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264화 (264/335)

264화 대해의 발판 (2)

금강이 곡류하는 부분의 충적지에 조성된 소부리는 한 나라의 도성답게 백제 영토 가운데 가장 비옥하고 인구도 많고 황산벌의 계백보다 많은 군사가 지키는 규모였다.

그러나 성 공략은 의외로 황산벌보다 수월하겠다 싶었다. 믿음직한 수군과 합류했다는 점이 가장 크지만 그보다 앞서서는 연개소문의 후원으로 보급 문제에서 한시름 부담을 덜어 놓게 된 배경이 있고 또 임존성을 지키는 흑치사차의 투항으로 북쪽에 대한 염려가 줄어든 덕분이다.

군 사기도 황산벌 때보다 긴장이 풀려 한껏 여유가 생긴 분위기였으며 남해 지역도 가야 세력이 보름은 시간을 더 벌어 준다 하였으니 그 안에만 승부를 본다면 이번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당나라가 부활한 돌궐의 습격과 이웃나라인 토번과 대치하는 이때에 삼한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했다.

예민한 연수영이 내가 합류한 뒤 연 사비 공략 군사 회의에서 요동만 소식을 예의 주시하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어쩌면 가야군이 남해에서 철수하는 것보다 수군이 먼저 회군하겠다는 결정을 내릴지 모를 일이지만 대세는 분명히 고구려에 기울었다.

“내가 태왕 폐하의 명을 받들어 백제의 부도(不道)함을 정벌하고자 천병(千兵)을 인솔하여 왔으니 너희는 마땅히 그 책임을 다하여 결전에 임하라. 황산벌에서 끝까지 싸운 백제군의 결사를 본받으라.”

예기치 못한 수군의 회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며 약간은 부담감을 가지려는 내 입장에서 공성을 벌이기 직전에 일부러 군사들을 불러 긴장감을 주기도 했다. 너무 풀어진다면 자칫 백제 공략이 장기화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목표는 사비성이 아니라 백제 그 자체 그리고 더 나아가 삼한의 전부였다.

와아아아!

고무적인 격려의 영향 덕분인지 어마어마한 함성이 사방에서 사비성을 집어삼킬 듯 메아리쳤다.

“삼한도행군은 북문과 그 부속성을, 신라군과 청룡부대는 동문을 치고, 흑벌무 장군이 남문을 맡아 주십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작은 막리지.”

“맡겨만 주시구려!”

내가 지시하자 걸걸중상과 흑벌무가 제장들을 대표하여 호응했다.

나는 이번 공성전을 크게 4부대로 나누어 치게 하였고, 사비성을 감싸는 전군을 바라보고는 빠르면 이틀 안에 성문을 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그렇게 될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00년 역사답게 사비성이 규모도 있고 상당한 토목 기술로 기초를 다진 데다 구조적 안정까지 가미된 판축 기법의 도성이지만 눈에 보이는 빈틈이 크다. 저 백강 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성벽을 넘지 않아도 배후를 통해 백제 왕궁에 진입하는 것도 가능하겠어.’

사비성의 전체적인 정세와 성세를 보자면 성 전체를 공격하는 척 방비가 허술한 틈을 파고든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성내까지 침투할 수 있는 구조였다. 특히나 금강에 면한 사비 도성의 서쪽과 남쪽에는 성벽이 없고 도하를 막기 위한 목책이나 부산성 같은 전술 차단물을 지어 놓은 수준에 그쳤다.

그러니 전술도 육로와 수로를 동시에 활용하면 소부리 사비성은 그 옛날 광개토태왕이 아신왕의 외삼촌 진무가 지켰던 관미성과 아신왕 스스로가 버티고 있는 백제 한성을 점령했을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공략하는 것이 가능했다.

“사비성을 포위하라!”

내 명에 깃발이 올라가자마자 걸걸중상과 연근행, 흑치상지가 지휘하는 삼한도행군이 사비의 북나성과 그 부속성인 청산성을 포위했고, 이어서 내가 통솔하는 신라군이 동나성을, 연수영 부대에 속한 흑벌무가 5천의 보병으로 부산성인 남나성을 에워싸며 공격을 퍼부었다.

“사다리를 대라! 선기군은 대석을 던져 올려라!”

