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122화 (122/335)

122화 미래를 위한 준비 (2)

“고요묘(高饒苗)?”

“태왕 폐하의 먼 친척이며 제가회의에서도 나름 권위를 갖춘 왕가의 후손입니다. 그 댁에 참한 따님이 계신데 우연인지 남산 중리대형과도 동년배입니다.”

선도해의 요점을 간추린 간단한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연개소문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권위를 갖춘 왕가의 후손이긴, 지난 혁명 이후 겨우 목숨줄이나 연명하려고 어떻게든 제가회의에 붙어먹는 한심한 집안이 아닌가? 이런 가문의 여식을 어찌 남산이에게 보낸단 게야?”

심드렁한 연개소문의 반응에 선도해가 웃으며 타일렀다.

“그리 박하게만 보실 건 아닙니다. 태왕 폐하께서도 제법 자주 찾으시는 왕족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 집안의 영감과 정토와 사돈지간이 아니었나? 아우가 그리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그럴수록 더욱 추진하여야지요. 조의두대형(皁衣頭大兄)이 남산 공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나 이렇게라도 엮인다면 더는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토를 지지하는 제가회의의 한 축을 떼어 남산이에게 걸어준다? 내가 직접 이를 추진했다간 한소릴 듣겠구만.”

“태왕 폐하께서 권유하는 방향으로 대막리지께서 따른다 하시면 누가 감히 막겠습니까? 그렇지만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는 법입니다.”

선도해의 눈치에 연개소문이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둘째 먼저 장가를 들게 하면 귀족들의 관심을 돌리게 되니 뒤의 일은 수월하게 될 것이라?”

“따로 알아본 바로는 대로의 손녀 가운데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규수가 있사온데, 남건 공자와 동년배라 합니다.”

“아, 그 고사계라는 소년의 누이동생 말인가?”

“예. 기억하십니까?”

연개소문은 대로(對盧) 고정의(高正義)의 손자 고사계(高舍鷄)를 기억하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소년이 조부의 눈매를 쏙 빼닮았다.

“제 조부를 닮았더군. 하나 셋째 아들의 막내아들이라 하니 대로의 관직을 이어받지는 못할 것이야. 귀족 가문의 딱한 운명이지.”

애처롭게 말하고는 있었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후계 문제를 고민하는 이는 비단 연개소문뿐만이 아니었다. 고구려나 이세민이의 당나라 그리고 천하의 모든 나라의 왕가와 귀족 가문에서도 어느 시점에서부터 그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남생이 혼례도 그랬고, 후계도, 그 후계에 맞는 짝을 찾아주는 것도 아주 일이로구만.”

“그거야 여느 가문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찾은 후보들은 우선 검토만 해두고 다시 알아보게나. 남건이 거사를 먼저 치를 때까지 아직 시일이 있으니.”

연개소문은 정변 이후 가장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다.

* * *

“이것이 그간 태학이 주도하여 얻은 실적입니다.”

연개소문과의 볼일을 마치고 태학에 도착한 나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태학박사로부터 그간의 상황을 보고받았다.

“여기 말씀하신 표도 가지고 왔습니다. 박사님.”

“어서 보이시게.”

“예! 박사님.”

“그쪽 잡아. 여긴 내가 잡고 있을 테니.”

“아, 알겠어!”

불쑥불쑥 대막리지의 이름을 앞세우며 내가 찾는 것에 긴장감을 가지던 태학박사와 그의 조교들은 이제는 익숙하게 받아들이는지 능숙하게 보고서를 펼쳐 보였다. 편한 것도 좋지만 업무에 집중하는데 적당한 긴장감은 필요한 법이다.

“제가 일러준 대로 표를 아주 잘 그리셨군요. 이를 요약하는 것도 가능하겠습니까?”

한때는 연개소문 흉내를 내겠다고 나름 각을 잡았으나, 지금은 이렇게 태학박사와 조교들에게 깍듯이 예로서 대우해 주고 있었다. 성과에 대한 다른 의미의 보상이었다.

“작은 막리지… 아이고 지금은 이게 아니지…….”

받아들이는 사람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게 문제지만.

긴장 때문인지 말실수를 한 태학박사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남산 중리대형께서 지난번 가르쳐 주신 통계 수치 읽기는 이미 여기 있는 조교들까지 모두 숙지했습니다. 이전에 아라비아 상인들로부터 얻어 주신 수학(數學)에 관한 여러 문서들도 살피고 있고요.”

“좋습니다. 하면 이 표를 한번 요약해 보십시오.”

내가 이르자 태학박사는 조교들이 펼친 표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이내 술술 내뱉었다.

“태학이 주도하여 한해 고구려 전역의 곡물(穀物) 생산율이 4배 근사치로 올랐습니다. 여기 이 곡선으로 올라가는 걸 보시면 보리, 콩, 조, 기장, 메밀에 한해서는 2년 전에 비해 5배에 달하다는 걸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는 사찰이나 민간에서 주도해 상승한 양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칩니다.”

