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257화 (257/335)

257화 백가제해 (4)

해가 중천에 뜬 아침. 백제 국경 북쪽에서 모피로 이루어진 가죽옷을 한두 벌씩 걸친 군사가 내려왔다.

동북면에서 남하한 고구려·말갈인으로 구성된 경기병 5천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가르는 산맥과 아리수 하류 지역에 이르는 교통로상에 위치하는 백제의 성을 급습했다.

“쳐랏!”

이들을 지휘하는 민첩한 체고의 노련한 고구려 장수는 동북면 12주를 다스리는 책성주 타인(他仁). 요서에서 연남산을 만난 뒤 새로 성을 사성받아 연타인(淵他仁)이 된 사내로 양만춘과 함께 무너진 돌궐 부흥에 성공하고 북방을 한바탕 휩쓴 뒤 돌아와 기마에 자신 있는 전사들을 선발하여 삼한일통 대업에 합류하였다.

그 휘하에는 동돌궐에서 건너온 초원의 전사 3백이 포함돼 있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한 형제들을 돕자!”

“목숨으로 은혜를 갚자!”

과거 이세민의 공세에 힐리가한이 포로로 사로잡힌 뒤 온갖 모욕을 당하며 사망하고 동돌궐이 멸망하여 서돌궐로 이동한 상당수의 돌궐인들이 다시 옛 고토인 만리장성 이북의 초원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돌궐 독립을 위해 함께 피 흘리며 싸워 준 형제의 나라를 위해 보답하고자 새로 칸으로 추대된 결사솔의 아우가 돌궐 부흥에 가장 많은 군공을 세운 초원의 전사들을 직접 뽑아 고구려로 보내 주었다.

“저쪽에도 사다리를 대라! 성을 넘어라!”

“조금만 더 힘내라! 가잠성이 무너진다!”

한편 북방에서 고구려·말갈 연합 기병이 내려오기에 앞서 연개소문의 지휘하에 고연수와 고혜진이 이끄는 보병 7천이 가잠성의 동문과 서문을 차륜전으로 연일 공격하고 있었고, 이날 연타인의 동북부 군사의 합류는 사실상의 마무리 일격과도 같았다.

성벽의 백제 깃발이 내려가는 모습을 몸소 지켜본 연개소문이 가잠성 공략에 대해 털털하게 평을 했다.

“백제군의 기강이 예년만 못하다더니 계백이 없는 가잠성이 사흘을 넘기지 못하는군.”

반백 년간 백제와 신라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교통 요지에 최정예 군사는 온데간데없이 오합지졸만 남았다. 계백이 사비로 소환당하면서 그 자리에 의자왕의 먼 친척인 부여씨가 부임하였고 제대로 군사를 통솔해 본 경험조차 없으니 백제군의 기강이 해이해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일 김유신이 살아 있었더라도 적은 군사로 가잠성을 그리 어렵지 않게 수복하였을 것이다.

“설마 저희를 고작 이딴 성 하나를 넘으라고 아드님이 불렀단 말입니까? 대막리지.”

우락부락한 인상의 연타인이 가잠성 내의 백제 깃발을 두 손으로 부러뜨리며 연개소문을 쳐다보았다.

“누가 동북면 출신 아니랄까 봐. 여전하구만, 자네는.”

“아드님으로부터 대막리지의 성을 받았사옵니다. 이제는 좀 형제처럼 대해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헤헤.”

“내 일찍 자식을 보았다면 내 아들뻘이거늘, 형제는 무슨.”

“형제가 아니라 아들이 되는 것입니까? 흐헤헤.”

연개소문의 말에 연타인이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순박하게 웃었다.

‘남산이 녀석, 동북면 촌뜨기 호랭이 놈을 저리 고분고분 길들이다니.’

동북부의 실세가 남산의 명에 순순히 군사를 내려 보내온 것에 연개소문은 내심 감탄했다. 연개소문의 특명이 아니라면, 설사 태왕의 명일지라도 갖은 핑계를 대며 파병을 거부할 고구려 내에서 가장 까다로운 세력이 바로 동북면 12주와 책성부였다. 과거 구 왕성인 국내파와 신왕성인 평양파의 갈등에서도 화를 피해 갔던 동북면 12주는 끝까지 중립을 유지하며 최후의 승리자에 머리를 굽혔다.

