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막리지 막내아들-39화 (3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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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영락

궁성 연무장.

벼슬을 얻은 나는 그곳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전날 연수영의 심기를 건드린 나머지 이른 아침부터 호되게 당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요! 너무 진심으로 하시는 거 아닙니까?”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한다는 걸 모르느냐?”

시작부터 진검이라니, 이 여자 진심이다.

스친 것만으로 간담이 서늘해져서 도무지 접근할 수가 없다.

“내 세상에 칼을 이렇게나 잘 쓰는 여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작은 막리지.”

그나마 옆에 걸걸중상이라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아마 일격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옥소도 데려올 걸 그랬나. 조금 살살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악!”

그래도 한동안은 걸걸중상이 내 방어를 열심히 해주고 있었다. 성장에 따른 근력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기에 저 녀석에게 의지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진심으로 나온 연수영과의 1합도 견딜 수 없다.

오늘따라 일찍 일어났길래 궁성 구경 좀 시켜줄 겸 끌고 온건데 덕분에 살았다.

아니지, 이 녀석 입장에선 좋은 스승을 만나게 되었으니 오히려 내가 도와준 셈인가?

“대체 저 여자는 누굽니까?”

실력자를 알아본 걸걸중상이 묻고 있다.

“저기 저분은 내 스승이기 이전에 고모님이시다.”

“예? 그럼 그 소문으로만 듣던 대막리지의...”

연수영의 무용담은 요동을 넘어 도성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육지에서는 이세민을 막아낸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이름이 크게 알려졌다면 그보다 남쪽인 바다는 연수영이었다.

“소인, 걸걸중상! 요동에서 연수영 장군의 소문을 듣고 흠모해 왔사옵니다!”

눈빛이 반짝인 걸걸중상이 갑자기 연예인을 만난 듯 칼을 든 채 깍듯이 공수 자세를 취했다.

“이 애송이들이 한심하게 뒤로 빠지기나 하고, 그러고도 고구려의 무사라 할 수 있겠느냐?”

문제는 지금 연수영은 한가롭게 인사나 받고 있을 기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뭣들 하는 게야! 썩 덤비지 않고.”

그녀는 거리를 두는 나와 걸걸중상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내 우리가 자세를 취했으나 그렇다고 쉽사리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수영은 허리에 찬 환두대도 말고도 등에는 무려 3자루나 되는 칼을 착용하고 있다. 베는 용도라기보단 던지는 비도였다. 아마 움직이는 순간, 저 비도부터 날릴 것이 뻔하다.

실전 경험을 갖춘 걸걸중상도 이제 그 정도는 알고 있을...

스슥

예상과 달리 눈 깜짝할 사이에 걸걸중상이 움직였다. 저 녀석이 승부욕이 강한 성격이라는 걸 잠시 까먹고 있었다. 중2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건데.

예상대로 휘웅! 하는 소리와 함께 대기를 가르며 비도가 날아왔으나, 걸걸중상이 그걸 또 재치있게 피해냈다.

전에 나한테 한번 경험한 것이 학습 효과는 있는 모양이다.

챙!

그때 연수영은 또 하나의 비도를 던졌고 걸걸중상은 이번에는 칼로 막아냈다.

연수영의 손이 빠르게 다음 비도에 닿았다. 저건 제아무리 날고 기는 걸걸중상이라도 막을 수 없다.

나는 재빨리 연수영의 비도를 향해 칼을 던졌고, 그녀는 옆에도 눈이 달렸는지 비도로 맞대응했다.

깡!

두 비도가 허공에서 충돌했고, 사이좋게 나란히 바닥에 떨어졌다.

“믿었습니다! 작은 막리지.”

옅게 미소 지은 걸걸중상은 하나는 내가 처리해 줄 것이라 믿고 움직인 것이었다.

이 자식, 지금 웃을 때가 아닌데?

“으아아악!”

예상대로 그런 여유는 잠시뿐이었다. 걸걸중상은 연수영의 대도에 대차게 처맞고는 이내 전투불능이 되어버렸다.

비도가 막힌 나머지 화가 난 연수영이 순식간에 달려왔으나 나는 재빨리 무기를 버리고 백기를 들었다. 적어도 그녀가 무기를 든 상대는 치지 않는 것을 기억해 두고 있었다.

