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263화 (263/335)

263화 대해의 발판 (1)

황산벌을 피로 적신 계백과 5천 결사대가 쓰러지자 삼한도행군과 내가 단독으로 지휘하는 신라군이 마지막 남은 최종 목적지를 향해 폭주하며 달려가듯 일제히 지면을 박차고 진군 속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승리라는 확실한 담보가 사비로의 행군이 쾌적하게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콜록! 콜록! 송구합니다! 갑자기 웬 기침인지…….”

한 번의 지휘로 신라군만으로는 번번이 막힌 황산벌을 돌파해 내면서 김춘추의 심복인 김문영이 이제 내 눈치를 볼 지경이다. 신라군의 통제를 거의 내 손아귀에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간에 김춘추가 왜 신라군 노수부대가 쓰러뜨린 백제 장수의 수급을 거두지 않았냐고 따져 묻는 일도 있었으나 김춘추의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선도해가 오히려 공산에서 내가 김유신 장군의 수급을 거두지 않은 이유를 되묻자 조용히 물러갔다.

백제 무신의 혼을 위로하고자 하는 내 의도와 다르게 김춘추는 필경 계백의 목으로 나중에라도 신라군의 성과를 들먹거리며 협상을 시도하려는 정황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선도해를 여기까지 데려오길 잘했군.’

김춘추가 신라를 대표하여 나를 감시하는 목적에서 사비까지 따라왔다면 나도 마땅히 그를 견제하고 지켜볼 사람이 필요했다.

김춘추쯤 되는 인물을 견제할 임무의 적임자는 고구려 내에 단 한 사람뿐이었다.

“제가 살려 준 목숨이니, 저리 고분고분하는 것입니다. 후후.”

그 사람이 자기라는 걸 아는지 옆에서 선도해가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신라군을 온전히 내가 통솔하는 상황에서 김춘추까지 농락하고 있으니 어지간히도 웃음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내 의도마저 알아서 저러는 건지도.

실실 쪼개는 선도해를 보자 김춘추가 신라군의 전시 작전 통제권을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내 요구에 응한 부분이 그저 사사로운 복수심 하나만이 아닐 것 같다는 기분이다.

“저곳이 소부리(所夫里: 사비)입니다!”

“중심부는 부여 나성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비하(泗沘河)가 북으로 흐르는 안쪽에는 소부리성(부소산성)이 자리 잡은 2중 성곽 구조이지요. 부산성과 청산성 등 여러 부속 산성도 있사옵니다!”

한편 앞서 나간 백제인 길동무들이 전방 10, 15리 밖에 보이는 성세를 가리키며 그리 소리쳤다. 날이 풀린 덕분에 꽤 먼 거리에서도 훤히 보이는 사비성이었다.

사비성(泗沘城). 이미 한번 들러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바가 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나고 자란 백제인 충상과 상영의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 정확한 정보는 없었다.

황산벌에서의 치열한 전투로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확실히 깨달은 두 백제인은 포로가 된 후 그리 오랜 고민을 하지 않고 내가 준 기회에 응하여 고구려로 전향하기로 결심했다.

“소부리성(부소산성)이 우리 백제를 상징하는 성인데…….”

아아, 뒤늦게 보급부대에 포함해 끌고 온 백제 태자 부여효도 막 도착했다는 사실을 잠시 까먹고 있었다. 한성기 이래로 내려오는 백제 특유의 판축 구조가 뚜렷한 부소산성에 대해 알고 그리 평하는 것은 무척이나 의외이지만 말이다.

‘기름진 벌판에 세월이 더해져 수도로서의 면모는 갖추었군.’

나는 산과 강이 어우러진 백제 마지막 수도를 보며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비가 제아무리 벌판을 음차한 소부리라 불려도 무려 100년의 세월이 있었다. 그 세월이 고구려의 수도와 신라의 수도가 가진 역사성에 비할 수는 없으나, 그런데도 100년의 역사는 백제 도성을 조성하기 위해서 대규모의 물빼기 공사와 터 다지기 공사를 하여 기본 대지를 조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자재와 노동력이 투입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겉으로 보아도 빈약한 수도를 지키기 위해 배치된 부산성, 청산성, 청마산성 하며 금강에 면한 사비의 서쪽과 남쪽에는 성벽이 없기에 강 건너편에 산성을 쌓아 도하를 시도하는 적을 차단하고자 한 흔적 등 민생을 위해 방어에 원활하지 않은 곳에 천도한 고민거리 해결이 보일 정도이니.

