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98화 (198/203)

< 198화_중반 >

1.

-땡!

MMA의 1라운드보다 길게 느껴졌던 3분이 지났다.

“후욱. 후욱.”

강해서는 이제 겨우 1라운드를 마친 선수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가쁘게 호흡을 내쉬었다.

“잘했다. 1라운드는 누가 봐도 반반이야.”

안형석은 그런 강해서의 땀을 닦아주며 입을 헹굴 물과 열기를 가라앉힐 아이스팩 등을 챙겨 들었다.

“후우. 반반이라...”

아마 판정까지 가는 결과는 없을 거라 생각하며 강해서는 미미한 미소를 입가에 띠어 보였다.

“천천히 해. 1라운드부터 너무 달렸어.”

“천천히 가다간 한번 벌어진 격차 절대 못 좁혀요. 그런 선수에요 카이서스는.”

“...”

“마이페이스로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악착같이 따라붙으면서 기회를 봐야 해요.”

강해서는 언젠가 격투기에 도전하며 자신의 도전을 마라톤에 비유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만약 그의 도전이 마라톤이라면 오늘의 시합은 그 결승점에 가깝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후우... 후우... 승산이 없진 않아요. 그래도... 중반부는 넘어가야 할 것 같지만.”

“뭐?”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내뱉는 강해서였지만 그의 눈빛에는 강한 확신이 있었기에 안형석은 굳이 그의 정신집중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강해서 시선의 끝.

“후우...”

그곳에는 마찬가지로 호흡을 고르고 있는 카이서스가 있었다.

“확실히 이벤트 매치라 그런지. 화끈한데?”

“완전 끝내주는 1라운드였어!”

그의 스텝진은 카이서스를 보며 꽤나 여유롭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MMA 레전드라더니 꽤 하잖아?”

“어때? 카이서스? 몇 라운드쯤 끝낼 예정이야?”

그들은 이번 라운드에서 카이서스가 강해서의 수준에 맞춰주며 볼거리를 제공했다고 생각했다.

역대 최고 수준으로 흥행에 성공한 이벤트매치였다보니 그에 걸맞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조금 전처럼 약속 스파링이라도 하듯 아슬아슬한 공방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 글쎄.”

“하긴. 역대급 빅매치인데 2,3라운드 만에 끝내긴 조금 그렇지? 한 4-5라운드쯤 끝낼 거야?”

애매한 카이서스의 대답에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는 그의 스텝들.

그들에게 카이서스는 적어도 복싱이라는 운동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산과 같았기에 그가 1라운드부터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착이 지어진다면... 중반부 이후가 되겠지. 어쩌면 10라운드 그 이후.”

카이서스는 딱 거기까지만 입을 열고는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가다듬으며 체력 회복에 집중했다.

-땡.

그렇게 라운드 간 휴식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

-휘익. 휙!

-퍽! 팡! 퍼억!

1라운드가 조금씩 시동을 걸어 예열하는 단계였다면 2라운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주고받는 펀치 세례.

헤비급이라는 체급답게 한 번만 잘못 걸려도 게임이 휘청 기울 정도의 펀치들이 숨 한번 고를 시간에도 몇 번씩이나 서로를 노려댔다.

‘죽겠네.’

말 그대로 소모전이었다.

아직 서로의 체력이 빵빵한 상태.

지금 나와 카이서스는 일단 서로의 체력부터 걷어내자는 듯 체력과 맷집을 거덜 내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확실히 눈에 익고 있긴 해.’

-휘이익

-휙!

지금도 상체를 뒤로 뒀던 카이서스가 라이트 스트레이트 이후 왼쪽으로 돌며 상체를 숙여 레프트 바디 잽을 날리는 걸 예측하고는 빠르게 피해냈다.

‘중요한 건 그만큼 내 동작들도 읽히고 있다는 거지만...’