“비도는 어디서 배운 것이냐?”

연수영이 찢어진 옷고름을 들고는 내게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네가 찢은 것이 아니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거라.”

내가 찢은 게 아니라고?

아무래도 조금 전 상황으로 당황한 연수영이 찢은 모양이다.

“배운 적 없습니다.”

“배운 적이 없다고? 내 등에 있는 비도를 일거에 망설임 없이 노렸으면서?”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걸걸중상을 향해 날리려는 연수영의 비도를 노렸고, 위협을 느낀 그녀가 반격하면서 틀어졌다. 연수영은 지금 자신이 반격하지 않았다면 날아들 비도의 거리를 예측하며 내게 따져 묻고 있는 것이다.

“소, 소인이 보았습니다! 작은 막리지께선 비도의 재능이 있으십니다.”

연수영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는 바닥에 널브러진 걸걸중상이 나서주면서 일단락되었다.

“재능이라, 그래 그럴 만도 하지.”

갑자기 연개소문의 집무실 쪽을 바라본 연수영이 그렇게 말하고는 수긍했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에 나는 이틀 전부터 준비한 것을 꺼냈다.

“대충 오늘 수련은 다 끝난 것 같고, 이거 맛 좀 봐주시죠. 걸걸이 너도 이리 와서 한 잔 들거라.”

연수영이 내가 준비한 그릇을 받고는 영문을 모른다는 듯 물었다.

“술은 아닌 것 같고 이게 무엇이냐?”

“독을 탄 건 아니니까 한 번 드셔보시죠.”

고개를 갸웃한 연수영이 의심 많은 표정으로 후루룩 맛을 보았고, 옆에서 조심스레 홀짝이던 걸걸중상은 이내 원샷을 했다.

“고소한 것이 제법 괜찮구나. 대체 이게 무엇이냐?”

“시원하고 맛있습니다! 이 혀를 오묘하게 하는 맛은 처음입니다! 작은 막리지.”

“오묘하다 보다는 달달하다가 더 적정하겠지.”

나도 살짝 맛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고 다행히 내가 기대했던 맛의 한 70%는 나온 것 같다.

이를 완성할 사람은 아마도 내가 아닐 것이다.

나는 자신 있게 연수영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식혜(食醯)입니다. 쌀밥에 엿기름가루를 우린 물을 부어 삭힌 것을 다시 끓여 건져 둔 밥알을 띄운 음료(飮料)죠.”

외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보리로 엿기름 만드는 것부터 맷돌에 갈아 가루로 만들고 채에 걸러 엿기름 물 짜느라 이틀간 늦은 밤까지 고생은 다 했지만 당분간 단맛 그리워할 일은 없어도 되겠다.

앞으로 고구려를 위해 공을 세운 자들에게 이만한 포상도 없을 것이다. 여름철에 상업으로 판매를 시작하면 제법 쏠쏠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나참, 재주가 엉뚱한 방향으로도 있었군.”

“...예?”

연수영의 빈정거림에 내가 잠시 멍을 때리고 있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내일부터는 비도를 가르쳐줘도 되겠구나.”

식혜 맛에 흠뻑 빠졌는지 연수영은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 * *

이른 아침부터 땀을 빼며 태학에 들었다. 마치 운동하고 통학하는 기분이다.

제법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더니, 누가 나를 알아보고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남산아! 남산아!”

태학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는 이는 나와 가장 가까운 형제인 남건이었다.

원화 부인은 내가 돌아왔음에도 태왕을 알현할 때까지 남건에게 일저 알리지 않았다. 내가 형보다 먼저 벼슬을 얻게 될 일을 알았는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어찌 됐건, 나는 그 얼굴이 그리워서 반갑게 맞이했다.

“작은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너, 너 그 소문이 다 사실이냐? 내 태학에 입학한 지 겨우 닷새인데 직접 듣고도 믿을 수가 없구나. 그간 너를 보지 못한 것이 전부 그 때문이었다니...”

소문 한번 무섭다고, 나에 대한 행보가 태학을 비롯한 이 도성 안에서 상당히 과장된 채로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연개소문의 막내아들이 작은 안시성에서 요동성을 무너뜨린 당의 황제를 물리쳤다는 영웅담 같은 이야기로 말이다.

