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242화 (242/335)

242화 삼한의 정략 (7)

“너희 신라 임금이 대고구려국 태왕 폐하의 명을 받든 삼한도행군대총관의 화친에 응하였다! 무기를 버리지 않고 저항하는 이들은 곧 신라의 반역자들이자 폭도들이니 신라의 율령대로 모두 참형에 처하게 될 것이니라!”

조령 고개 너머 가야군과 함께 일선주(一善州) 장악을 맡은 대형 검모잠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서라벌 왕성의 주인 진덕여왕의 인장이 찍혀 있는 왕명서와 법흥왕 때 세워진 율령을 보이며 격렬하게 저항하는 신라군을 협박했다.

추풍령을 경계로 백제군 동태에 초점을 맞추고 일선주(一善州)에 주둔하는 신라군은 정 반대편인 나는 새도 넘어가기 힘든 고개에서 몰려온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으며 고립무원에 처했다.

“포, 폭도라니?!”

“항복하겠소!”

“우리는 신국의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군사들이오. 결단코 역도가 아니외다!”

그나마 화랑들의 신조라 할 수 있는 사군이충(事君以忠)과 임전무퇴(臨戰無退)의 마음으로 황산강의 지류와 인근 산성을 오르내리며 고구려군에 대항해 끝까지 저항하려 했던 신라군이었으나, 도리어 명예를 잃고 반역도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당황하며 헐레벌떡 하나둘 왕명서와 율령의 내용을 듣고는 산성과 개울에서 내려와 투항했다. 저항할 명분마저도 없다면, 그저 불명예스러운 개죽음을 당할 판국이니 그들로서도 별수 없는 것이다.

“산이고 개울이고 수풀이고 꽁꽁 몸을 숨겨 버린 신라군 탓에 추풍령까지 진군이 어려울 것이라 보았는데 이 추세라면 오늘 밤 안에 당도하겠습니다, 대형.”

옆에서 투항하는 신라군의 무장 해제를 지켜본 전내진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선주(一善州)를 온전히 장악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가을바람 고개라 불리는 서쪽의 추풍령(秋風嶺) 고개를 선점해야 했다. 신라와 백제와의 국경인 이 고개는 재차 대야성을 함락한 백제군이 언제라도 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거야 남산 공자가 이리도 빨리 신라 여왕과 김춘추의 항복 문서를 받아 준 덕분이 아니겠소? 물론 저 전령병들이 쉬지 않고 달려온 덕분이 가장 크겠지만. 허허.”

검모잠이 서라벌에서 올라온 고구려 전령병들을 치하하면서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

“과찬이십니다. 저희야 그저 말을 몰아 달려왔을 뿐, 이 모든 것은 군기와 체계를 올바로 잡게 해 준 대총관의 덕택이지요.”

“거, 참으로 겸손한 전령병이로세. 아랫사람은 제 주인을 닮는다더니, 그 말이 맞구만! 맞아. 하하하.”

신라 왕궁에서 진덕여왕의 왕명서를 가져온 이는 삼기군 내에서 말을 가장 잘 몬다는 니루의 대장들이었다. 삼한도행군의 한 축으로서 황산강을 따라 서라벌로 진군했던 그들은 삼기군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따로 만들고 임시 역참을 설치하였다. 그 덕에 여러 마리의 조랑말을 이용하여 표식을 따라 쉬지 않고 달려와 겨우 반나절 만에 월성 왕궁에서 신라 여왕의 왕명서를 가지고 일선주(一善州)의 검모잠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를 증명해 줄 신라 육두품 관리가 공산 부근에서 허겁지겁 뒤쫓아 오고 있다고 하니, 이제 일선주(一善州) 장악은 시간문제였다.

“하나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닙니다, 대형. 서라벌에 고구려군이 입성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백제가 움직일 테니까요. 벌써 대야성이 백제군으로 가득합니다.”

전내진이 우려 섞인 어조로 남쪽 가야산 부근을 가리키며 말했다. 산 너머에 있는 요새 대야성이 재차 백제 세력권이 되었다. 백제 기병이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 사이에 황산강을 건너올 수 있다.

“그렇구려. 이곳 민심 또한 안정시키는 것이 쉽지 않으니 아직 갈 길이 멀겠소. 그래도 다행히 대막리지께서 국원성에 오시어 물자를 보내시고 후방을 든든히 지켜 주고 계시니 안심이 되외다.”

죽령의 김유신군을 기습하고 빠질 생각을 하고 있던 검모잠은 어찌어찌 연남산의 삼한도행군과 합류하며 이곳까지 이르게 되었다.

