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만리장성 (2)
“삼기군이 임유관을 기습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대장.”
“그래.”
“아니, 그저 적의 동태만을 살피는 게 아니었단 말입니까?”
“그래.”
연수영의 무덤덤한 대답에 질문한 흑벌무는 뻘쭘해했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연수진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언니도 알고 있었던 거야?”
당나라 황제가 검남도(劒南道) 일대와 강남(江南) 12주(州)의 공인(工人)들을 징발해 고구려를 침략할 대대적인 전선 건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장산군도에 전해 온 이는 다름 아닌 남산이었다.
그러나 요동의 수군영에서 뾰족한 대책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중원의 강남이면 요동만에서 수천 리 길이였고 검남도라면 만 리 길에 이르렀다. 수양제가 개착해 놓은 대운하가 강남의 장강과 화북의 황하강을 연결해 발해만의 내주와 등주로 당나라 전선을 내보내는 교통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으니 이를 안다고 한들 고구려 수군으로서는 적들의 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습니다! 주군.
-우리가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은 막리지.”
얼마 전 이곳에 들른 삼기군의 두 대들보인 설인귀와 걸걸중상의 주장처럼 고구려가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으나 누가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평양에서조차 이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는 실정.
그야말로 꼼짝없이 위기가 닥쳐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요동의 수군 장수들 모두가 낙담하던 때에 고구려의 바다와 적의 동태를 살피고 오겠다는 삼기군이 거침없이 중원으로 가는 관문을 기습했다.
“나도 그 아이와 삼기군이 비사성 연안에서 발해만으로 넘어갈 때에야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게 아니냐?”
“지난번에는 대모달이 속이더니, 이번에는 대막리지 형님의 어린 조카가 우릴 속였습니다, 이거. 하하하.”
“하여간 제멋대로인 조카 녀석 같으니.”
그 옛날 연개소문과 의형제를 맺은 흑벌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고 어딘가 시원찮았던 연수진은 입술을 비죽였다.
“언니,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서토의 해양을 봉쇄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소장도 수진 공의 계책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공격합시다!”
“너희의 의견은 일리가 있다만 설만철이를 이기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연수영은 두 장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싸움을 번번이 회피하며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는 이리 같은 당나라 수군 총관을 간과하지 않았다.
산둥반도의 내주와 등주 등지에서 3만8천의 군사와 290여 척의 전선을 거느리고 있는 청구도행군대총관 부마도위 우무위대장군 설만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쩌자는 거야? 이대로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기다릴 참이야?”
연수진이 묻자 해도를 유심히 보던 연수영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만에 하나 남산 조카가 임유관을 함락한다면 설만철로서도 더는 싸움을 피할 수만은 없겠지. 틀림없이 지난번처럼 우회하여 발해만으로 들어설 것이다.”
연수영은 그때야말로 산둥의 당나라 수군을 완전히 무력화할 한판 승부가 벌어질 것이라 보고 있었다.
“흑벌무.”
“예! 대장.”
“수성(守城)과 육전(陸戰)에 뛰어난 정병 7천을 줄 터이니 너는 임유관으로 가거라.”
“예에? 바다가 아니라요?”
“삼기군은 성을 지키기에는 적절한 군사가 아니다. 벌무 네가 가서 도와줘야겠다.”
“하나 그리되면 묘도군도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요?”
“대흑산도, 고산도, 장도에서는 물러날 생각이다.”
“그곳은 묘도군도의 최전방이 아닙니까?”
“그곳 섬들은 당의 등주와 내주에서 지나치게 가깝다. 보급이 어려운 우리가 언제까지고 수군을 주둔시켜 지켜 낼 수 있는 섬이 아니다.”