사실 나는 스스로도 ‘습관이 있나?’ 싶을 정도로 ‘눈에 보이는 빈틈’을 노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조금씩 유리한 포지션을 잡아가는 중이었다.

이러든 저러든 복싱 경력이 긴 만큼 자신의 파이팅 스타일과 취향이 확고한 카이서스와 상대적으로 백지에 가까운 나.

-휘익.

-퍽!

3라운드를 지나 4라운드.

처음으로 카이서스의 움직임을 ‘보는 것’ 이 아닌 예측으로 한발 빨리 잡아내고는 그의 안면에 유효타를 적중시켰다.

“큭...”

그 와중에도 고개를 틀고 상체 이동을 통해 정타를 피하고 충격을 분산시킨 카이서스.

애초에 나 또한 급하게 뻗어낸 펀치라 충분한 데미지를 전달하진 못했다.

-주륵.

그래도 뭔가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이번 시합들어 처음으로 카이서스의 얼굴에 적중한 유효타였고 그의 코에서 피가 흐르게 만들었으니까.

-우와아아아아!!

-갓-해서!!!

한차례 공방을 끝내고 다시 거리를 벌린 채 서로를 노려보는 나와 카이서스.

관중들은 이번 시합에서 처음으로 경기의 균형이 깨지는 장면에 흥분한 듯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러댔다.

“후우. 후우.”

-통. 통.

아주 잠시.

정말 찰나에 가까운 대치상태.

최대한 호흡을 진정시키며 머릿속으로는 내 혈관 속의 피들이 조금 더 많은 산소들을 실어 나르는 장면을 이미징하다가 다시 카이서스에게 달려드는 순간

-땡!

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신호가 떨어졌다.

드디어 4라운드 종료.

오늘 시합의 3분의 1이 겨우 지나갔다.

*

-우와아아아아!!

현지 해설이 일순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장내를 가득 채우는 관객들의 함성소리.

“아! 시청자 여러분! 강해서 선수의 레프트가 정확히 카이서스의 빈 안면을 두드렸습니다! 황제! 그도 펀치에 맞으면 피를 흘리는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번 공방은 아주 중요한 공방이었습니다! 이번 시합의 흐름이 한 차례 바뀌게 된 공방이었거든요! 강해서 선수가 처음으로 카이서스의 안면에 유효타를 적중시킵니다!”

장명우 해설은 근 10분 만에 목이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1라운드부터 침을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해설을 이어오던 그는 본격적으로 소모전이 시작된 2라운드부터는 거의 숨 쉬는 것도 잊었을 만큼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물론 그런 그의 해설을 듣는 시청자들도 하나같이 흥분했기 때문에 실시간 채팅에서 장명우의 해설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전 공방을 보시면요. 강해서 선수가 카이서스의 공격을 한발 앞서 피해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카이서스의 빈틈을 노릴 수 있는 찬스를 얻은 거예요. 두 사람의 공방은 정말 수준이 높아서 반 박자. 정말 반의반의 반 박자까지 쪼개서 더 빨리 예측하지 않으면 유효타를 성공시키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는 정말 2라운드 3라운드 4라운드.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 거리에서 저렇게 많은 펀치를 쏟아내면서 유효타는 하나도 허락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럼에도 4라운드 마지막! 카이서스는 강해서 선수에게 유효타를 허용했는데요! 여기를 보시면 강해서 선수가 피해낸 펀치가 카이서스의 스트레이트에 이어지는 바디 잽입니다. 이게 2라운드에 두 번. 3라운드에서도 한번 나왔었거든요.”

