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부흥의 전환 (2)
옛 백제의 터전을 지나 고구려의 깃발이 빼곡히 들어선 패수 일대와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발견한 의자왕은 그 발걸음을 더디게 내딛더니 이내 멈춰 섰다.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그러지 못하면 그 어깨에 멘 비도를 내게 주시오. 이런 수모를 당할 바에야 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다.”
“그대의 조상들이 터전을 꾸린 욱리하와 옛 백제 땅을 볼 때는 한동안 그런 말을 안 하더니, 패강을 보니 실감이 나는 게요?”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 않아 그렇소. 연개소문 그대가 장부라면 내 마음을 알 것이외다. 더 부끄럽게 만들지 마시오.”
연개소문을 향한 의자왕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웅진성이 포위를 당하기 직전에 웅진성주 예식진에 의해 사로잡힌 의자왕은 그 수치와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단검을 빼 들어 스스로 자결하려 하였다.
“어라하께서 아니 계시면 저와 태자 그리고 왕자들은 어찌합니까? 누구를 바라고 산단 말입니까?”
그 결심을 함께 있던 부인 은고가 말린 것으로 보이지만, 고구려로서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의자가 웅진에서 죽었다면, 남산이가 사비 민심을 다독이기가 쉽지 않았을 게야.’
황산벌에서 죽은 계백과 억울하게 옥사당한 성충의 이름을 여전히 부르짖는 백제인들이 있었다. 이름 있는 자의 죽음이라는 것이 때로는 거대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부흥을 꿈꾸는 백제의 지방 세력들을 보며 깨달은 연개소문이었다.
실상 백제로 갈 것도 없이 과거 부여나 동부여, 말갈 부족 등지에서 자주 벌어진 역사가 이를 증언했다.
“남부여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고구려와 한핏줄이요, 같은 조상을 둔 우리의 작은 겨레이다. 태왕 폐하께서 비록 지난날의 일들로 백제 상왕을 책망하시겠으나, 또 먼 친척을 만난 것과 같이 반기실 것이외다. 오늘이 정녕 치욕스럽다면, 만일 백제 왕실이 평양이 아니라 서라벌에 당도하였다면 어떤 고초를 당하였을지 그것을 떠올리시구려. 내 감히 말하건대, 김춘추의 큰딸 묘지 앞에서 제 자식들의 목이 달아나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겠소?”
말을 쉼 없이 퍼붓는 연개소문의 경고에 뜨끔한 의자왕은 입만 덜렁 벌릴 뿐, 말을 아꼈다.
사비 연회장에서 자신과 왕자들을 핍박하는 김춘추 부자의 분노를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큰 겨레 품에 안긴 이날을 경건히 받아들이시구려. 부여가 혈통으로 이어진 우리의 조상 격인 왕국이었다면, 평양은 우리에게 문화를 전수해준 옛 조선의 왕도이외다. 부여에서 유래되었다는 윷놀이가 그 기원이 조선이니, 평양도 아리수처럼 고구려와 백제 모두와 상관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 아니겠소?”
사비에서 막내아들이 힘쓰고 있는 민심 수습의 모습을 직접 살핀 연개소문은 더 이상의 분쟁보다 화평을 택하기로 정했다.
“마시구려.”
연개소문이 의자왕에게 패강의 물로 빚은 계명주를 술잔에 따라 건네주었다.
고구려가 정면으로 당나라 천하관에 대척하는 이런 시국에 기왕 삼한을 모두 안고 가기로 했다면 격식이니 체면이니 하는 모양새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대막리지의 말씀대로 평양은 남의 나라가 아닙니다. 부여보다 앞서 백제의 문화가 기원한 곳입니다! 대막리지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어서 받으십시오! 어라하.”
물론 일이 언제나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막내아들의 조언대로 의자왕의 패망을 이끈 여인부터 꾄 참이다. 망국의 왕비로 모든 재물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요부라며 제 나라 백성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는 온갖 치욕과 비참한 말로를 겪으니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도록 평양 변두리의 사가 하나를 마련해 준다는 말에 손쉽게 설득이 되었다.
