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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막리지 막내아들-19화 (1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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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정관의 치 vs 작은 막리지 (1)

“계필하력 전군총관이 북쪽의 거란의 기마대가 합류하는 대로 백암성을 치겠다고 하였사옵니다! 황제 폐하.”

뒤늦게 도착한 강하왕 이도종의 보고에 이세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동성에서 가까운 백암성보다 안시성이 짐의 수중에 먼저 떨어지겠군.”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황제 폐하.”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황제 폐하.”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황제 폐하.”

일제히 읍하는 지휘관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이세민. 그의 시선이 요동도행군대총관 이세적에게 멈췄다.

“안시성은 짐의 6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거늘, 무공은 어찌 요동도행군을 이끌고 건안성으로 내려가지 않는가? 건안성은 군사가 약하고 양식이 적으므로 불의(不意)에 나아가 친다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여기서 군사를 나누어 그대가 먼저 건안을 치는 것이 좋겠다. 건안이 함락되면 안시는 내 수중에 있게 된다.”

이세적이 완강하게 거부했다.

“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은 북쪽에 있는데, 지금 안시성을 넘어 건안성을 치다가 만일 개소문이 나타나 우리의 양도를 끊으면 장차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먼저 안시를 치는 것만 못하니, 건안은 영주도독과 부도독 장검을 믿어 맡기시고, 혹여 안시가 먼저 함락되면 북을 울리며 진군하여 건안을 취할 것입니다.”

심사숙고한 끝에 이세민이 받아들였다.

“그대를 장수로 삼았으니, 어찌 그대의 책략을 쓰지 않으리오. 우리의 일을 그르치지 말도록 하라.”《자치통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 폐하.”

와아아아아아아!

그때 막사 밖에서 울리는 함성에 이세민이 급히 나와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냐?”

“저기 안시성이옵니다! 황제 폐하.”

이도종의 검지가 안시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놈들이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어찌하시겠사옵니까? 폐하.”

“오늘은 뒤늦게 도착하여 지친 군사들이 있을 것이니, 포위망을 유지한 채로 여기서 진을 구축한다!”

“본부대로 시행하겠사옵니다!”

“안시성에도 권고하시겠습니까?”

장손무기의 물음에 잠시 허공을 바라본 이세민이 입을 열었다.

“짐의 마지막 은혜를 안시성에 전하고 오너라!”

* * *

“안시성과 그 성주는 성문을 열고 투항하라! 그리하면 폐하께서 특별히 개소문의 막내아들이 벌인 장난을 용서해 주겠다 하셨느니라!”

멀리 진지를 구축하는 이세민의 본대가 보였고, 성벽 아래 당나라 전령이 와서 우렁차게 권고하고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저렇게 급히 달려온 이세민이 진짜 우리가 항복할 거라고 생각해서 보냈을 리가 없다. 여기까지 달려오는데 군사들이 여간 지쳤을 테니 다른 성들에도 명분상 그랬던 것처럼 그냥 겉치레 겸 보내온 걸 것이다.

“세민이가 보내서 왔느냐?”

나는 양만춘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나섰다. 내가 앞당긴 일이니, 내가 나서는 게 맞는 거고,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또 어쩌면, 지금 나서는 게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

“!”

“!”

그 말에 당나라 전령뿐만 아니라 당혹스러운 표정의 양만춘과 깜짝 놀란 안시성 군사들의 시선 역시 내게 쏠렸다.

그렇게 뚫어지게 노려보지들 마, 옆에 누구 믿고 하는 허세니까.

“세민이가 보냈냐 내 묻지 않았느냐?”

“네... 네 이 젖비린내 꼬맹이가! 감히 어느 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느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전령이 이번에는 고구려 말이 아니라 중원 말로 나를 야단치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나도 중원 말까지 더해 놈의 속을 뒤집어 보기로 했다.

