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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막리지 막내아들-236화 (236/335)

236화 삼한의 정략 (1)

삼한도행군 소속 각 부대의 고위 장군들이 서라벌로 향하는 관문 압량주를 거쳐 속속 내 본대를 쫓아 합류했다.

“삼기! 삼기! 삼기!”

“삼한! 삼한! 삼한!”

하나 된 삼기군 하며, 많은 수는 아니나 신라 토착의 진한과, 가야 지역의 변한, 나와 흑치상지가 거느린 마한군까지 수천의 삼한군이 저마다 상징적인 큼지막한 깃발을 내걸고 선두에 서며 삼기군과 함께 삼한도행군의 성격을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한 삼한의 군세는 비단 오늘날 고구려군과 함께 서라벌 앞에 모인 것이 최초가 아니었다.

‘삼한이 애초에 한반도에 한정돼 머물렀다는 건 그저 통념일 뿐이지.’

새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삼한의 역사에 대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韓國)’의 그 ‘한(韓)’ 자를 내 건 군대가 고구려의 군세와 연합하여 최초로 출현했던 역사적 전장은 그 옛날의 요하 일대였다.

이는 마한의 역사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가깝게는 백호 부대에 소속돼 있으나 현 연개소문을 따르는 옛 마한과 예맥의 후예 3천 기병이 바로 그 증거였다.

-고려(高麗) 위두대형(位頭大兄) 이대부(理大夫) 후부군주(後部軍主) 고연수(高延壽), 대형(大兄) 전부군주(前部軍主) 고혜진(高惠真)은 병마한(幷馬韓) 추장(酋長)이다. 《전당문》

당나라에서는 주필산에서 투항한 두 고구려 장수 고연수와 고혜진을 가리켜 변한과 마한을 아우르는 병마한(幷馬韓) 추장이라 했다.

-진(辰), 변(弁) 두 한(韓)은 마한(馬韓)의 통치자인 나의 속국이다. 근래 몇 년 동안 공물을 바치지 않으니 사대(事大)의 예가 어찌 이러하랴? 《삼국사기》 <신라본기>

이러한 기록은 고구려 태왕 가운데 가장 정통성을 부여받았던 태조태왕이 당시 삼한의 대표인 마한, 예맥과 함께 요동과 요서에서 한나라·부여 연합 세력과 맞서 싸운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전라도 땅의 마한 세력은 죽령 일대의 내기군에도 있다가 어느덧 요동과 요서를 넘나들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구려사략』이외에도 중국의 기록인 『삼국지 위서동이전』 등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 뿌리가 한반도가 아니라 옛 조선의 발상지인 요하에서 온 것임을 말하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태조태왕이 서기 114년 8월부터 10월까지 무려 3개월간 남해(南海)를 순행했다. 고조선이 망한 뒤 한사군 설치와 함께 옛 터전에서 쫓겨 나간 마한의 비리국들과 군사 연합을 실현하여 과거 한나라가 앗아 간 옛 땅을 되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기록에서 말해 주듯 그 결실은 7년 후 요서를 향한 고구려·마한 연합군의 원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태학박사 이문진이 남긴 역사서 신집도 같은 내용을 말하였으며 임유관 전투의 승리로 고토를 수복한 고구려는 흑치상지와 같이 옛 조선에서 나온 마한의 후예를 품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와아아아!

하나로 모인 삼한도행군 이외에도 삼한일통이라는 이 대의에 참여하겠다는 군사들이 더러 있었다.

“황산강을 건너온 가야군이다!”

“우산국에서 온 군사들이다!”

“말갈군이다!”

부총관 고문이 빠져 4천의 청룡부대로 하여금 혹시나 모를 압량주로 몰려올 신라군에 대응하게 한 상황이지만 또 한차례 낙동강을 건너 합류한 비라부의 가야군, 우왕이 보낸 우산군, 동북 지역의 말갈 해적단 등 시일에 맞추어 허겁지겁 달려온 원군의 합류로 공산에서의 피해를 씻어 버리고 회복한 5만의 군세가 서라벌을 포위할 준비를 마쳤다.

여기까지가 나와 삼한도행군이 평양을 나선 지 불과 달포 만에 이루어진 역사였다.

황산강 일대와 동해 영일만 방면의 길목을 확보한 이상 해상을 통한 군량 보급에서 더는 차질을 빚지 않아도 됐다. 연개소문이 중원 지방에 내려왔다고는 하나 조령이나 죽령 등 험준한 고개나 산성에서 신라 잔당들로부터 얼마든지 약탈을 당할 위험이 있었기에 해상을 통한 보급로 확보는 꼭 필요했다. 더 많은 물자를 실어 보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비무환의 자세로 서라벌에서의 대격돌을 앞두고 모든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될 무렵, 고풍스러운 신라 귀족 한 사람이 날 찾아왔다.

