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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막리지 막내아들-265화 (265/335)

265화 대해의 발판 (3)

수성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사비성의 백제군 대응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나마 지형이 잘 갖추어진 북나성과 동나성, 거기다 그것들 사이에 쌓아 올린 청산성의 성벽은 견고했으나 전술 차단물로 메꾼 다른 방면의 방비는 공성이니 수성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따름의 공방이 이어질 뿐이었다.

한편 사비 공략 고구려 본영에는 여기가 백제의 어전인지 아니면 고구려의 군영인지 헷갈릴 정도로 백제의 고위 관료들과 왕자들 그리고 온갖 백제의 사치품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삼고초려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돌려보낸 상황에서 의자왕이 마지막이라 여기고 가장 많은 것을 보내온 모양이다.

“고구려의 대총관께서는 부디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연기를 따로 지시받았는지 부여융이 대표로 눈물, 콧물을 흘려 가며 그리 부르짖자 그를 따라온 6좌평과 왕자들이 일제히 머리와 무릎을 땅에 대고 나와 연수영 그리고 김춘추를 향해 납작 조아렸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의자왕이 빠진 것만 빼고는 250여 년 전 광개토태왕이 백제의 항복을 받아 낸 역사의 거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이 펼쳐졌다.

의자왕과 은고 다음이라 할 수 있는 대좌평 사타씨들과 정사암 귀족들도 여러 얼굴을 비쳤다. 지난번 내가 정사암을 찾았을 때 보았던 얼굴들도 있으니 그야말로 정에도 호소하기 시작한 백제였다.

광개토태왕께서 아마 이를 보셨다면 재차 정에 못 이겨 군사를 물리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할 리는 없지만, 무려 3차례나 신하들과 왕자들을 돌아가며 보낸 의자왕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의자왕의 장남인 부여융과 대좌평 사타천복을 내 막사로 불러들여 꼬치 한 점씩 대접하며 명료한 요구를 했다.

“백제왕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뿐이오. 고구려 귀부의 삼한에 편입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줄곧 내가 돌려보내기만 한 상황에서 대뜸 요구 조건을 제시하자 무슨 기회를 얻은 것처럼 부여융과 사타천복이 환한 얼굴로 나를 골똘히 쳐다보았다.

“어, 어찌하면 되는 것입니까?”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것입니다!”

마른침을 삼키며 뭐든지 기꺼이 들어주겠다는 두 사람이 기대감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돌아가라는 말만 빼고 무슨 말이라도 하길 기다렸다는 눈치가 아닌가.

그들을 번갈아 본 내가 무겁게 말했다.

“백잔(百殘)이 의(義)에 복종치 않고 감히 나와 싸우니, 태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를 건너 정병(精兵)을 보내어 그 수도에 육박하였다. 백제군이 퇴각하니 곧 그 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잔주(殘主)가 곤핍(困逼)해져, 남녀(男女) 생구(生口) 1,000명과 세포(細布) 1,000필을 바치면서 태왕에게 항복하고, 이제부터 영구히 고구려 왕의 노객(奴客)이 되겠다고 맹서하였다. 태왕은 잔주(殘主)의 잘못을 은혜로써 용서하고 뒤에 순종해 온 그 정성을 기특히 여겼다. 이에 58성 700촌을 획득하고 잔주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데리고 수도로 개선하였다.”『광개토태왕릉비』

묵묵히 광개토태왕릉비 2면에 적힌 부분을 그대로 읊자 막사 내에는 한동안 침묵이 일었으나 부여융이 곧 긴장한 표정으로 응답했다.

“바, 바치겠사옵니다! 고구려 태왕께서 원하시면 1,000명이 아니라 그 열 배와 100명의 왕자라도 어라하께서는 기꺼이 내어주실……!”

“어허! 죄인은 백잔주(百殘主)이거늘, 그 책임은 다시 백성들과 왕자들에게 넘기겠다는 거요?”

내가 일부러 발끈하듯 말을 끊자 부여융의 반쯤 접힌 눈이 다시 눈물로 글썽이기 시작했다. 의자왕 대신으로 야단치는 것이라 좀 불쌍해 보였으나 할 말은 계속해야 했다.

