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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막리지 막내아들-57화 (5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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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서수남진 (3) 지도 첨부

본래 설인귀와 있어야 할 옥소가 도성으로 오면서 잠시 흑수돌과 바뀌기는 했지만, 나를 호위할 걸걸중상, 걸사비우와 10000명의 양기군(兩旗軍)과 함께 말을 타고 도열하고 있었다.

도성을 떠나올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군세가 합류했으나 이대로 동쪽으로 향할 수는 없었다.

“군사를 둘로 쪼개시겠다고요?”

“그럼 저희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내 결정에 걸걸중상과 걸사비우가 의문스럽게 물었고 계산을 마친 내가 말했다.

“이미 동쪽에는 1만 5천의 고구려 병력이 남하하고 있다. 이미 신라의 시선을 끌만 한 충분한 병력이 모여 있는 셈이지. 그곳을 뒤따른들 너희가 나설 자리가 없다.”

나는 이번 전쟁에서 삼기군이 그저 들러리가 아니라 그들의 위상을 높일 계획을 세워두었다. 고구려 중앙에서는 말갈을 그저 복속한 아군 정도로 생각할 뿐,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미 없어진 역사이긴 하지만 주필산에서의 참패가 있었던 이유는 애초부터 말갈의 의견은 묵사발이 되었던 배경이다.

삼기군이 고구려 말갈 혼합 군단이라 해도 중앙에서 본다면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니, 이번 전쟁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삼국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정예병으로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삼기군의 위상은 곧 나의 위상이니, 내가 그린 큰 그림의 채색은 응당 이들이 선두로 나서야 했다.

“하온데 작은 막리지께서는 조금 전 바다로 움직인다 하질 않으셨습니까?”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요?”

“소인도 그리들었습니다. 도련님.”

걸사비우가 때마침 좋은 질문을 던졌고, 걸걸중상과 옥소가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그랬지. 그런데 이 척박한 동쪽에 1만의 군사를 수송할 선박이 준비돼 있겠느냐?”

“아, 그럴 수가...”

걸사비우가 한숨을 쉬었고, 다른 두 사람 역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지난번 받은 설인귀의 서찰을 재차 확인했다.

나름 일찍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통나무를 옮길 노동력과 자원, 기술자 부족으로 지난 반년 넘게 설인귀와 흑벌무가 건조한 판옥선의 수는 대략 70여 척 정도였다. 적은 수는 아니나 왕명의 출납이 가능한 중리대형(中裏大兄)쯤 되었다면 국가와 왕실 재정을 뜯어 변방에 더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까워한들 소용없는 짓이고 일단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한 셈이었다.

이제 와서 재원 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우선 주어진 전력을 살펴야 했다. 판옥선 1척에 승선 인원은 120명 정도이며, 그 외에 숙신 해적들이 쓰던 해적선마저 더한다면 어림잡아 1만 1천의 군사가 탑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설인귀와 흑수돌이 통솔하는 산기군의 규모는 6000여 명, 숙신 해적과 주변 말갈 부족을 규합해 늘어난 수였다. 그러니 걸걸중상과 걸사비우가 이끄는 선기군과 홍기군에서의 반은 이 배에 탑승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을 위로했다.

“좌절할 필요는 없다. 반은 동쪽으로, 나머지 반은 내 스승님이신 태대사자를 따라 서쪽 바다로 나서면 뿐이다.”

연정토와 남생이 소모한 상륙군의 보충 작업을 실행할 때였다.

“설마, 누가 먼저 남쪽에 당도하는지 일종의 시합인 것입니까?”

“경쟁이라면 지지 않을 것입니다! 중상이 형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 기 중 한쪽은 빠져야 하나 싶어 근심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선기! 선기!”

“홍기! 홍기!”

선기군과 홍기군은 각각 마치 사냥이라도 나온 듯 걸걸중상과 걸사비우에 결속하며 경쟁심을 불타 올리고 있었다.

내가 비도를 하나 뽑아 외쳤다.

“전쟁은 놀이가 아니고 사냥도 아니다! 특히나 바다는 예상치 못한 풍랑을 만날 수 있으니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작은 막리지.”

“예! 명심하겠습니다. 작은 막리지.”

