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69화 (69/335)

69화 호기

“공격하라! 폐하께 반기를 든 역적들을 토벌하라!”

와아아아!

특유의 기지로 연과 허수아비를 이용해 떨어진 별을 다시 올린 김유신은 아군의 사기충천(士氣衝天)한 기세를 그대로 몰아 월성 인근에 진을 친 반군 세력들을 차례차례 진압하기 시작했다. 한편 월성 하늘 높이 솟아오른 별은 반군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켰고, 한밤에 벌어진 불의의 습격에 파죽지세로 토벌이 개시되었다.

“반란군들이 명활성으로 도주하고 있습니다! 상장군.”

“어서 갑시다. 알천 공. 이 김유신, 오늘 밤 안으로 명활성을 차지하고 있는 반군의 수장 비담의 목을 베어 폐하께 바칠 것입니다!”

배후를 치며 적의 혼란을 유도하고 있던 알천이 다가와 보고하자 김유신은 이 기세를 타고 반란군들의 본거지마저 일거에 소탕할 각오를 다졌다. 고구려가 서쪽과 북쪽, 동쪽에 이어 남쪽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신국의 국경을 침범해온 이상 하루라도 빨리 반란을 진압하고 그들을 막아야만 했다.

‘시급한 곳은 남쪽이다!’

김유신은 고구려 대병이 상륙했다는 낙동강 연안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신국의 화랑들은 듣거라! 저기 저 명활성이 반군의 본거지다. 반군의 수괴 비담과 염종을 생포하라! 그들을 생포하는 자에게 폐하께서 후한 상금을 내릴 것이라 내게 약조하셨느니라!”

“반란군을 섬멸하라! 폐하와 신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마라!”

명활성을 올려다보며 외치는 김유신과 신라의 새 풍월주 천광공의 명에 화랑들이 진지한 눈빛으로 나아가 선봉에 서며 명활성으로 진군했다. 약관이 채 되지 않은 어린 화랑들이 주력이었음에도 그들은 여왕과 신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각오였다.

“성을 넘어라! 반군을 진압하라!”

“여주의 개 김유신과 그 똘마니들을 막아라!”

화랑들이 선두로 명활성의 성곽을 넘으려 했고, 비담이 직접 성벽에서 군사들을 통솔하며 수성했다.

성을 굳게 닫아 잠근 명활성에서의 공방전은 동이 틀 때까지 결판이 나질 않을 만큼 맹렬했다.

‘반군의 기세가 크게 떨어졌다 보았거늘, 아직도 버틸 힘이 남아 있단 말인가?’

공성이 장기화될 것 같은 조짐에 서서히 초조해진 김유신은 월성에서 출정하기 전 마음에 담아둔 그것만은 부디 아니길 바랐다.

“사, 상장군! 저길 보시옵소서! 저기 고구려의……!”

날이 밝자 알천이 성곽 깃대에 걸려 펄럭이는 까마귀 깃발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런, 부디 아니길 바랐는데…….”

비담과 화백회의의 깃발과 공존하며 흩날리는 삼족오 깃발. 그것을 올려다본 김유신은 작게 중얼거리고는 이내 북을 울리며 화랑들을 물렸다.

고구려가 어디까지 왔는지 도무지 사태 파악이 되지 못했다.

* * *

“화랑들이 물러가고 있사옵니다! 상대등.”

“고구려의 깃발이 김유신을 당황하게 한 모양이로구나. 연개소문 아들의 말 대로야.”

비담은 성곽 아래에서 연신 삼족오 깃발 가리키며 당황하는 화랑들을 보고는 추측했다. 아마 지금쯤 김유신과 여왕의 귀에도 들어갔으리라.

“하나 이래서야 시간만 버는 꼴이 아니냐? 그날 밤 본 고구려의 대병은 어디에 숨은 것이야?”

“소인도 모르겠사옵니다.”

한시름 놓은 것도 잠시, 비담과 염종은 다음 계책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날 걸사비우라는 자가 가져다준 연개소문 아들의 지침대로 성곽 곳곳에 고구려의 깃발을 걸어 두라는 말을 행한 것이 전부였다. 그리되면 김유신은 당황하여 군사를 물릴 것이니 그 틈을 노려 걸사비우가 신라군의 후미를 공격하겠다며 유유히 성을 빠져나갔으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설마, 우리가 속은 것이냐?!”

“예에?!”

비담은 연개소문의 막내아들이 김해와 낙동강 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다고 추측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었다.

“상대등, 우선 이걸 보십시오!”

그때 염종이 동쪽 성곽으로 날아든 화살을 가지고 온 전령의 이야기를 듣고 급히 비담에게 건넸다.