“세민이가 내가 보낸 편지를 읽지 못했다더냐? 자고로 제왕이란 천하를 살피며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하거늘, 어린 내게 속아 이리 한걸음에 안시성에 달려왔으니 어린아이만도 못한 속 좁은 제왕이 아니겠는가!”

“끄...! 이, 이놈이...!”

하도 기가 막힌 지 전령이 화를 애써 억누르며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크큭!”

“야 너 왜 웃어?”

“혹시 작은 막리지가 한 말 알아들었어?”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야 빨리 말해봐.”

“그니까 그게.. 크하하!”

뒤를 돌아보자 중원 말을 알아듣는 일부 안시성 군사들의 큭큭 비웃었고,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이 묻기까지 하고 있다.

“네 그 작은 입으로 잘도 조잘조잘 떠드는구나! 내 황제 폐하께 돌아가 네놈이 한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전하겠다! 이 성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네놈의 그 세 치 혀를 뽑아버리는 건 물론이고, 사지가 잘라버리도록 할 것이야!”

뒤돌아가는 놈을 향해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壯士不死卽已(장사불사즉기), 死卽擧大名耳(사즉거대명이)!”

“!!”

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는 전령을 향해 말을 이었다.

“대장부가 죽지 않으려면 그만이지만, 죽기를 결심했으면 크게 이름을 날려야 하지 않는가! 나 대막리지(大莫離支)의 삼남(三男) 연남산(淵男産)! 성년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으나, 고구려를 위해 이곳 안시성(安市城)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당의 황제와 그 밑에 오랑캐들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울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경악하는 얼굴로 되돌아가는 당의 전령의 뒤에 무수한 안시성의 외침이 배경음이 되었다.

* * *

당나라 진영.

멀리서 들리는 안시성의 함성에 당나라 군사들의 긴장감이 역력했다.

요동성에서도 이와 같은 함성은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가장 웅장하고 거대한 천막 안에서 황제의 음성이 새어 나왔다.

“놈이 맞다더냐?!”

이세민의 물음에 안시성에 권고령(勸告令)을 다녀온 병사가 읍했다.

“맞사옵니다! 폐하. 개금의 막내아들이 폐하를 속이고 그런 서찰을 보낸 것이었사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감히 폐하의 이름을 들먹이며 욕을 보이고는 우릴 오랑캐라고...”

전령의 보고에 이세민은 눈을 감았고, 아사나사이와 손이랑이 대신 분개했다.

“이런! 이런! 그런 천하의 죽일 놈을 보았나!”

“놈의 저지른 짓거리가 제 신하들을 죽인 개금과 똑같지 않사옵니까?! 그 더럽고 야만스러운 오랑캐 핏줄이 폐하와 우리 당나라를 욕보였사옵니다!”

이세민이 실성한 듯 호탕하게 웃었다.

“흐하하하하! 개소문의 막내아들이라더니, 참으로 맹랑한 것이 아닌가? 그 어린놈한테 제왕이니, 천하니 짐이 그런 지적을 다 받고 말이다! 놈이 고구려가 아니라 당나라에 태어났다면 위징(魏徵)에 견줄 골칫덩어리가 될 뻔했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 이세민이 요동도행군대총관 이세적을 바라보았다.

“내 진작 그대의 말을 들었어야 했거늘.”

“어쩔 수 없는 일이었사옵니다! 폐하. 설마 그 어린놈이 폐하를 욕보일 각오로 거짓 항복을 할지 어느 누가 감히 예측을 하였겠사옵니까? 폐하의 그릇이 넓은 것을 탓할 수밖에요.”

밖으로 나와 안시성을 노려보는 이세민이 미간을 좁혔다.

“내 그대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구나. 하나, 기필코 저 안시성을 넘어서 개소문의 막내아들의 목을 베어 그 아비에게 던져줄 것이다!”

이때다 싶어 모피를 두른 돌궐 출신 아사나사이가 나섰다.

“신에게 선봉을 맡겨주시옵소서! 폐하. 신이 달려가 폐하를 모욕한 남산이 놈의 목을 가져오겠나이다.”

