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92화 (192/203)

< 192화_우리도 간다. >

1.

-으아아아아아!!!!!

리어네이키드 초크에 의식을 잃은 학센을 뒤로하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최두호.

그리고는 옥타곤 안을 크게 돌며 전방위 관객들에게 승리의 세레모니를 펼쳤다.

┗와... 이걸 이렇게 이긴다고?

┗ㅅㅂ 방금 내가 뭘 본거야? 3차전이 이렇게 끝나넼ㅋㅋㅋㅋㅋㅋ

┗학센 이제 최두호한테는 절대 못개기겠넼ㅋㅋㅋㅋㅋㅋㅋ3연패면ㅋㅋㅋㅋ

┗최두호 이번 시합으로 은퇴하더라도 학센은 평생 최두호한테 진 놈으로 남는거짘ㅋㅋㅋㅋㅋ

┗와! 씨발 역배 성공이다! 두호 형님 믿고있었습니다!!!

┗갓해서에 이어 최두호도 미들급 타이틀이라니... 국뽕 오진다 진짜

┗아시아 최초 WFC 챔피언에 이어서 아시아 최초와 두번째 WFC 중량급 챔피언까지 한국에서 나왔네. 개쩐다

┗거기에 세계 최초로 WFC 3개 체급 제패도 한국임ㅋㅋㅋㅋ

┗국뽕 코인 타는 거 ㅈㄴ 싫어하는데 이건 어쩔수가 없다. 주모! 여기 국뽕 한사발 더!!!

┗타격으로 가거나 장기전 가면 불리할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1라운드에 그라운드로 바로 잡아버리네 ㄷㄷㄷ

그리고 한국 격투기 관련 커뮤니티는 최두호의 승리에 뜨거운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일본에서 시작해 WFC 미들급에 도전했던 격투가.

세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웰터급으로 전향한 이후 뒤늦게서야 포텐을 터뜨려 아시아 최초의 WFC 챔피언 벨트를 들어 올린 선수.

그리고 마침내 원래의 목표였던 미들급 챔피언 벨트까지 거머쥔 노장. 최두호에 열광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했다! 두호야! 잘했어!”

안형석은 케이지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옥타곤 안으로 뛰어 들어가 최두호를 얼싸안았다.

“고마워. 형. 고생 많았어.”

“고생은. 고생은 네가 다 했지.”

이 순간 안형석은 최두호와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순간 울컥거림이 올라왔다.

“20년이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그러게. 더럽게도 오래 걸렸네.”

“그러게 말이다.”

함께했던 지난날이 있었기에 별다른 말이 없어도 깊게 공감하는 두 사람.

그럼에도 이 순간은 기쁜 순간이었기에 결코 분위기가 다운되지는 않았다.

-최두호 선수. 마지막으로 오늘 승리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어진 승리 인터뷰.

최두호는 진행자의 이런저런 질문에 센스있는 대답으로 관객의 호응을 끌어올렸고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 떨어졌다.

“어... 마지막으로 오늘의 승리 소감은... 제가 아끼는 후배에게 하고 싶습니다.”

평소 자신의 아내나 딸을 향해 마무리 소감을 말하던 최두호가 이번에는 조금은 특별한 사람을 언급했다.

“저에 앞서 이 자리에 섰고. 또 이 벨트를 들어 올렸던 선수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은퇴를 생각했었습니다. 더 이상의 도전은 없을 거라 생각했죠. 만약 그때 포기했다면 지금 이 벨트도 없었을 겁니다.”

“제가 흔들릴 때. 약해졌을 때. 언제나 절 믿고 응원해준 선수. 실제 저 자신보다 저를 더 대단하게 만들어주는 선수. 후배지만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수. 강해서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선 인터뷰와는 달리 한국어로 대답한 마지막 소감.

WFC 측에선 급히 전문 통역가를 통해 최두호의 마지막 소감을 매끄러운 영어로 통역했고

-와아아아아아!!

-휘익. 휘이익!

-미스터 초이! 미스터 갓!

-미스터 갓!

한발 늦게 그의 소감을 접한 관객들은 최두호와 강해서를 향해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헤이. 미스터 강? 지금 네 이야기 한 것 같은데?”

그리고 강해서의 뒤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

-제가 흔들릴 때. 약해졌을 때. 언제나 절 믿고 응원해준 선수. 실제 저 자신보다 저를 더 대단하게 만들어주는 선수. 후배지만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수. 강해서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두호 형의 마지막 승리 인터뷰.

