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동단의 천책상장 (3)
“짐이 선황의 훌륭한 치세를 이어받아 내실을 다지고 민심을 회복하며 국고를 채웠으나, 어찌 매해 짐을 보겠다는 외국의 사절단이 이뿐이란 말이오? 내 듣자 하니, 고구려의 동맹제 때는 고구려보다 우리 당과 가까운 서역국들의 사신이 더 많이 찾는다 들었소만.”
이치는 불쾌한 표정으로 즉위 초와 비교해 갈수록 작아지는 외국 사절단의 규모와 고구려를 찾는 외국 사절단의 규모를 서로 비교하며 신료들을 타박했다. 국력이 강성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다고 일컬어진 정관의 치의 혜택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 때문에 황제의 자격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던 터라, 해가 바뀔수록 달라지는 외국 사절단의 분위기에 부담감을 느꼈다.
-죄인을 사사(賜死)하라.
정적을 제거하려는 장손무기의 거짓 보고를 받아들여 선황의 3남이자 선황이 가장 총애하던 형제 오왕(吳王) 이각(李恪)을 처형한 것도 다 불안해진 황권을 수습하기 위함이었다. 형제들을 죽이지 않을 이유로 선황의 선택을 받아 다음 보위에 오를 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자격지심이 강한 이치는 황권에 목을 매었다.
“고구려, 돌궐, 토번, 이들 세 오랑캐가 유목민들과 합심하여 비단길을 둘러싼 교역을 독점하려 하니 우리 상인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들었습니다.”
“지금 태위는 황제 폐하의 권위가 그들 네 오랑캐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씀이시오?”
“그,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황후 폐하.”
이치의 물음에 답을 하려다 부랴부랴 어전에 자리한 무미랑의 시비조에 고개를 숙인 장손무기는 당나라 건국 1등 공신이자 현 황제의 외숙으로 환갑을 넘긴 고령인 나이임에도 선황의 후궁에게 몸을 낮추는 황당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대체 어찌 돌아가려고 이런 황망한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한미한 가문의 무사학의 차녀가, 선황의 후궁이 오늘의 황후라니!’
차마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기 민망한 일에 장손무기와 저수량을 비롯한 선황대의 원로 대신들은 이 사태에 극도로 부정적이었다.
황후 왕씨와 후궁인 숙비 소씨의 사이에 암투가 있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 불과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황후 왕씨와 소 숙비가 모두 축출되어 죽었다. 그 중심에는 현 당나라 황후에 오른 무미랑이 있었다.
황궁의 작은 분쟁이라고만 생각하고 안일했던 것이 엄청난 후폭풍으로 이어지며, 개국 공신들이 긴장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까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토번은 남방 몽사로 하여 견제를 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내치뿐 아니라 최근에는 외치에도 과감히 개입하려는 황후 무씨의 권세가 날이 갈수록 더해 갔다.
“오호, 황후께서 계책을 주시겠소? 몽사의 왕이라면 우리 당의 수령대장군 장낙진(張樂進)의 사위이며, 짐이 얼마 전 외주(巍州) 자사(刺史)로 봉하였지.”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선황께서 토번과 인척을 맺었다고는 하나, 그들의 방자함이 날로 더해 가 토욕혼을 넘보았으니 응당 남방의 몽사를 지원하여 토번을 견제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 반드시 그리해야겠소.”
이치가 맞장구를 쳤고, 일부 젊은 관료들이 황후의 계책을 듣고 동조하듯 수긍하였으나 장손무기와 저수량 같은 원로 대신들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계책이 그저 선황의 유지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거야 이미 선황께서 남겨 주신 계책이 아닙니까?”
“당장 시급한 일은 토번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반응에 황후가 불편해하자 화가 난 이치가 두 개국 공신을 다그쳤다.
“노신들께서는 참으로 딱딱하시구려. 선황의 유지를 황후가 다시금 조정에 상기하고자 하는 기특한 마음인 것을, 그걸 몰라 주다니! 고구려와 돌궐에 대한 방책이나 말씀하시구려.”
정작 가장 큰 난제라 할 수 있는 고구려와 서쪽과 동쪽으로 크게 영향력을 떨치는 양 돌궐에 대한 문제는 대신들이 의견을 내야 했다.
“임유관은 중원의 관문으로 쉽사리 넘기 어려우니 좌위중랑장 소정방에게 보기 1만을, 안서 4진의 이민족 기병 1만을 소사업에게 내주어 요서를 치게 하십시오. 요서에 군영을 설치하고 이민족들을 회유한다면 임유관으로 가는 물자를 끊어 낼 수 있을 겁니다.”