“믿음직스럽구나! 하나 안시성이 작아도 성은 성이다. 포차(抛車)가 완비될 때까지 짐의 6군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적의 군세를 볼 겸 한바탕 크게 날뛰고만 오너라.”

“예! 폐하. 맡겨주시옵소서!”

* * *

두두두두!

땅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공격하라!”

이튿날 아침 안시성을 향해 이세민의 첫 진격령이 떨어졌다.

다그닥! 다그닥!

이랴! 이랴! 이랴앗!

아사나사이가 이끄는 돌궐 기병이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선봉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작아도 성을 상대로 기마대가 돌진해 오다니, 누가 보면 ‘전술(戰術)’의 ‘전(戰)’ 자도 모르는 앞뒤 생각 없이 돌진하는 모양새로 보이겠지만, 안시성의 군세(軍勢)를 확인하기 위한 이세민의 물밑작업이었다.

“기병을 상대로 쓸 필요 없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남산이 네가 가져온 저 기기들의 최우선 목표는 당의 포차와 충차를 부수기 위한 용도가 아니냐?”

“예, 맞습니다.”

양만춘이 내 말을 이해했고, 이내 치에 설치한 수성기의 발포를 차분히 멈춰 세웠다.

옆에서 느껴지는 타고난 이해력과 카리스마는 양만춘 밑에 똘똘 뭉친 안시성의 저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와 양만춘이 말한 대로 당나라가 자랑하는 공성무기를 꺼내기 전부터 이쪽의 카드를 먼저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되려는 첫 격전.

나는 팔짱을 끼고 구경했다.

자, 이세민이 보고자 하는 안시성의 군세를 나도 한번 확인해보자.

“쏴라!”

이내 사정거리에 들어선 돌궐 기마들을 향해 양만춘이 먼저 명을 내렸다.

잠깐, 내가 기억하는 활 사거리보다 훨씬 먼데 벌써 쏜다고?

슈슈슉! 푹─!

달려오는 돌궐 기마대들이 허리에 찬 활을 채 들기도 전에 날아가는 화살이 비를 내리며 그들을 쓰러뜨렸다.

푸푸, 푸푹!

“악!”

“아악!”

끼이이잉─!

비 내리듯 떨어지는 화살에 사람이고, 짐승이고 가리지 않고 명중했다.

“미친...!”

구경하는 것만으로 그저 감탄만 나온다.

10발을 쏘면 9발이 명중인양 비껴가는 화살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안시성 내 전문 활잡이들만 따로 뽑아 치와 성벽에 배치한 건지, 실로 놀라운 사거리와 적중률이었다.

“미래 우리나라의 양궁이 괜히 올림픽 챔피언이 아니었구나...”

서로 눈치 보는 맛보기답게 내가 나설 자리는 없었다.

둥둥둥.

이내 들리는 북소리의 울림.

“퇴각하라!”

안시성 궁수들의 실력에 흠칫 놀란 아사나사이가 급히 퇴각 신호를 보냈고, 신호가 무섭게 돌궐 기마대들이 빠른 속도로 사정거리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정오를 조금 넘어선 오후, 안시성의 첫 승리였다.

“긴장감을 풀지 마라! 이세민의 6군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양만춘이 환호성을 지르는 부하들을 단속했다.

그 모습에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 * *

이후 몇 차례의 간 보기 전투가 벌어진 뒤, 이윽고 늦은 저녁이 되었다.

“귀하게 자라신 분이 저 나이에 이리 음식 솜씨도 좋으시다니.”

“요 간을 맞춘 메밀국수는 저희 어머니가 해준 것보다 맛있습니다요!”

“에끼 이놈아! 아무리 맛있어도 어머니의 것에 비하면 안 되지!”

“하, 하지만! 사, 사실인 걸 어쩝니까?”

“하하하!”

흙바닥에 앉아 웃고 떠들며 오물오물 먹고 있는 안시성 병사들을 보자 옛 추억이 난다.