“아집, 독선, 광기에 사로잡힌 아신은 자신의 잘못을 은혜로이 용서한 광개토태왕과의 맹서를 헌신짝 버리듯 하고는 뒤로는 아리수 남쪽에서 사열하며 군사를 정비하고 무리하게 백성들을 징집하여 민심을 잃었으니 수많은 백성이 개죽음을 피하고자 신라와 왜를 비롯하여 고구려나 가야, 후연, 동진 등으로 망명하였소이다. 백제의 왕자는 이를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백성들에게 다시 책임을 전가하는가 말이오!”

재차 추궁하자 옆에서 무슨 변호를 하려던 사타천복의 나온 입까지 쏙 들어갔다. 그 옛날 백제왕과 비교를 하며 잘잘못을 논하니 함부로 대꾸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실상 아신왕의 암군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근초고왕 때 쌓은 백가제해의 위상이 땅으로 떨어졌다. 백제의 중흥을 이끈 성왕이 흔히 내부 결속이 다져지지 못해 한강 유역 회복에 실패했다고 하나 이미 그보다 한참 앞서서는 아신의 광기로 인해 본래 토착민인 수많은 한강 백성이 외부로 망명하여 한강 민심이 영영 백제에 가지 못한 것이니 백제 스스로가 자초한 일도 없지 않아 있는 셈이었다.

“대체 저희가 어찌하면…….”

부여융이 떨리는 목소리로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내가 단호하게 꾸짖었다.

“백제의 왕이 고구려의 신하가 되길 청하였다면 가여운 제 백성을 대신 보낼 것이 아니라 응당 직접 고구려의 태왕을 찾아뵈어 죄를 용서받아야 하지 않겠소? 그것 말고 태왕 폐하께서 잔주에게 받아 주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오.”

의자왕이 받기는커녕 듣지도 않을 이야기에 부여융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나는 그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사비성 공략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 * *

“삼한도행군이 사비성에 진입했다!”

“신라군이 성벽에 올랐다!”

“백제 궁궐을 점령하였다!”

부여융과 좌평들을 돌려보낸 뒤 사비의 나성 돌파 소식을 얻기까지 불과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새벽까지도 연수영이 백강을 통해 서나성 방면으로 별동대를 꾸준히 침투하게 하여 이윽고 설인귀와 걸사비우가 이끄는 양기 상륙 부대가 시가지를 지나 백제 궁궐 인근까지 들이닥쳤고, 한참 공성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나성과 남나성이 잇달아 무너졌다. 시가전이 벌어지고 궁궐이 습격을 당하는 마당에 동쪽과 남쪽 성벽을 지키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백강 방면과 궁궐을 지키겠다며 동나성 백제군이 조금씩 빠지자 틈이 서서히 벌어졌고 결국 성문까지 열리게 된 배경이다.

그때 의자왕의 동태를 파악해 보겠다며 수하들을 움직인 연수영이 다가왔다.

“백제왕이 부소산성에서 농성 중이라는구나.”

아니나 다를까 이미 궁궐에서 빠져나간 의자왕은 북나성과 청산성이 연결된 사비 북쪽 산인 부소산에 쌓아 올린 배후산성으로 도피한 뒤였다.

그래 보았자 마지막 발악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연수영이 알고 있다. 그 부소산성의 북쪽 끝에는 백제 궁인들이 뛰어내렸다는 낙화암이 있기도 하니까 정녕 백제의 마지막이 왔다.

“저희도 슬슬 사비성으로 들어갑시다.”

내가 그리 채근하며 곧 전군에 사비성 입성을 명할 때 뭔가 할 말이 있는 건지 연수영이 물었다.

“한데 어찌하여 내 별동대에 고구려 수군의 통솔자가 여걸이라 밝혔느냐? 그걸 알리면 아군에게 그리 좋을 것이 없을 터인데.”

으음, 뭘 묻나 싶었는데 그거였나.

“사비에는 약 1만 호가 살고 있습니다. 1호에 5인이라 치면 5만의 백성이고 그중 반이 여인이 아닙니까? 민심이 백제왕에게 더는 없으나 제집 여식과 아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어느 나라 백성이건 인지상정입니다.”

“오호라, 남산이 네가 나를 밝힌 것은 욕보이지 않을 것이니 저들에게 저항하지 말라는 게로구나.”

“예. 저희 목적은 삼한을 일통하는 것이지 백제 백성과 싸우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미 요하와 삼한의 민심을 수습한 경험 있는 설인귀와 걸사비우에게 맡겨 두었으니 심려할 것은 없으십니다, 스승님.”