그리하여 연개소문 스스로 자신의 사후 책성 12주의 군권을 미리 염려했을 만큼, 자신에 대한 그들의 기회주의적인 충성심이 정작 고구려에는 칼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시대적인 분별을 가늠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자신이 보낸 고구려 최정예 군사와 이세민의 백만 대군이 열지 못한 안시성주의 마음의 문을 열었고 누이인 연수영과 자신을 화해하게 하였으며, 좀처럼 충성을 보이지 않던 책성주의 마음을 흔들었다.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세력가들의 마음을 얻는 것. 이는 그 녀석을 제외하고 고구려 전역에서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작 연씨 가문의 성을 내어주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연개소문은 진작에 사성 정책을 폈을 것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200리를 말을 몰고 가면 백제 북쪽 변경의 탕정군이 나옴세.”

“호오, 거기가 우리 군의 진정한 전장이란 말씀이십니까?”

“내 말 아직 안 끝났네.”

연타인이 멋쩍은 나머지 코를 비볐다.

“헤헤. 말씀하십시오.”

“남산이 녀석의 계책에 속은 의자가 지금쯤 내가 북에서 내려올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 자네가 동부가 깃발을 앞세워 거길 쳐 주어야겠네.”

연타인이 주저하는 눈초리로 입을 열었다.

“하면 방비가 잘돼 있지 않겠습니까? 천하의 대막리지께서 군사를 몰고 갈 곳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치는 척만 하라는 게야.”

“호오, 성동격서(聲東擊西)로군요. 누가 대막리지의 자제분 아니랄까 봐. 헤헤.”

두 눈을 반짝인 연타인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점령할 수 있다면 굳이 치는 시늉만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자신감 찬 표정으로 말하는 타인을 보고 연개소문은 “그건 네가 삼한의 산성의 험준함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 호랭아.”라고 한 소리 해 주려다 말았다. 직접 경험하고서 눈치채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콧대 높은 동북면 출신들이 삼한 전선의 어려움을 알 필요가 있기도 하고 말이다.

“다 쉬었으면 가자. 탕정군으로 진격한다!”

연타인이 동북부 군사들을 거느리고 곧 떠났고 연개소문이 가잠성 성벽에 올라 남쪽의 정세를 살필 무렵, 말객 이기우가 전서구를 받고는 따라 올라왔다.

“신라군이 탄현을 넘었고, 삼한도행군은 도비천성을 쳐 함락했다 하옵니다. 이제 사비에 전군이 모일 것입니다! 대막리지.”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막내아들의 계획대로 일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는 첩보였다.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옛 뿌리와 하나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서라벌은 몰라도 옛 뿌리 중 하나인 남부여의 왕궁은 한번 들러 볼 만한 가치가 있질 않겠는가.”

연개소문이 도성으로 귀환하지 않고 아직까지 삼한 전선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 * *

부여효를 앞세워 은상을 내쫓고 도비천성을 점거하면서 흐름을 탄 덕분인지 백제가 자랑하는 철기병을 안심시킨 뒤 성안으로 유인하여 하룻밤에 일망타진하였다.

선기군이 봉수대를 보고 올라오는 백제 원병을 물리친 뒤 길목마다 설치해 둔 임시 역으로 말미암아 이날 도비천성으로 진군하는 백제 철기병의 이동 소식을 정확하게 입수하였다. 은상이 조금만 더 성문을 늦게 열었다면 일망타진은커녕 오히려 피해를 보았겠으니 어디까지나 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었다.

히이잉. 전신을 무장한 충격기병은 좁은 성안이 아니라 성 밖에서 싸워야만 그 가치를 발하기 마련인데 내가 만들어 둔 목책과 수레 함정에 꼼짝없이 빠진 나머지 그 속도와 파괴력을 활용조차 하지 못하고 분쇄되었다.

“백제의 좌평이라는 잡니다. 여의치 못하니, 남은 군사 2백과 함께 백기를 들고 투항하였습니다!”

백제 장수를 포박하여 끌고 온 검모잠이 나를 향해 자신 있게 외쳤다. 백제군이 당도하기 불과 수 시간 전 도비천성에 입성한 검모잠과 가야군은 피로했다. 도비천성을 노리는 백제군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내가 하루 더 수고를 시켜 겸연쩍었는데 다행히도 기우였던 모양이다.

“추, 충상이라 합니다! 대고구려 삼한도행군대총관께 인사 올리겠사옵니다.”

패장 충상이 두 손이 결박당한 채 매우 정중히 내게 인사했다.

본래 기록대로라면 황산벌 전투에서 김유신의 포로가 되었을 백제의 좌평이 이번에는 도비천성에서 내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면서 나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자는 또 포로가 될 운명도 아니고. 어딘가 찝찝했지만 일단은 백제 내부의 정보를 얻어야 했다.

“백제의 어라하가 우리 고구려가 이 도비천성에 이른 것을 아오?”

내 물음에 충상이 황급히 답하였다.

“모, 모르옵니다! 연개소… 아앗, 송구합니다!”

