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부흥의 전환 (3)
김문영이 묵직한 갑주를 입고 내가 있는 웅진 군영으로 들었다.
“절 부르셨습니까?”
“신라로 돌아가신다고요?”
“예에. 우리 폐하께서 급히 군사를 돌리라 명하셨습니다.”
이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신라 조정도 슬슬 눈치를 챈 모양이다. 사비와 웅진을 고구려에 내어 준 상황에서 백강 이남 지역에 대해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도 물 건너갔으니, 신라군을 더는 백제 땅에 주둔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신라군의 목적은 김춘추 부자가 연회장에서 의자왕 부자에게 복수한 시점에서 마무리된 셈이다.
“신라의 여주가 아니라, 제 장인이신 국상께서 명하신 게 아니고요?”
내 물음에 김문영은 뜨끔했는지 잠시 머뭇거렸고, 나는 그 기회를 살려 이런 사태를 대비해 미리 서라벌에서 진덕여왕에게 받아 둔 신라왕의 칙서를 내밀었다.
“신라의 여주는 이미 저와 얘기를 끝낸 것으로 압니다.”
깜짝 놀라며 칙서를 받아 읽은 김문영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이 칙서를 받는 신국의 장수가 있다면 누구든지 삼한도행군대총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나의 명과 같다 여기고 따르라. 불응할 시 대역죄를 물을 것이다.
이런 글귀가 적힌 진덕여왕의 칙서를 보았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만약을 대비해 서라벌에서 진덕여왕에게 칙서 하나 받아 두길 잘했군.’
나름 예우를 했다고는 하지만 신라인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는 김유신을 공산에서 매장한 나였다. 김품일 같은 이름 있는 무장도 흑치상지, 옥소, 걸사비우에 의해 국원성에서 전사하였고, 김유신의 살아 있는 동생 김흠순을 필두로 여러 노련한 신라 무장이 서라벌에 입성한 나를 곱게 볼 리가 없었다.
그 사정을 살짝 흘리니 진덕여왕이 안타까운 나머지 알아서 이런 칙서를 만들어 준 것이다. 내가 여기서 신라군을 회군하지 않게 하기 위해 쓸 줄은 까맣게도 몰랐겠지만, 나 역시 여기까지 참고 기다리길 잘했다.
“하나 소장은 폐하께 직접 명을 받고……!”
“신라 여주의 명을 받았다면 지금 장군께서 들고 계신 것과 같은 칙서든 교서든 받았을 게 아닙니까?”
“가, 가져오너라!”
당황한 김문영이 부랴부랴 소속 부하에게 시켜 서라벌에서 올라온 연통을 건네받았으나 표정은 그대로 어두웠다.
내가 직접 내용을 볼 것도 없이 임금의 조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껏 높아야 화백회의의 상대등이나 진골 귀족만이 될 수 있다는 자주색 공복인 5등급 내의 귀족으로부터 받은 것일 터다.
내게 신라군의 전작권을 넘겨준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부담감을 덜어 주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화백회의가 최선일 테니까.
“설마 장군께서 내게 거짓을 고한 것입니까?”
내가 일부러 정색하며 이르자 김문영이 억울한 표정으로 두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그, 그럴 리가요! 상대등께서 분명히 폐하의 명을 받아 제게 보낸 것이라 하였습니다, 믿어 주시구려. 여기 상대등께서 보내신 걸 읽어 보시고 내 말이 참인지 아닌지 가리십시오, 대총관.”
“이거, 장군께서 신라주(新羅主)의 이름을 걸고 거짓을 고했을 리는 없고.”
“그, 그렇사옵니다! 한사코 거짓이 아닙니다!”
거짓이 아니다? 당황하는 듯하면서도 나름 처세술을 부리는 김문영이었다. 기록에서야 그리 많이 나오지 않지만 김문영은 황산벌 전투로 인해 제때 도착하지 못하고 늦은 신라군을 책망하며 엄벌하고자 한 소정방에게 거의 죽을 뻔하기도 하였다.
-당장 처형을 물리지 않으면, 우리가 백제를 멸하고 고구려를 치기 전에 당나라와 먼저 결전을 벌이겠다!
김유신이 소정방의 면전에 큰 도끼를 들고 다가가 땅에 내리꽂으며 외친 분노의 선포는, 당에 사대하고 치욕스럽게 의존하기로 결심한 신라의 유일한 자존심 표출이었다.
김문영은 이후 평양성 전투에서 큰 공도 세우고, 당나라와의 전쟁에서도 크고 작은 군공을 세웠다. 신문왕의 공신 숙청 때도 살아남아 상대등에도 임명되었으니, 목숨이 오고 가는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며 출세란 출세는 다 누려 본 인사였다.
