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중원 속 고구려 (3)
등주성을 점령한 걸사비우, 옥소, 걸걸중상, 설인귀가 수만의 기병을 몰고 중원의 평야 지대를 달리고 또 달려 본대에 합류했다.
“막리지! 저희가 왔습니다요!”
“명하신 대로 등주를 무사히 점령하였습니다!”
“이곳까지 오시는 중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막리지.”
“등주를 점령한 뒤 말들 목만 축이게 해 주고 이리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주군.”
이정기의 원정로를 따라 무주공산과도 같은 산동반도의 내주, 청주, 치주를 점령하고 화북 지방과 산동 반도를 가르는 황하강을 향해 운주로 진군하는 길에 조랑말을 일고여덟 마리씩 달고 달려오는 삼기군과 합류한 것이다.
본대가 보기 조합에 보급병이나 위생병이 갖추어진 만큼 진군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으니, 이리 빨리 삼기군과 만나는 것은 반가울 새 없이 이미 계획된 일이었지만, 첫 선발대의 등주성 점령 성공을 몸소 확인하는 것이었기에 기분은 좋았다.
와아아아!
그저 내 기분뿐 아니라 대륙의 반도를 최초로 상륙해 점령한 고구려 기마대의 등장에 사기가 충천한 것은 덤이고 말이다.
“무탈한 너희를 보니 반갑구나. 다들 수고했다. 고구려의 자랑인 삼기의 첫 상륙이 중원을 정벌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결정될 것이라 내 삼한에서 수도 없이 일렀거늘 너희가 참으로 내 말뜻을 잘 이해해 주어 성공적으로 해내었다. 장하다. 내 당장이라도 삼기의 용사, 한 사람 한 사람 크게 치하하고 싶으나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우리는 이 기세로 황하강이 발해만으로 빠져나가는 운주를 점령하고 대운하를 끊어 낸 뒤, 제 형제를 죽이고 제 아비의 후궁을 탐낸 천하의 불효자 이치의 죄를 물으러 대명궁을 점령할 것이다.”
“막리지께서 가시는 곳이 어디라도 따라가겠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막리지.”
“따라가겠습니다! 막리지.”
“따라가겠습니다! 막리지.”
삼기의 노고를 치하하고, 대운하를 끊고 당나라 황궁을 점령하겠다는 내 선포에 이번에는 장정들뿐 아니라 여러 제장도 우렁차게 대답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니, 자기 아버지의 여자를 탐냈다고?
-아버지가 아끼는 형제도 죽였다지. 형제를 해하지 말라는 연유 때문에 보위에 앉아 있으면서 말이야.
-쯧쯧. 형제를 죽인 것도 그렇고,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불효자 자식에 더러운 오랑캐의 수장이로구만.
-그런 불효막심한 더러운 놈이 천하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니, 이거 완전 세상이 말세가 아닌가? 우리가 그런 놈들한테 조공하고 머리를 숙여야 해?
비록 유교적인 사상이 조선 시대만은 못하다고는 하지만,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의 여인을 탐내어 황후로 삼은 이치의 부도덕함은 지난 7년간 삼한을 교육하기도 전인 삼한인들의 머릿속에서조차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들이었다.
“이치는 선황의 아홉째로, 온순하여 형제들을 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조로 말미암아 태자가 되어 보위에 올랐으나, 선황과의 약조를 지키기는커녕 간신 장손무기의 감언이설에 속아 제 형인 오왕 이각을 죽였고, 죄 없는 왕 황후를 폐하여 선황의 후궁을 제 아내로 삼아 범하였으니 이런 불손하고 극악무도한 패륜아를 어찌 천하의 황제로 인정하겠는가? 이 당나라가 정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유교를 가르치는 나라가 맞는가!”
물론 고구려나 삼한뿐 아니라 중원 태생으로 당나라 황족이자 현 점령지인 산동반도에서 중원의 백성들을 향해 목청껏 외치고 있는 강하왕 이도종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점령지 곳곳에서 외치는 이도종의 연설을 옆에서 팔짱 끼고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중원을 정벌할 명분이야 역사가 만들어 주니, 굳이 내가 수고나 노력을 들여 만들 필요도 없구나.’
전장에서 도덕과 윤리를 들먹이며 특정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때마침 그 역할을 수행할 사람이 있었고 또 솔직히 충분히 비난받아도 마땅한 일이긴 했다.