“말씀 계속하시오.”

“대, 대막리지의 깃발이 북쪽을 덮었고 가잠성이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있으니 어찌 고구려의 대군이 신라성과 추풍령을 통해 이리 넘어올 것이라 여기겠습니까? 하여 저희 어라하께서는 지방에서 징발한 군사의 반을 탕정군으로 보내셨습니다.”

충상의 말에 백제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내가 계획한 계책이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알았다.

‘예상대로인가.’

한편 얘기는 들었지만 연개소문이 내가 요청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해 주고 있음을 백제 장군으로부터 재확인했다. 혹여나 부족할지 몰라 국원성에서 출병하기 직전 동북부의 책성주에게 빠른 군사 5천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백제 전선에 10만의 군사가 투입된 상황에 보급이 아슬아슬했으나, 육포 문화가 유목 말갈 부족들이 사는 터전까지 유행하듯 퍼졌고 끼니를 육포로 때우는 부대들이 늘어나면서 5, 6천 정도는 북쪽에서 데려와도 크게 부담 없는 병력으로 계산을 마쳤다.

어찌 됐건 의자왕이 북부 탕정군으로 보낸 지방의 군사 1만 5천을 묶어 버린다면 평지와 같은 사비를 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으아악! 사, 살려 주십시오! 중리위두대형.”

노획품들을 군사들에게 공평히 나누어 준 뒤 슬슬 사비로 진군할 군제를 편제하려던 때에 건너편 성벽 쪽이 크게 소란스러웠다.

“네 아비가 내 소중한 딸자식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의 목을 베어 네 아비의 면전에 던져 줄 것이니라.”

무슨 일인가 싶어 가 보았는데 전날부터 벼르고 벼르던 김춘추가 직접 부여효를 죽이겠다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의자의 핏줄을 제 손으로 벨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한밤에 도주해 잡힌 백제인 포로가 의자왕의 아들이자 백제의 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춘추의 눈은 뒤집혔다. 도비천성을 점령할 수단으로 쓴다는 말에 물러갔으나 계책이 성공한 뒤 총명하고 신중한 판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복수에 눈이 먼 그런 눈빛으로 부여효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제, 제발! 살려……!”

김춘추가 부여효의 목을 조르며 손에 거머쥔 단검으로 그 숨을 거두려 할 때.

휙! 챙!

내가 단숨에 비도를 던져 김춘추의 단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만두십시오. 신라의 왕족이 그 손에 피를 묻히셔야 아랫사람 보기 민망할 따름입니다.”

“보라면 보라지요! 이미 서라벌의 온 백성이 내 딸자식이 백제 놈들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김고타소의 죽음. 그저 역사서에 한두 줄로 기록된 작은 사건일지는 모르나 신라 왕가를 포함하여 온 신라 백성들이 알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민심을 온통 김춘추에 집중하게 만들었으며 임금이 되었고 김춘추는 그런 신라인들로 하여 제 목숨을 걸고 자신의 복수를 갚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현재 삼한을 아우러야 할 고구려의 시선에서 본다면 계속해서 분란에 휩싸이며 다투는 사적인 복수심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복수심으로 신라를 꾀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복수는 계속해서 복수를 낳을 테니까.

“인(仁)을 묻는다. 둘째 아드님 이름을 그리 지으신 줄로 압니다.”

“이런 자리에서 유학을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백제가 무도하여 죄가 걸주(桀紂)보다 지나치니, 이는 진실로 천명에 순응하여 백성을 위로하고 죄지은 사람을 칠 때입니다. 그 아들에게도 죄가 있다면 마땅히 그 아비 앞에서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미 전사한 김유신의 말로 백제 정벌의 명분을 설명했다.

백제를 복속시키고도, 신라를 복속시키고도 부흥군이라는 명목하에 고구려에 대항하는 세력이 나타난다면 이 국력을 소모하여 통일하는 의미가 없다.

그러니 나는 일단 그 복수심을 잠시 가라앉히며 김춘추의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부여효의 존재는 도비천성의 성문을 열었던 것처럼 외교적 카드로 쓸 수 있었고 의자왕이 빠진 백제를 다스리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인 요소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고타소야. 흐흑.”

별이 무수한 밤하늘을 올려다본 김춘추가 먼저 세상을 떠난 딸자식을 떠올렸는지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물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비천성을 한차례 순시한 내가 제장들을 불러 모아 지시했다.

“오늘 밤은 푹 쉬고 내일 전군 탄현을 넘을 것이다.”

그 명에 제장들이 우렁차게 대답하였고, 이튿날 삼한도행군이 일제히 신라군이 통과한 숯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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