또 사비에서 직접 본 백제의 토목 기술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내가 사비의 성세를 유심히 살피며 천천히 행군하고 있을 무렵 수로를 통해 먼저 도착한 연수영이 백제군 방어선을 뚫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래 역사에서 소정방이 거느린 13만 대군에 반의반이 조금 못 미치는 군력으로 기벌포 방어선을 깨트릴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일축해 버릴 만큼 연수영이 이끄는 4만의 군세와 함선이 백강 하구와 백제 바다를 장악하였다.

“주군!”

“작은 막리지! 중상이 형님!”

물론 여기에는 삼기군 가운데 양기를 담당하는 설인귀와 걸사비우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었다. 숱한 상륙 작전 수행 경험과 멀리 남쪽 바다의 섬인 유구 열도까지 항해한 홍기군은 고구려의 초기 국호였던 졸본부여의 왕자인 온조가 세운 백가제해의 위상을 다시금 바다에서 떨쳤다.

여기서 가까운 바다 위에서는 대장선 위의 옥소와 삼기군의 장졸들이 한 손으로 칼집을 찬 대검을 들며 내게 군례를 올렸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인사했고, 자랑스러운 고구려의 용사들을 뒤로하며 시선을 돌리자 기벌포 방어를 맡은 백제 장수가 처량한 포로로서 바닥에 꿇려 울부짖고 있었다.

“의직이라고 하는구나. 내 듣자니 백제 조정에서 괜찮은 계책을 내어 우릴 괴롭히려 했던 모양이지만 백제왕과 그 신하들이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도착하기에 앞서 의직을 여러 차례 추궁한 연수영이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상황이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사비궁 궁전에서 의직의 제안이 채택되지 않은 것은 나도 역사를 통해 얼핏 기억하고 있었다.

의직은 계백과 더불어 사비성에 남겨진 몇 안 되는 백제의 보검이었다. 요동만에서부터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한 수군과 먼저 결전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은 당나라 수군에서 고구려 수군으로 바뀐 것뿐이지만, 다른 시대에 되풀이되는 역사였다.

백제가 탄현을 사수하고 바다에서 오는 수군과의 싸움에 집중하면서 시일을 벌었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결말이니.

그러나 의자왕과 은고가 사비궁에서 서로 공존하는 한 달라질 일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은고의 야욕을 이용하여 의자왕의 정변을 부추기기도 하였으니 멸망의 역사가 더 빨라질 따름이었다.

“어서 목을 베거라! 포로가 되는 구차한 삶은 살고 싶지 않구나!”

의직이 짐승의 눈빛으로 나와 연수영을 노려보며 외쳤다. 백제의 마지막 때 갑자기 기록에서 사라졌으나 저런 투지라면 아마도 전장에서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백제왕을 따르는 충직한 자입니다. 회유하는 것은 어려우니 그 목을 베어 백제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데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의직을 쳐다보며 연수영에게 냉엄한 말을 꺼냈다. 백제의 심장부가 코앞이라도 최후까지 방심할 수 없는 곳이 전장이기에 백제의 마지막 저항을 대비하기 위한 가혹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참하라!”

내 눈빛을 읽은 연수영이 가까운 군졸에게 명을 내렸다.

함께 모인 전군이 보는 앞에서 행해진 엄숙한 형벌.

서걱!

목이 쿵 하며 떨어졌고, 그 형벌이 시행될 때 나는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대륙과 한반도를 오고 가며 숱한 전쟁을 경험했지만, 누군가를 참수하는 것을 직접 보면 참혹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남의 나라 사람 말이 아니라 통역이 필요 없는 사투리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의 목을 벤다는 것은 이적과 정명진을 참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었다.

-아내와 자식들이 이 땅에서 더는 피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구려.

어쩌면, 계백의 마지막 유언을 들었기에 그런 감정이 더욱 복받치는 것인지도.