나는 심사숙고하고 말했다.
“서라벌에 파발을 보내어 장군의 그 말이 참인지 가려도 되겠습니까? 만일 거짓이라면 목을 거십시오. 삼기군이 서라벌까지 역을 만들어 두었으니 기마에 자신 있는 파발을 꾸려 보낸다면 닷새 안에 답신을 들고 내게 당도할 것입니다.”
삼국을 통일하는 동시에 곳곳에 역참을 꾸준히 설치하면서 천 년은 지나서야 체계가 잡힐 군사 통신 제도인 파발제가 이 땅에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전장과 인접한 곳은 말을 타고 전달하는 기발 제도로, 험준한 지형은 걸어가서 전달하는 보발 제도로 나누어 역을 통하여 지방에 첩보를 전한다. 기발은 20리마다 1참을 두었고 보발은 30리마다 1참을 두었다.
이런 역참과 파발제로 말미암아 먼 동북면의 군사를 삼한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송구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불과 5일 만에 거짓이 들킬 것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김문영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특유의 처세술 덕분인지 신라 조정과 화백회의가 진덕여왕을 불편한 정치적 문제에 끼어들게 할 리가 없다는 걸 안 것이다. 지체 높은 귀족들이 책임을 질 리는 없고, 김문영에게 그 죄를 묻는 수순으로 마무리할 것이 뻔하니 스스로 이리 머리를 숙이고 들어왔다.
“그 말은 내게 거짓을 고하였다는 것입니까?”
“소장은 그저 명을 받들어 이를 따르는 일개 장수일 뿐입니다. 춘추 공과 상대등께서 왕명이 있었다 하시면 있다고 믿는 처지란 말입니다.”
이번엔 솔직하게 말하니 조금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니 신문왕의 숙청 때도 그 환란을 피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지금은 그런 사정을 봐줄 때가 아니다.
“신라 여주의 명도 아니고, 그럼 저의 장인께서 내린 명이라 받아들여야겠군요.”
“소장이 보기로 백제 부흥은 일찍부터 단합이 되질 않으니, 이는 실패할 조짐입니다. 우리 신라군은 백제를 멸하는 데 이미 그 역할을 다하였으니 물러가도록 해 주십시오.”
김춘추의 이름이 재차 언급되자 말을 돌리는 김문영이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신라군이 빠지면 이때가 기회다 싶어 군사를 일으킬 무리가 나올 겁니다.”
“정 그리 염려가 되시면, 1만의 군사는 대총관께 맡기겠습니다. 대신, 소장이 지휘하는 남은 1만은 서라벌의 치안을 지키도록 보내 주십시오.”
어림없는 소리다. 어중이떠중이 군사였다면야 1만이 아니라 2만이라도 전부 돌려보내 주었겠으나, 신라 최정예가 포함된 정병 2만은 누구 하나라도 서라벌로 돌아가면 신라 조정과 비담 사이의 완충제 역할을 하는 온사문과 고문을 치려 할 것이다.
‘지금쯤이면 김춘추가 신라 곳곳을 에워싼 고구려 깃발을 보았을 것이다.’
작금의 서라벌에는 내가 무리하게 소환한 김흠순도 있었고, 온사문이 보내온 서신에 따르면 고구려 군부 세력이 서라벌을 드나드는 것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는 신라 귀족과 화랑 무리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여기서 질 좋은 군마와 함께 무장한 1만에 달하는 신라 정병이 서라벌에 더해진다면, 삼한일통이 아니라 반란에 반란으로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연개소문은 평양으로 돌아갔고 내가 지닌 군사만으로는 백제 지역만을 안정화하기에도 벅차기에, 신라 지역에서 내전이 벌어지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지고 만다.
스르릉. 결심을 마친 나는 비도를 뽑아 김문영의 목을 겨누었다.
“……!”
“……!”
“……!”
그 광경에 고구려 측 무장과 신라 측 무장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신라 장수 김문영은 왕명을 거짓으로 고하며 제 임금을 농락하고 더럽혔다! 누구든지 그를 위해 칼을 든다면, 역적이 되느니라.”
그 외침에 김문영을 따르는 신라 무장들이 저마다 눈치를 보며 당황하기 시작했고, 마른침을 삼킨 김문영이 애걸했다.
“살려 주십시오! 내 분명히 잘못하였으나 그 사정이 있지를 않습니까?”
“그렇다면 화백회의가 결정하여 보낸 문서 그대로 내게 보이면 되거늘, 어찌 말을 더합니까? 신라 임금의 위에 서고자 함이 아닙니까?”