적당히 주의를 주고 나서야 그들은 깨우쳤고, 어떻게 나누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나는 현대에서 배운 가장 공평한 게임을 떠올렸다.

““가위, 바위, 보!””

단판에 승부가 결정 났다.

“제가 졌습니다. 중상이 형님.”

게임의 승자는 걸걸중상이었고, 그가 얼마간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서쪽으로 가겠습니다.”

* * *

걸걸중상이 서쪽을 택한 이유는 조영이의 얼굴이나 한번 보려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이곳에서 가깝고 신라의 해상 세력이 미약한 동쪽을 두고 서쪽으로 가겠다는 것은 거리도 거리지만 위험부담이 컸다. 아마 홍기군의 걸사비우에게는 다소 벅찰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또 무예 학습으로 연수영과도 친분이 있으니 누구보다 빨리 항해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왠지 지고도 이긴 것 같아 분합니다!”

걸사비우는 번거로움을 자처하는 걸걸중상의 속을 읽었고, 반년 사이에 다져진 그들 사이의 유대감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서쪽으로 간 걸걸중상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무렵, 내가 말을 꺼냈다.

“내 스승님께 줄 서찰을 따로 쥐여 보냈으니 중상이에게 항해술과 바다에서 싸우는 법을 잘 가르쳐 주실 게다. 지금은 너와 홍기군만을 생각하거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걸사비우를 위로하며 행렬은 진군했고, 멀리 고구려의 깃발이 보이면서 선도해가 부채로 손을 뻗었다.

“천정군(泉井郡)은 다시 고구려의 영토가 된 듯싶사옵니다.”

천정군(함경남도 원산)에 도착한 나는 적을 뒤쫓기 위해 곧장 남쪽으로 향한 온사문의 고구려군과 신라군이 지키는 비열홀(함경남도 안변)에서의 격전이 치열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일시에 급습한 고구려 대병의 출현에 천정군을 지키고 있던 신라군은 칼 한번 뽑지 않고 퇴각하면서 전장은 순식간에 남쪽으로 향했다.

“신라가 어찌 이곳을 버리고 남쪽을 택한 것입니까?”

내가 넌지시 묻자 선도해가 턱짓으로 천정군의 평평한 평야를 가리켰다.

“평탄한 천정군보다야 마식령과 태백 양대 산맥이 형성돼 있고 남쪽은 협곡이 펼쳐진 비열홀에서의 수성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게지요.”

“지형을 이용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선도해는 천정군을 쉽게 얻은 것을 놓고 방심하지 않았다. 연개소문이 그를 내게 붙여 파견한 것은 이곳의 지리에 능한 이유도 포함된 모양이다.

군영으로 가 보급품을 전달하고 이곳의 책임자가 된 고문에게 물었다.

“지금 비열홀을 지키는 이가 신라의 진골 귀족이라고요?”

“예. 김품일이라 하였습니다.”

그 이름이라면 나도 사서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현재 비열홀을 지키는 신라의 장수는 후일 김유신을 따라 황산벌 전투에 참여하는 인물로 바로 그 유명한 관창의 아버지 이찬 품일이었다. 현재 그곳은 우리 고구려 군세가 수적으로는 우세해도 험난한 지형을 끼며 목책을 세우고 버티는 신라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소식이다.

“투석기와 충차를 준비해야겠습니다.”

나는 천정군의 치안을 안정시키고 있는 뇌음신을 따로 물러 지시했다. 본래라면 이들에게 온전히 맡기고 동쪽의 숙신 해적들의 배를 타며 유유히 우산국을 정벌하고자 했으나 지척에서 막히는 모습에 조금은 힌트를 주어야겠다.

“비열홀에서 전투가 벌어진 지 불과 닷새가 되었습니다. 또 아직 이곳 민심을 수습하지 못했는데 벌써 준비하는 건 조금 이르지 않겠습니까?”

뇌음신이 능청스럽게 그렇게 말했고, 내가 대답했다.

“천정군의 민심이 수습되려면 주변을 하루속히 고구려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 급선뭅니다. 이곳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언제 다시 신라의 백성이 될지, 고구려의 백성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여기서 당장 공성무기를 조립하여 움직이는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른 것이 아닙니다. 말객.”

“그, 그렇군요!”

