!

유주의 외항이자 발해만이 들어오는 천진(天津) 포구에 고구려 깃발이 가득 드리웠다.

연수영의 수군이 발해만에서 유주의 중심으로 흐르는 강을 따라 진입해 들어왔다.

고구려군이 후방에서 치고 올라오는 광경에 유인궤는 산동을 직접 공격한 군사라 오인하였고, 좌우를 번갈아 보는 당군의 진영이 서서히 무너질 때 연개소문이 비로소 총공격을 명했다.

“돌격하라!”

* * *

“아들들만 아니었으면 난 이곳에 올 의도가 전혀 없었소! 날 이대로 보내 주든가, 아니면 여기서 목을 베시구려!”

이세민의 옆에서 군주의 언행을 기록하는 관원, 즉 사관으로 일하여 이세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저수량은 초당사대가(初唐四大家)로서 서예가이자 명필가이자 또 당대의 재상이기도 했다.

수나라가 패망하고 당의 건국 과정을 목도하였으니, 왕조에 대한 충성도가 남다를 것이다. 이세민과 더불어 천하를 경영하면서 당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이고.

그러나 세월의 무상, 권력의 무상이라고 말년에 정도(正道)를 지키려다 귀양지나 다름없는 유배지에서 씁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측천무후는 그런 저수량의 죽음으로도 부족했는지, 그의 관작을 삭탈하고 그의 두 아들인 저언포(褚彦甫)와 저언충(褚彦沖)을 저수량이 죽은 애주로 유배시켰다가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등선 선생을 고이 보내 드리고는 싶지만, 속 좁은 황후 무씨가 이를 곱게 보겠습니까? 필경 나와 얼굴을 마주한 것을 빌미로 삼아 등선 선생과 두 아드님을 해하고자 할 것입니다.”

“무소의가 속이 좁든, 작든, 고구려 사람이 판단할 일이 아니외다!”

“호오, 황후가 아니라 무소의라 부르시는군요?”

내 지적에 저수량이 말실수한 것을 깨달았는지 일순 버벅거렸다.

“그, 그것도 내정간섭이외다!”

“내정간섭은 삼한의 일에 함부로 간섭하려다 죽은 이세민이 한 게 아닙니까?”

내가 언성을 높이며 죽은 당나라 황제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자 저수량이 당황했고 삐죽 나온 입은 쏙 들어갔다. 이곳 중원 어디에도 당 태종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비난할 수 있는 인물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면 당나라 내부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내 정보력에 감탄한 것이거나.

그런 기세로 내가 말을 이었다.

“대명궁 함원전 앞에 나아가 관건을 벗고 이마에 피가 나도록 머리를 조아려 새 황후 책봉에 반대한 이가 누굽니까? 바로 여기 계신 등선 선생이 아닙니까? 이세민의 첩실 궁인 무조가 욕심이 가득하여 숙비를 제거한 데다, 이윽고 왕 황후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꿰찼으니, 이를 반대하신 등선 선생께서 여기저기 지방을 전전하며 좌천을 당하신 것이고요. 하나, 이세민의 첩실이 가진 등선 선생에 대한 원한이 크니 선생께서 이 세상을 뜨시면 자식들의 안위가 편안하겠습니까?”

저수량이 황후라 부르지 않으니 나는 오히려 더 쉽게 궁인이니 이세민의 첩을 강조하며 황후 무씨를 격하할 수 있었다.

이세민이 연개소문을 가리켜 임금을 시해한 역적이라 격하하니, 작금의 당나라 황제의 아내를 선황의 첩이라 불러도 되는 일이 아닌가. 남의 나라 도덕을 지적하고 싶었다면, 자기 나라 도덕부터 돌아보는 것이 순서이니 말이다.

애초에 저수량도 그런 유교적인 도덕으로 말미암아 무조의 황후 책봉을 목숨 걸고 반대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니 반론을 제기할 것도 없을 것이다.

“마, 막리지의 말이 옳습니다! 아버님.”

“무소의는 황후가 되기 위하여 아직 핏덩이인 제 딸자식을 죽이면서까지 왕 황후와 숙비 소씨를 제거하였습니다! 그런 악랄한 여인이 우릴 죽이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저수량의 두 아들 저언포와 저언충은 내 편이었다.

무조가 황후가 되기 위하여 이치와의 사이에서 낳은 친딸인 안정공주를 죽여, 그 죄를 왕 황후에게 덮어씌운 희대의 악랄한 짓을 알려 주자 저수량의 그 두 아들은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 굳이 말을 해 주지 않아도 아는 듯했다.

그러니 이리 제 부친까지 몰래 내게 데려온 것이 아닌가. 학식이 높은 가문이니 머리도 잘 돌아갈 것이고.

-지금의 기거란 옛날의 좌우사(左右史)에 해당하며, 임금의 언사는 물론 임금의 장단점을 기록하여 이를 경계로 삼습니다. 저는 제왕이 자신의 기록을 직접 봤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기록을 직접 보겠다는 이세민을 향해, 저수량은 할 말을 돌려 말하지 않았다. 이세민이 잘못된 일을 했을 때에도 기록할 것이냐는 물음에 저수량은 역시 그럴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그런 아버지의 올곧음을 보고 자란 자식들이 정치적인 희생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또 내부적으로는 이치가 제 형제인 오왕 이각을 죽인 일도 크게 작용했을 거고, 고구려에 투항한 강하왕 이도종이 호의호식하며 좋은 대우를 받았다는 것도 고구려 투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나는 저수량의 두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등선 선생께서는 젊은 시절 설거 세력에 의탁하였다가 그들이 멸하여 사라질 때 당나라에 귀순하셨다 들었습니다. 이세민이 현무문에서 형제들을 무참히 살육한 이후에는 황제를 가까이서 모시는 지기거사(知起居事)를 겸임하셨다지요? 이처럼 대세를 따르는 분이 선생이시니, 대막리지께서 군사를 몰아 중원을 점령하신다면 그 대세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한 번 따른 대세를 두 번, 세 번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세민을 향한 충심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도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님!”

“제발 가문과 저희를 살려 주십시오!”

또 자식 이길 부모란 없질 않은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