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해동강국 (2)
고구려 천하를 이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그 첫 번째는 당장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판도의 외교 관계를 성립하는 것도, 또 새로운 자원과 무기를 개발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던 내부를 다스리는 것. 내정을 완비하기에 있어 어지러운 내부 사정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는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만큼이나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요승이 출현하는 작금의 고구려를 본다면 안과 밖으로 공을 세우면 세울수록 시기와 음모가 판을 치니, 궁예와 호족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던 왕건이나 선조와 조정 대신들의 멸시를 받던 이순신의 마음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에 앞서서는 연수영이, 시간을 거슬러 옛 조선의 멸망을 돌이켜보자면 내부가 한뜻으로 뭉치지 않고 음해만을 일삼기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나는 바람 좀 쐬러 나온 사람처럼 갑판 위에서 충청남도와 전라도 해안의 바다향을 맡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찌 됐건 이 정도까지 분위기를 만들어 준 이상, 연개소문은 망설이지 않고 요승의 목숨을 거두어 고구려에 두고두고 후환이 될 요소 하나를 제거해 줄 것이다.
“후우. 이제야 고구려의 혹 하나를 떼는구나.”
두 팔을 올리며 찌뿌둥한 몸을 푼 나는 그제야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내가 남산의 몸에 빙의하면서 흡수한 기억으로 알게 된 신성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인간으로 명백히 연개소문 아들들을 이간질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아주 간악하고 요사스러운 승려였다.
만일 내게 권한이 있었다면 작은 형 남건이 그자를 태학에 데려온 그날 숨통을 끊어 버렸겠으나, 귀족들과 오랜 시간 카르텔을 형성해 온 사찰의 위세를 알고 있었기에 결국 사건 하나 터지고서야 그를 빌미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나마 너무 늦지 않게 끝을 보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필경 다른 사찰은 물론 태왕과 귀족들을 구워삶게 될 신성을 제거하기란 더욱 어려워졌을 테니까.
거기다 내가 사찰철폐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되었기에 급히 도성을 벗어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도성에 남아 있었더라면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무슨 수라도 쓸 신성이 틀림없이 나를 걸고넘어졌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귀족들과 다른 사찰의 눈총을 받게 되는 둥 꽤나 골치 아파진다.
그러므로 오로지 아버지 연개소문이 그렇게 하였다는 구실만이 번거로운 시선들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귀국의 요청대로 그 날짜에 백제 궁에서 보도록 합시다.
시간에 맞추어 카마타리의 답신이 내게 전해지면서 도성을 나설 구실까지 완벽했던 건 덤.
물론, 거기에는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작은 막리지, 작은 막리지!”
“걸걸이냐?”
“예. 접니다.”
“무슨 일이야?”
“그게… 군사들이 도무지 말을 들어 먹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야 반은 말갈이라 혼종 소릴 듣습니다만, 옥소 누님은 계집이라 욕을 먹고 계시고요.”
바로 연개소문 직속 청룡 부대를 거닐고 출정해야만 했던 것. 연개소문을 구실 삼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명분은 수가 몇이 됐든 그가 통제하는 군사를 내가 지휘해 나서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연개소문의 군사를 거닐고 남쪽으로 내려간 내가 다시 도성으로 귀환했을 때야 비로소 도성의 귀족들이 이 모든 일을 연개소문이 꾸몄다 여길 것이다.
“대막리지 직속 부대를 거닐게 된 것은 미천한 소장에게 참으로 꿈같은 일입니다만, 삼기군을 모두 도성에 두고 오신 것은 남산 공자님다운 판단이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와 같은 걸걸중상의 불만처럼 부작용이 잇따랐다.
대막리지를 따르는 고구려 최정예 부대가 그나마 내가 하는 말이나 듣는 시늉을 하지, 말갈 혼혈의 걸걸중상과 여성인 옥소를 따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여기는 바다라는 또 하나의 전장이었다.
“글쎄다. 저기 저 군사들을 한번 보거라. 물길을 살피는 옥소를 그저 무시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에 우측 뒤에서 항행 중에 있던 판옥선을 문득 가리켰다.
처음에 보였던 반발심 있는 기세와 다르게 진땀을 흘리며 허둥지둥 옥소의 명을 따르는 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이야 우습게 봤을 걸걸이나 옥소일지 몰라도 실상 도성에서 반복된 수성 훈련과 무예에만 치중하며 용병술에 전념하던 그들이 연개소문 직속 부대의 진면이었다. 물론 그 수비력을 바탕으로 후일 대당 전쟁의 막바지에서 연개소문이 지휘하는 최후의 전투 사수(蛇水)에서 대첩을 거두는 원동력이라 한들, 정복군으로서의 실력은 극히 떨어진다.