남산 공자가 이끌고 온 삼한도행군이 신라 땅까지 온 연유는 그저 영토를 넓히거나 성을 노리는 전략적 목표가 아니었다.

‘설마 일통삼한(一統三韓)이라니!’

서국 당나라만을 신경 쓰기에 급급한 고구려의 지배 계층에서 좀처럼 나올 수 없는 전략적 목표의 설립.

진작부터 그것을 심중에 세워 두었기에 배를 만들어 우산국과 가야를 도모하고 죽령 이서를 수복하였던 것이나, 검모잠은 뒤늦게 깨달았다.

막상 대막리지마저 친히 국원성에 이르며 전황을 관장하니, 남산 공자의 의중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즉, 그것이 곧 대막리지의 의중이 되면서 말이다.

“백잔 놈들이 오기 전에 서둘러 갑시다.”

잠시 휴식을 취한 검모잠은 마찬가지로 안개 뒤에 숨은 가야산을 보고는 말의 고삐를 쥐며 전내진을 재촉했다.

삼한일통이라는 고구려의 전략이 명확한 이상, 백제와 대치하게 될 고지를 반드시 선점해야 했다.

* * *

딸랑딸랑. 서라벌과 삼한도행군이 거쳐 온 신라 땅의 민심 안정은 호태왕의 신라를 향한 구원군 파병의 의의를 또렷이 아는 삼기군으로 말미암아 수월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삼한도행군이 서라벌에 입성한 지 불과 사흘 만에 호태왕 방울을 몰라보는 신라 백성들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거기다 강화에 응한 신라 조정이 내 요청대로 관리를 파견하며 적극적으로 나서 주면서 재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민심 수습과 전환 역시 일단락되고 있었다.

“가만 들어 보니까 고구려가 이리 군사를 몰고 온 이유가 납득이 되는구만.”

“그거야 그렇지! 호태왕께서 구해 주신 은혜도 모르고 감히 백제와 화친하여 고구려의 뒤를 치려 했으니 말이야.”

“괜스레 부끄럽네. 흉악무도한 왜적들로부터 지켜 준 고구려를 그리 배신하다니.”

“그 때문에 우리 폐하께서도 고구려의 장군께 직접 사죄한 것이 아니겠는가? 김유신 장군님만이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으이.”

이처럼 서라벌 내의 여론 유도도 순조로웠다.

“백제 놈들이 진짜 악랄한 놈들이지! 김유신 장군님이 고구려와 싸울 때 치사하게 대야성을 훔치다니!”

“지난번에도 그랬지! 춘추 대인의 따님을 죽인 악독한 백제 놈들 같으니!”

“애초에 고구려를 먼저 배신한 나라는 호태왕께 노객(奴客)을 청하며 신속(臣屬)한다고 맹서했던 백제왕이라고 하질 않았나? 그놈들이 문제였어! 고구려와 잘 지내려 했던 순진한 우리 임금님을 꼬드겼으니!”

고구려군의 이번 거병과 진군에 명분을 달며 설득한 뒤 그 분노와 증오의 시선을 100년 원수지간인 백제로 돌리는 것. 이미 100여 년간 백제와의 전쟁으로 줄기차게 징병과 징발을 당했던 서라벌 민심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달라진 서라벌 민심을 몸소 느끼며 유도했던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만족했으나, 불현듯 나타난 문제는 바로 며칠 전 월성 궁궐 연회에서 설인귀의 발언으로 내 처지가 꽤나 난감해졌다는 것이다.

“나보고 김춘추의 여식과 혼례를 치르라고요?”

이를 속에 담아 두고 있던 나는 다시 며칠 만에 설인귀를 불러 물었다.

“신라의 임금이 제 청을 들어 주군과 어울릴 만한 참한 규수를 찾아보겠다며 직접 알아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그리 추천하지 않았습니까? 신라의 국상도 제 주인의 명이라면 흔쾌히 따르겠다 하였고요. 주군의 마음만 서신다면야, 뭐. 흐허허.”

오늘도 어김없이 신라주를 들이켜는 설인귀가 음흉하게 웃었고 이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걸걸중상과 걸사비우의 안면을 보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것들이 정말.

“서라벌 민심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도련님께서 삼한일통을 노리고 계신다면, 능히 신라의 협조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저들만큼 백제의 지리와 동태, 군 상황을 빠삭하게 아는 이가 없으니까요.”