“훌륭합니다. 다음 것도 마저 해보십시오.”

“예. 다음 이 표는 자연목장 설치에 관한 것이온데 이것 역시 태학의 주도로 국영과 사영으로 매달 2곳에서 4곳이 새로이 설치되고 있사옵고, 그에 따라 생산하는 육고기에 대해서도 한창 표를 만들어 기록하고 있사옵니다. 이 중 기름이 적고 연한 살코기의 5할은 식이용 육포감으로 삼고 있으며…….”

자신 있게 발표하는 태학박사를 보며 나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중앙집권체제를 이루는 대표 부서 아니랄까 봐 태학이 주도한 성과는 매해 내가 기대했던 그 이상이었다. 사실 태학이 나선다면 자연스레 지방 곳곳에 세워진 경당에도 영향을 미치니 고구려 전역이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3년 만에 이만한 성과가 나올 줄이야.

그 신중한 연개소문이 괜히 서토로 진격하겠다고 언성을 높이겠는가.

하지만 이건 단순히 강요하거나 옭아맨다고 얻을 수 있는 결실이 아니었다.

‘역시 교육의 힘은 무서운 법이지.’

그 배경에는 지방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 당근책이 포함되어 있기에 가능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고구려 각 지방에 세워진 사학 기관인 경당(扃堂). 그곳을 다니는 출신 성분은 귀족 이하의 보통의 평민 계층뿐만 아니라 형문(衡門)·시양(廝養)과 같은 미천한 집안 출신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학문을 좋아하는 고구려 사람들의 교육열을 특별히 반영하고 있다.

교육열 하면 학부모인 거고, 그들이 나서준다면 자연스레 고구려 전역이 움직이는 구심점이 된다는 예측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일일 것이다.

-세상에, 비황작물(備荒作物)을 재배해서 형편이 어려운 백성들에게 진대(賑貸)하는 곳간에 보내면 4점을 추가해 준다고요?

-목장을 설치하고 말을 튼실히 잘 길러내거나 식용으로 쓸 육고기를 육포로 만들어 출전하는 우리 군사들에게 기부하면 10점이랍니다.

-어머머, 이런 기회가 또 있겠습니까?

-없지요. 자식 놈들의 장래를 위해 우리가 거들어야지요.

-암, 그렇고 말고요.

경당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을 가려 태학에서 2년간 수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격문이 붙었다.

여기서 ‘민생 안정’이라는 구호의 야외 활동으로 경당의 학생들이 추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경당을 다니는 평민층 자제의 부모들이 적극적인 식량 증산 기획에 참여하기 시작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부족한 식량을 얻는 동시에 아직 과거제도가 확립되지 않는 고구려의 현실에서 지방의 인재를 중앙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구실이 되었으니 가히 일석이조(一石二鳥)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문제가 아예 없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아무리 지방의 경당이라도 추가 점수를 주로 얻는 쪽은 편법을 쓰는 부유한 자제가 유리하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기회는 역경을 이겨내고서야 의미가 있지.’

그러나 어찌 됐건 그들이 어려운 민생에 도움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진정 뛰어난 인재라면 그러한 불리한 조건을 모두 딛고 이겨내어 언제고 태학에 발을 붙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한 나는 다른 조교들을 불러 모으며 지방에서 뽑힌 이들에 대해 캐물었다.

“각 지방에서 올라온 우수한 생도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준은 어떻습니까?”

“예에. 재배 사업과 목축 사업에 관한 활동을 직접적으로 참여한 덕분인지 모두가 작은 막리지의 계획을 높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각 지방의 경당 내에서도 최고 수준의 무예를 뽐내는 녀석들인지라 귀족 자제분들과의 대련 수업에서도 좀처럼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머리가 비상하니 학문도 충실히 잘 따라가고 있고요.”

그들은 하나같이 경당에서 온 청소년들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배울 기회가 부족했을 뿐 지방의 영재들은 태학을 다니는 다른 귀족 자제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간 고귀한 귀족의 핏줄이랍시고 경쟁자 하나 없이 오냐오냐 배운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습니까? 새 얼굴로 어떤 아이들이 왔는지 궁금하군요.”

나는 태학 조교들로부터 새 인재들의 정보를 전달받으면서 기대감으로 설렜다.

그들 가운데는 이제는 없을 고구려 유민의 조상으로서 당나라에 대항해 산동반도에 제국을 건설한 이정기(李正己)의 조상이 있을지 모르고, 흑치상지와 고선지를 따라 당나라 장수로서 북방과 서방 대원정에 동행하던 고구려 출신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데…….”

“무슨 일입니까? 혹 귀족들이 단합하여 차별이라도 한 겁니까?”

낯빛이 어두워진 태학 조교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문제는 내가 물은 대로 차별이었다. 말갈과 그 혼종을 포함한 이민족 계통이 3등 시민이라면 지방의 경당에서 유학 온 이는 한 2등 시민쯤 될 것이다. 귀족들이 파벌을 나누어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것이… 다른 귀족 자제들은 남산 중리대형의 충고를 기억하고 있어 지방에서 올라온 녀석들과 나름 잘 지내는 이들도 있사으나 남생 공자를 따르는 이들과 조금 문제가 있사온지라…….”

