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각개격파 (9)
요서에서 10만의 당군을 괴멸시킨 고구려군이 거둔 승리의 여파는 실로 대단했다. 장장 3년간 장성 이북 요서에서 죽치고 앉아 있던 이적을 몰아내면서 요동을 넘어 부여성, 국내성, 심지어 책성 일대와 동북면 깊숙이 침투하던 당군과 이민족 약탈꾼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간 각지에서 당의 이이제이에 눌려 왔던 여러 이민족 부족들과 말갈 군사들이 속속들이 임유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이적이 재차 임유관을 통과할 시 고구려와 다른 민족들을 서로 싸우게 하여 민생을 어지럽힐 소모전을 다시 벌일 것이라는 악몽 같은 소문이 퍼진 직후였다. 그리고 그 소문을 퍼뜨린 주모자는 제 군사를 떼어 북방으로 보내 준, 남산을 염려했던 양만춘이었다.
-패배를 모르는 어리석은 서토의 오랑캐 장수 이적이 대고구려의 장성 끝자락의 관문을 노리고 있다. 그 옛날 강의식 대모달께서 수나라 30만 대군을 대파한 임유관이다. 그곳이 넘어간다면 저들은 다시 이전과 같이 각 민족, 각 부족을 분열시키며, 요하의 강줄기를 피로 더럽히고, 나아가 백성들의 민생을 어지럽힐 것이다. 나 대모달 양만춘이 용맹스러운 고구려의 전사들과 고구려를 섬기는 민족들에게 고하니, 좌이대벌(坐而待伐)은 숙여벌인지리(孰與伐人之利)이니라 하겠다! 앉아서 정벌 당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적을 먼저 공격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가? 온갖 고초를 겪은 그대들은 이미 그 답을 알지어다.
“나가 싸우자!”
“돌궐 형제들을 위해 싸우자!”
“오랑캐 놈들의 수탈을 끝내자!”
“임유관을 사수하자!”
“당장 요하를 건너자!”
당나라 치하에 놓인 돌궐을 독립시키고 아사나사이를 막기 위해 나선 양만춘이 북방으로 떠나기 직전, 요서를 대표하는 영주와 요동을 대표하는 요동성에 벽서를 붙이면서 파급은 더해 갔다. 새 문자 보급으로 일반 백성들 가운데서도 읽고 알아듣는 이들이 많아진 덕분이다.
-영주에서 한동안 지켜본바, 국경을 지키고자 하는 평양과 요동의 노고를 알 수 있었다. 책성, 고향에서 나고 자란 나 타인의 핏줄에는, 그 옛날 동부여에서 건너온 숙신과 백산, 말갈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리 형제 부족들은 대막리지 삼남, 남산 중리대형의 삼기군에 속한 속말말갈, 백돌말갈, 안거골말갈, 두막루말갈, 북흑수말갈과 더불어 여러 형제 말갈 부족들과 함께 서쪽 국경을 지켜 우리의 안위를 보존하도록 하자.
연개소문의 중앙 정부와 요동의 군벌로 으뜸이 된 양만춘에 회의감을 가졌던 책성 욕살 타인이 요서 벌판에서 승리를 목격하고 남산과 양만춘을 따르며 말갈인들을 독려한 일 역시 여러 부족을 움직이는데 크게 작용했다.
보름이 지나자 임유관의 북문과 동문 앞에는 요하를 건너 영주를 거쳐 몰려온 이들로 가득했다.
“흑수부에서 왔소이다! 어서 성문을 열어 주시오!”
“우리는 각각 동북 흑수에서 백 리 아래 호갈과 불열에서 왔소이다!”
“거란의 가한께서 우릴 보내셨소이다! 손만영 부족장님이 삼기군과 함께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부족은 고구려와 돌궐의 혼종이온데, 돌궐 땅으로 가지 않고 임유관을 택하였습니다. 우리의 터전이 북방이 아니라 영주에 있으니 말이오! 임유관을 지키면 더는 영주가 당군의 침략을 받을 일이 없다고 하여 돕고자 왔으니, 받아 주시구려!”
그렇게 예기치 못한 원군이 발해만을 통해 나타난 남산의 삼기군과 연수영 사단 말고도 또 있게 된 배경이다. 그 수가 삽시간에 수천에 이르자 흑벌무가 직접 성문을 열어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고맙소이다! 그대들이 왔으니 임유관을 지키는 일이 더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외다.”