태위 장손무기가 임유관 수복을 위한 계책으로 요서 공략을 내걸었다. 이세민 사후 7년간 수십 차례에 걸쳐 임유관을 수복하려 하였으나 뚫지 못했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지키는 이는 과거 안시 성주인 양만춘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때 나선 이는 또다시 황후 무씨였다.
“고구려의 성 바깥과 촌락에 불을 놓고 돌아오는 것이 오늘날 당군의 실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북과 북방의 돌궐이 있는 한 우리 군사는 온전히 고구려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하면 황후껜 무슨 계책이 있단 말입니까?”
저수량이 묻자 이치와 당의 대신들이 관심을 보였고, 무미랑이 묵묵히 말했다.
“고구려는 강성하고 또 부유하니, 고구려를 먼저 친다면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돌궐을 복속시키면 고구려가 비단길에서 얻는 이문은 없어집니다. 그들의 국력이 어디에서 오늘에 이르렀겠습니까?”
당 황실의 모든 재물을 수중에 넣은 무미랑은 고구려의 국력이 비단길과 해외 교역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알아냈다.
비단길은 그저 정치·경제·문화를 이어 준 교통로의 총칭이 아니라, 천하 모든 왕국이 원할 만큼 천문학적인 자금의 거래가 오가는 교역로였다.
“고구려가 돌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요동에서 저 북방의 돌궐로 들어간 양곡만 해도 수만의 기병이 한 해를 버틸 양이 아니겠습니까?”
“고구려가 물자뿐 아니라 군사마저 지원한다면 돌궐을 복속시키는 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장손무기와 저수량이 연이어 무미랑의 계책에 비관하자 이치가 동쪽 끝 나라에서 온 서신을 펼쳐 보였다.
“이 글을 보시구려. 신라의 왕이 짐에게 도움을 구하였소이다. 신라를 잘만 이용한다면, 고구려의 군사적인 지원을 막고 돌궐을 복속시킬 수 있지 않겠소?”
이치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정복 정책 구상에는 북방과 서방뿐 아니라 동방의 고구려와 신라를 포함한 삼한 전체가 들어가 있었다.
* * *
“대고구려의 막리지께서 신라왕을 국원성에서 보시잡니다.”
비담이 북에서 내려온 지령을 전하자 고뇌하는 김춘추 대신 태자 책봉 건으로 연일 조정과 화백회의를 오간 법민이 대신 소리쳤다.
“이보시오, 비담 공! 우리 신라가 비록 고구려를 큰 나라로 섬기고 있다고는 하나, 폐하께서는 신국의 군주이며 사사롭게는 고구려 막리지의 장인이 되시오. 어느 나라 옛 법이 일국의 군주이자 제 장인을 이리 오라 저리 오라 할 수 있단 말이오?”
“법민 원자께서 태자가 되지 못하시어 제게 앙금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원래의 제 왕위를 빼앗겼습니다. 신국의 다음 보위에 오를 태자 자리야 제가 좀 간섭을 해도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뭐요?!”
“원자.”
법민이 대전에서 언성을 높이자 김춘추가 조심스레 자제시켰고, 비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신라를 다스리는 자리는 원래 내 자리였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 말한 비담이 분개하는 법민과 어좌에 앉아 조용히 노려보는 김춘추를 번갈아 보았다.
두 해 전 진덕여왕이 죽고 김춘추와 알천으로 나뉜 신라 왕위 쟁탈전에서 중간에 왕위를 가로채려 한 비담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알천이 노령과 백제를 멸한 김춘추의 군공에 쉽사리 굴복하면서 신라 귀족들을 회유할 정략을 꾸밀 틈조차 없었고, 비담은 어찌 됐건 신라의 반역자였다. 한번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힌 이상 화백회의와 백성의 지지를 얻기 힘들었다.
남은 유일한 기회는 서라벌에 들어선 고구려 군부의 지지였으나, 연남산의 최종 선택은 신라 왕실과의 내전을 피하자는 쪽이었다. 눈치 100단 김춘추 스스로가 연남산과 고구려의 심기를 거스르는 정책과 외교를 일찌감치 거두었기에 오늘날 신라 사직이 보존되고 있던 것이다.
-만일 신라왕이 고구려의 손을 놓고 다시 서국의 손을 잡으려 한다면 비담 공이 다음 보위를 가져가시구려.