아니. 뭐 저런 이야기를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해?

그냥 형수님이랑 유안이한테 사랑한다는 말이나 하지. 괜히 낯간지럽게.

“헤이. 미스터 강? 지금 네 이야기 한 것 같은데?”

그때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응?”

누구지 싶어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는데 꽤나 낯익은 인물이 보였다.

“제이...크?”

“하하. 잊지 않고 기억해주다니. 영광이잖아?”

크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는 선수. 제이크였다.

“이제 꽤나 발음이 유창하잖아? 예전엔 통역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가 언제인데.”

친근하게 말을 붙여오지만 나는 썩 편하지 않았다.

제이크는 내가 WFC에 진출했을 때 가장 처음 맞붙었던 상대로 WFC 데뷔전 상대였다.

2라운드 2분 47초 만에 끝났던 시합 결과보다는 그 내용이 더 기억에 남는 선수.

“워. 워. 아직도 내게 감정이 남은 거야? 나 이제는 정말 성실해졌다고.”

“퍽이나.”

“와우. 욕 한 거야? 하하하.”

왜 시합내용이 더 기억에 남냐면 내 상대 선수 중 몇 안 되는 반칙성 플레이를 일삼았던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넌 필승 형이 지금 여기 없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해.”

만약 내 옆자리가 창섭 형이 아니라 필승 형이었으면 넌 죽은 목숨이었어 인마.

“오! 미스터 팍! 그가 말하지 않았어? 나 미스터 팍에게 사과했다고.”

“엉?”

“너한테 깨지고 나서 꽤나 슬럼프였지. 네가 미들급 챔피언부터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을 석권하는 동안 계속 방황했다고.”

자연스럽게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제이크.

내가 이걸 왜 듣고 있어야 하나 싶었지만, 창섭 형이 그냥 들어주라는 듯 고갯짓했다.

“부정 플레이를 반성하고 다시 성실하게 훈련에 임했지. 그리고 모든 걸 깨끗이 정리하기 위해 미스터 팍에게도 찾아갔었어.”

“한국을?”

“그래. 그 뭐냐. 무슨 예능 촬영하고 있던데?”

“스트리트 파이트?”

“어... 맞아.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 아무튼, 그때 찾아가서 사과도 하고 풀건 다 풀었다고.”

“...그래.”

사실관계 확인이야 다음에 필승 형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어쨌든 제이크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냥 불편해하고 싫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이렇게 만나서 반가웠어. 나는 내 체급의 새로운 왕좌가 누가 되는지 보러 온 것뿐인데 설마 미스터 강을 만날 줄이야. 하하.”

“너는 나한테 감정 없냐?”

나야 당연히 제이크를 싫어했다.

필승 형에게 반칙을 써서 반강제에 가깝게 은퇴시켰고 나와의 시합에서도 서슴없이 반칙 적인 기술을 구사했던 선수였으니까.

그러면 제이크라고 내게 앙심이 없을까?

그럴 리가 없다. 사람은 모두 본위적으로 생각하니까. 자신을 이겼던 내게 긍정적인 마음만 있다면 그게 거짓말이겠지.

“감정이라니! 물론 그 당시에야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너는 내 우상이라고.”

“...뭐?”

“WFC 최초 3개 체급 제패! 그리고 그 라무차를 압살하는 실력! 난 지금도 어디 가면 너랑 붙었던 걸 자랑한다고!”

거짓이 아니라는 듯 유쾌한 얼굴로 신나서 떠들어대는 제이크.

그를 보는 내 마음이 묘했다.

과거의 악연이었던 선수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대화하게 된다니.

문득 지난 과거의 상대 선수들이 하나둘씩 생각났다.

‘한국 가면 백기영 선수나 한번 찾아가 볼까.’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내가 지나온 길도 그리 짧지 않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야. 슬슬 가자.”

“아. 네. 제이크. 난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다음에 또 기회 되면 보자고.”

두호 형이 승리 인터뷰를 마치고 들어간 지도 한참.

창섭 형의 가자는 말에 제이크를 향해 마무리 인사를 했다.

“당연하지! 카이서스와의 시합 티케팅에 성공했다고! 응원하러 갈 테니까 꼭 이겨!”

“하하. 고맙다. 간다.”

고맙다는 마음을 조금 더 표현하고 싶었으나 감정의 잔상이라는 게 그리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기에 짧게 마무리했다.