화살에는 작은 종잇조각이 묶여 있었고 비담은 그것을 풀어 펼치며 읽어 보았다.

“노자안지(老者安之)하여 붕우신지(朋友信之)하고 소자회지(少者懷之)라. 지자불혹(知者不惑)이고 인자불우(仁者不憂)이며 용자불구(勇者不懼)라.”

“이, 이것은… 논어의 구절이 아닙니까?”

염종의 말에 비담은 이것을 보낸 이의 마음을 헤아려 천천히 뜻을 풀이해 보았다.

“늙은이들은 편안하게 하고, 벗에게는 미덥게 해 주며, 젊은이들은 품어 주고자 한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 상대등! 이건…….”

두 눈을 치켜뜬 비담의 시선이 동쪽 바다를 향했다.

“나더러 투항을 하라는 것이 아니냐?!”

* * *

고립된 적진 한복판에서의 눈치 싸움은 치열했다. 월성 병영에서 김해를 포함한 후방의 군사들을 최대한 끌어모으는 한편 기지를 발휘해 사기를 한껏 충천한 김유신이 수세에 몰린 비담의 명활성을 밤새 공격했으나 고구려 깃발을 보고 두려워 물러섰다고 했다.

동해 바다에 가려진 고구려가 얼마나, 깊숙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정보는 백전노장 김유신조차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내 지시대로 미리 홍기군의 정예만을 따로 뽑아 별동대로 꾸리고 간 걸사비우가 비담과 협상에 성공하며 반군을 지원한 덕분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나 어찌 됐건 한동안 시간을 벌게 된 셈이었고 서쪽에서도 때마침 산기군의 전령이 도착했다.

“산기군이 양동산성과 함안을 점령하였습니다! 작은 막리지.”

“양동산성에 이어 함안까지?”

그 소식에 내가 전령을 보며 바싹 물었고 그가 이내 자세한 사정을 전했다.

“좌장군께서 보초만 남은 양동산성의 낌새를 보시고 혹시 몰라 서쪽의 함안까지 척후병을 보내어 알아본 결과 이미 그곳을 지키는 신라군마저 모두 북쪽의 낙동강을 건너 서라벌로 넘어갔다고 하였습니다.”

“그게 정말 사실인가?”

“예! 그렇사옵니다.”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고 했다. 신라 도성에서 터진 반란의 규모가 규모였던지라 다급해진 선덕여왕과 신라 조정은 이미 국경 지역을 제외한 가야 땅에 모두 파발을 띄워 서라벌로 군사들을 불러 모은 모양이다. 사실상 신라 국경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지역에서 신라군이 서라벌 인근으로 향했다. 신라 왕실의 사활이 달린 급변이었기에 벌어질 수 있는 변수였으며 우리에게는 이득이었다.

이 기회를 잘만 살린다면 보름 안으로도 무주공산(無主空山)이나 다름없는 옛 가야의 땅을 수중에 넣는 것도 무리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금관가야(金官伽倻)와 아라가야(阿羅伽倻)를 모두 수복하였습니다! 중리소형.”

이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는 이는 전내진에 이어 이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데 작년부터 발로 뛰며 성실히 공을 들인 비라부였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자로 아라가야의 왕족 출신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우산국과 대마도까지 많은 아라가야인을 데려오는데 그 누구보다 앞장선 인물이다. 함안은 옛 아라가야가 시작한 땅으로 일본과의 교섭에 중심이 된 가야였다.

“공께서 아라가야 출신들을 이끌고 함안으로 가 주십시오. 민심을 수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힘으로 점령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점령지의 치안 유지와 그곳을 점령하고자 하는 대의명분이었다. 북쪽의 광활한 영역을 지배한 광개토태왕이 남쪽을 힘으로 찍어 누르며 점령하지 않은 이유는 그 둘 모두를 충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치안을 유지하려면 장기간 주둔할 인력이 필요하니 북쪽을 신경 쓸 수 없게 되고, 대의는 쉽게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고려의 왕건처럼 신라의 경순왕이 스스로 나라를 가져다 바친다던가, 아들에게 배신을 당한 후백제의 견훤이 스스로 머리를 조아리며 투항하러 오는 행운이 따르지 않는 한 대의란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그 둘을 달성하기 위해 나는 가야를 철저히 이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비라부가 함안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고, 나는 그의 손에 설인귀에게 전달한 서신을 쥐여 보냈다.

비라부가 함안에 당도하는 대로 속히 옛 소가야의 영역인 고성군, 사천군, 통영시 일대까지 점령하라는 내용이었다. 소가야는 한다사군과 더불어 신라의 최남단으로 취약한 변경 지역이기도 했으며 마찬가지로 이번 변란으로 인해 상당수의 신라군이 이미 서라벌로 징발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만약 소가야까지 얻는다면 이 단시간에 금관가야와 아라가야에 이어 과거 육가야 연맹국 가운데 그 절반을 얻는 격이었다.

