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292화 (291/335)

292화 중원 속 고구려 (5)

“성문을 닫아라!”

“뭣 하느냐? 어서 닫아라!”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모두 닫아라!”

장안의 외성은 동서남북의 성벽에 각각 3개씩 총 12개의 성문이 있으나, 전날 야심한 시각을 기점으로 횃불을 든 군졸들이 오간 뒤로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성 내부의 방(坊)도 평소 통금보다 더 엄격한 비상경계 태세로 전환하여 주작대로(朱雀大路)의 동시(東市)와 서시(西市)라는 상업 전용 구역이 일시적으로 폐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딱 사흘만 닫겠다.”

궁에서 서시(西市)로 나온 장손무기가 직접 이르길, 황제에게 큰 죄를 지은 오왕 이각의 무리가 도성에 숨어 있어 그들을 진압하고자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당의 대대적인 서돌궐 토벌과 토번의 토욕혼 침공으로 서쪽으로 가는 교역로가 끊겼으니, 비단길의 시발점이자 종점 역할을 해 온 장안의 서시(西市)가 일시적으로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또 하나 큰 이유는 고구려의 산동반도 기습 침공으로 대운하 이용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으므로 대명궁 조정에서는 어떻게든 이를 숨기고자 무리수를 감행한 것이기도 했다.

비단길 교역이 불투명해진 데다 대운하 이용에 큰 차질을 빚는다면 야심 차게 정복 정책을 펼친 황제의 위상이 크게 실추될 것은 불 보듯 뻔했기에, 이치는 이에 대해 최소한의 대책을 마련하고자 황후 무미랑과 장손무기 등 측근 신하들과의 상의 끝에 이 같은 조치를 단행했다.

한편 외부 소식을 속히 접한 삼한, 왜, 토번의 상인들은 큰 전쟁 분위기 속에 이미 이레 전부터 당나라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있었고,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에서 등거리 장사를 해 온 서역의 상인들도 당이 서돌궐을 치고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의 긴장이 고조될 무렵에는 아예 아라비아와 당나라 사이의 사막 국가와 유목민 부족들을 중계 지대로 삼아 대신 교역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토욕혼의 하원군왕(河源郡王)이 량주를 거쳐 장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합니다! 황제 폐하.”

토욕혼의 오지야발륵두가한(烏地也拔勒豆可汗) 모용낙갈발이 당으로 도주해 왔다는 장손무기의 보고에 이치가 미간을 찌푸렸다.

“적이 쳐들어왔으면 하원군왕(河源郡王)은 제 궁에서 나라나 잘 지킬 생각을 해야지, 뭣 하러 또 우리한테 신변을 의탁하러 온답니까? 지난번에도 그렇고, 신하들과 백성들이 보기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

이세민이 몸져눕기 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으나 7년이 지나도 변한 게 하나 없었다. 역사를 잊으며 그저 당 황실이 제공해 주는 재물과 계집에 푹 빠진 토욕혼의 지배층들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당의 신하들이 일제히 황제의 말에 동조했고, 이치가 핏줄이 보일 만큼 오른손을 세게 쥐었다.

“내 서돌궐을 평정하는 대로 저 골칫거리 토번부터 쓸어버릴 것이오!”

이를 간 이치가 패기 넘치게 그리 외쳤으나 장손무기와 우지녕을 비롯한 원로대신들은 차분하게 긴급한 상황부터 직시시켰다.

“지금 고구려의 무리가 산동에 기습적으로 상륙하여 동쪽의 해안가와 몇 개의 주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장성을 기준으로 서에서 동에 이르는 주변 오랑캐들의 강역이 이만 리요, 고구려, 토번, 돌궐과 모두 전쟁을 치를 수는 없사옵니다! 황제 폐하.”

천하의 이세민조차 천하 통일 후 주변의 이민족들을 하나둘 각개격파 하며 복속시켰다. 이를 이세민의 곁에서 줄곧 지켜봐 온 원로대신들은 한순간에 주변 강국인 고구려, 돌궐, 토번과 연이어 전쟁을 치르는 것이 무리임을 지적했다.

“좌위대장군 총산도행군총관 의정(義貞) 정지절과 그 휘하 소정방, 소사업, 임아상, 왕문도에게 급히 회군하라 명하십시오! 황제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태위. 짐이 서돌궐을 평정하라고 직접 명한 용장들에게 회군하라니?!”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연남산이가 작정하고 중원을 넘보고 있사옵니다. 그뿐 아니라 토번이 다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중원의 용사들이 먼 서쪽으로 가 있으면 우리의 군세가 반으로 나뉜 것이니 어찌 승부를 장담하겠습니까?”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원로대신 장손무기의 간언이었으나 말을 아낀 무미랑이 고개를 저었고, 슬그머니 황후의 눈치를 살핀 허경종이 장손무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태위께서는 생각도 짧으시구려.”