뇌음신은 용맹하기는 했으나 지략이 부족한 장수였다. 하지만 지시한 것은 또 잘 이행하니 현명한 지략가가 옆에 붙어 있다면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실제 기록된 뇌음신의 행보도 연개소문의 명을 받고 당나라의 포차 전술을 이용해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한 사건이었다.

“공성무기가 제작되어 이곳의 군사들과 함께 출발하면 비열홀에 있는 온사문 장군에게는 포위를 풀고 즉시 남하하라고 하세요.”

“예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형.”

뇌음신이 입을 벌렸고 조용히 경청하던 고문도 고개를 갸웃했다.

“온사문 장군이 이끄는 부대 체계의 기본은 기동성과 방어력을 살린 중장기마전술입니다. 군사들은 찰갑을 착용하고 있고 말들도 저마다 마갑을 입고 있습니다. 이런 군사들이 성 하나에 묶여 있다면 낭비입니다.”

“하나 신라의 성을 두고 어찌 군사들을 돌려 남쪽으로 보낸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다 자칫 위아래로 포위될지도 모르옵니다. 온사문 장군이 이를 받아들일지도...”

이것이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경우다. 이것이 만약 수백 개의 성으로 둘러싸인 한강 유역과 그 일대였다면 명백히 위험한 전술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는 변방 중에 변방인 함경도이고 내 목적은 영토 정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신라 국토 내에서의 교란이다. 서라벌이 동쪽에서 내려오는 고구려 기마의 위협을 느끼게 하여 반응하도록 하는 것. 그때야 비로소 연수영이 서쪽의 갑비고차(甲比古次)를 점령하고 내가 마음 놓고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이다.

“설득해야지요. 파죽지세로 내려가지 못하는 기병은 그 진가가 떨어집니다. 우리의 목적은 작은 성 하나하나 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신라 전체가 인지할만한 교란입니다. 서라벌이 우리 고구려의 위협을 눈치챌 때까지 말입니다.”

기동성이 뛰어난 기마병을 이용해 적의 영토를 유린하는 전술. 이것은 내가 창시한 특별한 전술 같은 것이 아니다. 이 한반도를 유린했던 몽골의 기마병과 청나라의 팔기군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넘기 어려운 이 땅의 성을 가뿐히 무시하며 적의 왕이 존재하는 심장부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가깝게는 당나라가 더는 험난한 요동의 성에서 머물지 않고 평양으로 직공하는 전략이 그것일 것이다.

나는 이들에게 이를 다시 설명하며 이해시켰다. 뇌음신과 고문은 이해만 시킨다면 어느 군사작전이라도 능히 수행할 수 있는 뛰어난 고구려의 무장들이었다.

“이제 알았사옵니다. 신라의 주력군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군요.”

고문이 먼저 이해하며 뇌음신에게 재차 설명했고, 이내 깨달았는지 뇌음신이 탁자를 탁 쳤다.

“알아들었사옵니다! 서라벌의 신라 놈들의 군사가 이쪽으로 빠진다면 다른 곳이 빈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이곳으로 군사를 파견한다 한들 그대들이 염려할 수준은 아닐 겁니다. 신라는 지금 서쪽 국경에 백제와도 대치를 하고 있으니까요.”

국가의 영토가 넓어지는 순간 그 책임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그에 따라 전선(戰線)이 두 배 세 배로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강 유역을 점령한 신라는 남북으로 고구려와 백제 모두에게 닿아있으며 또 서쪽으로도 백제와 맞닿아있다. 그들이 동북쪽인 함경도와 강원도까지 신경 쓰는 일은 무척이나 버거워질 예정이다.

“그럼 저는 두 분만을 믿고 가보겠습니다.”

하물며 바다는 어떨까.

아마 동해 바다는 텅텅 비어 있는 무주공산과도 같을 것이다.

제아무리 김유신이라도 신라의 최남단, 최북단, 최서단의 국경들이 동시에 공격당하는 순간에 바다를 신경 쓸 겨를은 되지 못한다.

“정말 이곳까지 오셨군요. 주군.”

이른 새벽 해안가에 이르자 약조한 날짜에 배를 정박한 설인귀가 나와 있었다.

“작은 막리지를 뵙사옵니다!”

그의 주위에는 산기군에 새롭게 편제된 숙신 해적들의 안면이 속속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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