철저한 훈련 하에 별도의 항해술을 익혔다고 해도 실전에서는 오히려 삼기군과 그들을 이끄는 장수 걸걸중상과 옥소가 우위에 있음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아니, 그럴 수가.”
이내 나와 마찬가지로 청룡부대가 옥소의 지휘에 따르며 판옥선을 운용하는 걸 보고 감탄하는 걸걸중상이었다.
기존의 고구려 범선인 고구려선과 판옥선은 얼핏 비슷해 보일지라도 엄연히 항해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렇기에 이를 항해할 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곧 생명의 문제로 직결된다.
“으아아!”
“나 살려!”
“우에엑! 케켁!”
거친 파도에 휩쓸리며 비명을 터뜨리는 몇몇 판옥선을 향해 옥소가 야단을 치듯 소리쳤다.
“상명하복(上命下服). 너희가 이 체계를 어긴다면, 바다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말갈과 강한 유대감을 지닌 걸걸중상이야 지금과 같은 상황을 겪는 것이 제법 오랜만일지 몰라도 옥소는 삼기군을 통솔하면서 이미 앞서 몇 번이고 경험한 일. 노하우가 쌓인 만큼 반항하는 새 군사들을 다루는 데 훨씬 능숙해졌다.
“소장이 옥소 누님을 과소평가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것 같구나. 뭐 너도 그렇고 이젠 엄연히 수천의 고구려 군사를 지휘하는 말객이지 않냐? 조금 전 걸걸이 네 말에 한소리 거들자면, 갑비고차와 각미성을 지키던 흑수돌이 도성에 돌아왔으니 삼기군은 도성을 지킬 것이다. 내 아버님이신 대막리지의 군사를 빌렸는데 그에 상응하는 부대는 도성에 남겨두어야 안전하니까. 그렇지?”
그것이 연개소문의 군사를 빌릴 수 있는 유일한 대가였다. 그러나 때가 되면 삼기군은 덕적군도로 내려와 한강 유역을 지배하는 신라를 위협할 것이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혹여 당나라 놈들이 지난번처럼 다시 해선을 보낸다면 삼기군이 도성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요. 소장이 생각이 짧았습니다.”
짧게 반성을 마친 걸걸중상이 곧 옥소가 했던 것처럼 물살에 허우적거리는 군사들을 통제하기 위해 움직였다.
나와 함께 끊임없이 성장하는 그들은 장차 태학과 더불어 해동(海東)을 이끌 고구려의 미래였다.
* * *
2세기 전 고구려 장수태왕의 남하 정책으로 한강 유역을 상실한 뒤 풍요로운 옛 마한의 영역에서 새 터전을 꾸린 부여 씨와 대성팔족(大姓八族)의 백제는 여러 차례 중흥을 일으킨 새 군주들의 등장과 함께 찬란했던 고유의 문화를 꽃피웠고, 고구려와 신라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성해졌다.
무령왕·성왕·무왕에 이어 백제 최대의 중흥기는 바로 해동증자(海東曾子) 의자왕이 다스리는 이 시기였다. 성충과 흥수와 같은 훌륭한 재상들이 있으며, 윤충, 계백, 의직, 흑치사차 등의 특출난 장군들이 왕을 따르고 있었다.
“어라하께선 남산 중리대형이 탑승한 대장선을 제외하고는 고구려의 어떠한 범선도 백강에 오를 수 없다 하셨습니다.”
멀리 금강 하구가 보이는 죽도에 이르자 미리 마중 나온 흑치사차가 의자왕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의자왕이 두려워하는 것은 연개소문의 군사나 고구려의 전선보다 그들의 위세로 왕의 국격이 떨어질까 그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고구려와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그러는 백제도 아니고, 적대국 신라가 당에 꼬리를 치자 자연스레 고구려와 가까워진 것뿐이다.
유럽의 절대왕정에 누구보다 어울리는 왕이 다름 아닌 의자왕일 터. 고구려가 왕권에 방해가 된다면 언제라도 멀리할 준비가 되어 있을 군주였다.
