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삼한의 정략 (2)
다사다난했던 삼한의 정략은 역사적으로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한 인물의 욕망과 복수심이 삼한의 운명을 결정지었으니, 김춘추 개인의 사정이 신라 입장에서는 엄청난 공력을 들이며 끝끝내 정치적 책략을 완성한 작전으로 이어지게 된 배경이다.
그 대의가 삼한의 미래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말이다.
-수백 년 사대주의의 용렬한 종이 된 역사가들이 그 좁쌀만 한 눈에 보이는 대로 연개소문을 가혹하게 평하고 ‘신하는 충성으로 임금을 섬긴다.’라는 불구의 도덕률로 그의 행위를 규탄하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다만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다.’라는 노예근성으로 그 업적을 부인하고 시대적 대표 인물의 유체를 한 점 남김없이 씹어 대는 것은 내가 크게 원통히 여기는 바이다. 《조선상고사》
이석규 교수가 언급했던 단재께서도 이를 두고 그리 통탄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이세민이 말하는 고구려 정벌의 명분 자체가 연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또 대신들을 살육한 것이라 공공연히 떠들어 댄 것이니 단재께서 언급한 사대주의의 용렬한 종이 된 역사가들과 같은 논지였던 셈이다.
‘중원과 막북의 유일한 지배자인 황제천가한(皇帝天可汗)이 만백성 위에 중화적 법도와 질서를 구현하고 있는 자신의 치세에 왕을 죽이고 권력을 독단하는 연개소문과 같은 대역죄인과 공존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끝을 모르는 이세민의 야심은 후일, 당이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신라마저도 복속시키려 했던 것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던 때에 같은 시기 나타난 신라 중대 왕실의 시조 격 되는 김춘추의 사대 역사는 이후 유구한 세월 동안 이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고구려의 이름을 이은 고려 정도야 아주 잠시 황제국을 자칭하기도 하였으나 그 모계가 재차 김춘추의 후손들인 신라계로 채워지고, 신라계 귀족들이 재차 고려의 지배 계층으로 차례차례 자리 잡게 되면서 사대 역사는 다시 시작되고 말았다.
그 뿌리부터 뽑자면, 김춘추로 이어지는 신라의 역사부터 도려 내야 했다.
“신라의 여주는 당장 월성 왕궁의 문을 활짝 열고 대고구려 태왕 폐하께서 보내신 나와 삼한도행군을 겸허히 맞이하십시오.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의 모든 대소신료들이 참석하여 당의 관복과 관제를 철폐하겠다 맹약하십시오. 신라는 이날부로 고구려의 연호만을 쓸 것을 약조하여야 하며, 고구려의 번국으로서 마한, 변한의 연합인 병마한(幷馬韓)에 속하여 서국(西國)에 선전포고 하십시오.”
월성을 노려보며 김춘추를 향해 그렇게 요구한 나는 크게 3가지를 뽑아 삼한이 합심하여 당과의 사대 관계를 청산하고 함께 싸우길 명시했다.
부들부들. 내 요구를 직접 들은 김춘추의 낯짝을 보니 울화가 치미는 것 같았다.
그야 내 말에는 당과의 외교 성사로 그나마 체면치레한 김춘추의 정치 생명이 자칫 끝날 수 있는 치명적인 요구 조건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일이 벌어지고 나면 외교 실패와 신라 지배층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준 김춘추가 다음 후계자가 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워질 전망이다.
하물며 친족 간 정략혼인을 하여 무조건적으로 김춘추를 지지해 주었던 신라 군부의 으뜸인 김유신마저 없는 상황이다. 군권의 불안정과 귀족들의 신임을 모두 잃은 김춘추는 이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폐위된 신라왕 진지왕의 손자에 불과한 위치로 전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모든 것은 신하인 저의 불찰이지 우리 폐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천하를 통일한 당과의 사대는 저희 같은 작은 나라에는 시대적 사명이었을 뿐입니다. 하나 이리 대국이 꾸짖으시며 이르시니, 당의 관복과 관제를 철폐할 것이며, 고구려 태왕의 연호를 쓸 것을 약조합니다. 부디 이만 군사들을 물려 주십시오.”