무리를 이끄는 인솔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두 손을 꼭 잡아 준 흑벌무는 뜻밖의 원군에 감사했다. 임유관 밖에서 진을 친 이적의 숨통을 거두기 위해서는 관문을 지키는 군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그들의 합류는 실로 달가울 수밖에 없었다. 20여 일간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면서 임유관 내의 부상병도 만만치 않았다.
‘남산 공자는 적장의 목을 노리고 있어!’
수일 전, 연통을 받은 흑벌무는 차례차례 중원 방면 당의 보급로에 상륙한 고구려군을 보며 남산의 의도가 이적의 수급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야말로 당나라 황제 다음으로 고구려를 정복하는 일에 목이 마른 위험인물이었다.
“흑 장군! 원군입니다! 남산 중리대형과 태대사자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오셨습니다! 옆에 제 남편의 깃발도 보입니다!”
흑벌무는 유경에게 고구려 영토와 고구려 영향하에 있던 군사들과 부족들의 합류를 알리자마자 곧이어 진짜 원군이 도착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대로 강 건너에는 당군 못지않은, 고구려군의 깃발 수가 가득했다.
“이제 되었습니다! 이적이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습니다! 흐하하!”
월등히 많다고 자신할 수는 없으나 남산과 태대사자가 이끈 원병의 수가 적어도 임유관 앞에서 죽치고 있는 이적의 군세를 능가하는 것은 분명했다. 전략적 위치 또한 앞뒤에서 이적을 포위하는 형국이었기에 이제 전세가 단숨에 역전되었다.
“슬슬 나갑시다. 놈들이 이쪽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진형을 틀었으니, 이때 후미에서 저들을 친다면 큰 성과를 볼 것입니다.”
눈빛을 바꾼 흑벌무가 그렇게 제안했다. 때마침 사흘간은 관문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수성만을 해 왔기에 임유관을 향한 당군의 주의가 약해진 시기였다.
‘설마 중원에서 올라온 오랑캐 놈들을 이렇게 역으로 포위하게 될 줄이야! 이 무슨, 기가 막힌!’
흑벌무는 이러한 포진에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누구보다 당황하고 있을 이적의 시선이 더는 임유관이 아니라 틀림없이 고구려의 원병이 나타난 대석하(大石河) 방면으로 쏠려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남산 중리대형의 뜻이 아닙니까?”
한편 유경은 이러한 전략적 판을 짠 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을 보여 줍시다! 유 공.”
“예.”
흑벌무가 허리춤에서 유성추를 빼 들며 출정 준비를 마쳤고 유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 안장에 올랐다.
안시성의 역공에 당군이 토산을 빼앗겼던 것처럼 수세에 몰리던 임유관이 총공세를 가한다면 이적은 깜짝 놀랄 것이다.
히이잉!
당군을 놀라게 할 선봉대는 고구려 치하의 기마민족이었다.
* * *
발해만 연안 육상교통로를 환하게 밝힌 당군의 대열이 일제히 그들이 왔던 서쪽으로 향했다. 걸걸중상이 이끄는 선기의 선봉대가 임유관 남문으로 향하는 대석하(大石河)를 사이에 두고 이적의 당군과 대치하기 시작한 뒤였다. 수심이 낮아 기마에 능한 자가 말을 타고 도하한다면 불과 일각도 되지 않아 당의 선봉대와 접전이 벌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강 하나를 두고 이적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너머의 새로이 개축한 고구려의 관문과 자연을 우러러보았다.
한마디로 묘사하자면 산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는 자세. 동쪽의 환희령(歡喜嶺)과 서쪽의 대석하(大石河) 사이에 지어진 장성의 관문은 산과 강을 자연적인 방어물로 삼은 그야말로 배산임수였다. 유관(楡關)을 없애고 새로운 관성 산해관(山海關)의 이름 석 자도 저러한 자연적인 형태에서 이름을 명명한 것일 터.
거기다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동쪽 끝단에는 용의 형상을 한 절벽, 노룡두가 발해만으로 뻗어 있으니. 천하의 이적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을 알 것도 같았다.
‘연근행과 유경이 아니었다면 내가 임유관을 넘을 수 있었을까?’
이적이 고전하는 관문의 형세에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이 따른 것이지만 어찌 됐건 지금의 임유관 형세에는 내가 기여한 바가 없지는 않았다.