무인 기질의 둘째 이태나, 삼남으로 비록 후궁 태생이지만 전 왕조 수 황실의 핏줄을 이어받은 오왕 이각을 황제로 삼을 수 있었음에도 이세민은 차후 벌어질 분란을 막고자 이치를 태자로 삼은 것인데, 그 바람을 산산조각 내 버렸으니 욕먹을 만한 일이 아닌가.
거기다 미래 조선의 사대부들조차 자기 아버지와 동침한 기생들과 놀아나면 얼굴을 내밀고 다닐 수 없거늘, 하물며 자기 아버지의 첩을 취하기 위해 조강지처를 버렸다면 그것만큼 황망하고 부끄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형이 사망했을 경우 남동생이 형수를 취하는 형사취수제가 고구려나, 부여, 북방 민족들의 풍습으로 널려 있고, 일부 북방 유목민들이 형제뿐 아니라 아버지가 사망할 시 아버지의 모든 처첩을 자신의 처첩으로 승계하는 수계혼이 있다고는 하지만 당나라는 유교를 관학으로 삼으며 과거제를 정비한, 나름대로 체계나 율령, 도덕이 갖추어진 왕조였다.
당 황실이 유목 민족인 선비족의 혈통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자신들이 관학으로 삼은 유교를 들먹거리면 얼마든지 비난할 구실을 만들 수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 유교 사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민족이 한민족이었으니 너희도 좀 당해 봐야지.’
긍정적인 것은 물론 부정적인 것까지, 현대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향을 다 미치는 유교의 고장에서 도덕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원의 민심을 이반시키기 위해서라면 황실의 일일지라도 더더욱 예외가 될 순 없었다.
그런 확신 덕분인지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장안의 황제가 저리 부도덕하거늘, 우리가 어찌 고구려를 오랑캐라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북쪽의 오랑캐들도 제 부모의 첩들을 범하려 조강지처를 버리는 일은 없거늘, 하물며 우리 황제께서 오랑캐들도 안 하는 그런 황망한 짓거리를 하다니!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으이. 우리 자식들이 이런 황망한 소릴 듣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세상에, 선황의 첩 때문에 조강지처를 그리 버리다니! 에고, 불쌍해라.”
당나라 황족 이도종이 지나가는 곳마다 떠들고 다니니, 중원의 백성들조차 얼굴을 가릴 만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먹히는데?’
산동 반도가 괜히 공자를 비롯한 사상가들의 본고장은 아니었다 보다.
사실 낯설게 느껴지는 중원의 땅을 점령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2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잠재적인 당나라의 병졸이자 인적 자원으로 위험이 될 사내들을 다 죽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런 식으로 당나라에 대한 충성도를 떨어뜨린 뒤 역으로 이치에 대항할 세력을 만드는 것이었다.
몰살을 하는 것이 가장 쉬운 결정이라도, 일이 잘못 흘러가면 자칫 온 대륙이 고구려에 대한 반감으로 맹렬히 저항해 부딪힐 수 있었다.
그저 약탈하는 것과는 비할 수 없는 엄청난 후폭풍이 따르는 짓이었다.
그러니 내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임유관에서 포로로 사로잡은 이도종을 오랜 시간 공들여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후자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이도종 본인도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변방에 머물며 집 지키는 개가 된 것에 상당히 불만을 품은 것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확인한 뒤였고.
-산동 반도에는 옛 제나라의 후예도 많고 부여,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에서 건너온 자들의 후손들도 많습니다. 산동반도에서 삼한으로 건너간 자들이 있다면, 반대로 삼한에서 건너온 자들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심지어 태학에서 산동반도와 제나라, 노나라에 대한 서적을 읽던 왕건위가 내게 그리 귀띔을 해 준 것도, 산동의 주민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여겨 몰살하지 않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실제로도 삼한에서 건너간 상인 출신들도 많았고, 백제나 신라와의 지속적인 교류로 삼한의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 산동 백성들 또한 생각보다 많았다.
조상이 삼한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잃었다고는 한들, 생계를 위해 삼한말을 잊지 않은 산동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도종을 저리 자유분방하게 두어도 괜찮습니까? 자칫 도주할지도 모르옵니다.”
“신라군이 배신할 수도 있사옵니다. 백가제해군과 신라군은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니 두 부대를 후방에 배치한 것이 옳은 결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삼기군과 합류하여 10만의 군세가 함께 서편으로 진군할 때, 검모잠과 설인귀가 거의 동시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설명했다.