요동성의 그 어린 신녀가 전쟁이 끝나고 건안성과 안시성을 거쳐 동쪽 오골성에 들어오면서부터 소문이 약간 삼천포로 빠진 모양이지만, 당사자 입장에서야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바다에서는 연수영이 육지에서는 연개소문에 이어 양만춘과 함께 내 이름이 고구려 땅 방방곡곡에 위인전처럼 나돌고 있다는데 어느 누가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최대한 멋쩍은 미소로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큰형님께 저지른 죄를 속죄하고자 도성을 떠나 요동 지역에 머물다가 난(亂)을 만났으니 어쩌다가 안시성까지 흘러가게 되어 당나라와 싸우는 고구려 군사들을 독려한 것뿐입니다.”

어색한지 말이 엿가락처럼 늘어나고 있다.

실제 연남산의 성격도 그렇거니와 언제든 때려치울 각오였던 대학교수 조교로 산 내 본성 역시 겸손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지만, 여기서는 최대한 몸을 숙이고 있어야 했다.

이 고구려의 운명이 형제들의 분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괜한 오해를 사봐야 좋을 것이 없다.

“남산이 왔느냐?”

같은 시각 대공자 남생의 등장에 남건이 고개를 돌렸다.

“크, 큰형님?!”

남생이 전각 뒤에서 나와 남건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이 대화에 장남 남생이 끼어든 이상, 나는 앞으로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막내, 큰 형님을 뵙습니다.”

“그리 인사를 잘하는 것을 어찌 태왕 폐하와 신료들 앞에서는 하지 않았느냐?”

남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올해 13세인 그는 작년에 본 것보다 머리 한 치수가 더 자라 있었다.

그에 비해 아직 정신적으로는 성장을 하지 못한 듯하다. 그러니 궁에서의 일을 여태껏 속에 담아두고 있던 거겠지.

또 아직 성장을 다 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괜한 자격지심이 생기는 법이다.

“아버님의 말씀을 태왕 폐하와 신료들 앞에서 전달하는 것만 생각했던지라 긴장하여 미처 큰형님께 인사를 깜빡하였사옵니다. 송구합니다. 큰형님.”

“네 어린 것이 나와 같은 벼슬을 하라고 아버님께서 시키셨다더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버님께서 돌아오시면 큰형님께 중책을 맡기실 것이니 심려하지 마시옵소서. 제 벼슬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아버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고?”

“예에. 기다려보시옵소서. 큰형님.”

그것에 화가 조금은 누그러졌는지 헛기침을 하며 갈 길을 가버리는 연남생이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거 애 달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도 연수영, 연정토처럼 다 커서 달래는 것보다야 훨씬 수월한 셈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적어도 커서는 저러지 않길 바란다.

나는 살짝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몸을 낮추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는 게 가능할까. 내심 부정적인 생각이 감돌았지만, 요동에서의 고초를 상기한 나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능할까가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다.

당태종 이세민이 친정하는 1차 고당 전쟁은, 이제 불과 다가올 진짜 싸움의 서막에 불과하다.

내정에 전념하고 다가올 기회를 하나하나 잡는 것만 생각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앞에 멍때리는 소년의 마음을 사야 한다. 나이와 다르게 고구려의 중앙집권체제를 이루는 한 부서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닌 연개소문의 아들이었다.

“큰형님께서 네게 저리 화를 내고 계신 줄은 몰랐다. 태학에 입학한 나한테도 가던 절이나 가지 왜 왔냐고 눈치를 주시더만...”

연남건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형제간 작은 불씨는 어쩌면 이 시기에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원화 부인이야 응당 그 뱃속에서 나온 남건을 차기 대막리지로 만들고자 부랴부랴 태학에 입학시키며 귀족들과의 관계를 쌓으라 했을 거고.

“작은 형님.”

“왜 그러느냐?”

“고구려를 위해 저를 좀 도와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나, 남산아. 그 무슨 소리냐?”

귀가 얇은 연개소문의 차남 연남건. 귀족들의 꼬드김에 속아 동생과 함께 큰형을 배신하기는 했으나, 그는 그래도 당나라에 투항해 평생토록 부귀를 누린 연남생과 연남산보다는 나은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부끄럽게 여긴 그는 끝까지 항전하였고, 부하 신성의 배신으로 평양성의 성문이 열리고 수치스럽게 사로잡혔어도 한사코 당나라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오히려 자결을 시도했을 만큼 고구려 최후의 권력자로서 나라에 신의를 지키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러니 그는 낙양 북망산에 묻히지 않은 유일한 연개소문의 아들이었다.

