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황산하 전투 (5)
“계백은 위험한 잡니다. 여기서 그냥 돌려보낼 요량이십니까?”
휙. 두 눈을 가늘게 뜬 선도해는 활짝 펼친 부채를 접으며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려는 계백을 가리켰다. 그가 국원성에 데려온 백제군이야 불과 2, 3백에 불과하였다. 품을 수 없다면 마땅히 그 목을 쳐야 한다는 것이 선도해의 주장이었다. 도성에서 삼한을 일통하겠다는 군단을 편성하고 그 명분을 공공연하게 밝힌 이상, 후환거리가 될 인물을 굳이 살려 보낼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신라에 김유신이 있다면 백제에는 계백이 있었다. 한때 대야성을 무너뜨린 윤충은 병세가 악화되어 오늘내일하는 인물이었으며, 그나마 남은 가장 위협적인 백제 무장은 가잠성에서 김유신과 싸워 이긴 계백뿐이었다.
“장부를 전장이 아닌 곳에서 죽여서야 쓰겠는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 연개소문이를 역신이라 부를 만한 이가 천하에 몇이나 있다고. 흐허허!”
그렇게 말한 연개소문은 한때 평양을 찾은 성충을 떠올리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역신이 어찌 충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대범한 얼굴로 고구려를 치려는 이세민이에게 군량을 대겠다며 신라가 아니라 반드시 백제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성충의 언변에 반하여 그를 회유해 보았으나, 오늘날 계백과 같은 대답만이 돌아왔다.
성충과 계백, 계백과 성충. 실로 나라를 위한 백제의 충신이 아닐 수 없었다.
“참으로 아쉽구만.”
입맛을 다신 연개소문은 성충의 최후가 그러하듯 계백의 최후도 언젠가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저 안타까움이 들 따름이었다.
“이제는 후회하셔도 어쩔 수 없사옵니다.”
“후회하긴! 오히려 미친 듯이 싸우고 싶은 인물들이 이 삼한 땅에도 아직 숨 쉬고 살아 있으니 내 더 사는 맛이 있는 것을. 흐허허!”
“별난 주군을 섬기는 제 불찰이로군요. 후후.”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계백을 보고 선도해는 애써 웃으며 답답함을 보였으나 언제나 그랬듯 연개소문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과거 성충이나 김춘추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와 같이 이미 숱하게 봐 온 상황이었다.
“그것보다, 평양의 동태는 어떠한가. 또 내가 없다고 여우가 왕 노릇을 하려는 건 아닐 터이지?”
“아우님을 이미 도성에서 내보내셨습니다. 대막리지께서 이리 국원성에 이르셨으니 귀족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후후.”
“응당 그리해야지!”
막내아들에게 따로 알리지는 않았으나 연개소문은 평양을 나선 고구려군이 중원 지방에 당도했다고 할 때 재차 태왕 몰래 암행을 나섰다. 도성에 남아 있는 것은 제가회의의 수장이자 북부 욕살과 남부 욕살이 빠진 중앙 군부의 최고 집행자가 삼한을 한눈에 내려다볼 최전선에 오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이 최전선에 나왔으니 보급에 기여하지 못한 귀족들은 그야말로 반기를 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정치적인 판단을 유보하고도 연개소문이 중원고구려비가 다시 세워진 국원성에 당도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죽령 이남에 이르는 영역에서 고구려의 정체성을 가진 백성들을 회유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내 직접 저 고개 너머로 내려가야 하는 것을.”
한편 연개소문은 씁쓸한 표정으로 남쪽에 펼쳐진 나는 새도 넘어가기 힘든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그 너머에 광개토태왕께서 친히 말을 몰고 달린 황산하 유역이 펼쳐져 있으며 호적수 김유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다리가 불편하지만 않았다면.”
연개소문은 지난 십수 년간 삼한의 험준한 산맥과 요동의 천산산맥, 거기다 북방과 서토의 중원마저 누비며 쌓인 근육통으로 좀처럼 직접 군사를 몰고 싸우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이세민이 요동에 나타난 그때도 혈기왕성한 장군들에게 맡기려 했으니 못 미더운 나머지 늘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리 아드님을 챙기시는 것만으로 충분하옵니다.”