이를 아는지 다급히 말하는 김춘추의 입이 바빠졌다. 그러한 조치가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럴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일단 순서가 바뀌었다. 군을 먼저 물린 다음에 일을 이행한다는 게 아닌가.
아니면, 별주부전에서 배운 교훈을 다시 써먹겠다는 것일까.
“오장을 꺼내어 씻어서 다시 넣을 수 있는 토끼란 없습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그 속을 갈라 간과 심장을 내보이셔야 할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김춘추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단호히 말했다.
거북과 토끼의 이야기, 별주부전. 김춘추를 위해 구토지설(龜兎之說)을 들려준 선도해의 배려에는 연개소문이 바라보는 삼한의 정략이 그 배후에 깔려 있었다.
당과의 일전을 앞두고 마한과 예맥이 그 옛날 한나라에 대항해 태조태왕을 따라 옛 땅을 수복하기로 힘을 모았던 것처럼, 삼한의 후예인 백제와 신라가 나란히 고구려와 함께 당에 대항해 줄 것을 기대하기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백제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간 김춘추가 신라의 왕이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지.’
뒤늦게 당나라와 접촉하려 한 김춘추가 신라의 다음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죽이려 했으나 때는 늦었다.
“차라리 나를 죽이십시오! 그것이 고구려의 대막리지가 원하는 게 아닙니까?”
연개소문에 의해 두 차례나 목숨을 잃을 뻔한 김춘추가 그리 울부짖었다. 사실 나도 김춘추를 죽일 기회가 앞서 한 차례 있었으나 단념했다.
김춘추가 이세민을 만나고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군사원조를 청하고 돌아오는 귀국길에 연개소문이 수군을 보내어 죽이려 했다. 그러나 신라 사신 종사관 온군해가 의관을 바꿔 입고 작은 배를 탄 김춘추를 대신하여 죽었다.
이를 미리 아는 나로서는 고구려 해협의 해양 경찰 격인 해라장(海邏長)들을 잘 구슬렸다면 오고 가는 배에 올라탄 김춘추 암살에 성공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아들인 법민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가야와 아리수 일대를 장악한 이상 굳이 암살 같은 협잡에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춘추만큼 그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인물도 없었기에 차후 백제 정벌에 누구보다 먼저 앞장설 도구로 그 가치를 평했다.
오히려 자주적이고 독선적인 법민이나 다른 신라 귀족에게 김춘추의 세력이 고스란히 넘어간다면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기껏 회유에 공들이고 있는 김인문도 있는 상황에 제 아버지가 고구려군에 죽임을 당한다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서라벌 입성 후에 기고만장할 비담과 염종을 견제할 세력도 있어야 했다. 김유신을 잃고 신라 귀족들의 신뢰를 잃어 왕위에서 다소 거리가 멀어진 김춘추는 분명 그 역할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김춘추의 귀에 속삭였다.
“불구대천의 원수를 두고 그냥 죽으시겠습니까? 신라 사직을 보존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얘기를 들은 김춘추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신라의 사직은 진덕여왕이 숨을 거두고 다음 후계자 문제로 신라 왕실에 거센 풍파가 몰아칠 때 거두어도 늦지 않는다. 김춘추의 욕망을 이용하여 삼한을 일통하는 것이 내가 작금에 결정한 삼한의 정략이었다.
* * *
“너희는 저쪽 황산강 방면을 차단하고, 우리는 영일만 쪽을 맡는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라.”
“서둘러라! 서둘러!”
김춘추를 돌려보내며 서라벌에 잠시 시일을 주는 사이, 삼기군은 고삐를 바짝 조이기 위해 서라벌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모든 길목에 봉쇄 조치를 했다.
서라벌 인근의 지형은 온통 산으로 뒤덮여 있어서 자연적인 요새가 형성돼 있다. 산 매복을 중심으로 전투가 벌어진다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것이기에 미리미리 대비를 해 놓아야 했다.
“굳이 저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김춘추는 배신할 사람입니다. 이미 고구려에 가 거짓을 아뢴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목을 베십시오!”
김춘추를 돌려보내자마자 비담과 염종이 지속적으로 내 막사를 찾아와 총공격을 요구해 왔다. 흠돌과 진공마저 설득했는지 같이 따라왔으며 가야 세력인 비라부조차 그 뒤에 서며 내 답을 기다렸다.