“우리 고구려 수군이 백강에 오를 일은 없으니 백제의 어라하께서 염려하실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죽도에 주둔할 수 있게는 허락해 주시지요. 고구려 전선이 백제에 주둔하는 것만으로 신라를 위협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내 제안에 흑차사차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죽도는 날이 맑으면 사비로 가는 길목인 기벌포(伎伐浦)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섬이었다.
당장은 이곳을 드나드는 각국의 무역선과 왜와 같은 해상국가의 선박에도 적지않이 위협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바라던 바기도 했다.
곧 이곳에 당도할 왜의 실세가 평양에 온 왜의 사신처럼 고구려 수군의 위용에 압도당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뭘 망설이고 계십니까? 아버지. 그런 엉또당또안허는 고구려인 말에 대꾸도 못 하시다니요?”
“어허! 여긴 상지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고구려가 아무리 동맹이라 한들 우리 백제 앞바다에 저리 큰 범선을 주둔시킨다면 어느 나라가 여기를 백제라 보겠습니까?”
그때 흑치사차 뒤에 기골이 장대한 청년이 제 아비를 꾸짖고 있었다.
원대하면서도 고상한 기질에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후일 백제 부흥 운동의 지도자이자 당나라의 무장으로서 크게 이름을 떨칠 사내. 과거 그들 조상이 거주하던 지방에 검은 이를 가진 사람이 많다 하여 붙여진 흑치 가문. 그 가운데 제일의 명성을 누린 이는 단연 흑치상지일 것이다.
“어린 녀석이 윗사람에게 가르침을 내릴 줄도 알고 당돌하구나.”
“내 성년이 된 지 이미 몇 년이 지났거늘, 누구한테 들을 소린 아닌 것 같소만.”
목소리를 긁으며 이번에는 나를 가르치는 흑치상지를 보자 아차 싶었다. 벌써 5년째를 맞이하는 입장에서 내 원래 나이에서 더하며 잠시 착각을 하고 말았다.
“흐음, 그건 네가 지금 백제 사정을 몰라서 그러는 게다. 우리 고구려의 배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백제 해역을 지켜 주고자 하는 것이다.”
“고구려는 우리 왕께서 우리 바다도 지키지 못하는 소인배라 보는 게요?”
어려서 소학(小學)에서 <춘추좌씨전>, <한서>, <사기> 등을 읽었다더니, 그래도 할 말은 하는 흑치상치는 틀림없는 백제 사내였다.
부흥군을 배신했다는 일화로 후일 역사에 엇갈린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흑치상치와 비슷한 처지가 된 미래 남산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장안에서 만난 그는 틀림없이 깊은 회의감을 가졌다.
비단 망국인으로서 가질 공통된 마음이나 흑치상치가 백제 부흥군을 배신했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신분제로 꼽았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인들, 평생토록 달솔(達率)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흑치 가문.
정원 30명인 백제의 제2관등 달솔은 흑치 씨 가문이 대대로 이를 역임하였고, 흑치사차의 조부인 문대(文大)와 아버지인 현덕(顯德)뿐만 아니라 자신과 아들인 상지(常之)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솔에 머물렀다. 이러한 사실은 흑치 씨 가문이 백제에서 제1관등인 좌평(佐平)까지 승진이 가능했던 왕족 부여 씨나 대성팔족(大姓八族)과 같은 1급 귀족에는 미치지 못하는 차상급 귀족 신분이었음을 의미한다.
제아무리 출중한 능력을 지녔다 한들 신분 상승의 한계는 욕망을 품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거기다 의자왕의 차별적인 신분 대우는 그가 나당 연합군의 침공에 사비를 버리고 웅진으로 도피했을 때 백제 조정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 못했던 매국노 예식진을 만들었다. 그는 왕을 배신하고 사로잡아 당군에 투항하여 출세하였다.
나라가 망하고도 남은 백제 왕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백제 부흥군은 왕족인 부여 씨와 마한 땅에 터전을 이룩한 대성팔족(大姓八族)이 아닌 자는 배척을 하였기 때문이다.
씁쓸한 미래이나 이는 고구려나 신라의 신분제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사정이다.
당의 우무위대장군이 되어 토번과 돌궐을 쫓아낸 흑치상지가 신라가 아니라 당을 선택했던 건 어쩌면 설인귀를 본으로 이민족들도 충분히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기에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
이러한 씁쓸한 진실을 머지않아 알게 될 그가 백제나 당이 아니라 해동의 강국으로 우뚝 설 고구려를 위해 싸워 주면 어떠할까.
기벌포를 지나 백강에 이르면서 그런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