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93화 (193/203)

< 193화_팀 피스트. 어셈블. >

1.

-노장의 관록! 학센과 상대 전적 3전 3승! 새로운 미들급 왕좌에 앉은 최두호!

-챔피언 배출의 명가 팀 피스트! 아시아 최초 타이틀을 싹쓸이하다!

-카이서스 Vs. 강해서! 세기의 매치 임박? 뉴욕으로 몰리는 월드 클래스들!

-이 가격이 실화? 백악관에서도 구하지 못한 카이서스와 강해서의 이벤트 티켓의 현재 가격은?

-최두호! 다음 행선지는 한국이 아닌 뉴욕? 아니다! 코네티컷으로 향한 챔피언!

-WBC 동양 챔피언 조던. ‘강해서와 카이서스? 카이서스의 압승을 점친다. 강해서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총알일 뿐이다’

-카이서스와 강해서의 이벤트 매치! 러시아 대통령도 직관하나? 백악관과 크렘린궁의 만남? 뉴욕으로 모이는 세계!

새벽 로드웍을 마치고 체육관으로 돌아가는 길.

뭐 재미있는 기사가 없나 싶어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다가 저 멀리 체육관이 보이자 다시 폰을 집어넣었다.

괜히 조지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끼익

꽤나 정겨운 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선 복싱 체육관.

원래 이 시간대의 체육관은 꽤나 조용했다. 현재 조지의 체육관엔 새벽 로드웍을 뛰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시간대를 가장 좋아했다.

인기척 없는 체육관에서 조용히 하루를 시작하며 몸을 일깨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email protected]#@%#

그런데 오늘따라 체육관 안쪽에서 인기척과 대화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 시간에 누구지?’

조지 외에 이 시간에 체육관에 나올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코치들인가? 오늘부터 뭔가 또 새로운 훈련에 들어가는 건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 헤이! 미스터 강!”

그렇게 대화 소리가 들리는 체육관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꽤나 반가운 목소리로 날 부르는 낯익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이...서스?”

“오랜만이야. 미스터 강.”

이 양반이 여긴 어쩐 일이지 싶었다.

아까 카이서스의 뉴욕행 기사 타이틀을 보긴 했는데 지금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만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아. 오해하지 마. 나는 조지를 만나러 온 거니까.”

“아...”

그렇지.

나는 당연히 카이서스가 날 만나러 왔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나보다는 조지를 보러 왔을 가능성이 더욱 높을 것 같았다.

“미친놈. 어쨌든 난 미스터 강의 코치를 보고 있어. 상대 선수인 네놈이 온다고 두 팔 벌려 환영할 줄 알았어? 얼른 꺼져.”

싱글벙글 웃고 있는 카이서스와는 달리 꽤나 못마땅하다는 듯 그를 향한 축객령을 내리는 조지였다.

“이런. 조지는 항상 이런단 말이지. 너무한다니까? 어떻게 생각해 미스터 강?”

“뭐.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나도 조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건데.”

그래도 꽤나 놀랐다.

카이서스는 항상 신사적인 모습과 과묵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내게도 그런 이미지로 기억되어있었다.

그런데 오늘 만난 카이서스는 꽤나 활발하고 목소리 톤도 조금 높았으며 짓궂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사적? 과묵? 너도 참, 사람 보는 눈이 없다. 카이서스 저 짐승 같은 놈을 두고 신사니, 과묵이니 말하다니.”

“네?”

“내가 말했지 않나? 처음 아프리카에서 저놈을 처음 만났을 때를. 저놈은 거의 짐승 그 자체였거든.”

“오우. 조지.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거야?”

“미국으로 데리고 온 뒤로도 그 살벌한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데까지 몇 년은 걸린 것 같아.”

“하하.”

살벌하고 짐승 같은 분위기의 카이서스라.

솔직히 지금 모습을 봐서는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그래서. 네놈은 계속 여기 있을 거냐?”

“아아. 너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금방 갈 거야. 나도 훈련해야지.”

꽤나 티키타카가 좋은 조지와 카이서스.

단편적인 모습이지만 그 속에서 깊은 유대감과 끈끈함이 엿보였다.

