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61화 (61/335)

61화 제해

대동강 그윽한 물결 위 떠 있는 전선을 뒤로 태왕과 연개소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한 출정식이 열렸다. 이날은 음력 10월로 제천의례 동맹(東盟)이 열리는 시기와 일치했다.

전선을 배경으로 연수영이 보장왕 앞에 서서 예를 갖추며 전날 출정하는 마음을 적어 담은 표문(表文)을 읽어내려갔다.

“고구려의 역대 태왕께옵서는 죽령 이북의 옛 영토를 회복하신다는 뜻의 반도 이루지 못하신 채 승하하시고, 삼한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셋으로 정립되어 서토와 대적하고 있으니 나라의 존망이 그 어느 때보다 위급한 때이옵니다. 신은 부유한 귀족 가문에 한낱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 근심 없는 풍요로운 땅에서 부귀를 누리며 일신의 영달(榮達)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오나 어린 제가 상상하던 세상은 넓었고, 변방에 목숨을 걸고 이 땅을 지키는 장정들에 소식을 듣고 참군(參軍)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강토를 지키는 싸움에 패하는 고난 가운데 소임을 맡아 동분서주하며 위란한 때에 명을 받들어 일을 행해온 지 어언 열하고도 일곱 해가 지났사옵니다. 신은 지난 전쟁에서 고구려의 용사(勇士)와 더불어 서토의 무리를 중원으로 쫓아내었으며, 사기가 충천한 우리는 인마와 병장기, 갑주, 먹거리가 넉넉하니, 중리소형 남산의 충언을 받아들여 마땅히 남쪽으로 나아가 평정시켜야 할 줄로 아옵니다.”

여인이 수군에 통수권을 가지고 있는 사실에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던 귀족들도 이번 출정식에 나타난 그녀의 표문 연설에는 감명을 받았다. 온갖 부귀를 누리는 연 씨 가문의 여식이 험난한 변방으로 나가서 외적과 싸워온 공로를 고구려 사람 가운데 모르는 이가 없었다.

“대막리지의 속은 정녕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그 아들 때문에?”

부기원이 그렇게 홀로 중얼거렸다.

혁혁한 승리를 거둔 그녀의 활약을 연정토가 시기했으며, 그와 가까운 연개소문 역시 막강해지는 연수영 사단을 견제할 법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의 막내아들인 중리소형의 존재가 이들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고 공을 따로 만나 봬야겠어!’

그는 고요묘를 비롯한 제가회의의 귀족들을 만나 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자 했다.

* * *

-제게 묘안이 있습니다.

나는 선도해의 계책을 받아들여 적의 수군 기지에 해당하는 하슬라(강릉)와 서라벌 인근 해안에 주둔한 신라 수군의 규모를 파악하고자 했다.

우산국에서 항복한 신라인들의 선박인 신라선을 이용해 동쪽 해안을 정탐하려는 기가 막힌 묘책이었다.

정탐선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나는 섬 동남쪽 부둣가에 닻을 내린 선박에서 철제 무기로 무장한 가야인 5백 명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는 외지인 복색의 외국인들도 함께 있었다.

일본의 왕을 만나러 왔다가 우산국이 신라의 통치에서 벗어나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먼바다에서 고구려의 활약을 익히 들었사옵니다.”

“중원을 통일한 당나라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셨다고요?”

“이것은 저희가 드리는 작은 성의이옵니다. 고구려와 교역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금, 비취, 구슬 등 그들이 내게 온갖 선물을 바치면서 우산국을 정벌함으로써 동해를 제해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아직 동해에 거주하는 신라 수군과 접전하지 않아 방심할 수 없으나 오늘만큼은 이 기쁨을 누려도 될 것이다.

“멀리서 오신 분들도 계시군요.”

나는 그들의 출신지를 일일이 들으며 감탄했다.

대마도와, 왜나라, 류구국, 필리핀의 고대국가인 흑치국 등 무수한 해상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이었다.

