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_연말 >
1.
“으아아아아악!!!!!!!!!!!!!”
정말 어떠한 의도도 없이 무지성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MMA와는 다른 사각 링. 하늘에서는 날 비추는 화려한 조명이 날 감싸고 있었다.
오롯이 나만 주인공이 된 듯한 고양감.
-휘익 휘익!
-와아아아아!!!
-짝짝짝짝!
객석의 관중 대부분이 자리에 일어나 아직까지도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고있었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객석을 한번 둘러봤다.
날 향한 박수와 갈채를 보내는 만 단위의 관객들.
그리고 날 향한 수많은 카메라. 그 너머에서 또 날 지켜보고 있을 수십. 어쩌면 수백 수천만에 이를 사람들까지.
“크으.”
육성으로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정말 짜릿짜릿했다.
이 순간. 이 무대를 오롯이 차지한 건 승자인 나였으니까.
-휙. 휙.
우선 친구 놈들이 앉아있을 객석 방향으로 한번 팔을 뻗어줬고
-우와아아아아!!!
다음으로는 오늘 경기장을 찾아주신 미국 대통령과 러시아 대통령이 있을 VVIP석을 시작으로 사방으로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와아아아아!!!
내 손짓 하나 행동 하나에 열광하는 객석.
마치 락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이래서 기태가 무대만 올라서면 미치는 건가 싶었다.
-헤~이! 언빌리버블 강! 승리 인터뷰. 괜찮겠어요?
그렇게 주변을 돌며 객석의 환호에 리액션 해주고 창섭 형이 가져 온 팀 피스트의 유니폼 티셔츠까지 챙겨 입었을 때 승리 인터뷰 진행자가 링 위로 올라왔다.
“당연하죠. 아! 그 전에.”
승리 인터뷰를 잠시 미루고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카이서스!”
잠시 의식을 잃은 듯 했던 카이서스가 어느새 정신을 추슬리고 일어나 닥터체크까지 끝낸 듯 했다.
“강.”
“정말 좋은 시합이었어요. 많이 배웠어요.”
“배운 건 내가 더 많이 배웠을 거야.”
-꽈악.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진심을 담아 서로에 대한 예의를 보였다.
“타이틀을 걸길 잘 한 것 같아.”
“네?”
“그렇지 않았다면 2차전을 성사시키기가 어려웠을 텐데. 강 자네가 벨트를 가져가는 이상 공식적으로 도전할 기회가 있잖나.”
“...아.”
그렇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카이서스와의 경기는 단발성으로 이번 이벤트 매치가 마지막일거라 생각했으니까.
“잠시 맡겨둘테니 잘 가지고 있어. 다음에 만날 땐 분명 오늘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테니까.”
“하하. 네. 이 벨트. 제가 잘 간수하고 있을게요!”
카이서스와의 시합이라면 나도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심장 쫄깃해지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과의 시합. 이전까지의 경기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성취감이 있었던 시합이었다.
이런 경기를 또 다시 해볼 수 있을까 싶어 알게 모르게 섭섭한 느낌이 있었는데 카이서스의 말에 그런 여운이 싹 가셨다.
“자. 그러면 승자의 자리로 돌아가. 전 세계가 자넬 기다리고 있으니까.”
“...네!”
그 말을 끝으로 쿨하게 링을 내려가는 카이서스.
언제나 승자의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 뒷모습이 썩 어색해보였다.
-미스터 강?
“아! 오케이. 합시다. 이제 승리 인터뷰해도 됩니다.”
그러나 어쩌겠어.
오늘의 승자는 나였고, 승자의 자리는 정원이 1명이라 함께 설 수는 없었고.
-전 세계에서 미스터 강의 활약을 지켜본 수많은 팬 분들에게 인사부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제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쭉. 이 자리는 내 자리가 될 예정이었다.
왜냐고? 그건 내가 그 누구보다
“강해서입니다!”
*
-황제 카이서스! 무패의 기록 깨지다!