┗ㄹㅇ ㅅㅂ 현실이 만화보다 더하다더니. 이제 오늘 이후로 복싱 만화는 다 망하게 생겼음ㅋㅋㅋㅋ

┗진심 이것보다 더 만화처럼 그리려면 주먹이 발사정도는 돼야함 ㅋㅋㅋㅋ

┗3라운드에서 둘 다 제자리에 말뚝박고 싸우는데 1분동안 유효타 0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지 해설들도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고 아무말 못했음ㅋㅋㅋㅋ

┗맨날 도망다니고 수비만 하는 지루한 복싱 보다가 이렇게 호쾌하게 난타전 하는 시합 보니까 스트레스가 싹 풀림. 근데 ㅈㄴ 대단한건 난타전인데 안면 유효타가 4라운드에 처음 터짐ㅋㅋㅋㅋ

┗ㅈㄴ 숨죽여 보다가 숨막혀 뒈질뻔. 내 눈엔 맞은것 같은데 나중에 느린화면으로 보니까 진짜 종잇장 차이로 다 피해내고 막고 그랬더라. 나 벌써 팬디 3장 갈아입음

┗ㅉㅉ 나처럼 팬티 벗고 화장실에 앉아서 봤어야지. 난 벌써 물 3번 내림

그리고 그런 장명우의 해설만큼이나 스포츠온 TV의 실시간 채팅 반응도 뜨거웠다.

복싱이라는 스포츠에 있어서는 올 타임 넘버원이라는 카이서스.

그런 카이서스와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는 선수가 한국인이었고 심지어 4라운드 막바지에는 힘의 균형을 살짝 깨뜨리는 장면까지 보여줬으니 국뽕이 거의 치사량 수준이었다.

“흐음...”

하지만 한국의 반대편. 뉴욕의 한 체육관에서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번 시합을 보는 사람이 있었다.

“애송아. 신중해라. 항상 말하지만, 카이서스 그놈은 결코 신사가 못돼.”

카이서스를 발굴한 지도자이자 이번 시합에서 강해서를 코칭한 복싱 레전드.

“균형은 무너진 게 아니야. 무너뜨리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지.”

조지 파울로였다.

*

“후우...”

4라운드가 종료된 시점.

자신의 코너에 돌아와 앉아있는 카이서스를 보며 그의 스텝들은 1라운드 때처럼 편하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들이 복싱의 신이라고 생각했던 선수. 카이서스가 지금 코에 흐르는 피를 지혈하고 있었으니까.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십 년 가까이 카이서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의 시합을 지켜봤던 그들은 이런 모습을 처음 봤다.

카이서스가 시합 중에 호흡이 가빠지거나 피를 흘려 지혈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처음이었다.

“뭘 그렇게들 놀라? 코를 맞으면 코피가 나는 건 당연한 건데.”

“...카이서스.”

“...오케이. 혈관만 조금 터진 정도야. 지혈엔 문제없어. 팔 내리고 다리 힘 풀어봐.”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카이서스의 스텝진은 세계 최고의 팀이었다.

고전을 겪는 카이서스를 처음 봤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할 일을 잊는 사람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강해서...’

그렇기에 카이서스는 라운드 간 휴식 시간을 온전히 상대 선수인 강해서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훔치고 있다.’

지금 카이서스가 이토록 고전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강해서는 이번 시합에서 카이서스를 상대하며 그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괴물 같은 성장력.

그리고 그 베이스는 이제껏 강해서가 겪은 수많은 시합과 복싱 트레이닝이었다.

거기에 더해 조지 파울로의 맞춤식 복싱 훈련까지.

강해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카이서스의 기술과 움직임을 훔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후우...”

본격적으로 맞부딪히기 시작했던 2라운드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강해서의 움직임.

카이서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박했던 움직임들은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펀치의 연계나 호흡의 분배 또한 능숙해져 갔다.

시합 도중 점점 실력이 늘어가는 게 보일 정도.

‘이제껏 나와 상대했던 선수들은 모두 이런 감정이었을까?’

카이서스는 강해서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움직임은 훔쳐도 관록은 훔칠 수 없는 법이지.’

카이서는 공식전만 60전이 넘는 전적을 가지고 있었고 아마추어 시절부터 치면 비공식적으로 200전이 넘어가는 전적을 가진 선수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기에 복싱 황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땡.