과거 우산국은 이처럼 해상 국가들과 유대감을 쌓았고, 적은 인구임에도 육지의 신라를 위협할 만큼 번영할 수 있었다.

“이것이 다아 신라를 몰아낸 고구려 덕분입니다.”

우왕이 눈물을 훔치며 격하게 감동했다. 신라는 해상 세력의 핵심인 가야를 멸했고, 신라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는 진한 세력과 함께 정치적 망명을 택해야만 했던 가야계 일족이 장악한 일본과는 원수였다.

그러니 우산국을 복속한 신라는 자연스레 해상 세력과 우산국의 관계를 단절시켜 버렸다.

“저희 가야인들은 왜나라에 정착한 시기가 모두 다르옵니다.”

나는 역사의 진실을 지금 가야계 일족들로부터 듣고 있었다. 그중 가장 나이 있음 직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정착한 이들은 천손의 후예로 추앙받아 그 땅에 신의 일족으로 자리매김을 했지요.”

“신의 먼 친척으로는 왜국의 유력 대신 중 한 사람인 나카토미노 카마타리십니다. 백제와 가야의 피를 물려받으신 분이지요.”

노인에 이어 전내진이 부연 설명을 했다.

이들은 지금 신라와 가야, 백제에서 건너간 이들이 손을 잡고 강력한 철제 무기를 바탕으로 나라를 건국하여 일본의 왕과 지배 세력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놀랍게도 고구려와 무관하지 않았다.

“고구려에 패한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일족들이 왜나라에 문명을 건설하는데 일조했단 말입니까?”

“민망하오나 그렇습니다.”

내 물음에 비라부가 낮은 어조로 그렇게 대답했다.

서기 399년, 영락 9년 광개토태왕 당시 신라는 왜인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했고, 태왕은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때 왜인을 토벌한 고구려의 군사가 불현듯 김수로가 건국한 금관가야를 공격하여 항복시켰다.

그 배경에는 노객을 자처하며 고구려에 머리를 조아린 백제 아신왕이 복수가 깔려 있었다. 바로 가야와 일본 세력을 끌어들여 신라를 장악하고 동쪽과 서쪽으로 동시에 올라가 고구려를 도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신라로부터 그러한 사정을 들은 고구려는 즉각 김해를 공격했고, 그 결과 금관가야는 맹주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여 후일 신라에 예속되었다.

그들이 이처럼 약해진 배경에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참패의 책임으로 지도부가 분열되었고, 그들 중 떨어져 나간 이들이 철과 금속 문물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금속 문물 시대를 연 까닭이다.

아주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지만, 고대 철기 문물이 대량으로 출토된 유적지를 일본 정부가 주도적으로 숨기고 있다고 했다.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곳이 금관가야의 철기 문물일 것이라며 추측하고 있다.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은 설마 이러한 배경에서 나오게 된 건가.

“저희 코토쿠 덴노께서는 고구려가 요청한다면 도울 용의가 있으십니다.”

가야인들을 따라온 이들 가운데 일본 최초로 대화(大化)라는 연호를 쓰며 개혁을 단행한 일본 왕의 신하도 있었다.

“나는 고향을 되찾아 그곳에 살고 싶어 하는 가야인들만으로 충분합니다. 교역이라면 얼마든지 얘기를 나누겠습니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현 일본의 지배계층이 누구의 후예이든, 그들은 이미 그 땅에 종속된 자들이고 다른 언어를 쓰는 외세이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릉비(廣開土太王陵碑)에 따르면, 호태왕은 다른 언어를 쓰는 왜인을 삼한의 일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본 사신은 아쉬운 듯 입맛만 다시며 물러갔고, 진실을 알게 된 나는 슬슬 움직이기로 했다.

가야인들의 명분을 이용해 삼국의 주도권을 확립하고, 나아가 일본을 복속시키기 위한 작업을 기획해야 했다.