“예부상서는 무슨 말을 그리하시오?”

“서돌궐에 배치한 우리 군사들을 불러들이면 서쪽의 돌궐과 동쪽의 돌궐이 힘을 합하여 장성을 넘볼 것이 뻔한데 괜히 우리 군사들을 불러들였다간 사방 이만 리 강역에서 오랑캐들이 동시에 우릴 넘볼 것이 아닙니까?”

“서돌궐의 가한 아사나하로는 가한이 되고자 많은 피를 보았으니 주위에 적이 많소. 아사하나하로의 적들을 지원하는 것만으로 얼마는 버틸 것이외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 두 분께서 같은 계책을 내시어 시행한 것이거늘, 태위께서는 참으로 불충을 하라 명하십니다!”

허경종이 언성을 높이자 어전 내 당의 신하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한쪽은 허경종의 편이었고, 다른 한쪽은 장손무기의 편이 아니라 황제와 황후에게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중립주의자들이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이치와 무미랑의 눈을 번갈아 본 장손무기는 조정에서 우스운 모양새가 되자 한발 물러서려고 했다. 무미랑이 황후가 된 뒤 새 황후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상당히 난처해진 것이 최근 장손무기의 현황이었다.

그러던 그때 기사(騎射)에 뛰어나고 재주와 지혜가 가득한 젊은 무장이 용기 있게 나섰다.

“탁고대신이신 광록대부 저수량을 다시 불러들이시어 간언을 들어 보시옵소서! 황제 폐하.”

“그대는 누구인가? 어전에서 보기 힘든 젊은 얼굴인데?”

이치가 묻자 또래인 젊은 무장이 군례를 갖추며 읍했다.

“신은 무공 이적의 손자인 이경업이라 합니다.”

“호오, 영국공의 손자라! 내 그렇지 않아도 젊어서부터 그대 조부를 따라 정벌에 나서 용맹을 떨쳤다는 소식을 들었다네. 이거 내 또래이기도 하고 참 반갑구만.”

이치가 어좌에서 직접 내려가 반갑게 맞이하려 했으나 무미랑이 소리치며 막았다.

“무례하다! 젊은 무인 따위가 감히 황제 폐하의 인사에 관여하다니!”

이경업이 무미랑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광록대부 저수량은 당의 개국공신이자 선황의 둘도 없는 충신입니다. 태종께서 무리하게 하신 고구려 원정을 위징과 더불어 끝까지 반대하였고, 태종께서도 결국 그가 옳았음을 친히 밝히셨습니다. 그런 분의 간언을 듣지 않고서 어찌 이 난국을 타파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방자하구나! 황제 폐하의 인사에 관여하는 것도 모자라 선황의 공과 사를 네까짓 게 감히 평하려 드느냐?”

언성을 높이는 무미랑과 이경업의 대치에 대명궁 조정은 외치(外治)뿐만 아니라 내치(內治)의 일에서도 극도의 혼란함으로 가득해졌다.

* * *

“저곳이 대운하입니다. 수양제가 순행길에 올라 용선을 타고 운하를 따라 내려가니 노 젓는 사공만 8만이요, 꼬리를 문 배의 행렬이 2백 리에 달하니 셀 수 없이 많은 말 탄 기병이 운하 양옆의 길을 따라 호위하며 행진하고 형형색색의 깃발과 병사들의 갑주가 눈부신 태양 아래 휘황찬란하게 빛났으니 전조에서 그런 사치한 때도 있었습지요.”

운주와 조주 사이 당나라의 한가운데라 할 수 있는 지역인 복주에 진입할 무렵, 목숨을 구걸하며 내게 투항한 뒤 길 안내자를 자처하는 손인사가 내 곁에서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중국에서 직접 경험을 했다지만, 역시 관광은 현지인의 안내만 한 것이 없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저리 친절히 역사까지 곁들여 설명해 주질 않는가.

‘현지인 입장에서야 만리장성급 규모 공사라 그런지 대운하 관련해서 나올 이야기도 많겠지.’

중국을 대표하는 백하, 황하, 회수, 양자강, 전당강 5대 강의 지류를 연결하고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강바닥을 파내어 이룬 대운하는 고대라는 시대를 감안했을 때 엄청난 난이도의 공사로 단순 노역에만 100만 단위의 노동력이 동원된 무지막지한 규모였다.