이제 시작되는 5라운드.

카이서스는 눈앞의 도전자에게 황제의 관록이라는 걸 보여줄 참이었다.

**

“잘하고 있다. 이대로만 가자. 무리하지 말고.”

“넵.”

“아직 절반도 안 왔다. 냉정하게. 알지?”

“넵.”

“페이크 조심하고. 확실할 때만 붙어. 지금은 아직 체력만 갉아먹어도 충분해. 진짜 싸움은 체력이 다 떨어지고 나서다.”

“넵!”

5라운드 시작 전.

안 코치님의 걱정어린 조언들에 기계적인 대답을 나열하고는 다시 사각 링 중앙으로 나섰다.

진짜 싸움은 체력을 모두 걷어내고 나서.

그건 나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다만 나도 카이서스도 아직 체력이 다 떨어지려면 한참은 남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남은 체력의 비축이 누가 더 많을지는 까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거였고.

확실한 기회가 온다면. 나는 그걸 놓칠 생각이 없었다.

-휙. 휘익.

5라운드 시작과 함께 링 중앙에서 맞붙은 나와 카이서스.

카이서스는 레프트 잽에 이어 앞발을 반보 전진시키며 레프트 훅을 뻗어왔고

-후웅

나는 위빙으로 카이서스의 공격에 앞서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 갔다.

2라운드부터 주구장창 던져대는 멀리서 뻗는 잽과 훅.

이제는 굳이 집중력을 높이지 않아도 위빙으로 가볍게 피해낼 수 있었다.

-휘익!

그리고 이어지는 카이서스의 라이트 펀치.

레프트 훅으로 틀어졌던 상체 발란스를 바로잡으며 무게중심을 뒤로한 채 던진 펀치였다.

위빙 모션이었던 나는 그대로 카이서스의 라이트 스트레이트까지 피해냈다.

‘흐읍...!’

그리고 끌어올리는 집중력.

바로 전 라운드에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이은 레프트 바디 잽 덕분에 유효타를 허용했는데 설마 또 여기서 레프트 바디 잽을 뻗을까 싶었지만 혹시나 싶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꾸움틀.

설마 아니겠지 싶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상체 균형이 왼쪽 앞으로 쏠리며 왼쪽 어깨가 돌아가는 카이서스.

레프트 바디 잽이었다.

‘황제의 자존심. 뭐 그런 건가...’

아무래도 지난 라운드에서의 안면 유효타에 자존심이 꽤나 상했나 보다.

‘그런데 그런 거로 존심 세우면 안 되지. 그러다가 크게 두들겨 맞는다고.’

이번 시합 전이라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을 카이서스의 사전 동작.

5라운드에 돌입한 만큼 이제는 어떤 근육을 어떤 순서로 움직이는지만 봐도 어느 정도 사이즈가 나왔기에 확신을 가지고 카이서스에게 큰 펀치 한 방을 선물해주기 위해 움직였다.

-쒜에에엑

카이서스가 뻗을 펀치는 레프트 바디 잽.

그렇다면 나는 카이서스의 비어있을 왼쪽 안면에 라이트 펀치를 꽂아줄 예정이었다.

‘...어?’

그런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 건 내 뒷발과 축발. 허리까지 다 돌아간 뒤 라이트 펀치를 뻗어낼 때쯤이었다.

‘자세가... 바뀌었다...!’

레프트 바디 잽을 준비하던 카이서스의 상체 움직임이 정반대로 돌아나가기 시작했다.

-찌릿!

그리고 마주친 카이서스와의 눈빛 교환.

‘...’

‘...’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 카이서스는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이제껏 집중 모드에서 마주했던 다른 선수들의 눈은 마치 나와 다른 세상에 있는듯한 초점이 어긋난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면 카이서스는 정확히 나와 눈을 마주하며 날 스캔하듯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하... 좆됐네...

-뻐어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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