바로 옆에서 다시금 외치는 은고의 말을 묵묵히 들으며 술잔을 받아 드는 의자왕을 보자, 백제가 어찌 망했는지 알게 된 연개소문이었으나 잠시 그런 생각은 접어 두기로 했다.
“백제 상왕은 어서 오시구려! 이거 아주 먼 친척을 만난 것같이 반갑습니다. 대막리지께서도 어서 오시고요! 언제 오시는지, 기다리느라 아주 속이 탔습니다.”
뱃길로 앞서 남산이가 보낸 상소 덕분인지, 안학궁 밖에까지 미리 나와 의자왕을 따뜻하게 환영하는 태왕의 모습이 참으로 인자해 보였다.
* * *
내가 오른 탕정군은 백제 최북단의 지역이자 한강 유역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이곳을 점령하지 않고서는 북으로 직접 올라갈 수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수신이라 하외다. 내가 투항을 결심한 것은 융 왕자의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요, 고구려의 대의에 굴복하였기 때문이오.”
내 앞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는 지수신을 보고 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내 태왕 폐하의 명을 받들어 삼한의 군사를 이끄는 대총관으로서 그 약조는 반드시 지킬 것이오. 삼한에서의 분쟁을 내 대에서 끝낼 것이란 말입니다.”
이를 끝내기 위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고심했으나 지금은 한시름 덜어 놓았다.
와아아아!
지수신 휘하의 백제 군졸이 차례차례 환호성을 내질러 준 덕분이다.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감격만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자유의 외침 같았다.
경사진 산과 험준한 고개를 오르내리며 그야말로 이 땅에서 수백 년을 이어 온 혈쟁. 한반도 내 삼국의 국경은 끝이 없는 전쟁으로 땅이 황폐해졌고 제대로 발전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과정은 고행이고 고통이었으나 결과는 얻는다인가.’
이제 고구려가 삼한을 평정한 효과로, 각지에서 마구잡이로 징병한 장정들과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백성들이 돌아와 그 땅을 발전시킬 것이다.
“삼한이 평정되었다!”
“삼국 간의 전쟁은 끝났다!”
“고구려를 믿자!”
“대총관을 따르자!”
한편 전쟁에서 벗어났다는 자유는 탕정군을 지키는 백제 군사들뿐만 아니라, 내 휘하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군사의 감격스러운 표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 땅에서 600년을 넘게 이어 온 치열한 전쟁의 종막은 아마도 이러한 얼굴들일 것이다.
‘저들의 이념이 고구려와 같고 나와 같다면, 이 땅에서 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고구려가 삼한일통의 이념에 충실하다면 백제 부흥 운동은 본래의 역사처럼 그리 장기화로 이어질 수가 없다.
이는 무신 정권 시기라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벌어질 백제와 신라의 부흥 운동을 적극적인 고려 찬성 지역들이 알아서 진압해 준 것과 같은 맥락일 테니까.
“이 기세를 몰아 두량윤성, 가림성을 쳐야 합니다!”
“소장에게 맡겨 주십시오! 주공.”
“가림성의 지리는 소장이 잘 아옵니다.”
“고련단경(古連旦涇)의 피성(避城)은 토산물이 기름지고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으니 틀림없이 반군이 노리려 할 것입니다. 소장에게 맡겨 주십시오.”
“고련단경(古連旦涇)이라면 내가 지리를 잘 아니 내게 맡기시구려.”
아니나 다를까, 알아서 자원하는 백제 인사들이 더러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명했다.
“가서 백제 반군에 이르시오. 백제의 부흥은 이 작은 삼한에서 일으킬 것이 아니라 그 옛날 백제의 조상들이 100가(家)를 크게 이루어 바다를 건넌 대륙에서 해내야 할 것이라고.”
나는 부여융, 흑치상지, 충상, 상영, 지수신과 같은 백제계 인사들을 전면으로 내세워 부흥을 백제가 진출했던 대륙으로 이끌 것이다.
