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163화 (163/335)

163화 동분서주 (1)

“남산이에게 형님의 군사를 내어주신 게 신라를 치기 위함이었단 말입니까?”

“왜? 부족할까 싶어 삼기군도 보내 주었고 별도의 지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은 또 뭐가 불만이냐?”

“어찌 제가회의에서 의결을 거치지 않으셨습니까? 도성에 주둔한 군을 움직이기 전에 귀족들의 의사를 묻지 않으신 것은 형님답지 않은 성급한 결정이셨습니다.”

고정의에 이어 집무실에 든 연정토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따져 물었다. 그러자 연개소문의 눈썹이 꿈틀했다.

“틈만 나면 사찰을 봐 달라 태왕 폐하의 면이 서질 않으니 동사의 철폐까지는 하지 말아 달라, 고뿔을 핑계로 우두침을 맞지 않으려고 등청조차 거부하는 놈들을 상대로 어느 세월에 의결을 거치고 군사를 보낸단 말이야?!”

연개소문의 역정에 한 소리 더 하려던 연정토의 입이 쏙 들어갔다. 하지만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자그마치 연개소문 직속의 군사를 막내 조카인 남산이 거느리고 신라를 쳐 아리수 이북을 수복한 큰 사건이었다.

연개소문과 함께 삼한에 알려진 남산의 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찌 이런 일이!’

사찰의 약화는 태왕과 귀족들이 가진 권한의 약화를 의미했고 남산이 주도한 우두침으로 귀족들이 연개소문의 말에 꼼짝하지 못하게 되었다. 연개소문과 귀족들 사이의 중재인 역할을 담당하던 연정토로서는 선도해마저 빠지자 중간에서 무척이나 곤란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정토야.”

“예, 형님.”

“네가 요즘 귀족들 사이에서 난감해하는 것은 잘 안다만, 고구려를 위한 일이지 않았느냐? 태왕께서도 귀족들도 옛 태왕께서 진출한 땅을 이리 되찾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느니라.”

연개소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분명 고구려로서는 경축할 일이다. 그러나 연정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당나라와의 첫 일전이자 전면전에서 큰 공을 세운 것부터 우산국, 가야 정벌로 삼한의 바다를 얻었으며 대장산도 대첩과 이번 아리수 이북 수복까지. 나열된 군공은 어느 고구려 장수도 해내지 못한 업적이었다.

문제는 양만춘의 승진부터 요동의 수군 기지인 수영(水營) 설치로 연수영의 태대사자 연임까지 이끌며 인사에 관여했고, 태학을 중심으로 여러 내정 사안과 전국에 우두침 시행을 이끌었으며 사찰의 통제 역시 지금까지의 정황만으로 누가 주도했는지를 논할 수 있었다.

연정토가 도성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이 막내 조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에 따른 결과물과 더불어 칭송받는 연개소문은 더욱 남산을 사랑하고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한 번이라도 실패했다면 이를 물고 늘어질 연정토였지만 도무지 틈이 보이질 않았다. 그나마 우두침 관련한 일만이 터무니없는 일이어서 따져 볼 만했으나 당나라 황제가 퍼뜨리려는 악병이라는 소문에 어느덧 안학궁의 터줏대감 연개소문이 주도적으로 시행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연정토는 괜스레 자신의 어깨에 딱지가 떨어져 나간 부위를 만지작거리며 제 아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남산을 더는 어린 막내 조카로만 볼 수 없었다.

“남산 조카가 지금 도성으로 돌아오고 있다고요?”

연정토의 시선이 자리에 착석한 고정의에게 향했다.

막내 조카가 도성에 돌아오기 전에 무슨 수를 써 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아끼는 남생이 설 자리는 영영 없을 것이고 장차 형제간의 골육상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저, 그것이 돌아오고는 있습니다만.”

“대로는 뭔데 그리 조심스러운 겐가?”

고정의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연개소문이 자세를 바꾸었다.

“남산 중리대형 말입니다.”

“남산이가 왜?”

고정의는 남산이 전한 서찰을 보일까 하다 그냥 자신이 직접 말하기로 했다.

“대막리지께 도성이 아니라 요동으로 갈 것이라 전해 달랍니다.”

“뭐라, 요동은 갑자기 웬 말이야?”

“대모달의 부상 소식을 듣고는 서쪽이 염려된다 하니.”