마치 나와 안 코치님. 혹은 두호 형과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면 준현이나 재현이 기태와 같은 친구 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마.”

카이서스에게 핀잔을 주며 어서 가라며 축객령만 내리던 조지. 그가 처음으로 꽤나 진지한 분위기로 한마디 했다.

“미스터 강은 네가 이렇게 한가롭게 지낼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닐 테니까.”

“...”

이거.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중간에 끼어있는 내가 다 불편하네.

“... 하하하하하. 이거. 한 방 먹었어.”

한동안 불편한 침묵이 흐른 뒤 돌연 카이서스가 크게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사실 미스터 강이 훈련은 하지 않고 라스베이거스를 찾았다는 이야기에 긴장감을 조금 주려고 찾아왔던 건데. 이거. 긴장을 풀고 있었던 건 오히려 나였나 보군.”

“카이서스...”

카이서스의 말이 진행될수록 그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해갔다.

어조 자체는 특별할 것도 없었고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었지만

“이거. 큰일 날 뻔했어. 휴식이 너무 길었나 봐. 나름 바짝 조인다고 조였는데도 느슨했나 봐.”

“...”

아까 조지가 말했던 살벌한 분위기라는 게 어떤 건지 이제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지금 내 눈앞에는 내가 알던 카이서스는 없었으니까.

“미안해. 미스터 강. 은연중에 자네를 이전까지의 상대들과 비슷한 급으로 취급했나 봐.”

“...네?”

“나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질 못했어. 그래. 그런 거였어. 하하.”

...뭐라는 거야 이 아저씨가?

“다음에 만날 때는 시합을 앞두고 겠지. 약속하지. 여길 나가는 순간부터 나는 최선을 다해 자넬 때려눕히기 위한 훈련을 할 생각이야.”

“...”

무슨 눈빛이... 두호 형처럼 뜨겁다거나 열정이 느껴진다거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라무차에 가까운.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이 그 의미와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짐승의 눈빛에 가까웠다.

“... 전 애초부터 카이서스를 때려눕히기 위한 훈련을 했는데요? 지금부터 시작하는 거라면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뭐. 그렇다고 내가 쫄 필요는 없었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건 영화나 만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지. 겨우 그런 거에 기 눌려 할 말을 못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하하하하! 그렇지! 그래. 늦지 않으려면 나도 얼른 가서 훈련해야겠어. 조지. 오늘 일은 용서해줘. 내가 순서를 헷갈렸어.”

또 한 번 크게 웃어젖힌 후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체육관을 나서려는 듯 발걸음을 옮기는 카이서스.

“우선. 미스터 강을 때려눕히고. 그 후에 다시 오지. 그게 맞는 순서였어.”

대답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마지막 말을 남겨둔 채 체육관 문을 열고 사라졌다.

“...”

“...”

나와 조지는 말 없이 그런 카이서스를 바라만 보았다.

“뭐해? 얼른 가서 문 안 닫고? 찬바람 들어온다.”

“아! 넵!”

카이서스 저 아저씨. 멋있게 나간 건 좋은데 문을 열어놓고 갔다.

11월 중순 뉴욕의 새벽바람은 꽤나 쌀쌀하단 말이다.

“쯧. 저 짐승 같은 놈의 어디가 신사 같다는 거야?”

“네?”

체육관 문을 닫고 오니 무겁게 입을 떼는 조지.

“긴장해. 오늘 보니 카이서스 저놈. 벌써 스위치 켜진 지 한참 된 것 같으니까.”

“스위치가 켜져요?”

“굶주려있다는 뜻이야. 예전엔 부와 평화에 굶주려있었다면... 지금은 투쟁과 맞수에 굶주려있는 듯하지만.”

“...”

“아마 오늘 찾아온 것도 참을 수 없어서일 거다. 시합까지 참기가 힘들어서. 와서 한번 슥 훑어보고 간 거지. 고기가 잘 익고 있는지.”

...

그건 좀 기분 나쁜데요.

내가 뭐 식사 거리도 아니고. 요리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차 주방을 한번 들렀다는 뉘앙스라니.