“전호차를 앞세워라!”

내 지시를 숙지한 걸걸중상과 흑치상지가 각자 공성에서 공격과 방어를 도맡아 공성 병기를 활용했다.

이 공성에는 특별한 공성 무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즉석에서 제조한 사다리와 충차 혹은 앞부분의 커다란 방패로 아군을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수레인 전호차 정도의 비교적 기본적인 공성 병기에 연수영이 배에서 가져온 투석기를 이용하여 거리를 두고 대석을 퍼붓는 원거리 공습을 더할 뿐이었다.

“저, 적의 공격을 막아랏!”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란 말이다!”

공성 무기를 활용하지 않고 화살 공격을 퍼부었던 첫 교전 때에 비해 성벽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백제군 장수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멀리서 보아도 적응하지 못하겠다는 표정과 속수무책으로 대석 공격을 받는 백제군의 반응은 별다른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경험이 있고 없고 차이인가.’

수성에 익숙하지 않은 엉성한 백제군의 대응을 바라보는 내 감상은 그러했다.

사비성이 비록 수도로써 기능하기 위해 증축도 하고 산봉우리에 작은 청산성을 쌓으면서 보강한 면이 없지 않아 있으나 백제는 왕조 초기부터 숱하게 왜적의 침탈을 당해 온 서라벌이나 수나라 대군의 침략을 받은 평양에 비해 사비를 지키기 위한 크고 작은 전투 수행 경험이 없었다.

있어도 한성 백제 시절이었고, 그마저도 250년쯤 전에 실패한 경험이기에 백제가 기억하기 무척이나 어려운 역사가 되었다.

이를 잊은 백제는 그야말로 비옥하고 평화로운 땅에서 10만 대군을 맞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고구려와 신라 군사들을 어서 막아랏!”

“어라하를 위해 싸워라!”

백제군이 그나마 북나성과 동나성을 중심으로 맹렬히 저항할 때 연수영의 수군이 유유히 수로로 성벽이 없고 간신히 부산성으로 메꾼 백강 접경의 서나성과 남나성 방면으로 부대를 계속해서 보내어 상륙시켰다.

그러자 북나성과 동나성을 지키는 백제군이 백강과 접한 서나성 쪽으로 군사를 빼 이동하기 시작했다.

남나성이야 산이라도 있어서 지형을 활용해 싸울 수 있으나 서나성이 돌파당한다면 의자왕이 거처하는 백제의 궁궐이 그대로 고구려 수군에 의해 점령을 당할 수 있기에 백제로서도 뾰족한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몇 차례 더 치러진 교전에서 동나성과 남나성의 백제군 피해는 크게 불어났다. 삼한도행군과 신라군이 성을 겹겹이 에워싸며 차륜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성을 지켜야 할 군사가 빠지면 그것이 일부라도 영향은 커진다.

“이랴, 이랴!”

아군의 피해 상황을 살피고 전황 보고를 수시로 듣던 나는 삼한도행군과 신라군의 차륜을 점검한 뒤 수군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말을 바꿔 타며 백강 본영으로 달려갔다.

정확히는 연수영이 보낸 일부 부대가 서나성의 성벽을 쌓지 않은 곳의 망루, 목책, 마름쇠 같은 전술 차단물을 뚫어 시가전에 돌입했다는 첩보를 들은 뒤였다.

막사에 들어가자 연수영이 무언가를 골똘히 읽고 있었다.

“무얼 보고 계십니까? 스승님.”

“좌평 각가라는 자가 백제왕의 의중을 전해 온 게다. 보겠느냐?”

나는 연수영이 건넨 각가의 문서를 살펴보았다.

[양국의 인연은 넉넉하고 풍성하여 선세 이래로부터 도성의 파괴를 겪은 적이 없는 시조 동명왕의 나라 부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구려는 그 옛날 졸본부여였던 부모의 나라요, 우리는 부여와 단군의 피를 이어받은 한 겨레입니다. 또 예(濊)와 맥(貊)이 만난 둘도 없는 형제가 아닙니까? 형제 간 오해가 붉어져 서로 다툴 수는 있으나 지나치면 돌이킬 수가 없는 법입니다. 어라하께서는 양국 간의 오해를 허심탄회하게 풀기를 원하니 바라는 것이 없다면 무엇이든 말씀하여 주십시오. 원하시면 융 왕자께서 어라하를 대표하여 직접 대총관께 인사를 드릴 것입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사비성에 공세를 퍼부은 지 만 하루가 되지 않아 그 자존심 강한 의자왕이 애걸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수로를 이용하니 사비성 시가지 전체를 둘러싼 나성이 무력화되고 시가전에 돌입한 것에 어지간히 충격을 받고 있을 의자왕과 백제 귀족들의 당황한 표정들도 얼핏 상상이 되기도 한다.