지난 전쟁 이후 고구려 수군이 3년 넘게 묘도군도를 지켜 낼 수 있던 것만으로도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날이 좋고 파도가 잔잔하면 산둥에서 출항하여 반나절에 묘도군도 전역을 둘러볼 수 있었다. 최전방의 섬들은 단기적으로 적의 함선을 초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고구려가 장기적으로 지킬 수 있는 섬들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배를 건조해 주지 않았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
튼튼한 판옥선이 있었기에 그간 당선의 끊임없는 약탈과 침략도 막아 낼 수 있었다.
지난 해전에서 만일 장산군도와 석성이 무너졌다면 연수영은 아마도 압록강변의 청구도까지 밀리며 후방에서 당나라 수군과 대적했을 것이다. 그때만 생각한다면 연수영은 지금도 손이 떨리고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위기의 상황에도 역시나 그 아이가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적극 도와줄 생각이다.
“대장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지금 당장 임유관으로 진군하겠습니다! 강이식 대모달께서 수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친 역사적인 전장이 아니겠습니까?
-수나라 황제의 오만무례한 글은 붓으로 화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화답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상고사』
서토와 대적하고자 한 강이식의 정신을 떠올린 흑벌무가 태대사자 수군절도사의 명을 받아 정병 7천과 함께 갑판 위에 올랐다.
* * *
[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허물이라 하였다. 그런데도 그대가 모시는 주인이 계속해서 고구려를 넘보며 우리 백성들을 괴롭히는 연유가 무엇인가. 태왕(太王)께서 나로 하여금 요하(遼河)와 요수(遼水)를 넘보려는 서토의 본거지를 토벌하라 이르셨으니 그리하여 내가 오늘날 옛 승전고(勝戰鼓)가 울린 유서 깊은 임유관(臨渝關)에 당도하였다. 이미 싸움은 끝이 났고 백성들은 편안하니 그대는 하루속히 걸어 잠근 부속성의 성문을 열고 걸어 나와 부복하고 해명하라. 당나라 초대 제왕 고조(高祖)의 당질(堂姪) 임성군(任城君), 번왕(藩王) 강하왕(江夏王) 승범(承范)은 지체하지 말고 어서 태왕(太王) 폐하의 지엄하신 엄명(嚴命)을 받들라.]
“개금의 아들 따위가 말갈 놈들을 구워삶은 걸로 감히 대당 제국 고조의 5촌 조카이자 동평왕의 아들인 나를 능멸하려 들다니!”
자그락. 손을 부들부들 떠는 이도종은 홧김에 연남산의 서신을 구겨 버렸다. 그러나 그런 분노가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악명 높은 삼기군의 두 장수인 설인귀와 걸걸중상은 물론 배신자 이근행 부부가 영해성을 에워싼 채 언제라도 쳐들어올 기세였다. 군수창고와 군량을 보관하는 창고 역시 이미 저들 손에 넘어갔으니 군수품과 양곡이 모두 고구려의 수중에 넘어간 셈이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아군은 굶은 상태로 오늘 밤이라도 충차와 투석 공격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아군의 군수품과 보급품이 칼이 되어 돌아오게 될 처지였다.
“절반이 넘는 군사가 먹을 군량이 내일 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서 나와 보십시오! 임유관 동쪽 성벽에 방 공의 목이 걸렸습니다! 군사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습니다!”
“방 공이 누굽니까? 황제 폐하의 부마도위가 아닙니까? 고구려 놈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목숨을 거두는 잔인한 놈들입니다! 그 때문에 모두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동쪽의 노룡두는 바다에 막혔고, 임유관은 고구려의 수중에 떨어졌으니 정녕 고립이 된 게 아닙니까?”
시시각각 들려오는 보고에 오래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신이 숨은 영해성이야 장성의 주요 관문인 임유관의 부속성에 불과했다. 고구려가 마음만 먹는다면 힘으로 찍어 누를 성이었다.
“내 방유애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이근행을 그때 죽였더라면 오늘의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을!”
한바탕 울부짖은 이도종은 크게 후회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후회해도 이미 늦은 법이다.
“너희들은 모두 포위되었다! 살고 싶으면 투항하라!”