이렇게 그 결과의 일부만을 놓고 보아도 한눈에 출혈이 큰 공사였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공사로 팔다리를 잃거나 공사에서 희생된 시체가 만리장성 축조 뺨칠 정도로 도처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고 하였으니 화려한 대운하 뒤에 셀 수 없는 많은 핏값이 들어간 것이었다.

‘무리한 공사였다고는 하지만 이걸 완공할 수밖에 없는 과업이기도 한 것이 저 대운하라는 건가.’

그러나 공사 이후 중국에 상상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기도 한 대운하를 보며 중립적인 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거리 차이기도 한 남북 간의 경제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해준 데다, 바다로부터 대륙 중심부로 들어가는 수로를 확 트이게 하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중국과의 해상 교류 또한 성행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뿐 아니라 대륙의 중심을 가르는 운하의 물은 관개용수로도 이용되어 식량 생산에 활용되었고, 이외에도 대량의 물자 운반과 건조한 군선을 신속하게 바다로 이동시키는 등 군사적인 역할 또한 성실히 해냈다.

당이 고구려와 백제를 수로로 침공하여 국운을 흔들어 버린 것도 다 수나라 시기에 완공한 대운하가 기초가 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운하 없이 10만, 20만 병력을 태운 그 무수한 배들을 어떻게 한반도로 보냈겠는가.

대운하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황하와 회수를 이어 황하와 백하, 끝으로 양자강과 전당강을 연결하여 중국 대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운하로로 말미암아 부유한 상인들이 장안, 낙양, 유주, 탁군, 강남 지방 등 중국 전체를 아우르는 물자를 훨씬 빠르고 안전하게 운반하며 군사와 교통, 경제까지 모두 챙기게 만든 결정적인 역사적 과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대운하를 끊어 내지 않고서야 압도적인 물량을 자랑하는 중국의 왕조를 상대로 이긴다는 가망은 없었다.

“손인사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주군.”

“강을 따라 강남 지방에서 탁군으로 가는 당선 70여 척과 군수품을 노획하였습니다.”

손인사의 말을 따라 별동대를 이끌고 달려간 설인귀와 걸걸중상이 운주를 거쳐 북의 탁군으로 가는 군수품과 군량을 내게 가져왔다. 당의 보급을 이리 대놓고 훔쳤으니 탁군과 화북 지방에서 유인궤의 당군과 한창 치열한 전투를 치를 연개소문에게 희소식이었다.

이처럼 산동반도와 인근 몇몇 주만 제대로 장악해도 중국의 만 리 길을 연결한 물자의 9할 이상을 끊어 낼 수 있었다. 수당대의 운하는 낙양 동편 조주와 복주의 운하로 영제거(永濟渠)를 통해 고구려와 북방 전선이라 할 수 있는 탁군에 물자와 군사를 수송하였고, 영제거(永濟渠)가 황하강과 만나는 낙양 동쪽 지점에서 다시 운하로 통제거(通濟渠)를 통해 양자강 이남 강남 지방으로 연결되는데 이 두 운하는 모두 산동반도만 점령하면 언제든 끊어 내는 게 가능한 접경에 위치해 있었다.

‘두 운하로가 끊어지면 물자를 수레에 실어 하나하나 운반해야 하는데 선박으로 옮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노동력과 시간이 소요될 테지. 폭우라도 만나면 큰 차질을 빚게 될 수도 있는 거고. 또 소식이 전해지는 것에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니 첩보력에서도 우리가 우위를 점하는 셈이 아닌가.’

중원 정복의 시작과 끝은 대운하 점령. 7년 전 삼한을 일통하고 첫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내 시선은 줄곧 대운하 점령에 가 있었다.

“막리지!”

고개를 돌리자 특별 임무를 지시한 옥소가 중원 사람들을 데리고 내게 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장손무기와 더불어 무미랑 황후 책봉에 결사반대한 여파로 이치로부터 버림을 받은 이세민의 충신도 하나 섞여 있었다.

연남생이 고구려를 배신하고, 큰아들에게 크게 당한 견훤이 자신이 건국한 후백제를 배신하고, 산동의 산적인 팽월이 항우를 배신했던 것처럼 새 시대에는 늘 결정적인 배반이 있었다.

“이 멍청이 아들들아! 내가 황제께 버림받아 좌천되었다 한들 날 오랑캐들의 소굴로 보내면 어찌하느냐? 앞으로 내 선황을 어찌 보라고.”

위에 오른 고구려의 깃발과 옆에 있는 두 아들의 면상을 번갈아 보며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친 노인은 크게 욕심을 부릴 연배도 아니었고, 아무래도 배신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어서 오십시오, 등선(登善) 선생.”

그런 그를 내가 직접 정중히 모셨다.

이 큰 땅을 다스리는 걸 나 혼자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중원의 재상들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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