“주군, 풍장이 백제왕을 자칭하며 주류성에 당도하였다고 합니다.”
“왜선들이 기벌포 근해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작은 막리지.”
그때 설인귀와 걸걸중상이 웅진역을 거쳐 올라온 전령으로부터 급보를 듣고 내게 전했다.
“아무래도 다섯째가 왜에서 돌아온 모양입니다.”
백제 인사들은 부여융을 포함하여 저마다 올 것이 왔다는 반응들이었으나, 가만히 두어도 지리멸렬할 것을 아는 나는 극도로 초연했다.
온실 속 화초와 같은 환경에서 큰 군사를 한 번도 다루어 보지 못한 부여풍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인다. 옆의 경쟁자만 제거하면 권력은 제 수중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귀실복신과 도침은 서로 동상이몽을 꾸며 다투다 파멸한다.
설사 그 역사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백제인들을 움직이게 하면 될 뿐이다.
굳이 움직이게 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겠다 자처하는 이들도 있었다.
“주공! 아버지께서 두량윤성을 치겠다고 하십니다. 군량은 고련단경(古連旦涇)의 토산물이면 족할 것이나 화살이 부족합니다.”
흑치상지가 부친 흑치사차의 전언을 전했고, 나는 걸걸중상을 시켜 화살 4천 개를 내어 주라 일렀다.
“소장에게도 명을 내려 주시구려.”
“그곳은 제가 잘 아니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이어서 자원하는 백제 출신들의 출전을 막지 않았다.
* * *
탕정 일대를 평정한 나는 웅진성에서 내게 급보를 전하라 이른 선도해와 만났다.
선도해가 내게 미처 전하지 못한 첩보를 말하자 내가 물었다.
“부여풍과 함께 누가 왔다고요?”
“나카토미노 카마타리가 거느린 왜군 5천이 왔습니다.”
“아니, 그보다 왜장들이 아니라 카마타리가 직접이요?”
“저도 그것이 이상하옵니다. 왜가 만일 백제의 부흥을 돕고자 하였다면, 병법을 논하고 군사를 다룰 줄 아는 장수들만을 선별하여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왜 조정이 백제 땅에 정치가를 보낸 이유에 대해 궁금한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을사의변 이후 권좌의 주인이 바뀌고 수도를 천도한 왜 조정이 워낙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여파인 것으로 추정된다.
실권자가 바뀌었어도 그 실권자의 모친이 전 왜왕이 아닌가.
나니아 조정의 생각이 나뉘는 것이 당연하다.
“카마타리가 직접 왔다면 왜왕보다 실권을 지닌 나카노오에가 우리와 협상의 여지를 남겨 두려 함이 아니겠습니까?”
“소인의 생각도 그와 같사옵니다. 부여풍이 주류성에 당도하여 백제 부흥의 물결을 일으키겠다고 발악을 하고 있으나, 겉으로는 비대해 보일지라도 실상은 권력이 분산된 중구난방의 형국에 불과합니다. 백제 주요 부흥군 세력은 복식과 도침으로 나뉘어 있고, 부여풍은 타국에 오래 머물러 아무런 권한조차 없습니다. 왜군만 무력화한다면 저들 스스로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실무만 시키다 보니 선도해의 행정 능력과 정략적인 면모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나처럼 미래 기록이라도 보고 왔나 싶어 착각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뱃길이 열린 채 받는 첩보는 무섭다.
“곧 장마철이고 이후로는 무더운 날이 계속될 겁니다. 전쟁은 삼한일통에 협조하기로 한 백제 세력과 신라군에 맡기려 합니다.”
“김문영이가 신라왕의 명을 핑계로 회군하려 하는데 대총관의 명을 따르겠습니까?”
선도해가 웅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그럴 줄 알고 일부러 신라군을 두 부대로 나누어 한 부대를 삼기군과 흑치상지에게 분산 배정해 놓은 참이지만 여차하면 김문영이 1만의 신라 군사만이라도 회군을 할 작정이다.
“당장 김문영을 불러오십시오.”
신라군에 대한 통제권 문제를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