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94화 (194/203)

< 194화_부러우니까 >

1.

Box In ESPN.

미국의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사인 ESPN에서도 복싱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의 이름이었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분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분이죠! 위대한 복싱황제! 카이서스를 소개합니다!”

Box In ESPN의 진행자인 버나드는 마이크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오랜만에 목청껏 게스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카이서스와 강해서의 복싱 이벤트 매치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

두 선수 모두는 이제 훈련보다는 컨디셔닝과 이런저런 홍보 스케줄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번 복싱 이벤트에 많은 복싱 팬들의 기대와 우려가 있습니다.”

버나드의 말마따나 카이서스와 강해서의 복싱 이벤트는 전 세계의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시선을 받고 있었다.

우선 ‘이벤트 매치’인 만큼 두 선수가 얼마나 진지하게 경기를 준비했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이제껏 역대급 매치라고 하는 이벤트 경기들이 세간의 기대를 저버리고 졸전으로 마무리된 경우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복싱과 종합격투기라는 이종의 격투기 종목이 만났다 보니 그 안에서도 많은 잡음이 나오고 있었다.

카이서스와 강해서는 이제 각 분야를 대표하는 대표 선수 같은 포지션이 되었는데 실제 시합은 복싱으로 치러진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던 것이다.

“음. 우선 시합 준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번 이벤트 매치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전성기 때보다 더욱 열심히 훈련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마 미스터 강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런. 카이서스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이죠. 어쨌든 위대한 황제. 카이서스가 이토록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고 하니 저도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리네요. 다음으로는... 만약 이번에 미스터 강이 패배한다면 다음 시합은 MMA로 진행해야 한다... 라는 의견들이 간간히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하.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MMA라. 저도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와서 MMA를 수련한다고 미스터 강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군요. 만약 MMA 룰로 미스터 강과 맞붙어야 한다면 그냥 제가 진 거로 하겠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사항을 가볍게 넘기며 위트있게 대처하는 카이서스.

애초에 MMA로 맞붙어야 할 상황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애꿎은 논란에 장작을 더 넣지 않고 적당히 덮어버렸다.

“하하. 어쨌든 중요한건 이번 복싱 이벤트 매치니까요. 카이서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미스터 강은 어떤 선수라고 생각하십니까?”

버나드는 그런 카이서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겨 강해서에 대한 카이서스의 평가를 물었다.

“미스터 강이라... 그는 대단한 선수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곳이라도 격투기와 관련된 무대라면 그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 선수입니다.”

“그게 복싱이라도 그런가요?”

“그렇죠. 그는 복싱으로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정상의 자리는 넓지가 않죠. 그는 자격이 있을 뿐입니다.”

강해서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단호히 선을 긋는 카이서스.

“미스터 강은 자격만 있을 뿐이다라. 그 말의 뜻은...?”

“어느 자리든 증명이 필요합니다. 복싱의 정상에 서기 위해선 저를 상대로 실력을 증명해야 하겠죠. 그리고 그게 미스터 강이 정상에 설 수 없는 이유가 될 겁니다.”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승리를 강하게 단언했다.

“두 선수 모두가 데뷔 이후 무패의 기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물론 시합 수를 따지자면 카이서스가 압도적이지만 강해서 선수 또한 대단한 기록을 이어오고 있는 건 사실이죠. 시청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이벤트라는 말로 넘기기에 이번 시합은 두 선수의 자존심과 커리어를 건 매치가 되어버렸습니다. 카이서스와 강해서의 복싱 이벤트 매치. 이번 주 토요일 ESPN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적절한 시점에서 인터뷰를 마치며 토요일 시합의 기대치를 높이는 버나드였다.

┗미스터 강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카이서스와 비빌 정도는 아니지 않아? 심지어 주 종목인 MMA도 아니고 복싱이라고! 제발 생각들 좀 해!

┗맞아! 이번 이벤트의 상징성은 알겠지만, 미스터 강이 카이서스에 비빌거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제발 정신 좀 차려! 이건 그냥 카이서스의 지도 복싱일게 뻔하다고!

┗그래서 조던이 미스터 강에게 졌구나? 그래서 카이서스가 한달이나 이르게 뉴욕을 찾아 훈련을 시작했고?