누가 한 시대 신라를 대표했던 정치인 아니랄까 봐 그토록 깔보던 가야 세력까지 선동해서 데려왔다.
‘내 이러니 김춘추의 목숨을 거두는 일을 망설인 것이지.’
짧게 한숨을 내쉰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딱 하루 생각할 말미를 준 것이오. 해가 뜰 때까지 성문이 열리지 않으면 그대들의 말대로 하겠소.”
그렇게 말하며 돌려보낸 나는 충차 제작과 군사들이 수레에 군수품을 싣는 것을 감독하며 신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문이 열린다!”
이윽고 날이 밝자 한 군졸이 서라벌을 가리키며 외쳤다.
드드드드드-!
항복일지, 결사 항쟁일지 모를 서라벌 서울의 성문이 요란하게 열리고 있었다.
* * *
“우리 태자와 병관좌평이 대야성을 비롯하여 빼앗긴 10여 성을 되찾았다 합니다. 경하 드리옵니다, 어라하.”
은고가 방방 뛰며 달려와 태자와 은상의 공을 알리자마자 사위에서 일제히 의자왕을 향해 예를 차렸다.
““경하 드리옵나이다! 어라하.””
인사를 개편하고 황권을 다지려는 의자왕에게 대야성을 도로 얻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결과였다. 은상은 의자왕에게 대성을 바쳐 패전을 수습할 절호의 기회였고, 은고로서도 새 태자와 오라비가 거두고 돌아온 군공에 만족했다. 연남산의 고구려군 보급에 이어 새 태자의 능력을 확실히 보여 줄 호기였다.
그러나 실상은 변고가 생긴 신라가 급히 국경의 병력을 황산강 일대로 이동시키면서 취약해진 대야성과 작은 성들을 거의 무혈로 점령한 격이었다. 심지어 서라벌에서의 보급이 끊어져 백제에 먼저 투항한 신라성들도 더러 있었다.
“김유신이 죽었답니다.”
이러한 내막을 소상히 아는 흥수가 백제의 공세를 번번이 막아 낸 불세출의 신라 노익장의 생사를 꺼냈다. 친위 정변으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 오른 의자왕이었으나, 그 소식에 옥좌에서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일어섰다.
“뭐라? 김유신이 죽었다?”
웅성웅성. 그러한 소식에 부여궁 어전 내 백제 귀족들조차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백전노장 김유신이 죽었다니, 대체 누가 그러한 일을 벌였단 말인가 하고.
“연개소문이 국원성에 있사옵니다! 어라하.”
대좌평 사타천복의 외침대로 그 주인공은 중원 지방의 국원성에서 고구려군을 지휘하는 인물로 추정되는 연개소문이 유력해 보였다.
흥수가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나왔다.
“연개소문이 아닙니다. 지난날 연남산이 보기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마목현(麻木峴)을 넘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흥수 너는 그 애송이 연남산이 신라의 백전노장을 이기고 그 수급마저 베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미간을 좁힌 의자왕이 소매를 걷으며 고개를 치켜들었고, 대신들이 저마다 조소를 터뜨렸다.
“이거 아무래도 내법좌평이 노망이 드셨나 봅니다. 허허허.”
“남만으로 유배 보낸 계백을 불러들이고자 헛소리를 하시는 건 아닐 테지요?”
“어라하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신하들의 분위기를 수렴한 의자왕이 이내 옥좌에 다시 앉으며 헛소문으로 받아들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장수가 바로 그 김유신이다. 짐과 일전을 치르고도 화를 피해 갔거늘 느닷없이 죽었다니. 필경 지난번 병관좌평과 일전을 치렀을 때처럼 고구려에서 허보를 퍼뜨린 게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보다 부인, 정녕 우리 태자가 대야성을 넘는 군공을 세웠단 말이오?”
흥수를 향한 심중한 표정에서 은고를 향한 낭랑한 표정으로, 의자왕의 표정 변화는 빨랐다.
“고구려에 연개소문의 아들이 있다면, 우리 백제에는 태자 효가 있사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어라하. 후훗.”
성충이 없는 백제 조정은 요사스러운 은고가 장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