-새로운 신화! GOD-해서!
-2912일. 7년 355일 만에 깨진 카이서스의 4벨트 신화! WBC 벨트는 한국의 품에!
-한국의 자랑 강해서! WFC 최단기간 챔피언 및 최초 3개 체급 동시 챔피언으로 기네스북 등재? PPV 최다 유료 시청 기네스까지!
-강해서를 강하게 키운 K푸드? 지금 이 순간!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한다!
-카이서스. 강해서는 MMA 선수가 아닌 그저 ‘천재’일 뿐. 어떤 투기종목도 그의 도전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강해서의 모국을 향한 K투어가 뜬다?
-전 세계는 지금 K열풍!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두유 노 강해서?’
-카이서스. WBC 벨트를 잃었어도 아직 3개의 벨트가 남았다. 패배에 연연하지 않고 WBC 벨트도 꼭 다시 찾아올 것.
-특명! 강해서를 잡아라! 하늘의 별따기라는 강해서! 잡기만 하면 대박?
┗와... 진짜 국뽕 ㅈㄴ 차오른다. 나 밴쿠버 유학중인데 요즘 현지 한국인들 ㅈㄴ 살판 남. 강해서 하나로 한국인 인식이 달라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씹공감. 나 보스턴 사는데 성이 강씨란 말야? 미국은 성이 같은 경우가 잘 없으니까 나한테 강해서랑 친척이냐곸ㅋㅋㅋㅋㅋㅋㅋ 한국인한테 ㅈㄴ 친절함
┗국뽕 개오져. 지금 유럽여행중인데 펍에서 강해서 경기 틀어뒀길래 같이 응원하면서 봤거든? 근데 나한테 한국인이냐면섴ㅋㅋㅋ 맞다니까 맥주랑 서비스 미친듯이 주더라 진짜. 유럽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는다고? 미친거짘ㅋㅋㅋ
┗강해서 투어도 생긴다잖아 ㅋㅋㅋㅋ 스트리트 파이트 때 처음 훈련했던 체육관부터 강해서가 처음 시합한 체육관까지. 그냥 강해서 다닌 걸음걸음마다 관광코스되고있음ㅋㅋㅋㅋ
┗아니 왜 미국 애들이 한국으로 격투기나 복싱을 배우러 오냐곸ㅋㅋㅋ 본고장이 너희나라시잖아욬ㅋㅋㅋㅋ
┗격투기 시장에서도 한국인 입지 ㅈㄴ 커짐. 예전엔 일본애들만 좀 먹어주고 한국은 솔직히 듣보 취급이었는데 이젠 한국계 루키라고 하면 일단 한번 지켜보자는 추세임ㅋㅋㅋ
┗크으. 역시 시대를 선도하는 건 말도 안되는 천재 몇명이라는 말이 맞음. 강해서 하나 때문에 한국 격투기 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자체가 개떡상함ㅋㅋㅋㅋ
┗강해서 손아름 결혼식 기사 봤음? 비공개로 조용히 결혼한다니까 해외 유명 스타들이 SNS에 서운하다고 난리남ㅋㅋㅋㅋ 꼭 한국에 방문해 축하하고싶다고 ㅋㅋㅋ
┗크으... 국뽕에 취한다 진짜. 강해서 하나땜에 할리우드 스타들부터 팝스타들까지 다 한국오고싶어 난리임ㅋㅋㅋㅋ 그저 갓-해서 보유국!
전 세계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한국과 외국을 가리지 않고.
그저 강해서 열풍이었다.
카이서스의 무패 전적을 꺾으며 근 8년에 이르는 복싱 4대 단체 동시 챔피언 장기 집권을 끝내버린 시합의 막이 내린지 채 1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세계적인 강해서 열풍은 아직 시작도 아니라는 듯. 점점 더 열기와 크기를 더해가고 있었고 그 반사이익에 취한 한국에서는 티비에서도 인터넷에서도 그저 강해서를 찬양하기 바빴다.