* * *

“섬이 보입니다!”

“어서 나와 보시지요! 저기 앞에 작은 섬 뒤에 있는 것이 갑비고차(甲比古次)인 듯 싶사옵니다! 태대사자.”

아침부터 눈을 부릅뜨고 있는 걸사비우가 섬을 가장 먼저 발견했고, 뒤이어 흑벌무가 소리쳤다.

소란스러움에 1층 선실에서 올라온 연수영이 지도를 펼치며 확신했다.

“그래. 내 남쪽은 처음이지만 과거 호태왕 때 그려진 지도와도 일치하는구나. 그 아인 이걸 도대체 어디서 찾았는지…….”

연수영은 남산이 도성에 돌아온 뒤 벼슬을 얻고 태학에 입학하자마자 밤마다 태학 서고에 틀어박혀 남쪽 지형에 관한 과거 사료들을 모아두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마치 그때부터 신라 정벌을 이미 기획하기라도 한 듯 준비를 시작한 것이었다.

두우우웅-

또 그녀가 탑승한 범선의 안정감을 두고도 할 말이 많았다.

전투갑판, 격군실, 선체저판이 모두 곡면인 판옥선은 삼한의 그 어떤 범선보다도 매우 균형 잡힌 전선이었고, 거친 물살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다층으로 이루어진 설계는 1층에 선실을 따로 두어 비전투원인 격군(格軍)을 별도로 주둔시킬 수 있었다.

고구려와 삼한의 전투선은 흔히 평선이어서 갑판 위에는 전투원과 비전투원인 격군이 함께 있게 되어 전투 시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하는 반면, 판옥선은 노를 담당하는 격군을 1층 갑판 내에 숨기고 전투원은 전투갑판 위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싸울 수 있게 설계된 것이었다.

“그 아이가 뭐랬더라… 이를 과학적(科學的)인 설계라 했던가……?”

팔짱을 낀 연수영은 수개월 전 남산이 해준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판옥선은 좌우 선회능력이 뛰어나고, 갑작스러운 해류 변화에도 안정적입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섬과 암초가 많은 남해와 요동의 장산열도 해안에도 최적화된 배라 할 수 있지요.

매일 동이 틀 때마다 군사들과 함께 통나무와 소나무를 대동강 부둣가로 운반하며 선박의 형태를 두고 설명하는 남산의 얼굴이 그려졌다.

“속도를 줄여라!”

서서히 가까워지는 섬에 정신을 차린 연수영이 선발대의 속도를 늦추었다.

갑비고차를 둘러싼 교동도와 석모도라는 두 섬이 좌우로 포진해 있었고, 그중 좌측 교동도에는 요동 반도의 비사성과 흡사한 절벽 같은 산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무슨 성이 저렇게나 가파르단 말입니까?”

“저, 저기 신라군의 깃발이 보입니다!”

흑벌무가 험난한 성세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고, 걸걸중상은 그곳에 펄럭이는 신라의 깃발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눈을 가늘게 뜬 연수영은 그들이 가리킨 성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보았다.

남산이 태학에서 얻은 기록을 여러 차례 살핀 그녀는 저 성이 과거 호태왕이 함락시킨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관미성은 한수와 임진강이 동시에 빠져나오는 뱃길 입구에 세워진 교통의 요지였다.

요동 반도의 비사성처럼 존재만으로도 바다에 나타난 배를 초계하는 역할마저 수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저걸 보고 있다는 건, 적도 우리가 왔다는 걸 눈치챘겠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연수영의 예상은 귀신같이 적중했다.

한수와 임진강에 대기하고 있던 70여 척의 신라선이 좌우로 포진하며 일제히 나타난 것이다.

“놈들이 우리의 배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일단은 배를 뒤로 물리는 것이…….”