“이런, 대체 누가 그 소식을 전했는가? 그쪽은 본디 내가 담당해야 할 일이거늘.”

남산의 다음 행보에 연개소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연정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 전 대처를 마련하려는 자신이 바보 같았기에. 눈뜬장님처럼 막내 조카의 활약을 다시 지켜보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 * *

“비우 아우가 도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요?!”

“그리운 아우가 돌아오니 그리 기쁜 거야?”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작은 막리지.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아리수를 벗어나 고구려 해협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홍기군이 귀환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걸걸중상이 두 손을 꽉 쥐며 누구보다 반겼다.

남쪽 전선에는 조금 위험한 조치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가야가 온전히 제힘만으로 지킬 수는 없어 보낸 검모잠과 걸사비우가 통솔하는 두 부대 가운데 한 부대를 불러들이려 한다.

왜에서 몰려온 인적자원과 대마도의 금은광을 캐어 얻은 물적 자원의 보급으로 현지에서 무려 8천에 달하는 가야군을 모집했다. 그 병력은 내가 우산국을 정벌하고 가야 점령 직후에 주둔했던 걸사비우의 홍기군보다 많은 숫자였다.

그것도 절반은 자발로 지원한 것이며 모두 가야가 자랑하는 철제 무기로 무장한 정병이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비담과 흠돌의 영향으로 신라에서 온 이주민 수백과 왜와 남쪽의 섬에서 건너온 옛 진한인들까지 더해져 가야를 지킬 장정들은 나날이 늘어 갔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이 가야에 주둔한 홍기군을 불러들일 적기였다. 산기와 선기 못지않게 남쪽에서 갖은 원양 항해와 전투 경험을 꾸준히 쌓아 온 홍기군은 추후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시 뭉치는 삼기의 유대감은 별도로 친다 해도 말이다.

사실 홍기군을 조금 일찍 불러들여 아리수 전역 수복에 투입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가야군의 부족한 훈련 상태를 고려해야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회만 보이면 언제든 가야를 넘보려는 김유신이 1만의 기병을 몰고 비사벌군을 우회하여 다시 낙동강을 건넜으니 홍기군을 당장 불러들이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선전한 가야 군사들의 저항도 높이 평가할 만했고 슬슬 홍기군을 불러들여도 되겠다는 최종 판단이 섰다.

‘가장 큰 이유야 홍기군을 대신해 가야를 지킬 군사들을 찾은 것 때문이지만.’

강남 일대를 제외한 아리수 유역과 매소홀 지역을 점령하면서 생포한 가야 출신의 포로들과 남쪽에 내려가 살길 바라는 백제와 신라인 포로 역시 적지 않았다. 당장 하남과 강남 지역에서 걸걸중상이 사로잡은 포로의 수만 해도 2천에 이르렀다.

적응하는 데 시일이 다소 필요하겠지만, 홍기군에게 바통 넘겨주기 아주 적절한 군사들이었다.

“저희가 가야를 지키겠사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던 나는 이번 아리수 이북 공략에 큰 역할을 수행한 연개소문 직속의 청룡부대 가운데서 별도로 1천의 군사를 선발해 가야로 내려보낼 예정이다. 그 대가로 추후 연개소문에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고 고급 병사인 만큼 주둔비로 큰돈을 써야겠지만 그래야 내가 안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주둔비라고 해 봐야 한창 무역 경제 호황을 누리는 가야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검모잠이 이끄는 고구려 정병 6천6백, 가야군 8천, 비담과 흠돌 휘하의 진한군 1천7백, 청룡 부대 1천, 포로 출신의 삼한인 2천까지 어느 정도 가야에 주둔할 병력의 수가 정해졌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그 김유신으로부터 가야를 온전히 지키는 데 족히 2만의 군사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성이 아니라 요동으로 가신다고요?”

한편 패수(浿水)로 가는 길에서 점차 비틀어지는 항로에 의문을 가진 설인귀가 다음 행보를 물었다.

“왜요? 개선장군이 되지 못해 아쉬우십니까?”

“아니, 그런 것이 아니오라 주군께서 요동으로 갈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요하지만 일단은 요동으로 해 두지요.”