“사비에 남은 백제군 수비병은 1만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백제 5방의 군사들과 북쪽 국경인 탕정군 내 백제군의 동태입니다.”

막상 사비까지 당도하자 김유신과 소정방의 고민이었을 부분을 내가 직접 입 밖으로 꺼내고 있었다. 백제가 만일 분열되지 않고 합세한 5방이 사방에서 몰아치고 쉴 새 없이 보급로를 끊는다면 삼한도행군과 신라군은 큰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도비천성에서 남방 구지하성(久知下城)으로 쫓아 버린 병관좌평 은상과 한참 백의종군을 하고 있을 윤충을 붙여 놓아 불화를 유발하려던 내 계책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남해를 견제하는 가야의 수군과 남방을 맡긴 검모잠 일행이 얼마나 버틸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더 가까운 위기는 탕정군에 있었다. 첩보를 통해 들은 대로라면 후일 백제의 부흥을 일으킬 맹장들이 그곳에 집결해 있었다. 여기까지 수세에 몰린 의자왕이라면 그 명 하나로 1만의 원군을 요청할 것이다.

웅진의 예식진도 막상 투항 의사는 전해 왔으나 의자왕을 내 앞에 꿇릴 때까지 어떤 선택을 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적어도 임존성을 맡은 흑치사차만이라도 확답을 준다면…….’

주변 정세 중 하나만이라도 풀리길 바라는 내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흑치상지가 다가왔다.

“아버지께서 친족들을 설득하시어 투항하시겠다 합니다!”

“정말인가?”

“예! 여기 읽어 보십시오!”

흑치상지가 백강을 넘어 전서구를 가져온 벌매를 팔에 올리며 그리 낭보를 전했다.

사비성이 함락되고서야 투항을 결심할 것이라는 흑치사차가 백제가 탄현을 돌파당하고 기벌포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결심을 마친 것이다.

그 가운데 중간중간마다 흑치상지가 전서구를 띄우며 열을 낸 것도 큰 몫을 하였음이 분명하다.

내가 달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연수영이 맞장구를 쳤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북쪽에서 백제군이 내려올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었겠구나.”

나와 거의 동시에 백제 지도를 살핀 연수영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고 적군은 궁지에 몰렸으니 주저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스승님.”

내가 낙관적으로 의사를 전달했고, 연수영은 어느 군사보다 먼저 그녀의 부대를 함선에 태우며 전방에 배치했다.

보급, 변수, 정황 그 모든 것을 다 따져도 이제는 속도를 내야 할 때였다.

* * *

“당장 탕정군의 군사를 불러들여라! 부속 산성에 봉화를 피워 올려 5방에도 사비의 정황을 알리란 말이다!”

육로와 수로 양방향에서 10만의 군세가 밀고 들어오자 참다못한 의자왕은 시뻘게진 안색으로 호통쳤다.

“임존의 성주 흑치사차가 반란을 일으켰사옵니다!”

“탕정의 군사를 물리면 연개소문과 반란군이 이리 내려올 것입니다! 말갈군이 접근하여 수차례 탕정군에서 접전이 벌어졌다 합니다, 어라하.”

사타천복과 국변성이 잇달아 북방 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리자 소란스러운 어전의 분위기는 일순 침묵으로 변해 갔다.

의직과 계백의 패전 이후 전세가 걷잡을 수 없이 변전된 여파였다.

“고구려 군사가 바다로 들어오니 나성의 방비가 소용이 없습니다!”

“어서 궁에서 나가 소부리성(부소산성)으로 피신하십시오! 어라하.”

“곧 이 궁 안에도 고구려 군사가 들이닥칠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사옵니다!”

이내 침묵을 깬 신하들의 의견은 궁을 버려야 한다는 말뿐이었고.

“왕자들과 신하들을 연남산에게 보내어 고구려 태왕이 노한 요구들을 들어주어 화친을 청해야 합니다!”

부여효가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은고가 새 방책을 제안하면서 귀족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 방책이 옳다며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일었으나.

“성충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을 후회한다.” 《삼국사기》

머리를 움켜쥔 의자왕은 먼저 간 이를 떠올리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