“도련님, 여기 도련님께 온 서신이 있습니다.”

포구에서 나한테 왔다는 편지를 가지고 온 옥소가 내게 알렸고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펼쳐 보았다.

내가 우산국에서 출정한 다음 날 평양으로 귀환한 선도해로부터 온 것이었다.

[저는 지금 중리소형과 함께 혹독한 훈련을 받은 천정군에 이르렀습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백제가 서쪽 해안에 대한 우리 수군의 통행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자세한 사정은 도성에 들어가 봐야 알 듯싶습니다.]

북소경에서부터 느낀 이상했던 낌새가 다시 드러났다.

내가 예상한 그것이 맞은 건가.

“중리소형.”

“무슨 일입니까? 전 공.”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전내진이 다가왔다.

“기왕 신라의 반군을 지원하기로 하셨다면, 그들을 도와 서라벌부터 도모하는 편이 낫질 않습니까?”

“용의 꼬리가 아니라 몸부터 잡으라고요?”

“서라벌이 무너진다면 더는 가야를 위협할 적은 없을 것입니다.”

조금 전 갈 길을 떠난 비라부와 달리 나름 곰곰이 생각을 마친 전내진이 내게 다른 전략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동해에 판옥선을 띄운 그 순간부터 내가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전 공께서는 백제가 한수 유역을 얻고도 다시 잃은 것과 가야가 멸망한 이유를 기억하십니까?”

“예? 그것은 갑자기 왜…….”

뜬금 시선을 피해 잔잔히 흘러가는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전내진의 주름이 깊어졌다. 그가 한참 말을 잇지 못할 때 내가 대신 이어 주었다.

“그것은 백제와 가야가 승리에 도취해 자만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 자만이라니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라가 배신을 했기에……!”

“그 배신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자만입니다. 고구려가 북방의 패권을 놓고 돌궐과 한창 전쟁 중인 틈을 타 신라와 백제, 가야가 연합을 맺고 고구려를 협공했으니 우리는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 때 확보한 한수 유역을 상실했습니다. 신라는 그런 백제와 가야를 배신하고 한수 유역을 빼앗은 것이고, 가야는 멸망했습니다. 우리 고구려의 입장에서 백제와 가야의 아픔은 어찌 보면 인과응보였다 할 수 있지요.”

“그 부분은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하오나 저희는 신의를 지키는 고구려를 진심으로 섬기기로 했으며 이 기회를 노려 신라를 끝장내는 것이…….”

내가 고개를 저으며 전내진의 말을 끊었다.

“전 공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 우리가 반군을 도와 서라벌을 도모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수는 적지 않으며 또 신라 반군 세력을 신뢰하지도 않고요. 지금은 가야를 얻는 것만이 우선입니다. 저는 욕심을 부리다 자만하여 한수 유역을 얻고도 빼앗긴 백제와 나라를 잃은 가야의 전철을 밟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전 공께서도 그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으음…….”

가야 사람인 그에게 다소 무례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과거 고구려를 공격한 그들의 실수와 치부를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의 큰 그림이 당장 신라의 멸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라가 없어진다면 고구려는 백제와 국경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친 백제 성향의 가야 세력이나 일본 세력과 재차 모종의 연합이 탄생할 수도 있다. 지금은 백제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 고구려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지 몰라도 중간에 신라가 사라진다면 다시 100년 전 관계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당나라라는 막강한 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상 내가 그려야 하는 큰 그림은 고구려가 주도하는 삼국의 균형이었다. 백제와 신라가 서로를 견제하고 어느 한쪽이 밀린다면 고구려가 그 가운데인 이곳 가야 땅을 발판으로 중재하고 이익을 챙기며 주도할 수 있는 그러한 판세.

그렇게 해야만 고구려는 온전히 당나라에만 신경 쓸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이며 내가 이 고생까지 해가며 낙동강까지 내려온 이유였다.

“서라벌은 반군이 우세하든, 여왕의 군대가 우세하든 머지않아 결판이 날 겁니다. 저는 내일 날이 밝으면 북쪽의 비사벌군으로 갈 겁니다.”

신라 내란의 장기화에 따른 호기(好機)를 잡은 우리의 다음 행선지가 결정되었다.

비사벌군(比斯伐郡), 동쪽의 신라는 물론 서쪽의 합천 대야성을 점거한 백제까지 삼국이 모두 마주하게 되는 고구려의 새로운 국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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