짙은 주름과 엷게 채색된 흰머리는 서라벌 내에서도 제법 베테랑 귀족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

“저는 화백회의의 수장 알천이라 합니다. 신국의 이찬간께서 고구려의 중리위두대형을 뵙길 간절히 청하십니다.”

월성 앞에 백의종군 복장에 심중한 표정으로 서 있는 김춘추를 마주하기에 앞서 먼저 안내를 하러 온 이는 신라의 상대등 알천이었다.

정확히는 안내가 아니라 정세 정탐이 맞겠지만 막상 김춘추뿐만 아니라 진골 귀족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중신 알천까지 이리 정중히 나오자 삼한도행군을 대하는 신라의 진심이 조금은 느껴지고 있었다.

“신라의 왕은 어디로 가고 쪼무래기가 나와 대총관을 뵙겠다는 거요?”

내가 인사를 받기 전에 옆에서 옥소가 광분했는지 사투리까지 쓰며 비분강개한 표정으로 탁자를 탕탕 치며 일어섰다.

왜 저렇게 흥분하나 싶었는데 갑주 곳곳에 묻은 피를 보자 왠지 알 것도 같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어린 화랑들을 전쟁터로 모느니, 죽기 살기로 싸우는 신라군을 차례차례 베어 저항하는 신라 마을마저 모조리 불태웠다고 했다. 그나마 옥소가 지휘하는 산기군이야 최대한 약탈을 자제했다고는 하나 다른 부대의 경우 차마 듣기 민망한 소식도 들려왔다.

“일국의 왕이 참으로 무책임합니다!”

끝까지 저항하는 적을 상대로 적당히 하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니, 김유신이 쓰러지고 이미 완전히 대세가 기운 상황에서 신라의 지도부들이 빠른 결단을 내리지 못해 벌어진 참극이라는 것을 옥소쯤 되는 말객도 이제는 알 수 있게 된 배경이다.

“거참, 신라의 왕과 귀족들은 신라토 내의 백성들이 죽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는단 말이오?”

“삼한도행군대총관께선 삼한의 백성들을 위해 거병을 하셨소이다. 이 땅의 백성들을 돌보지 않는 신라의 여주에게 마땅히 그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옥소의 의견에 동조한 설인귀와 비라부가 강하게 거들었다. 삼한일통의 대의가 삼한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 전쟁의 의의를 인지하는 그들이었다. 신라 권력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이 땅의 백성들로부터 강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으므로 응당 나와야 할 발언들이었다.

“신라는 이미 저문 나라. 이미 독 안에 든 쥐올시다. 굳이 협상할 필요가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단숨에 밀어 버립시다!”

“알천과 김춘추의 목을 베고 서라벌 왕궁으로 입성하시지요!”

그 분위기에 취한 비담과 염종이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강경히 주장했다.

“그, 그대들은……!”

화백회의에서 만났던 옛 신라인들을 발견하자 식은땀을 흘리는 알천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랜만이오, 알천.”

“서라벌에서 당한 것을 고스란히 돌려드리러 왔소이다. 흐흐.”

바람 앞의 등불인 서라벌을 재차 마주한 비담과 염종은 이기죽거리고 있었다.

서라벌을 치기 전에 앞서 김유신과 함께 반역자들의 야망을 무너뜨린 신라의 대표 인사들을 처형한다면 그들로서도 더할 나위 없을 터다.

“서라벌에 모인 신라의 총 군세는 1만. 주력 화랑들이 있으며 민의마저 저들에게 있다면 그보다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작은 막리지께서 언제 적 한번 그러셨습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이라고요. 일단 얘기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산 전투와 압량주 공성을 힘겹게 치른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이 간만에 보수적인 의견을 냈다. 제아무리 파죽지세이며 속전속결로 서라벌까지 당도한 상황이나 그들은 일단 8천씩 각각 두 양기를 책임지는 장군들이었다. 당장 고구려와 신라 양측의 총 전력 차를 감안한다 해도 여기까지 오면서 각기 1천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속도를 내면서 치른 희생이었다.

공산 전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부상을 당한 거라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서라벌에서의 전투라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더욱이 젊은 화랑과 낭도들의 결사 항쟁은 인근 신라 마을과 신라 백성들과의 투쟁으로도 번질 수 있다. 이는 안시성 때와 북한산성 공략에서도 뼈저리게 경험한 것이며, 군의 피해를 생각하는 삼기의 장수들이라면 능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일들이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서라벌에서 시일을 지체한다면 자칫 백제가 움직일 수 있다.’