제발 녀석만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깨졌다. 다른 놈들은 어찌해도 남생이 주범이라면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껄껄껄, 그때 옆에서 엿들은 태학박사가 갑자기 웃음소리를 내었고, 조교들이 무슨 일이냐며 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태학박사가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문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경당에서 온 어느 웬 촌뜨기가 맹자의 구절을 읊으며 남생 대공자를 가르쳤으니 하루아침에 그러한 갈등이 사라진 겝니다. 껄껄.”

“맹자의 구절이요?”

“예에.”

“조금 더 자세히 들려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그 아이가 남생 대공자께 분명 이리 말하였습니다. ‘맹자의 제자가 이르길, 다 같이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대인(大人)이 되고 어떤 사람은 소인(小人)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남산 대공자가 부끄러워선지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는 겁니다. 하하.”

“심지(心志)를 따르는 사람은 대인이 되고 귀와 눈을 따르는 사람은 소인이 된다. 듣고 보기만 하는 이는 소인이고 하늘이 내려준 심지로 생각하여 마음을 올바르게 다 잡는 이는 대인이다.”

“역시 남산 중리대형이시라면 이를 알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제가 가르칠 때는 태학이 아니라 가야에 계셨던 분이 말입니다. 껄껄.”

“그 아이를 이리 불러주십시오.”

남산을 호되게 꾸짖은 어린 촌뜨기라, 역사에 이름 없을 인물일지라도 왠지 궁금해졌다.

이내 태학박사가 그 아이를 불러왔고, 과연 까맣게 탄 피부색에 시골스러운 구수한 얼굴이 돋보이는 소년이 내게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대막리지의 장남인 남생 대공자에게 감히 겁도 맹자의 구절을 읊은 경당의 생도이냐?”

“왜, 왜 그러십니까? 혹 제게 벌을 내리려 하십니까?”

긴장감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듯한 표정에 나는 이 장난을 조금 더 이어가 보려 한다.

“군자이행언(君子以行言) 소인이설언(小人以舌言). 이게 무슨 뜻이냐?”

마른침을 삼키며 잠시 뜰을 들인 소년이 말했다.

“군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

또박또박 말하는 촌뜨기 소년은 과연 남생을 꾸짖은 그 아이가 맞았다.

“너는 군자가 맞구나.”

“예?”

그때 태학박사가 거들었다.

“뭣 하느냐? 네가 태학에서 수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남산 중리대형이시니라. 어서 예를 갖추거라!”

태학박사의 꾸짖음에 소년은 얼떨떨한 얼굴로 내게 예를 갖추었다.

“소생은 왕건위(王虔威)라 합니다. 남산 중리대형의 은혜에 소생이 궁에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 앞에 소년은 놀랍게도, 이정기와 더불어 고구려 유민 출신의 가장 성공적인 인물의 부친이 맞았다.

* * *

“덴노께서 춘추 공을 평하시길 용모가 출중하실 뿐만 아니라 언변력도 뛰어나다 하셨습니다. 이리 외국 사신을 절찬하신 경우는 무척이나 특별한 일입니다.”

“귀국의 왕께서 부족한 저를 좋게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두 차례의 접견으로 신라와 왜 양국의 예물이 오고 가면서 당나라 때처럼 순조롭게 외교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낀 김춘추였다.

하지만 김춘추는 아직 이 땅에서 덴노라 불리는 왜국의 국왕 효덕왕(孝徳王)에게 자신의 본심을 전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차기 보위를 위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카노오에노 황자를 직접 만나 뵙고 싶다 하셨습니까?”

“예. 공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카마타리의 물음에 김춘추는 짧게 대답했다.

카마타리와 함께 정변을 일으켰으며 어머니인 황극여왕(皇極女王)이 보는 앞에서 그녀가 가장 아끼는 신하 소가노 이루카를 죽인 왜국의 진정한 실세. 홧김에 퇴위해 버린 어머니의 뒤를 이어받기에는 자식으로서 찜찜하니 황극여왕의 동모제(同母弟)이자 외삼촌에게 양보했다. 그가 바로 지금의 섬나라의 군주인 효덕왕이었다.

‘이 섬나라의 진정한 실세는 정녕 한인(韓人)과 이자란 말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차기 왜의 후계자.

다이카(大化)라는 연호를 사용하게 하고 소가 씨족의 영향력이 강력했던 아스카에서 수도를 나니와 궁으로 옮기면서 단행한 다이카 개신이라는 개혁을 주도한 인물.

왜의 모든 신하는 현 덴노가 아닌 이 나카노오에 황자를 따르고 있다.

자리가 착석한 그가 김춘추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카마타리 공에게 거듭 들었습니다. 춘추 공께서는 우리 왜가 바다를 어지럽히는 고구려를 북으로 쫓아내길 바라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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