처음 치르는 해전에 진땀을 흐리며 파랗게 질린 걸걸중상이 긴장했고, 연수영은 다가오는 적선을 보고도 태연하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긴장할 것 없다. 해류의 흐름이 바뀐 후에 움직여도 늦지 않는다.”

걸걸중상과 선기군을 안심시키는 연수영은 오히려 그들이 먼저 싸움을 걸어온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공성하는 것은 특기가 아니나, 바다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감은 선발대 뒤에 거친 물살을 타고 모습을 드러낸 250척의 고구려 전선에 있었다.

* * *

동해안의 우산국이 고구려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소식에 신라 조정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국지전에서의 성을 일부 얻고 상실하는 것쯤은 늘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고, 요충지 대야성을 상실했을 때에도 김유신을 보내 백제의 다른 성을 신라의 것으로 만들면서 일부 회복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바다는 국경이라는 것이 없었다. 100년 전 우산국을 밑거름으로 외세의 침략을 받아온 신라는 재차 바다에서의 위기를 감지하게 된 것이다.

김유신은 여왕의 긴급 소환령에 응하였고, 천존과 흠순에게 계백을 막으라 당부하며 부랴부랴 서라벌로 귀환했다.

“내가 부도덕하여 신국이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내 이번 사태에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에 왕위에서 물러나 사촌 아우인 승만(勝曼)에게 선위를 하려 합니다.”

어전에 나선 선덕여왕의 선언에 김춘추와 김유신을 비롯한 신료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폐하! 그 어인 말씀이십니까?”

“조세를 면한다는 폐하의 선정과 지혜로움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생활은 한층 나아졌사옵니다. 폐하를 칭송하는 이들이 이토록 많거늘, 이리 물러나실 수는 없사옵니다!”

“나는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힘이 없습니다. 하나 이 자리에 있는 승만과 더불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대들의 충언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선덕여왕은 오랜 병환과 정치적 다툼으로 환멸이 났으나 위기 극복이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유념하고 있었다.

“북소경(北小京)으로 삼은 하슬라(何瑟羅) 사찬(沙飡) 진주(眞珠)에게 명하여 우산국을 하루속히 수복하도록 하십시오!”

선덕여왕과 승만을 번갈아 보며 아뢰는 김유신의 발언에 눈을 쌀쌀맞게 뜨는 대신이 있었다.

“우리는 바다에 나타난 적의 군세를 알지 못합니다. 이사부 장군께서 살아계시는 것도 아니거늘, 누가 그 먼 섬을 수복하겠습니까?”

화백회의(和白會議)의 수장 상대등(上大等) 비담(毗曇)이었다.

“되찾아야지요! 그곳을 저들의 것으로 둔다면 서라벌이 언제 어느 틈에 고구려의 수군에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상대등께서는 그것도 모르십니까?”

김춘추가 비담을 노려보며 성내자 염종이 눈을 치켜떴다.

“무례하십니다! 춘추 공. 상대등께 그 무슨 무례한 발언입니까?”

이후 서너 차례 고성이 오고 갔고, 어전 내 갈등이 격해지려 하자 여왕은 이마에 손을 올렸으며 눈치를 본 비담은 못 이기는 척 염종을 말렸다.

‘김춘추와 김유신 그리고 가야계 놈들이 어찌 여왕의 지지세력을 자처하며 우리 진한계 귀족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단 말인가?’

김유신의 활약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를 따르는 가야계 인사들이 덩달아 골품이 올라가 토종 진한계(辰韓系) 진골귀족들을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비담은 그것을 줄곧 경계하였으나, 여왕은 끊임없이 그들 세력을 가까이하며 화백회의를 견제하려 했다.

‘성골이랍시고 여인이 왕위에 오르는 것도 웃기는 일이거늘, 또다시 여인을 후계자로 삼겠다?’

비담이 시선을 돌리자 찰떡같이 알아들은 염종이 험상스럽게 눈알을 굴렸다.

화백회의를 이끄는 주최자들의 인내심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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