중원 지방을 중심으로 반으로 쪼개진 신라에선 백제가 유일한 변수였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기 힘든 신라의 국경이 무너지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김유신이 없는 신라가 대야성이나 당항성 같은 대성(大城)과 중진(重鎭)을 지킬 여유란 없을 것이며 더욱이 다른 국경이라면 아예 백기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둘러 월성의 성문을 열지 못하면 신라 국경이 백제 수중에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아리수 이남이나 가야 지역까지 백제의 세력이 뻗칠 우려도 들 수 있었다.

“저희 폐하와 이찬간께서는 고구려와 오해를 풀고자 하십니다. 부디 일컬을 만한 덕망으로 만나 주십시오.”

식은땀을 닦은 알천의 시선이 내게 고정돼 있었다. 다른 장수의 입보다 내 말 한마디가 더 중하다는 것을 신라 최고위 자리에 올라간 알천이라면 알고 있을 터다.

“좋습니다.”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렇게 대답했다. 더는 알천에게 볼일이 없으며 서둘러 돌려보내고자 했다. 군사적이나 정략적으로 경륜 있는 알천이 고구려 진영을 직접 찾은 것은 필경 나나 제장들의 생각이 궁금한 것은 둘째요, 그보다 고구려군 정탐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호전파와 협상파로 나뉜 군심마저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이를 김춘추에게 전달한 뒤 날 만나게 할 요량이겠지.

“고맙습니다.”

인사를 마친 뒤 김춘추에게 향하는 알천을 보며 신라의 정략적 선택지를 미리 염두에 두었다.

* * *

“내가 원하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백제의 멸망이요, 내 딸자식의 원수인 의자를 그 무덤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고구려와 왜를 찾았고, 그 먼 당나라까지 가 입조하여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당의 관제를 따르겠다 한 것입니다. 우리 폐하께서는 그저 신하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 말고는 죄가 없습니다. 내 사사로운 감정에 나라를 이리 위태롭게 하였으니 모든 책임을 제가 지도록 해 주십시오.”

철퍼덕. 백의를 입은 채 나와 삼족오 깃발 아래 무릎을 굽히며 조아린 김춘추가 다짜고짜 그렇게 말을 늘어놓았다.

고구려와 신라라는 두 국가의 일에서 개인 사정과 충심, 제3국을 꺼내어 위로를 받고자 하는 김춘추의 혀 놀림은 신기하게도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수군수군. 누가 은혜롭고 정 많은 광개토태왕의 후예들 아니랄까 봐, 고구려 막사 내의 군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막사 안에도 혼기를 채우고 자식을 낳은 제장들이 여럿 있었기에 벌어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조영아. 훌쩍.”

“조영이는 잘 있을 겁니다, 중상이 형님.”

걸사비우가 홀쩍거리는 걸걸중상을 위로하고 있었으니, 아주 남 얘기가 아니였다.

그나저나 시작부터 군심을 흔들 생각을 하다니, 연개소문이 왜 김춘추를 바로 죽이지 않았는지 알 것도 같다.

“김춘추를 어서 죽이십시오!”

“반드시 목을 베어야 합니다!”

물론 쥐뿔도 안 먹히는 비담과 염종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와서 개인의 사정이니 정에 흔들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김춘추를 향해 말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께서는 그 옛날 서라벌을 집요하게 노리는 왜적을 소탕하여 왜로 하여금 다시는 삼한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셨소이다. 보병과 기병 5만을 내려보내시어 그대들의 시조인 박혁거세 때부터 이어진 400년 신라의 원적을 쫓아내셨단 말입니다. 한데 이후 신라 왕은 우리 고구려를 어찌 대했습니까? 백제와 야합하여 고구려의 땅을 앗아 가지 않았습니까?”

웅성웅성.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막사에는 재차 소란이 일었다.

놀랍게도 이 자리에는 백제 사람이고, 가야 사람이고, 고구려 사람이고, 신라에게 당한 삼한의 일족들이 두루두루 있었다.

끝끝내 배신하는 나라, 신의를 모르는 나라, 뒤통수치는 나라, 은혜를 칼로 갚는 나라 등 신라를 비방하는 온갖 쌍욕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목숨이라도 내놓으라 하시면 그리하겠습니다.”

막사 분위기를 감지한 김춘추가 한발 물러선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일부러 시선을 돌려 천막이 걷힌 곳에 펼쳐진 도시를 쳐다보았다.

서벌, 서나벌, 서라벌, 사로 등 서울이라는 명칭이 유래된 유서 깊은 왕도, 비가 오는 날 가가호호(家家戶戶)의 처마 밑만 따라 걸으면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는 신라의 왕성이 시야에 훤히 들어왔다.

나는 그곳을 가리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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