그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 영해성 밖에서 이번에는 설인귀가 목청껏 외치며 권고하고 있었다.
“설인귀 이 배신자 놈! 이민족 놈들을 결코 믿어서는 아니 됐거늘.”
따지고 보면 이민족에 대한 중원의 불신은 요동에서 투항한 설인귀가 그 시발점이었다. 황제를 지척에서 모신 이민족 나부랭이 놈이 개금의 아들의 심복이 되어 화살로 돌아온 것이다.
“이 번왕인 내가 고구려 오랑캐에게 항복을 해야 한단 말인가!”
좀처럼 결심하지 못한 이도종이 이를 바드득 갈며 울부짖었다.
* * *
“서둘러라!”
“오늘까지 성곽 보수를 모두 마쳐야 한다!”
“내일부터는 남문 개축을 실시할 것이다!”
이도종의 투항을 기다리는 사이 나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임유관 내의 노동력을 총동원해 신속하게 성곽 보수를 실시했다. 곧 임유관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요하와 요수를 넘어 저 중원에 전달될 것이다. 고구려가 중원에 진군할 것이라는 소식이 이세민의 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당장 중원으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면 증개축(增改築)은 필수겠군.’
물론 나는 아직 중원을 넘을 생각이 없었다. 중원을 넘보기에는 당장 북쪽에서 양만춘과 대치하고 있는 이적의 10만 대군도 걸리거니와 상당히 빠듯한 실정이었다.
미림부와 고정의가 다녀가는 등 새로 넓힌 아리수 유역의 려주에 대한 본격적인 관리와 발전에도 들어갈 돈이 적지 않아 이곳에 대한 중앙에서의 지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지도 오리무중이다.
그러니 우선은 이곳을 틀어막아 요서에 주둔한 이적을 고립시키고 중원과의 연결 고리부터 끊어 내야 한다.
‘내가 원하는 형태의 요새가 되기에는 제법 시일이 걸리겠군.’
만리장성은 북방 유목 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인류 최대 규모의 건축물답게 외부의 적이 침입할 수 있는 북쪽과 동쪽은 그야말로 견고한 요새였던 반면 그 반대쪽인 중원에서 올라오는 보급품을 맞을 남쪽은 여타 고구려 변경의 성만도 못했다.
후일 산해관으로 그 이름이 바뀔 임유관은 어디까지나 몽골의 침략을 막고자 관문을 개축한 명나라의 명장 서달과 동서남북의 본격적인 사각 요새화와 군사기지화를 실시한 척계광으로 말미암아 거용관과 더불어 난공불락인 만리장성의 관문이 된 것이다.
지금의 임유관으로는 고작 북쪽에서 밀고 내려오는 적들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형편상 미래의 산해관처럼 사각 요새화까지는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 대비는 필요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요!”
“저희도 도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다행히 관문 인근에 돌덩이도 준비돼 있고 주둔한 병력에 비해 상당한 노동력이 있다는 부분 역시 증개축에 큰 몫을 차지했다.
한족이나 말갈족뿐만 아니라 거란족, 돌궐족, 해족과 지난 전쟁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했던 고구려 출신의 노동력도 여럿 있었다. 모으고 보니 그 수가 무려 수천이었다. 이곳을 지키는 당나라 군사들의 수에 비해 왜 이렇게 많은 숫자가 임유관에 있나 싶었는데 나는 이곳이 중원과 요동이 연결된 지점이자 가장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장성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밥만 먹여 주신다면 그까짓 돌덩이 하나 나르는 걸 못 하겠습니까요!”
“저는 엿만 주셔도 좋습니다요!”
그나저나 양곡과 간식을 푸는 것만으로 이런 반응이라니, 아무래도 전 주의 이민족들에 대한 대우가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야 이거 남쪽에서 온 해의(海衣)로 싼 양곡인데 맛이 기가 막히구만!”