“아,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결단코 그런 마음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말실수, 말꼬리, 행동 하나하나로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정략이 판치는 이 시대였다. 항시 입조심하라는 구중궁궐의 주의만 하지는 못하겠으나, 마음만 먹는다면 이 정도 사안만으로도 나는 김문영의 목을 쳐 서라벌 저잣거리에 던지는 것이 가능했다.
“결백을 증명하고 싶소?”
“무, 물론이옵니다! 소장은 윗사람의 명을 들은 것밖에 잘못이 없사옵니다. 폐하의 위에 선다거나 폐하의 명을 결코 망령되게 이른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결백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장군께서는 휘하 부관을 데리고 서라벌로 가시오. 이 사정을 해명할 신라주(新羅主)의 칙서를 그 부관에게 받아오라 하시고 장군께서는 다시는 이 백제 땅에 발을 들일 생각을 하지 마시오.”
“예에? 하면 우리 군사는 어찌……?”
“어허! 신라 반적을 내 이 자리에서 참하리이까?”
눈을 돌린 나는 비도를 던지는 시늉을 하였고, 김문영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 * *
김문영이 떠난 뒤 남은 신라군을 재배치하여 삼기군과 삼한군에 마저 편성하였다. 신라군을 이끌 군 지휘자가 자리를 비운 이때를 노려 완벽히 우리 군사로 만들어 두어야 했다. 김춘추라면 틀림없이 다음 지휘관을 보내어 백제 땅에 주둔한 신라군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처음에는 고향 생각만 난다는 이들이 점차 우리 사투리를 따라 하고 비슷한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주군.”
“공차기 놀이를 백제에서는 농주(弄珠)라 부르고, 신라에서는 축국(蹴鞠)이라 하니 저마다 제 규칙이 옳다 하여 다투는 일도 있었으나 지금은 적당히 타협하여 군사들끼리 잘 놀고 있습니다, 대총관.”
“일러 주신 대로 일부러 고구려, 말갈, 백제, 신라, 가야로 나누지 않고 섞어 편을 짜니 협동심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작은 막리지.”
설인귀, 옥소, 걸걸중상이 하나의 부대로 융화되려는 신라군의 현황을 보고했다.
흔히 공산주의가 이 땅에 밀려올 때는 온갖 사상을 주입한다고 하지만, 광활한 벌판을 누빈 삼기군은 삼한 출신의 장정들에게 부와 자유를 주었다.
특히나 새 부대 편성 보상으로 일반 군졸들이 상상할 수 없는 금과, 은, 향신료 같은 값비싼 물건들을 백제를 멸한 보상에 이어 다시 받으며, 신라 병사 중 일등 공신이 받을 만한 보상을 보통의 군사들도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세상에, 내 이리 귀한 걸 또 받다니.”
“신라에서는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호사가 아닌가.”
“죽거나 굶지 않으면 다행이라고만 여겼지.”
보상을 바라지 못하는 환경에 처했기에, 오직 생존과 나라를 위한 대의로만 싸웠지만 마침내 제 몫을 받게 된 신라군이었다.
“신라로 돌아가 봐야 이런 대우 다시는 못 누릴 텐데?”
“비천한 출신이 괜히 귀한 물건 가지고 있다고 빼앗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고구려의 군사가 된다면, 이 비좁은 삼한 땅에서 누릴 수 없는 더 크고 귀한 것을 얻게 될 거야.”
거기서 적당히 교육해 섞어 놓은 삼기군의 무리가 꾀어내니 이제는 신라로 되돌아가라고 해도 가지 않겠다고 하는 무리도 나올 지경이다.
때마침 고구려의 서옥제를 적용한 혼인 정책으로 서로 원수였던 신라인과 백제인을 엮어 가정을 이루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딸자식을 내어 준 대가로 신라 병사가 백제인 신부의 부모에게 내가 보상으로 준 금과 은을 일부 헌납하니, 크고 작은 전쟁으로 위축된 경제가 순환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누렸다.
백제의 부흥 운동으로 곡식값이 치솟았기에 비교적 적은 양으로도 금과 은을 도로 회수할 수 있었다.
“주공, 어라하와 아버지께서 왜군의 참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계시다 합니다. 제게 군사를 내어 주십시오.”
몇 주간 백제 지역의 안정과 신라군의 고구려 군대 편입이 순조롭게 진행될 무렵, 난공불락의 가림성을 공략하다가 여의치 못해 주류성 전선에 합류한 흑치상지가 긴급하게 내게 달려왔다.
사상누각(沙上樓閣). 이제 남은 건 모래 위에 쌓은 부흥을 허물고 대륙으로 진출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