“그러니. 링 위에서 보여줘라. 네가 조리되어 식탁 위에 오르는 죽은 고기가 아니라. 카이서스 그놈의 목을 물어뜯을 준비가 끝난 살아있는 맹수라는 걸.”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매치가 꼭 한 달 남은 시점에서 날 보러 오다니. 어지간히도 만만하게 보였나보다 싶어서 꽤 기분이 상한 상태거든요.

-짝!

“오케이. 몸 식기 전에 바로 움직이죠!”

그러니 말은 필요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훈련뿐이었으니까.

*

“후후. 후흐흐...”

조지의 체육관을 나선 카이서스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한가롭게 지낼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세상 누구보다 카이서스를 잘 아는 조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귀찮다는 듯 자신에게 축객령을 내리며 얼른 꺼지라는 듯 불편한 말들을 내뱉었지만, 카이서스는 그 속에 숨은 뜻을 알았다.

조지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경각심을 가지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할 거라는 거지.”

조지는 카이서스가 강해서를 쉽게 생각하거나 혹시라도 여유 부릴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강해서의 코치라는 포지션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카이서스를 향한 최소한의 충고를 해줬던 것이다.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어린 시절이 떠오르려 해.”

11월 중순 새벽의 뉴욕.

그 쌀쌀한 바람 속에서 카이서스는 뜨겁고 건조한 아프리카를 떠올렸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무언가를 얻으려면 누군가를 쓰러뜨리고 남들보다 빨리 움직여야 했던 그때를.

삶 자체가 경쟁이고 싸움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나이가 드니 괜히 옛 생각이 한 번씩 난단 말이야.”

카이서스는 과연 강해서가 기억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떠올릴 수 있게 해줄 수 있을지 그게 못내 궁금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치열했던 그때.

미국으로 넘어온 이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 시절의 감정.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그때의 감정은 한 번쯤 떠올려보고 싶으니 말이야.”

시합에 앞서 일찍 뉴욕을 찾길 잘했다.

카이서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지의 체육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신의 훈련센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온몸으로 하얀 열기를 피워 올리는 그에게 뉴욕의 쌀쌀한 날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2.

“그래서. 해서는 못 온대?”

“네. 고민하시는 것 같아서 그냥 제가 오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박필승과 정태양은 곧 있으면 펼쳐질 WFN 이벤트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긴. 카이서스도 뉴욕에서 훈련 중이라고 스포츠 기사란을 볼 때마다 난리더라.”

“워낙 유명한 두 분이시지 말입니다!”

“그래도. 서운하진 않아?”

“하하. WFC 데뷔인 거지 진짜 첫 시합은 아니니 괜찮습니다!”

잠시 후면 시합을 펼칠 사람이라 생각되지 않을 만큼 여유로운 태양과 그런 그를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필승.

“두호 형은?”

“방금까지 계시다가 관람석으로 가셨습니다!”

“그래. 그래. 근데 너는 그 말투 좀 고칠 수 없냐?”

“고쳐보겠습니다!”

“...”

정태양의 대답에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필승.

“시간 됐다. 나가자.”

“넵!”

시간은 쏘아진 화살처럼 흘러 어느덧 12월의 첫 번째 주말.

팀 피스트 소속 정태양의 WFC 데뷔 이벤트가 있는 날이자 카이서스와 강해서의 복싱 이벤트 매치를 단 일주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이기고 와라. 해서 이 새끼 시합 응원하러 가려면 깔끔하게 이기고 와.”

“넵!”

철썩같이 대답은 잘 하는 게 꼭 강해서 같네. 박필승은 정태양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와아아아아!!

-휘익 휘익!!!

코네티컷에서 펼쳐진 WFN 이벤트.

그중에서도 메인 이벤트는 아니었지만, 정태양은 자신의 WFC 데뷔전을 1라운드 1분 17초라는 기록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고생했다.”

“수고했어!”

그렇게 정태양의 데뷔전이 끝난 뒤.

최두호의 스텝진과 정태양의 스텝진까지 팀 피스트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다들 준비는 끝났지?”

“넵!”

안형석과 최두호를 필두로 박필승과 정태양. 그 외의 팀 피스트의 모든 스텝들은 코네티컷에서 차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도시로 떠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

“그럼 출발하자!”

이제는 팀 피스트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인물.

한국을 대표하는 파이터.

강해서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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