-복싱 사에 다시없을 명경기
-현존하는 모든 복싱 영상을 비기너 영상으로 만들어버린 시합.
-카이서스의 재발견? 이십여 년만에 카이서스의 진면목을 처음 마주하다!
-복싱 레전드들. ‘카이서스, 강해서와 같은 시대를 살지 않은 것 만으로 축복받았다.’
-강해서 Vs.카이서스 전. 분석할수록 감탄만 나와. 그냥 봐도 명경기지만 느린 화면으로 보면 명품!
-사람이 맞나? 말 그대로 세계관 최강자들의 격돌! 그에 걸맞은 시합 내용!
=지난 토요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렸던 강해서와 카이서스의 복싱 이벤트 매치는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비단 ‘세계관 최강자급의 격돌’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존 우리가 알고 있던 복싱과는 전혀 다른 스포츠를 보는 듯 한 말 그래도 ‘신계’의 복싱에 모두가 열광한 것.
[경기내용 느린 화면 영상]
느린 화면으로 해설된 영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의 경기는 일반적인 복싱의 궤를 벗어나있다.
일반적인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사는 듯 한 그들의 플레이. 짧은 순간에도 수십번의 공방이 오가지만 그 모든 걸 보고 예측하며 압도적인 하이퀄리티 시합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세계가 열광하는 건 비단 복싱 레전드와 MMA 레전드가 만나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인간을 벗어난 듯 한 경기가. 흡사 과장된 액션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한 경기력이 전 세계를 열광케 한 것이다.
언제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방어전을 지루하게 보냈던 카이서스는 강해서라는 세기의 맞수를 만나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세상에 선보였다.
누구도 카이서스의 패배에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껏 상대가 없어 볼 수 없었던 그의 진짜 실력에 모두가 박수를 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꺼져가던 복싱과 종합격투기에 대한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다시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
복싱과 종합격투기는 카이서스와 강해서. 이 두 사람으로 인해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현 시각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_Forbes>
심지어는 그 포브스지에서도 공식적으로 강해서와 카이서스의 경기를 언급하며 복싱과 종합격투기 시장의 전 세계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했으니 이미 말 다 한 샘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해서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고 있는 사람.
“흐음. 정말 기대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잖아? 이정도면 불러낼게 아니라 직접 얼굴 보러 한번 가야겠네.”
그녀는 ‘아름이 언니 결혼 축하도 할 겸.’ 이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나저나. 듀픈 쪽에서 속 좀 쓰렸겠네. 아버지가 좋아하시겠어.”
강해서 에게 메세나라는 명목으로 많은 후원을 했던 멜린 가의 레이첼.
그녀가 강해서와 손아름의 결혼 축하를 위해 한국행을 선택했다.
2.
“해서야!”
“강해서!:
“해서 씨!”
“선배님!”
카이서스와의 시합이 끝나고 한 며칠은 평화로웠다.
카이서스가 자신의 전용기로 팀 피스트 인원들 모두를 프라이빗하게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까.
얼굴이 조금 붓긴 했지만 그래도 아름이의 간호(라기엔 임산부라 내가 아름이를 챙긴 것 같지만 어쨌든)를 받으며 조용하게 지냈던 시간.
그리고 그 생활은 채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해서야! 안 코치님이 부르신다!”
“또요...? 이번엔 또 뭐에요?”
“청와대 연말 만찬 초청이라던데?”
“아...”
미국 대통령도 날 보러 왔고. 심지어 러시아 대통령도 날 보러 비행기 타고 날아왔는데 우리나라 대통령님은 날 부르시네.
힘없는 서민이 어쩌겠어. 부르면 가야지.
“일단 이거 미팅 끝나고 바로 간다고 좀 전해줘요.”
“오케이.”
복싱 이벤트 경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연말 분위기가 풍기기 시작하는 시점.
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기업체들의 광고 의뢰나 방송 출연 제안은 예전부터 있었다지만 그 규모가 달라졌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부터 시작해서 해외 유명 TV프로그램에서도 쉴 새 없이 문의가 들어왔다.