당시 비담은 토사구팽이 된 처지에 불만으로 가득했으나, 연남산의 그 말 한마디에 여태 서라벌에 남아 김춘추 부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관직과 이름을 빌리는 것도 서슴지 않으며 신라왕에 오르기 위한 야심을 놓지 못했다.
“내 묻는 말에나 답하시오!”
그런 비담의 개입에 태자 책봉이 번번이 무산된 법민이 윽박질렀다.
“고구려의 막리지는 삼한의 모든 주권을 주관하며 삼한에서 벌어지는 일은 태왕조차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차후 고구려의 모든 군사가 막리지 앞에 가 있게 되거늘, 신라왕께서는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비담은 연남산의 충실한 개로서 김춘추 부자를 압박했다.
“혹, 화백회의에 납시지 못했던 지난번처럼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피하실 수는 없습니다. 옥체가 온전하지 못한 신국의 왕은 제가 인정할 수 없으니까요.”
그들 부자가 하루라도 빨리 고구려를 배신하고 당과 접촉하도록 일부러라도 일을 만들 기세였다.
* * *
“고구려의 막리지시다. 성문을 열어라!”
걸걸중상의 외침에 과거 신주 군주 김흠순이 철통같이 지켰던 이성산성의 성문이 열렸다. 삼기의 정예 부대를 거느린 설인귀와 걸걸중상조차 수일째 맹공을 퍼부어도 넘지 못했던 요새가 이리 쉽게 열리는 광경에, 막상 직접 성문을 열라고 외친 걸걸중상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리 쉬이 이 산성의 성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진작에 작은 막리지의 병법을 배울 걸 그랬습니다.”
“녀석, 지금도 늦지 않았느니라.”
“그게 정말입니까? 작은 막리지, 아고, 이제는 진짜 막리지라 불러야죠. 헤헤.”
해맑게 웃는 청년 걸걸중상은 지난 몇 해, 한강 이남에 배치된 신라군의 무장 해제를 도맡으면서 반드시 전쟁만이 영토를 넓히는 방법이 아님을 깨달은 눈치다.
백제와 가야를 온전히 고구려에 복속시킨 이상 서라벌 중앙 정부의 영향력에서 멀어진 이성산성과 강남 일대 신라 진영의 보급은 순전히 고구려에 달려 있었다. 고구려를 통하지 않으면 중앙의 보급은커녕, 외국 상인들의 신라 입국 자체가 불가하니 신라 상인들이 교역을 하고 서라벌 왕궁에 납품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허락이 필요했다.
새 화폐가 보급되고 상업이 활기를 띤 삼한은 내가 만든 경제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자본의 물결에 한강 이남은 신라의 성이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이미 고구려의 경제로 잠식되어 만일 신라와 전쟁이 벌어지면 하루아침에 성의 주인이 바뀔 정도였다.
“국원성으로 가자.”
나는 걸걸중상을 앞세워 이성산성을 거쳐 국원성으로 향했다.
그간 공들여 정비한 도로를 거치면 국원성까지는 하룻길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한편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는 나만이 아니었다.
설인귀, 옥소, 걸사비우, 연근행 등 삼기의 장들이 말을 움직이며 그들이 맡은 삼한 지역 내에서 스무 살 이상이 되어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장정들의 호패를 계수한 장부를 내게 가져왔다.
흑치상지, 흥수, 부여융, 부여풍, 충상, 상영 등 백제에 속한 무리가 4만 4천9백이었다.
검모잠, 전내진, 비라부 등 가야에 속한 무리가 그들 머릿수대로 계수하니 2만 9천5백이었다.
칠중하, 아리수 유역과 모을동비홀, 중원 지방, 죽령 일대와 고구려 고지 등에 속한 무리가 3만 7천1백이었다.
삼한의 치안을 관리하는 삼기군 2만 7천, 연근행의 말갈군 3천까지.
호패를 통한 인구조사는 말끔했다. 당장 군사를 일으켜도 14만에 이르는 대병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지표로 보여 주니까.
국원성에 이르러 여정을 풀 무렵, 내 꼭두각시를 자처하는 환갑의 비담이 조령 고개를 넘어 얼굴을 보였다.
“신라의 왕께서 왔나이다, 막리지.”
나는 김춘추가 대당 정벌에 얼마나 협조를 하는지, 고구려에 어떠한 마음을 품고 있는지, 그 진심을 엿볼 생각이다.
* * *
“진정 서토를 정벌하겠다 하였더냐?”
선도해를 통해 막내아들의 의중을 들은 연개소문은 고구려와 삼한에서 대대적으로 실시된 인구조사 결과를 보며 서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