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삼한일통 (7)
“약조가 틀립니다! 제가 평양에 머무는 동안 신국과 결단코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직접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중리위두대형께서 말씀하신 인이란 말입니까?”
도성의 군사들이 움직이고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때마침 김인문이 나를 찾아왔다. 출정 직전에는 가급적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나 나름 신라의 인재라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놓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고구려를 먼저 친 것은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입니다.”
“죽령은 마목현과 인접해 있습니다. 그곳에 군사를 배치한 고구려를 두고 어찌 대장군께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김인문은 신라의 사정을 대변하여 설명하려 했으나 나는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뿐이지요. 뭣들 하느냐? 어서 뫼셔라!”
내 명에 동부가의 호위들이 김인문을 거의 끌고 가다시피 처소로 데려갔다.
“주, 중리위두대형!”
호위들에게 붙잡힌 채 그렇게 연신 나를 부르는 김인문이었으나 이와 같은 그의 모습은 어차피 본래 역사에서도 똑같이 펼쳐질 일이었다. 장안에 머물며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천하의 당나라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김인문을 이용해 해낼 작정이다.
“부디 신국을 공격하지 마십시오!”
안타깝게도 점차 희미하게 들리는 그의 청은 들어줄 수 없겠지만 말이다.
* * *
선도해는 매소홀과 잉벌노현의 곡식을 대량 수확하여 배에 싣고는 금의환향하듯 평양에 가져왔다. 수레에 가득한 곡식을 일일이 확인한 연개소문이 몹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선도해가 부채를 흔들며 보고를 올렸다.
“매소홀과 잉벌노현의 낡은 관개시설을 정비하고 물을 정화하였더니 곡식 수확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올해는 풍년이옵니다, 대막리지.”
“겨울에도 보리를 심으니 계절에 관계 없이 다른 작물을 키울 수가 있구만. 벼와 보리를 이리 같이 키울 수가 있다니, 대단하이!”
울절 선도해의 성과에 연개소문이 크게 치하했다.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줄곧 연개소문의 오른팔로서 도성에 머물며 도성 귀족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그가 지방의 처려근지가 되겠다 자처한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연개소문과 심지어 제가회의 귀족들조차 모두 의아해했다.
그러나 남쪽에서 막내아들을 만난 뒤 도성의 궁핍한 식량 문제에 보탬이 되겠다 나선 선도해를 두고 명분 없이 돌아오라고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산과 삼기군의 파죽지세와 같은 영토 확장이 그 까다롭다는 선도해마저 이리 변화시킨 것이다.
연개소문은 이양법이니, 모내기니 북한산성에 내려가 선도해를 따로 만나 보았을 때까지만 반신반의하였으나 이제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야 그저 중리위두대형께서 주신 농서대로 하였을 뿐이지요. 그 덕분에 농가의 수익이 크게 증대하였습니다. 결과가 나오니 려주의 민심 또한 고구려로 향하고 있사옵고요.”
“그렇겠지. 우리가 서토의 오랑캐들을 상대할 때 저들은 백제와 잦은 전쟁을 벌이지 않았나? 김삼맥종이가 아리수 일대를 이름만 번드르르하게 신주라 칭한 이래 그 땅의 민생을 책임지기 위해 제대로 된 지원이 어디 하나라도 있었겠는가 말일세.”
“이제 그들은 대고구려 려주의 백성들이옵니다. 후후.”
남산이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정말 계절에 상관없이 농사를 짓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를 보고받은 연개소문의 입이 연신 귀에 걸렸다. 고구려 역시 잦은 전쟁으로 도성 곳간에 볍씨가 남아날 재간이 없었던 탓이다. 요하 전선이니, 요동만 전선이니, 신라 전선이니 국경의 보급이니 하여 도성으로 몰려오는 100만 섬의 양곡이 수레에 실려 나가 사방으로 퍼지고는 삽시간에 텅텅 비게 되었다. 십수만의 병력과 성을 지키는 백성들이 소진하는 군량미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국력의 소모였다.
이제 좀 숨을 돌리나 싶더니, 막내아들은 거침없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겠다 선언하고 있다. 그것도 무려 삼한을 일통하겠단다.