“이 아우가 마주한 당의 황제는 다시 백만 대군을 일으켜서라도 이 고구려를 침범하고자 할 것입니다. 저희가 아직 미력하나 이를 알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장차 고구려가 큰 위기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하, 하나 이는 아버님께서 하실 일이 아니겠느냐? 큰형님도 계시고.. 아직 어린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제 막 10대인 남건은 전형적인 차남의 모습이었다. 위로는 큰형 연남생이 있으니 책임감으로부터는 자유롭고, 아래는 망나니 동생 남산에게 치이고 있었다. 또 원화 부인의 허황된 기대감과 그 일가 귀족들 사이에서 자라며 바르게 자라지 못하는 대표적인 귀족 자제였다.

연개소문의 아들로서 잠재력은 있어도 잘못된 교육으로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하는 남산과 별반 다르지 못한 사정이다.

그것을 바른길로만 인도할 수 있다면, 남건은 고구려를 위한 특출난 인재가 될 수 있다.

“광개토태왕께서는 불과 18살에 즉위하시어 출정해 거란에게 잡혀간 우리 고구려 백성 수만을 구하셨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다음 해에는 4만의 군사를 몰고 조부셨던 고국원태왕의 목숨을 앗아간 백제를 정벌하셨습니다. 저희가 아직 그만큼 장성하지 못해 군사를 이끌 자질은 되지 못하겠으나 이 도성에서 고구려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높이가 6.3미터 아파트 3층 높이의 광개토태왕릉비는 실로 놀라웠다.

그 시절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에는 광개토태왕이 어떤 마음으로 즉위하였으며, 또 어떤 심정으로 고구려와 고구려 백성들을 괴롭힌 주변 나라와 전쟁에 임했는지 잘 나타나 있었다.

태왕이 직접 칭한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도 고구려 백성들의 안락을 위해 고구려의 천하관을 세운 것이었다. 주변의 그 어떤 나라에게도 백성들이 고통받질 않기를 바라면서 몸을 혹사해가면서까지 전장에 임했다.

그리고 후일 태왕의 무덤은 생전 차별을 염려한 나머지 백제인을 포함한 정복한 민족으로 하여 수묘인(守墓人)으로서 지키도록 유언을 남겼으며, 영광스러운 고구려의 백성으로 품었다.

“영락(永樂)이란 광개토태왕께서 원하던 백성들의 영원한 행복이라 하였습니다. 점령한 국가를 멸하거나 힘으로 눌러 지배하지 않았으며, 그저 고구려의 울타리 안에 둔 것은 그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귀를 기울인 남건은 짧게 감탄했다.

“남산이 네가 요동에서 당나라 놈들과 싸우는 우리 군사들을 보고 오더니 많이 어른스러워졌구나..”

“형님께서 계셨다면 저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으셨을 겁니다.”

“내 요동에서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전해 들었다. 하나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하였으니,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겠지.”

태학에 입학하면서 서책 보는 횟수가 늘었는지, 남건은 한나라 시대 고사성어까지 꺼내며 내 말에 수긍했다.

이렇게 문제가 벌어질 한 축과의 이야기가 잘 풀렸다.

나는 그를 잘 길러내어 귀족들에게 당하는 일은 반드시 막고야 말 것이다.

오히려 역으로 남건을 앞장세워 귀족들을 이용해 고구려의 밑바닥부터 뜯어고칠 작정이다.

* * *

수주 후 당나라 황제 이세민이 친정한 고구려 원정의 패배 소식이 중원의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일파만파(一波萬波) 퍼졌다. 중원 서쪽의 토번국은 천가한을 자칭한 이세민 역시 패배할 수 있다는 소식에 무언의 자신감을 얻었고, 설연타는 군사를 일으켰다. 고구려의 동맹국 백제 조정은 안심했으나 우려하는 나라도 있었다.

“고구려가 당나라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당의 황제가 정녕 요동에서 퇴각했단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상장군.”

매리포성(買利浦城)에 쳐들어온 백제군을 격파한 김유신은 북쪽에서 전해온 급보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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