내가 오기 전까지 안시성의 생활은 궁핍했다.

조정에서는 외면받고, 요동에서는 변방의 외지라는 이유로 촌뜨기라 멸시받고 있으니 외지인이나 평양 출신에 대한 반감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날 이곳의 마음을 여는데 제법 시일이 걸렸다.

안시성 앞에서 석 달 넘게 야영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때때로 그들에게 기꺼이 베풀며 신뢰를 얻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신뢰란 단순했다.

그냥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

“여기 양꼬치도 드시구려.”

“고맙습니다. 작은 막리지.”

야영하면서 키운 큼지막한 가축들이 요동성에서 가져온 양곡과 함께 이곳 안시성에 들어왔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주먹밥과 메밀국수, 그리고 영양이 풍부한 육즙과 간이 잘 배어 있는 향신료가 어우러졌으니 미각을 느낄 수 있는 누구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거기 안시성의 부성주 마로라고 했죠? 그쪽도 여기 꼬치도 가져가요. 막사에 계신 성주께도 좀 가져다주시고.”

“정말 고맙습니다! 작은 막리지. 만춘이 형님을 배려하고 계셨군요.”

“작은 막리지요?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꼬치를 준 저 아저씨 병사들도...”

내가 멍때리고 있자 마로가 웃으며 가르쳐준다.

“하하. 모르셨습니까? 안시성에서는 이제 군사들이고 백성들이고 모두 삼공자를 작은 막리지라 부르옵니다. 요동의 동요를 퍼트려 백성들을 구원하셨고, 양식이 부족한 성에 저마다 요동성의 양곡을 넣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당의 황제는 요동성에서 쌀 한 톨도 가져가지 못했고요. 거기다 이번 일까지도...”

“아니,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습니까? 안시성에서 대체 누가...”

“하하. 저길 보십시오.”

내가 채 묻기도 전에 마로가 검지로 가리켰다.

“글쎄, 우리 작은 막리지께서는 말입니다...!”

“아이고 요놈, 벌써 10번도 더 들었다! 이놈아.”

그곳을 보자 15살에 성년이랍시고 기념 술 한 사발 들이켜는 걸걸중상이 안시성 군사들과 옹기종기 모여 온갖 내 행보를 떠들고 있었다.

아니, 건국왕의 아버지가 입이 그렇게 싸도 되냐?

나는 숨을 고르며 화를 가라앉혔다. 어차피 성까지 포위당한 데다 이 고생에 그게 뭐가 대순가 하며 말이다.

당나라와 진짜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조용히 안시성 성내를 걸었다.

고개를 돌리자 때마침 달빛이 뜬 밤 아래 옥소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안시성 성주의 막사였다.

그러고 보니 저 두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깜빡하고 있었다.

“내가, 말해줘야 하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연개소문이 갈라놓은 저 두 사람을 내가 연결고리가 되어 만나게 한다?

생각할수록 웃기는 일이었다.

오히려 한참 힘을 모아 싸워야 할 때 괜한 혼란과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 기껏 양만춘과 안시성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는데 양만춘이 연개소문에 반감을 갖고 그게 다시 나로 이어지면 무척이나 곤란한 일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또 한참 수성에 신경 쓸 양만춘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도 있다.

언젠가는 알게 되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

하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애처롭게만 느껴졌다.

* * *

댕댕댕댕─

밖에서 보초를 선 안시성 병사가 청동 종을 울렸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깜깜한 암흑.

“적습입니다! 일어나십시오! 도련님.”

전날 미리 일러두었던 대로 옥소가 나를 깨우러 왔다.

그런데 무척이나 다급한 목소리에 일순 간담이 서늘해졌다.

나는 단잠을 깨고 일어나 서둘러 옥소와 함께 성벽 위로 올랐다.

그곳에서 잠을 깨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깨워지는 효과음이 들려온다.

드르르륵

적진 횃불 사이사이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 여러 개가 이곳 안시성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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