연수영이 던진 의문에 답을 다 할 때쯤 바로 눈앞에 사비성의 웅장한 모습이 들어왔다. 일국의 수도인 만큼 정문인 동나성은 토석혼축으로 쌓아 올리면서 상당히 견고한 성벽의 모습을 갖추었다. 바다로 침투하지 않고 온전히 육지에서 공성전만을 벌였다면 적어도 공방이 보름은 걸렸을 성곽이었다.

이를 강으로 우회해 친다면 견고하지 않은 성벽의 서나성과 남나성으로 진군할 수 있다.

애초에 백제는 해외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또 왜에 전해 주기도 하며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춘 나라이기에 배후의 바다가 장점이기도 하면서 또 단점이기도 한 그런 왕국이었다.

정문을 통해 사비성에 입성하자 성 내에는 아까 내가 매몰차게 돌려보냈던 부여융과 사타천복 이하 백제 신하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부디 저희를 받아 주시옵소서! 흐흑.”

“어라하께서 사비와 저희를 모두 버리셨나이다.”

의자왕이 하룻밤 사이에 사비성을 버리고 웅진으로 도망갔다는 이야기였다. 옆의 부여융에게 직접 물어보니 의자왕은 은고를 설득하여 거의 수도를 버리다시피 하며 도주하였고 남은 왕자들 가운데 가장 야심 있는 둘째 아들이 칭왕하여 실세 노릇을 하려고 하니 부여융을 비롯한 다른 왕자들과 귀족들이 부소산성에서 내려와 투항을 결심한 모양새였다.

“태왕 폐하께 진정 항복을 한 것이라면 우리 군에게 부소산성을 안내하시오. 거짓을 고한 것이라면 능히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니.”

아직 전투가 모두 끝난 것이 아니므로 내가 그들에게 단호히 요구할 부분을 요구하였다.

삼한도행군과 신라군이 그들을 쫓아 북을 치며 부소산성을 올랐다.

칭챙!

곧 사비성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다.

“내가 백제의 왕이다! 사비성을 지켜라!”

부소산성을 지키는 이는 의자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였다. 칭왕을 하고 의자왕을 대신하여 백제군을 독려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미 나성이 돌파당하면서 백제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고, 부소산성을 지키는 군졸이라 해 봐야 1, 2천 남짓인 데다 그마저도 태반이 어제 이틀 전에 징발한 군사로, 정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 항복하겠구먼요!”

“목숨만 살려 주슈!”

힘이 미치지 못하고 지치면 곧바로 무기를 버리고 백기를 드니 싸움다운 싸움은 거의 벌어지지도 않았다. 대석을 몇 번 날리면 호들갑에 백기를 드는 부대도 수차례나 나왔다.

“아버지!”

이윽고 부소산성에 오르자 흑치상지가 북쪽에서 내려오는 부친 흑치사차의 깃발을 발견하며 소리쳤다. 임존성에서 출전하여 사비 북쪽이자 백강 북부인 고량부리현(古良夫里縣)을 장악한 흑치사차였다. 빨리 투항을 결정하지 못하고 처세술 부리는 것으로 오해받는 걸 원치 않던 흑치사차가 사비성의 포위 소식을 듣자마자 의자왕의 도주로 중 하나인 고량부리현(古良夫里縣)을 차단하고자 군사 2천을 보내왔다.

“큰 바위 아래로 백제 궁녀들이 몸을 던졌다 합니다.”

“저희가 나름 민심을 잘 다독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백제왕이 궁녀들에게 강에 뛰어들라고 명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소산성을 이 잡듯이 돌아다니며 의자왕과 군대부인의 실마리를 찾던 걸사비우와 설인귀가 낙화암에서 몸을 던지는 궁녀들을 보고 와서는 침통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이런, 비극을 막고자 나름 연수영의 정체를 밝히기도 하고 노력했으나 아무래도 바꿀 수 없었던 부분이었나 보다.

“대총관!”

씁쓸히 고개를 돌리려 할 때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이나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 주인을 찾아보았으나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랩니다.”

그 말대로 고개를 내리자 배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옥소와 물에 빠진 백제 궁녀들을 건져 올리고 있는 산기군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엇!”

반가운 마음에 평소 걸걸이와 같은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사비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백강 하구에서 배들을 관리하고 있던 옥소와 나머지 산기군이 강을 따라 올라온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백제 궁궐에서 재회한 삼기군과 함께 승리를 만끽했다.

그러나 아직 의자왕이 잡힌 것이 아니기에 웅진의 동태를 살펴야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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