연개소문의 그런 사정을 유일하게 아는 선도해가 위로했다.
“들켰는가?”
“누구 눈을 속이시려고요. 후후.”
자신이 하지 못한 일들을 대신해 주고 있으니 이에 아비가 중원 지방에서 직접 보급을 담당하며 삼한을 일통하려는 막내아들의 뒤를 봐주고자 하는 마음마저도 선도해는 알고 있었다.
* * *
“압량주를 지키는 신라군은 기껏해야 1, 2천에 불과합니다.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니 야전을 치를 용기도 없는 군사들 같았습니다.”
1만의 청룡 부대로 신라 최후의 보루를 한차례 공격하고 돌아온 고문이 압량주의 신라군에 대해 정확히 그렇게 평가를 내렸다. 기존 압량주의 신라군은 김흠돌이 지키는 금관군 방면의 낙동강 하류에 배치되거나 김춘추에 의해 죽령 전선에 있던 김유신군에 편입되면서 방비가 많이 취약해진 모양이다.
고문의 말대로 서라벌을 지킬 최후의 보루인 그들 수비병이 뛰쳐나올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했다. 김유신도 다른 산성은 몰라도 압량주 일대의 신라군은 굳이 징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웅성웅성. 고문의 첩보 소식이 한 바퀴 돌자 막사는 곧 소란에 휩싸였다. 최하 4천에서 최대 8천의 부대를 통솔하는 제장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한마디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면 신라의 노장만 꺾는다면 서라벌로 가는 길이 어렵지 않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주군.”
“이제 김유신만 이긴다면 되는 것입니다! 작은 막리지.”
“이번에는 소장에게 선봉을 맡겨 주십시오. 말갈군의 실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주공.”
물론 그중 가장 큰 목소리를 자랑하는 이들의 중심에는 줄곧 나와 함께 요하와 북방에서 맹위를 떨친 설인귀, 걸걸중상 그리고 연근행이 있었다.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그들의 의견에 나는 동의했으나, 반드시 다루어야 할 사안이 있었다.
“금오산성, 가산산성, 백포산성, 천생산성 등 황산하 근방에는 우리가 넘지 못한 신라의 산성들이 여럿 있습니다. 우리가 황산하 일대에서 계속해서 접전을 치른다면 김유신은 인근 산성의 군졸들마저 모조리 내려오게 하여 우리의 사위를 포위할 것입니다.”
내가 지도를 펼치며 강력하게 경고하자 김유신을 낙동강에서 지금이라도 당장 쳐부수겠다는 설인귀나 걸걸중상의 입이 쏙 들어갔다. 과연 내 말대로 비담과 염종이 가져온 신라의 지도에는 낙동강을 에워싼 신라의 산성들이 즐비했다. 이러한 성들이 후일 후삼국 시대를 거쳐 임진왜란까지 이어져 왜군과 싸운 격전지가 되었으니 실로 유서 깊은 성들이라 하겠다.
그 성들의 토대는 역시나 치열한 사투를 펼친 난세 삼국시대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하여 굳이 공산으로 들어가 싸우시겠다는 겁니까?”
“무모합니다. 공산은 김유신이 어린 시절 뛰어놀던 제집 앞마당과도 같은 곳입니다.”
신라인인 비담과 염종조차 회의감을 드러냈다.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담감은 신라군조차 마찬가지라 보았다.
신라군이 서라벌과 가까운 제집 앞마당에서 싸운 경험이야 수백 년 전 진한을 통합한 고대 국가 이전의 시기나 가야와 싸우던 옛날 옛적에나 벌어졌을 테니까 말이다.
우선 서로가 전장으로 익숙하지 않은 산을 선택해 싸운다면 서로가 불리한 것과 유리한 것을 제쳐 두더라도 시일을 벌 수 있다. 고모산성을 넘어 내려올 남은 삼한도행군이 올 때까지 조금의 시간을 벌 생각이다.