“어찌하겠느냐?”

“들어줄 것도 없습니다.”

막사 안에서 나와 연수영의 대화를 심각하게 듣고 있는 김춘추가 반응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단호하게 말했다.

서라벌 때처럼 내가 용서하고 군사를 물리는 자비란 없음을 보여 준 거지만 그보다 내 의지 표명과 신라군의 통제권이 우선이었다.

일단 약조대로라면 신라군은 백제와의 전쟁 중일 때 한하여 내가 인솔하는 것이니, 이들을 완전히 내 군사로 삼을 때까지 전쟁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또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백제와 동맹을 끊어 버린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백제와 굳이 싸우지 않아도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이 그랬던 것처럼 속국으로 삼거나 잘 꼬드겨 대당 전선에 참여시키는 정략을 펼치는 것도 한 방법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만 이 시기 정치라는 것은 거의 독재나 다름이 없으며 그저 시대에 편승하는 척 부리는 협잡도 있었다. 정치를 잘만 다루면 그리고 내 시대만을 보았다면 당장 백제를 끝장내지 않고도 잘 지냈을지도 모를 일이긴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변화가 벌어지는 걸 알기에 냉엄하게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다.

백제의 정치 불안은 고구려가 강성해지면 강성해질수록 그 옛날처럼 돌아가려는 관성을 따를 것이 뻔하다. 왜를 끌어들이거나 가야를 이간질해 고구려와 균형을 맞추려 시도할 수도 있고 또 신라를 흡수하여 고구려에 대항하고자 할 수도 있다.

애초에 아신왕은 겉으로는 광개토태왕에게 머리를 숙이고는 몰래 왜를 한반도로 끌어들여 가야 세력과 모략을 획책한 뒤 신라를 정벌하고 삼한으로 하여금 고구려에 대항코자 했으니 삼국의 대립이 매우 격화된 시대였다.

작금의 왜는 그 당시보다 훨씬 더 백제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신라가 사라지면 그때의 일이 다시 재현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신라와 백제를 무력으로 치지 않고 온전히 고구려와 합심하여 당나라에 대항할 수만 있다면 주저 없이 선택하겠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일 뿐이고, 결국은 정치적인 흐름과 천하 판도 대세에 따라 다시 대립하게 대고 말 것이다.

각가가 돌아간 뒤 막사에서 연수영을 비롯한 제장들과 가볍게 전황 보고를 나누고 해산하려는데 사비성에서 다시 사람이 나왔다. 이번에는 문서 쪼가리가 아니라 뇌물을 가지고 왔다.

“백제의 어라하께서 고구려의 삼한도행군대총관, 요동도수군통제사, 신라 국상 이찬간 세 분께 가축과 음식을 보내오셨습니다. 군사들의 노고를 위로하시고 부디 이만 노여움을 푸시는 뜻에서 원하시면 저희 백제가 자랑하는 무용수들도…….”

“그것들 싹 다 가지고 물러가시오.”

내가 막사에도 들여보내지 않고 백제 관리가 가지고 온 물건 그대로 다시 돌려보냈다.

“어라하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자비를 내려 주십시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렇게 단호히 돌려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백제 정사암을 대표하는 육좌평과 부여융을 비롯한 백제의 왕자들이 저마다 예를 차리며 본영 막사 밖에서 내게 빌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의자왕이 도주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벌이는 수작임을 눈치챈 참이다.

대해로 나아가는 발판이 곧 고구려의 수중에 떨어질 날이 진정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 * *

“어라하께서 고마나루로 오신다는 기별을 보내셨다고?”

“예! 사비에서 일어난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오고자 하십니다!”

사졸의 보고에 웅진방령 예식진은 사비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