없는 시간과 자원을 쪼갠 나름의 임시방편이긴 했지만 내가 잠시 머물러 행한 임유관 개축은 후일 산해관을 개축한 명나라 장군 서달의 도안을 참고했다. 이것도 산해관을 직접 답사하고 조사한 덕분이지만 개축한 이곳의 전략적 지위는 화북과 요하 유역을 연결하는 곳으로 천하 제패를 위해서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병가필쟁지지(兵家必爭之地)라는 것이다.
“남산 공자! 명만 날래 내려 주시라우! 요하를 넘보는 오랑캐 놈들을 모조리 도륙하겠소이다!”
“이세민의 들개 이적은 이제 독 안에 든 쥡니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태대사자.”
정명진의 당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자신감을 얻은 고돌발과 고문의 야생동물 같은 시선이 나와 연수영에게 향했다. 내친김에 이적의 수급을 가져오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기세도 조급히 움직이다간 역풍을 맞기 마련이다. 주필산 전투를 패전으로 이끈 두 욕살 고연수와 고혜진이 딱 이런 기세를 타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장안을 지키는 당나라 장수 이정 다음으로 이세민 휘하 가장 위협적인 장수가 이적이었다.
“이적이 사지에 몰렸다고는 하나 당나라의 백전노장입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 아닙니까?”
나는 그렇게 짧게 말하며 제장들에게 냉정함을 요구했고 다시 이적의 군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가 이적이라면 비사용 화살쯤은 최후를 대비해서라도 섣불리 쓰지 않았을 것이다. 화살이 떨어져 쓰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성용이 떨어졌다는 의미일 뿐, 만에 하나 치를지 모를 야전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앞서 싸운 계필사문과 정명진 역시 수백의 노병들이 딸려 있었다.
애초에 육화진법을 구성하는 당나라 군대의 20%가 노로 무장하고 있다. 여기서 기병이 돌격한다면 이적은 틀림없이 우리 기병들을 진법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여 창, 노, 기마 등 온갖 병장기를 총동원하여 포위하려 할 것이다. 탁군에서 나설 때와 비교해 수는 줄었어도 이적은 여전히 4만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요동의 고돌발과 평양의 고문, 그리고 연수영까지 합류한 아군의 군세는 5만. 그렇지만 냅다 백병전을 치르는 건, 만약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그런 선택은 할 수가 없다.’
나는 일단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당의 사기는 꺾였고 보급도 우위에 있으며 주요한 전략적 위치를 선점한 이상 임유관과의 협공으로 어떻게든 수성은 할 것이며 승리는 거의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그저 승리로는 의미가 없다. 이쪽은 연수영 사단의 수군이 주력이다. 그들이 모두 죽고 얻는 승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고구려의 패배일 것이다.
그렇기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혹은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적의 동태를 충분히 살피거라!”
정명진을 끝장내며 대담무쌍했던 연수영 역시 섣불리 진격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생결단이라면 계필사문과 정명진과의 전투에서 경험했다시피 아군의 사상자를 가늠할 수 없다.
‘이것이 당과의 마지막 전투라면 모를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 결론에서 나는 포로로 사로잡은 당군들을 이용할 참이다.
“저들이 겨우 그런 것으로 투항하겠느냐? 하물며 이적이 지휘하는 당군이니라.”
꾸짖는 어조의 연수영은 누구보다 내 계책에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나를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수군을 이끌고 육전을 치르는 것이니 그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그놈의 책임감과 죄책감에 목매는 사람이라는 걸 잠시 깜빡하고 있었네.’
그로 말미암아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는 것도 말이다. 그 덕분에 더더욱 수군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내가 고돌발과 고문,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제게 작전이 있습니다. 두 분의 의지는 알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전면전을 피하겠습니다. 당군의 식량원인 관문 5리의 환희령(歡喜嶺), 옌산(燕山)의 모든 길목부터 틀어막으십시오!”
양측이 제대로 된 진법으로 무장한 진용을 갖추고 있는 이상, 선제공격하는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러나 이적은 배후인 임유관에서 계속해서 습격을 받을 것이다.
그 틈을 이용해 밤마다 당군을 흔들어놓을 시와 노래를 연주할 것이다. 곧 바다에서 생황과 거문고를 비롯한 각종 악기가 도착할 것이니.
초나라 노래가 사방에서 울려 퍼져 항우의 군대가 싸울 의지를 잃었던 것처럼 당군도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