‘대체 누굴 닮았기에 이리 무모한 것인지!’
연개소문은 이번에야말로 전쟁을 잠시 중단하려 했으나 자식의 고집은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럴 여유가 없다고 하려 했으나 대안이 나타났다.
귀족들이 세금을 거두고 선도해가 해낸 것처럼 모내기가 전국으로 보급된다면 보급의 근심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내기는 잡초가 싹을 틔우지 못해 병충해가 적었으며 농민들의 피해 또한 예년과 다르게 크게 줄었다. 손해는 적으며 농가 수익의 증대는 곧바로 인접한 아리수 이남 신주 지역 백성들의 귀에 들어가기도 했다. 곡식 수확 증대가 신라의 민심을 제대로 흔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거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지. 도성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를 도입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부분은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하며 또한 농업용수로 쓸 수자원이 많이 필요합니다. 한 해 비가 오는 것을 지켜보고 모내기할 농지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엄청난 수확량에 연개소문의 눈이 뒤집힐 뻔했으나 선도해는 남산이 가르쳐 준 모내기의 단점을 잊지 않았다. 기후를 따진다면 실상 북방보다는 남방이 더 모내기에 알맞았다.
“그놈이 삼한을 일통하는 계획에 모내기가 딸려 있겠구만!”
남산이 썼다는 농서를 직접 살펴본 연개소문은 단숨에 그 연유를 파악했다. 삼한을 각기 차지한 백제와 신라, 가야의 비옥한 농토와 기후를 이용한다면 모내기의 성공률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만 된다면 20만 대군이 반년은 거뜬히 원정을 수행할 수 있는 그런 엄청난 수확량을 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백제도, 신라도, 가야도 모두가 삼한이 아니겠습니까? 아버님.
자신의 앞에서 화려하게 출사표를 던진 막내아들은 삼기 2만 4천, 청룡 부대 1만, 백호 부대 9천, 생해의 말갈군 9천, 도합 5만 2천의 군사를 이끌고 얼어붙은 패강을 건너 남하했다.
일제히 대병이 거병하자 조세 부과로 한바탕 소란을 피운 평양 도성 귀족들의 불만이 삽시간에 잠잠해졌다.
* * *
나는 용암 대지를 기반으로 하천을 비롯한 여러 작용으로 운반된 물질들이 쌓여 형성된 내륙분지 지역에서 탁 트인 광활한 평야 지대를 내려다보았다.
칠중하 동북의 한탄강 유역에 한반도 중심부에 위치하며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매우 춥다는 모을동비홀(毛乙冬非忽)이었다. 모을동비란 ‘철두루미’ 등의 고유어 음차로 풀이하며, 이를 한자음으로 ‘철원군(鐵圓郡)’으로 표기하였다. 그 이름대로 이곳 곳곳에는 쇳덩이를 캘 수 있는 철광산이 즐비하다. 고대 사람들 사이에 쇠벌이라 불리며, 즉 철원(鐵原)이 된 것이다.
고대부터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군사적인 목적으로 철원의 철을 얻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다시 고구려가 차지하였는데 이곳은 내가 아니라 막 집권한 연개소문이 지속적으로 군사를 보내며 수복한 영토였다.
‘탁 트인 시야 하며 경치만 놓고 본다면 궁예가 이곳을 후고구려의 도읍으로 삼을 만했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확 트인 벌판과 시야는 가히 웅장한 꿈을 품은 제국의 수도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철원 지방은 기후적으로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됐다. 평야 지대임에도 중심부를 흐르는 한탄강의 유량이 부족해 그야말로 척박한 벌판이었으며 또 한탄강은 폭이 좁고 급류가 세서 큰 배가 다닐 수 없기에 물류의 이동이 어려웠다. 그에 따른 철원의 물가는 고대부터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무슨 추위가 북방의 초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겠습니다! 작은 막리지.”
“에, 에이 취!”
두툼한 모피를 껴입은 걸걸중상과 걸사비우가 혹독한 모을동비홀의 추위를 그렇게 평가했다.
“고뿔에 걸리시겠습니다. 화로가 준비되어 있으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옥소 역시 이 추위에 밖에서 경치 구경하는 내가 염려된 모양이다.