“김인지 감태인지 그 감칠맛 나는 주먹밥 좀 먹게 해 주십시오!”
“딱 한 개만 더 주시면 내일 치까지 오늘 내로 끝내겠습니다요!”
그게 아니라면 한반도 남부에서 얻은 다량의 김이 한몫을 했을지도 모르고. 설마 김을 삼국시대부터 먹을 줄 누가 알았겠나. 김 주먹밥을 좋아하는 이민족들을 보자면 제대로 된 김 양식을 실시하는 것으로 무역 수출까지도 노려 볼 수 있겠다 싶었다.
“말씀하신 이들을 데려왔습니다! 도련님.”
“수고했다.”
옥소가 데려온 이들은 중원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전문가들, 즉 장성의 보수와 군수품 제조 등 중원에서 온 다양한 기술자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과거 영양태왕이 태자까지 수나라에 밀파하며 중원의 기술자들을 빼내 오던 수고를 던 셈이다.
“저희 기술자 집안은 대대로 북제에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북제와 연이 있는 고구려를 섬기질 못할 이유가 없지요!”
“하물며 이곳은 고구려의 왕족이 세운 옛 연나라의 땅이 아닙니까?”
“저희 말고도 고구려를 환영하는 백성들이 적지 않습니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과거 고구려와의 연을 기억하며 순순히 협조해 주었다.
북연이라면 미천태왕의 무덤을 도굴한 모용씨의 선비족을 무너뜨린 고구려 왕족이 세운 나라였다.
‘연나라가 미천태왕의 무덤을 도굴할 때 끌려간 고구려인의 후예라 했던가.’
미천태왕의 도굴과 더불어 태후, 태왕후을 포함한 5만 명의 고구려인 포로가 연나라로 끌려갔다.
후일 원수 연나라를 치기 위해 중원에 들어선 광개토태왕이 모용씨의 뿌리를 뽑기 위해 결심을 마쳤으나 이미 모용씨를 무너뜨린 고운(高雲)을 만난 뒤 종족의 연을 맺고 국내성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고구려인들 사이에 매우 유명한 일화였다.
그런 북연이 멸망한 뒤 요서 지역은 자연스레 고구려와 북연을 멸망시킨 북위가 양분하게 되었다.
중국이 분열돼 있을 때, 그러니까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당시 고구려는 이미 이곳 고운의 연나라가 터전을 잡았던 임유관과 요서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고 북쪽 몽골 접경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수나라가 통일하자마자 세력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나라의 만리장성 확장으로 임유관의 성세가 바뀌긴 했으나 인근 봉수대의 위치나 성곽이 어딘가 모르게 북방 민족이 아니라 중원을 막고자 하는 형태로 보이기도 하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역사가 만드는 인재라.’
북위에서 쪼개진 서북의 북주와 고구려와 인접하며 관계를 쌓아 온 동북의 북제. 수나라의 모체가 서북의 북주라면 동북의 북제 사람들은 수나라에 의해 멸망을 당했으니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 영양태왕은 그들의 원한을 이용해 중원의 기술자들을 성공적으로 빼내 올 수 있었고 수나라의 말갈 포섭 정책을 막기 위해 일부러 말갈 기병을 거느리며 선제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내가 형제들을 죽인 원수 방유애를 처단했다!”
수나라의 뒤를 이은 당나라의 말갈 포섭 정책을 막기 위해 이번에 이근행이 방유애를 처단한 것에 아무런 제지를 가하지 않은 것도 오늘날 조금 다른 의미에서의 선제공격이기도 했다.
이민족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원한만큼이나 적절한 효과는 없을 것이다. 방현령과 제 딸을 아끼는 이세민으로서는 사위를 잃으면서 말갈에 대한 포섭을 멈출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은 응당 고구려로 향하겠지만.
“작은 막리지! 작은 막리지! 영해성과 노룡두에서 투항 의사를 전해 왔습니다!”
명후일 아침 동이 트자 걸걸중상이 희소식을 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