“공산은 서라벌에서 불과 150리 길입니다.”
그러는 한편 고문이 공산과 서라벌의 거리를 가리키며 우려를 드러냈다.
그 말대로 공산은 서라벌에서 행군 60km로 하루를 꼬박 행군하면 닿을 수 있는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김유신에 이어 서라벌의 화랑들이 투입되었을 시 전쟁의 향방은 오리무중에 빠질 수도 있으니 당연한 우려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우려를 도려내기 위해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신라의 여주에게 감히 서라벌의 군사들을 빼는 용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서라벌의 화랑들이 일부 나타난다 해도 우리가 공산의 매복지와 고지를 선점한다면 서라벌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체력과 기동력이었다. 이미 죽령의 험한 고개를 넘어 한반도의 고지를 경험한 삼한도행군이라면 능히 공산의 고지에 올라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제장들을 보았고 나는 서둘러 전장의 무대를 바꾸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소장이 김유신이를 산 쪽으로 끌어들이겠사옵니다!”
연근행이 이끄는 말갈군 첨병이 나서서 교전을 자처했다. 굳이 유인이라고 할 것도 없이 고구려군이 일제히 공산으로 향한다면 김유신은 다른 선택을 할 것도 없이 공산으로 빨려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압량주를 흔히 서라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말하지만, 그 북쪽의 공산을 넘어가면 곧장 서라벌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군이 서라벌에 당도하는 것을 누구보다 피하고 싶은 이가 김유신일 것이다.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신라 조정으로부터 부담감을 한몸에 받는 김유신은 우리가 공산을 점령하고 서라벌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을 누구보다 피하고 싶은 인물일 것이다.
“연 장군은 신라군의 쇠뇌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최대한 시선만 끄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연근행의 우렁찬 목소리가 천막에 가득 드리웠고 신라군과의 최후의 싸움이 머지않았다.
* * *
서라벌 조정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고구려가 당나라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신라는 수개월째 당과의 교역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들어서는 서라벌에 들어온 은자나 비단을 한 점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산동 지방의 등주와 내주의 당나라 상인들이 수백 척의 당선을 격침한 고구려 수군의 위세에 두려움에 떨면서 좀처럼 바다에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거기다 신라에서 왔다는 한마디 말만으로 고구려와 같은 동이족 오랑캐라 칭하여 멸시하는 분위기도 짙어졌다.
당과의 교역이 어려워지면 비단이나 항료, 은자를 얻기가 어려워지니 서라벌 귀족들의 불만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왜나 탐라와의 해로조차 우산국과 대마도, 가야에서 오는 해적선으로 인해 교역이 불투명해지면서 서라벌 민심은 더욱 흉흉해져 갔다.
“화랑들이 나서 주어야 합니다. 고구려의 대군이 압량주에 왔사옵니다, 폐하.”
그러던 때에 죽령 전선에서 동해안을 우회하여 서라벌에 도착한 김춘추는 서라벌이 나서 주어야 하는 것을 강조하듯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화랑들이 없다면 이 서라벌은 대체 누가 지킨단 말이오?”
머리를 부여잡고 말하는 진덕여왕의 말에 귀족들이 입을 모았다.
“그러다 그 옛날처럼 왜적들이 바다에서 들이닥친다면 어찌하실 것입니까? 춘추 공.”
“이미 영일만 앞바다에 우산국의 해적들이 한바탕 들이닥친 것을 모르십니까?”
“고구려는 다시 바다를 이용할 것입니다. 바다에서 들이닥칠 것이니 서라벌의 군사를 뺄 수는 없습니다.”
“우리 귀족들의 뜻은 그러합니다.”
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자 알천이 정리하듯 입을 열었다.
“폐하도, 화백회의의 결론도 모두 그러합니다.”
화백회의에서는 서라벌의 신라군과 화랑들은 여주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결론을 내렸다.
‘내가 외교를 잘못하였구나.’
여주와 귀족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김춘추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신라를 구원할 수 없었다.
김유신 장군이 부디 연남산을 막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