솔직히 나도 설인귀와 마찬가지로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다. 실제 역사와 달리 내가 바꾸어 버린 인사 변동이 꼭 좋게만 흘러가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름 최선의 결정이었다. 안시성 전투에서 이세민의 6군은 괴멸했고 황제가 도주하는 사이 고구려는 만리장성 이북의 요서 지역의 수백 리를 확보했다. 이곳을 지키기 위한 적절한 인사는 안시성을 지켜 낸 양만춘 말고는 다른 적임자를 찾기 힘들었다.

문제는 평원과 천산산맥으로 이루어진 험한 산지를 적절히 이용해 산성을 쌓은 요동의 천리장성과 다르게 얕은 구릉지가 주류인 요서 지역은 수성하기에 적합한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서를 선제 공격 했던 영양왕도 그렇거니와 요하를 넘은 옛 태왕들이 요서를 온전히 지배하지 못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고구려가 괜히 강과 산을 낀 요동에 장성을 쌓았겠는가. 방어에 유리하니 그렇게 한 것이지.

판축 기법의 대가이자 제아무리 수성에 일가견이 있는 양만춘일지라도 당나라의 계속되는 소모전에 요서를 안정적으로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요서 방비에 대한 어떠한 대책이 필요했다. 척박한 요동 지역도 발전을 시켜야 하고 여차하면 가야 때처럼 중원 내에 고구려 기지를 설치하여 그들이 더는 곰 형상의 유물과 옥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 썼다는 요하 문명의 터전을 넘보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양만춘 대모달은 무탈하실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거라.”

그래야 옥소의 얼굴에도 근심이 사라질 것이니.

* * *

서라벌로 돌아온 김유신은 낙담했다. 가야를 위해 그토록 애쓰며 환대받던 때와는 그 시절이 달라지고도 한참이나 달라졌다. 그들은 가야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 정병들을 상대로 용맹하게 맞섰고 가야를 지키자는 구호를 외쳤다. 김유신은 그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며 진퇴양난을 거듭하다 물러섰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옵소서! 대장군.”

“백제로부터 빼앗긴 스무 개의 성을 되찾으셨사옵니다! 춘추 공께서 그리 뭐라 나무라시지만은 않으실 겁니다.”

“당당히 들어가시옵소서!”

서라벌에 들어서기 전 김춘추의 소환에 혹여 문책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한 진춘과 천존 등의 수하들이 한마디씩 보태며 말해 주었으나 김유신은 이미 가야에서 큰 충격을 받은 만큼 문책 따위야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이찬간께서 찾으십니다.”

서라벌 왕궁에 들어서자마자 김춘추가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춘추의 안색은 어두웠다.

“어서 오시구려.”

“심기가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대장군 때문은 아니니 염려하실 일은 없소이다.”

“예?”

김유신은 응당 자신 때문일 것이라 보았으나 아니라 말하는 김춘추를 보며 당황했다.

김춘추가 손에 쥔 구겨진 서찰을 보이며 말했다.

“내 아들 인문이가 고구려의 평양으로 갔다는 게요.”

“인문이가 평양에 말입니까?!”

진정 자신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너무 갑작스레 진행된 사태에 김유신의 신경이 곤두섰다.

“인문이 녀석, 연개소문의 아들을 만나 고구려의 의중이나 알아보고 오라만 하였거늘 어찌 이리 대책도 없이 따라갔단 말인가.”

“이는 춘추 공의 아들을 볼모로 잡아 두려는 연개소문의 검은 속이 아니겠습니까?”

눈이 돌아간 김유신이 허리에 찬 칼집을 움켜쥐었다.

그 안에는 입궁하기 전 가야인의 피로 물들어 손수 닦아 낸 칼날이 들어 있었다. 김유신은 이러한 운명을 만든 당사자를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그 아들로 돌리며 분개했다.

“당장 따라오지 않으면 고구려의 대병이 한수(漢水)를 도하해 신주를 넘볼 것이라 하니 그 참한 아이가 어이하겠는가.”

아들의 결정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구려가 더는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막으라 한 것이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안절부절못한 김춘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춘추 공?”

“나는 신주로 갈 것이네.”

“신주라니요, 그곳은 위험합니다!”

“내게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꺼내며 살길을 일러 준 연개소문의 책사가 그곳에 있으이.”

서라벌로 귀환한 김춘추는 이 난세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

마냥 당나라 황제의 비답만 기다리고 있기에는 진흥제께서 넓히신 신주의 태반이 날아간 신국의 사정이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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