┗머저리. 그건 그냥 쇼일 뿐이야. 쇼. 그들은 링 위에서 겨우 십분 남짓 쇼를 하고는 너희가 평생을 벌어도 벌지 못할 돈을 주머니에 넣겠지. 그게 이번 대회의 본질이야.

┗십분? 오분도 걸리지 않을거다. 카이서스가 제대로만 한다면 말이지. 하지만 십분을 넘긴다면 그건 이 쇼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지불한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가 될거야.

┗카이서스와 미스터 강은 그렇다고 쳐. 난 여기에 조지 파울로가 엮인게 제일 문제라고 생각해. 그는 복싱 경력을 떠나서 업계의 큰 어른이잖아? 이런 이벤트에 뭐 먹을게 있다고 끼어든거지?

┗맞아. 그저 연말맞이 돈벌이를 하려는 두 선수 사이에 끼어서 돈 좀 벌고싶었나? 괜히 억지로 판을 키우려 연출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걸 어쩔수가 없어.

┗미스터 강은 물론 대단한 파이터지. 정말 대단한 MMA 파이터야. 그러니 다음 이벤트는 카이서스와 미스터 강의 MMA 시합으로 하자.

┗삐! 카이서스가 MMA는 졌다고 했으니 1대 1이네. 그러면 마지막은 다시 복싱으로 할까? 삐! 2대1로 카이서스의 승리네!

시합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

이제는 인터넷 뿐만아니라 현실에서도 카이서스와 강해서의 시합 이야기가 적지않게 나오고 있었다.

당초의 분위기와는 달리 시합이 다가올수록 전 세계적으로 카이서스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분위기였다.

다만 한국에서는 강해서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야. 미쳤냐? 무조건 우리 해서 오빠가 이기지.”

“한국인이면 강해서 응원해야지. 라무차 개바르는거 못 봤냐?”

“애초에 강해서는 타격이 좋았잖아? 그래플링 빼도 WFC 씹어먹을 텐데. 카이서스라도 다를 게 뭐임?”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사람이 두 명 이상 모이기만 하면 빠지지 않는 게 강해서의 복싱 이벤트 매치에 관한 이야기였고

“걱정되지?”

그건 최근 들어 자주 만나는 손아름과 성아라도 마찬가지였다.

“음... 뭐. 잘 하지 않을까? 헤헤.”

한국에서 미국까지의 비행은 꽤나 길고 체력 소모도 큰 만큼 손아름은 이번에도 강해서의 시합을 보러 가지 못했다.

“해서 씨는. 안 온다고 서운해하지 않아?”

“아직 말 안 했는데. 안 그래도 오늘 말 하려구.”

“그냥 못 간다 그러게?”

“아니. 이제 말 해줘야지.”

강해서의 시합 준비에 방해가 될까 싶어 숨겨왔던 사실을 이제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손아름.

“하긴. 훈련에는 지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시합에는 오히려 힘이 될 수도 있겠다.”

“헤헤. 해서 성격이라면 당연히 그럴 거야. 말 나온 김에 지금 전화해봐야지.”

강해서와의 통화 시간을 미리 정해뒀던 손아름.

예정된 시간이 되자 성아라와의 대화 도중 양해를 구하고는 스마트폰을 들어 강해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Rrrrrrrr

-여보세요?

오랜만에 듣는 강해서의 목소리.

훈련에 방해될까 싶어서. 시차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톡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목소리를 듣는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여보세요? 어... 음. 해서야. 나 아름이.”

그래서일까. 손아름의 목소리에는 살짝 물기가 섞여 있었다.

-응! 아름아. 와. 진짜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건지 그런 손아름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강해서는

-이번에 어쩔 거야? 티켓 빼놔?

카이서스와 자신의 이벤트 매치에 올 건지의 여부부터 확인했다.

“어... 그게. 이번에도 못 갈 것 같아...”

-그...래? 바쁜가 보네?

꽤나 낙담한듯한 강해서의 목소리.

“그런 건 아닌데...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몸이? 어디 아파?

“아픈 건 아니고. 조금 조심해야 해서.”

-컨디션이 안 좋은 거야? 그날인가? 아닌데? 지난번에 언제 했지?

“...”

알아서도 무덤을 잘 파는 강해서.

“나 생리한 지 꽤 됐거든?”

-...어? 그러네? 최근에 그날이라고 말 한 적이 없네?