내게 패배하고 사라진 선수들.

내가 써 내려가는 ‘내 이야기’에서는 사라졌다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꾸욱

그리고 그런 그들의 눈이 앞으로의 내 행보를 주목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더더욱 패배라는 단어와는 친해지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우선은 카이서스와의 이벤트 매치.

원래도 질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이제는 더더욱 이를 악물고 이겨야겠다.

*

“이기고 싶다고 그냥 이겨지냐?”

라스베이거스에서 돌아온 다음 날.

조지를 만나 새로운 각오에 대한 다짐을 말했더니 바로 욕부터 날아들었다.

“썩어빠진 근성론을 말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분석하고 생각해. 펀치를 뻗지 않고 근성만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적은 없어.”

“알죠. 아는데. 그래도 그 마음가짐이라는 게...”

“네놈이 아무리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도 카이서스의 마음가짐과 근성에는 안 돼. 막말로 마음과 근성만으로 승패가 결정 난다면 네놈은 죽었다가 깨도 카이서스를 못 이겨.”

“...”

“유년기를 아프리카 빈민국에서 지냈던 놈을. 폭도들한테 부모를 잃고 지금의 평화를 잃고 싶어 하지 않는 놈을. 네놈이 무슨 근성과 마음가짐으로 이길래? 날 때부터 배부르고 편하게 살아온 놈이.”

“...”

아따. 이 아저씨가 팩트로 사람 때리는 걸 참 잘하네.

나름대로 굳은 마음가짐이라는 걸 다졌다고 생각했는데 조지의 말을 들어보니 그냥 훈련이나 해야겠다 싶었다.

“복싱은 과학이야. 결국은 누가 더 좋은 하드웨어와 더 발전된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느냐의 싸움이지.”

“상성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너나 카이서스쯤 되면 상성은 상관없다. 결국은 성능 싸움이야. 하드웨어가 비슷하면 소프트웨어 싸움인 거고.”

“끄응...”

이렇게 말하면 또 기운이 팍 빠졌다.

하드웨어가 비슷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싸움이라면 내가 카이서스를 어떻게 이겨?

20년 넘게 복싱만 들입다 판 인간을.

“내가 있잖아. 카이서스를 키워낸 복싱 레전드.”

“...네?”

“마침 이론도 어느 정도 공부를 한 것 같으니. 이제부턴 카이서스 맞춤으로 대비훈련을 해보자고.”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하다 급발진으로 언급된 카이서스 맞춤 훈련.

“지금의 카이서스와는 조금 다르긴 하겠다만은. 사람인 이상 카이서스 그놈도 습관이라는 게 있고 버릇이라는 게 있지. 네놈의 뒤떨어지는 소프트웨어를 카이서스 맞춤으로 개조해줄 테니 잘 따라와라.”

“...넵!”

뉴욕에 도착하고 근 한 달.

기본기와 이론 등 기초에 집중했던 나날을 뒤로하고 드디어 카이서스 맞춤 훈련에 돌입하게 되었다.

2.

“미스터 강이 다녀갔다고?”

“그래. 언론에서 난리더군. 엊그제 WFC 305 이벤트에 미스터 최의 시합을 응원하러 직접 왔던 모양이야.”

“...하하. 이거. 꽤나 만만하게 보였나 봐. 나와의 시합을 앞두고 한가롭게 돌아다닐 시간도 있고.”

강해서의 라스베이거스 방문을 전해 들은 카이서스는 겉으로는 쿨하게 웃어 보였지만 그 분위기는 꽤나 기분이 나쁜 듯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

그리고 켄달은 그런 카이서스의 변화를 누구보다 확실히 캐치했다.

주변 사람들은 매일같이 카이서스를 만나지만 켄달은 많아야 주에 1회 정도 카이서스를 만나는 만큼 그 변화를 더욱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거칠고 사나운 기세를 풍기는군. 예전의 카이서스를 보는 듯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지극히 권태롭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카이서스가 아니었다.

언제가 굶주린 맹수처럼. 다가오는 누구든 찢어발길 것처럼 거칠고 사나웠던 전성기의 카이서스의 모습이 최근 들어 종종 보이곤 했다.

“뉴욕이라.”

강해서의 라스베이거스 방문을 듣고 뚜두둑 뚜둑 몸을 풀던 카이서스.

“우리도 가지.”

“...뭐?”

“우리도 뉴욕으로 가자고.”

그가 뉴욕행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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