“강하왕은 평양에서 오왕 이각이 장손무기의 고변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고, 내 아버지인 대막지리와 더불어 태왕 폐하의 앞에서 이치의 부도덕함을 지적하였거늘 감히 배신하겠습니까? 이미 장손무기가 이도종을 역적이라 칭하였으니 그가 산동에서 도주할 곳이란 없습니다. 신라군도 그들의 보급과 수송선을 우리가 관할하고 있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대아찬 김문영은 지난 백제 정벌부터 제가 오래 지켜본 자로 내 명을 거스를 배포가 없습니다. 신라군은 후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의 반은 태대사자의 수군에 합류할 것이고, 남은 반은 백가제해군과 남으로 진군하여 밀주, 기주, 서주를 점령할 것입니다.”
정확한 계획 속에 내 말을 들은 두 무장이 수긍하며 물러갔다.
* * *
“이게 무슨 말이요? 등주와 내주가 습격을 받았다?”
장안 대명궁에 당도한 산동의 소식에 이치가 발끈하듯 어좌에서 일어섰다.
즉위 후 고구려가 중국의 본토를 공격해 온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에 이치를 비롯하여 대명궁 조정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의 수군이 역습을 해 온 게 아니겠습니까?”
무미랑의 말에 이치의 고개가 돌아갔다.
“연개소문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거란 말이오? 황후.”
“고구려의 수군 대장은 연개소문의 누이로, 여장부라 하였습니다. 여인이라 비록 고구려 오랑캐의 다른 장수들과 같이 호전적이고 야만적이지는 않으나 우리 군사가 그리 자주 해안가를 공격했으니 저들 또한 공격해 온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 연개소문이 그랬던 것처럼 곧 돌아갈 것이니 염려할 일은 없으십니다, 황제 폐하.”
서돌궐 평정에 의견을 더한 무미랑은 동쪽 전선에 변고가 생겼다 한들, 축소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만들어 놓아야 했다. 서돌궐 평정으로 인하여 산동을 사수하는 소정방 사단이 서돌궐 전선으로 이동했고, 북방과 장안의 경계 태세가 강화되면서 역으로 산동반도의 경계가 느슨해졌으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을 해야 했다.
산동은 바다라는 지형적인 요소가 있었고, 고구려 수군이 단 한 번도 직접 상륙해 공격해 온 적이 없었기에, 산동과 유주 전선을 맡은 각기 좌우효위낭장 유인원과 유인궤에게 위임한 것이었다.
“선황 때 연개소문이 잠시 바다를 건너온 적이 있었으나 그저 반격이었을 뿐, 곧 돌아갔다는 걸 내 기억하고 있소. 아니 그렇소? 태위.”
“그렇사옵니다, 황제 폐하.”
“태위의 고견은 어떠하오?”
“신의 생각은…….”
장손무기가 이치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무미랑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장손무기가 왕 황후를 폐위시키는 데 격렬히 반대한 저수량의 편에 서면서 현 황후가 된 무미랑과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고, 정치적으로 대립까지 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울지경덕 장군에게 물어보십시오.”
장손무기는 이세민을 따라 고구려 원정에 종군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실패의 책임과 황후와의 정치적 대립을 피하고 싶었던 장손무기는 낙양을 지키는 노장에게 이를 떠넘겼다.
그러나 그렇게 며칠 흘러가는 사이, 고구려군은 당군의 큰 저항 없이 서편으로 진군을 계속하였고 사흘 뒤 고구려군이 등주성과 내주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대명궁에 전해졌다.
“당장 대신들을 소집하라!”
새벽에 일어나 급히 어전회의를 소집한 이치는 토번의 거병 소식을 함께 들으며 큰 근심에 빠졌다.
* * *
“저기 긴 강이 보이옵니다! 물이 누런 것이 황하인 것 같사옵니다, 막리지.”
눈을 크게 뜨고 말하는 걸걸중상의 외침에 나는 지평선 너머를 향해 달려갔다.
중국의 삼국시대 촉나라의 수도 성도에서부터 마초가 나고 자란 서북 양주, 위로는 막북을 포함하는 북방의 고비 사막 그리고 내가 거쳐 온 산동반도와 발해만에 유입되는 만리 강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본디 중국의 정치적·문화적 중심지인 중원을 의미하는 황하 유역의 동쪽이었다.
그 강을 지나는 중원의 무수한 선박이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