잠시 후 다시 도련님이라 부르며 뜻밖에도 그리 말을 꺼낸 이는 딱딱한 표정의 옥소였다. 표정과는 다르게 정치와 군사까지 신경 쓰는 놀라운 정략적 안목이긴 하다. 옥소라면 솔직히 나보다 도성에서 더 오래 머물며 귀족들 간의 정략혼인이고 앙혼의 재물이고 하는 여러 경우를 보았을 터이니 말이다.

혈족과의 지속적인 혼인으로 성골을 지키고자 했던 신라 왕실만 하지는 않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귀족들 간 많은 정략혼인이 이루어진 고대 삼국의 지배 계층이었다. 그게 얼마나 심하면 고구려 내에서도 태왕후만을 따로 배출하는 귀족 가문이 정해져 있었다는 듯 말하겠는가.

또 옥소의 말처럼 여기까지 온 이상 신라의 협조는 삼한일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삼한도행군이 무력으로 서라벌을 점거하지 않은 이유는 무력으로 신라를 정벌하였을 경우, 이후 신라 민중들의 저항과 아군의 피해 규모에 따라 내가 세운 삼한일통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와 신라 부흥군 같은 예상치 못한 적들과 다시 싸우게 될 사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백제를 치려다 도리어 신라 부흥군의 배후 공격을 받게 될지 누가 알랴.’

김춘추의 위상이 신라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실추되었다고는 하나,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서라벌 백성들의 그를 향한 덕망은 김유신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진덕여왕이 죽은 후 화백회의에서 섭정왕으로 추대된 알천이 괜히 덕망을 이유로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하며 신라의 태종이 탄생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고타소 공주를 죽인 몹쓸 백제 놈들!”

“이제는 잔악무도한 백잔 놈들인 게지!”

그러니 신라 백성들이 대야성 성주의 아내이자 김춘추의 맏딸 고타소의 죽음을 제 가족을 잃은 슬픔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본래 역사에서 신라가 기어이 승자가 된 것은, 서국을 끌어들인 것에 앞서 백성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책략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큰 저항 없이 5만의 군사를 모집할 수 있었던 것이고.

“작은 막리지도 이제 성년이십니다.”

“관례를 올리고 혼례도 치르셔야지요.”

제장들 사이에서는 이미 내 혼례가 정해진 듯 말하고 있었고, 그것은 신라 쪽도 거의 마찬가지의 분위기였다.

‘이거 설마 내가 희생당할 날이 올 줄이야.’

적당히 다른 삼기 제장들의 혼인 정책 추진으로 정략을 도모하고자 했으나 이렇게까지 판이 커진 이상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자의 나이가 10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하고 혼인하는 서옥제 풍습을 가진 나라가 고구려인데 지난번처럼 나이 탓을 댈 수도 없고.

또 김춘추 부자의 복수심만을 믿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왕건이 그러했던 것처럼 정략혼인은 이러한 변수를 줄여 줄 일임에는 분명하다.

“제가 육지와 바다를 넘나들며 봐 온 백제군은 김유신의 신라 정병 못지않았습니다. 삼한도행군이 사기충천해 있다고는 하나 삼한일통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한편 옥소의 말을 듣고 무언가 깨달은 설인귀가 내게 그리 조언했다.

지난 삼국 회담 때 나와 함께 계백의 백제군을 마주한 설인귀였다. 가야 정벌 당시 남해 국경을 직접 살폈을 것이고, 백제 수군과도 접한 적이 있으니 설인귀는 나 못지않게 백제 전력을 알고 있다.

‘그 노익장이 지키는 신라도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도 자신할 수 없어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수군을 더하여 백제를 끝장냈으니 삼한도행군만으로 만만할 리가 없지.’

백제는 자그마치 나당 연합군 18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끝장낸 나라였다. 고구려가 그만한 군사를 마련하고 신라가 백제와의 전쟁으로 얻은 군사 정보를 더하자면 한동안 북방과 대당 전선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야 한다.

그걸 피하고자 신라와의 강화에 응했으며 신라군의 전력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올시다. 신라가 고구려에 속하면 백제는 다시 왜를 끌어들여 그 옛날 호태왕께 반기를 들었던 때처럼 삼한을 위협할 것입니다.”

왜에서 건너온 가야 출신 비라부가 그리 조언을 주었고 심사숙고한 나는 제장들을 향해 말했다.

“좋습니다. 내가 장가드는 것으로 삼한을 일통하여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낼 수만 있다면야 못 할 것이 없지요.”

* * *

“뭐어? 누가 장가를 들었다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연개소문은 국원성에서 막내아들의 혼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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