북방의 초원과 비교하는 것은 조금 과장됐지만 그만큼 한겨울의 이 기후가 적응하기 힘든 매서운 추위라는 건 사실이다.
‘확실히 춥긴 춥군.’
이거 자칫하다간 삼기군과 청룡과 백호 부대를 거느리고 얼어붙은 강들을 건너 도착한 모을동비홀에서 뜻밖의 혹한기 훈련을 하게 생겼다.
며칠 휴가를 보내며 기강이 떨어진 군사들이 있다면 정신력 훈련에는 여러모로 특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먼저 관아에 들어온 나는 혹한기 훈련은 제장들에게 맡기고 다음 전략을 위해 삼한의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많은 전략적 선택에서 굳이 이 척박한 모을동비홀으로 내려온 까닭은 삼한 지역에서 더 이상의 상륙 작전은 무모했기 때문이다. 지난 전쟁에서 아리수 이북과 강원도 일대를 일부 장악하면서 신라를 공략할 주요 전략적인 요충지를 모두 선점하였다. 굳이 배로 돌고 돌아 신라를 치려 한다면 이미 숱하게 당한 신라가 이를 사전에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가야와 아리수 상륙으로 일격을 당한 신라는 이미 상륙지에 대한 경계 태세 강화와 목책과 망루 설치 등 치밀한 군사적인 조치를 이루었다. 해안가에 첩자들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을 것이며 그들이 그곳에 국력을 소모했으니 다시 위험천만한 상륙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신라를 공략할 선택지는 이미 차고도 넘쳤다.
“흑치상지 말객이 오고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동이 트자 아리수 유역에서 흑치상지와 친분을 쌓은 걸사비우가 그렇게 알려 왔다. 그 말대로 약속된 날짜에 꽁꽁 언 한탄강을 건너온 흑치상지가 3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왔다. 그들 대부분이 삼한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정신없는 삼국의 쟁탈전에서 강제 징용 당하여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상대로 한 연이은 전쟁 경험이 있는 그들은 삼한의 지리에 누구보다 빠삭한 군사들이었다.
-이곳에 있는 장정들은 누구보다 삼한의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흑치상지를 시켜 삼한인들의 심리를 이용하도록 하였다. 흑치상지 본인 역시 그중 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이 지긋지긋한 삼한의 피 튀기는 전쟁이 끝나길 간절히 바라는 인물일 것이다. 삼한일통에 대한 대업을 그들은 모두 똑똑히 알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주군.”
모을동비홀 관아에서 군사 회의가 열리자마자 설인귀가 제일 먼저 내게 행군로를 물었다. 여기서부터는 크게 3가지 길목으로 나뉜다. 뇌음신과 고연수, 고혜진, 온사문까지 참전한 죽령 전선에서 밀고 내려가느냐 아니면 아예 우회하여 강원도 지방의 동쪽 끝으로 차례차례 신라가 점거한 성들을 넘고 서라벌로 가느냐.
어느 쪽이든 장단점은 뚜렷했다. 죽령 전선의 경우 대병이 한 대로 모여 내려갈 수는 있겠으나 신라군이 방어할 수 있는 험난한 산세와 지형도 많아 한번 막히면 자칫 고립될 우려가 있었다. 강원도 전선의 경우 신라군이 신경 쓸 여력이 되지 않으나 워낙 척박하여 시일을 잡아먹을 수 있으며 이 또한 길목을 차지한 신라의 성에 막혔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충주에 해당하는 중원 지방이었다. 중원 지방은 한강 이남과 죽령 이남의 신라군이 연결된 매우 전략적인 요지였다. 죽령 방어선만으로 벅찬 김유신은 그곳까지 지킬 여력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신라가 빼앗아간 뒤로 백제가 호시탐탐 노리는 가잠성이 인접해 있으며 중원을 점거한다면 이성산성의 김흠순과 당항성의 신라군 사이의 길목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었다. 즉, 그들이 서라벌로 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결정을 내린 나는 그 옛날 광개토태왕의 아들이 세운 영험한 비석을 떠올리며 말했다.
“중원 지방으로 가자. 신라가 허문 장수태왕의 비석을 다시 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