심지어 전화기가 터질 것 같은 상황이라 연락을 받지 못하자 섭외 제안을 하러 미국에서 한국까지 무작정 찾아오는 제작진까지 있었다.
아니지. 그냥 섭외 제안하러 찾아온 정도면 양반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유명한 프로그램이나 너튜버들이 무작정 한국에 와서 한국을 소개하는 플롯으로 촬영허가를 받아놓고는 체육관 근처를 얼쩡거리며 어떻게든 내 모습을 한 컷이라도 담으려는 일도 빈번했다.
거기에 더해 세상에 대한민국에 외국인 파파라치까지 들어왔다니 디X패치가 울고 갈 일이었다.
오죽하면 내 기사가 메인이 아니라 날 파파라치 하는 외신 기자들을 파파라치 한 한국 기자들의 기사가 인터넷 기사 메인에 걸리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똑똑.
“코치님. 저 해섭니다.”
-들어와.
앞선 기업체와의 미팅을 끝내고 찾은 코치님의 사무실.
코치님 또한 나와 다를 바 없이 일거리에 파묻혀있으셨다.
“후우. 이거. 내가 체육관 관장인지 연예인 소속사 대표인지 모르겠다.”
“하하...”
“공익 광고들은 최대한 협조적인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 맞지?”
“넵!”
사실 내가 지금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유는 나도 한번쯤 ‘선한 영향력’이라는 걸 펼쳐보자는 생각 덕분이었다.
연말이고 아직 다음 시합 일정은 전무한 상황.
연초에 결혼식도 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할 일 없는 백수나 다름없었다.
그런 와중에 내게 컨텍하는 업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마어마한 숫자를 기록했고 거기에 내가 내건 조건은 단 한가지였다.
연말연시.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면 좋겠다는 것.
애초에 난 돈이 많았다. 재벌그룹은 아니지만 평생 펑펑 써도 다 못 쓸 만큼의 돈을 이미 다 벌어뒀다.
딱히 돈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니 그렇다면 내가 광고나 매체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해당 업체가 사회에 얼마나 환원을 하는지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취지였다.
예를 들면 내가 출연한 스포츠웨어 브랜드는 해당 브랜드의 옷이 하나 팔릴 때마다 불우이웃이나 빈곤국가에 일정 수량의 구호물품이나 지원금을 지원하는 식이랄까.
“부른 건. 다름 아니라 청와대에서 연락이 들어와서다.”
“필승 형한테 대충 듣긴 했어요.”
“카이서스 전 이후 인지도만 올라간 게 아니라 이미지 자체가 너무 좋아져서. 대통령이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했나봐.”
“쩝.”
아까 말했던 ‘선한 영향력’을 기준으로 광고출연을 수락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미담이 되어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만큼 내 이미지도 날로 좋아지고 있는 상황.
“어쩔래? 가기 싫으면 안가도 된다.”
“그래도 돼요?”
“안되면? 네가 이대로 미국 넘어가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사람이 훨씬 많을 텐데. 이민국에선 숨도 안쉬고 도장 찍을거다.”
“하하.”
그래도 난 한국이 좋았다.
격투기를 시작하고 나서 일 년에도 몇 번씩. 어쩔 땐 일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지낼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이 좋았다.
내가 자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런 한국을 떠날 생각은 정말 1도 없었다.
거기다 한국이 돈만 많으면 살기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데.
“갈게요. 일정만 잡히면 말해주세요.”
“진짜 가게? 보통 불편한 자리가 아닐 텐데.”
“정 수틀리게 하면 진짜 미국 넘어가죠 뭐. 하하하.”
웃으며 반쯤 농담. 반쯤 진담으로 대답했다.
그보다.
“청와대에 청첩장 들고 가면. 욕먹으려나요?”
비공개긴 해도 대통령 정도면 한번쯤 불러보고싶긴한데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