따로 손아름의 생리 주기를 계산하지는 않았지만, 손아름이 말을 해주면 알아서 그 기간 동안은 조심해왔던 강해서는 최근 들어 그의 여자친구에게 생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 그...

드디어 눈치 챈 걸까?

뭐라고 반응할까?

손아름은 두근거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생리불순... 뭐 그런 거야? 나이 들어서 그런가?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던데... 살찌면 그럴 수도 있대. 내가 한국 가면 PT 해줄까?

또 다시 헛발질하는 강해서였다.

“...아니거든. 그런 거?”

-어? 아냐? 그러면...

“생리불순이 아니고. 여자가 생리를 안 하면 뭐겠어?”

-... 뭐지? 어...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닐 거 아냐...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왜 아닐 거라 생각해?”

-...

손아름의 질문에 일순 정적이 찾아왔다.

-진...짜야?

“뭐가.”

-그래서 웨딩사진 먼저 찍자고 한 거야?

잠깐의 침묵 뒤 조심스럽게. 그러나 흥분이 가득 느껴지는 목소리로 손아름에게 되묻는 강해서.

“넌 정말 눈치가 없어. 둔팅이.”

-빨리. 빨리 말해줘. 진짜야?

“...응. 진짜야. 벌써 13주야.”

-우와아아아!!! 와 씹... 아. 아니다. 아니야! 나 욕한 거 아니야! 좋은 것만 들어야지. 와. 진짜. 진짜지?

“그래. 그러니까 내가 못 간다고 서운해 하지말구. 한국에서 건강하게 응원할 테니까.”

-당연하지! 오긴 어딜와? 거기서 여기가 어디라고. 집에서 편하게 누워서 봐. 아니지. 보지 마! 쌈박질 하는거 뭐 좋은 거라고. 좋은 것만 봐. 좋은 것만.

“그런 건 내가 알아서 잘 챙길 테니까. 꼭 이겨. 그리고... 많이 맞지 마.”

-어?

“많이 맞으면 또 다 나아야 식장 들어갈 수 있잖아. 난 배 더 부르기 전에 예쁘게 결혼식 하고 싶단 말이야.”

-어... 어. 어. 알겠어. 걱정 마. 시합 끝나고 한국 가서 바로 결혼식 할 수 있게 절대 안 맞을게!

꽤나 당황했는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일단 무조건 알겠다는 말만 내뱉는 강해서.

“풉. 알겠어. 다치지만 마. 알겠지?”

-응!

“나 아라 언니랑 같이 있어서. 나중에 또 연락할게.”

-알겠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푹 쉬고 있어! 힘든 일 절대 하지 말고! 알겠지?

“헤헤. 알겠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강해서의 반응에 손아름은 꽤나 만족스러운지 베시시 웃으며 통화를 종료했고

“... 이거. 나도 이제 슬슬 결혼을 생각해봐야 하나.”

그런 손아름을 보며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종료하고 결혼을 준비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성아라였다.

*

“우와아아아악!!!”

“아! 깜짝이야! 이 미친놈이 갑자기 왜 이래?”

오랜만에 팀 피스트의 전 구성원이 모인 식사 자리.

잠시 전화를 받고 오겠다며 나갔던 강해서가 괴성을 지르며 들어오자 필승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하하. 죄송합니다!”

“뭐야? 무슨 전화길래 갑자기 그렇게 업됐어?”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진지하고 진중한 분위기로 카이서스 전을 대비한 전략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전화 한 통화에 이렇게 흥분하다니 궁금할 수밖에.

“저! 아빠 된대요!”

“...뭐?”

“벌써 13주래요!”

“...”

-빠악!

만인의 축하를 받고자 꺼낸 이야기에 강해서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필승.

“아! 왜 때려요! 축하는 못 해줄망정.”

“축하는 하지! 축하한다 새꺄! 그래도 네가 감히 아름 씨를...”

“...”

-빡!

-빡!

“축하한다.”

“축하는 축하고. 부러우니까 맞아라.”

필승을 시작으로 말없이 일어나 강해서의 뒤통수를 때리기 시작하는 팀 피스트의 코치진들.

그중에는 최두호도 섞여 있었고

“...형?”

“흠. 흠. 아름이는 내가 아끼는 동생이었으니까.”

-빠악!

그의 손바닥은 유난히도 큰 소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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