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91화 (191/203)

< 191화_백초크 >

1.

-웅성웅성

WFC 305

8월에 있었던 나와 라무차의 2차전 이후 두 번째 있는 WFC의 속칭 넘버링 이벤트였다.

“어후. 여기는 그래도 꽤 따뜻하네.”

두호 형과 학센의 3차전이 치러지는 11월 첫 번째 주말.

뉴욕에서 한창 기초와 이론 등 기본에 충실한 훈련을 받던 나는 WFC 305 시합의 직관을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날아왔다.

“오늘이 유독 따뜻한 날이기도 해. 물론 라스베이거스가 뉴욕보다 훨씬 따뜻한 건 맞지만.”

“그런 것 같아요. 여기선 코트 벗어도 되겠다.”

창섭 형과 나는 라스베이거스 공항을 나서며 뉴욕에서부터 입고 왔던 아우터를 벗어 손에 걸치고는 준비된 차량을 찾으러 밖으로 나섰다.

11월의 라스베이거스.

한국의 가을과 비슷할 정도로 선선한 날씨에 습기도 없어 파란 하늘과 눈 부신 햇살이 끝내줬다.

“제수씨는?”

“한국에서 뭐 스케줄 있대요. 제 복싱 이벤트 때나 볼 것 같아요.”

“참. 너네도 못 할 짓이다. 결혼식 미뤄. 얼굴도 못 봐. 지금이 사실 제일 많이, 자주 봐야 할 타이밍일 텐데.”

“하하. 형은요? 형수님은?”

“네 형수는 지금 집 보러 다닌다고 정신없다. 오늘은 동탄 쪽으로 한 바퀴 도신댄다.”

“하하하.”

창섭 형도 이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내가 먼저 갔을 테지만 복싱 이벤트로 결혼식이 미뤄져서 어쩌면 창섭 형이 먼저 갈지도 모르겠다.

“웃지 마 인마. 하... 동탄이면 출퇴근 어떻게 하냐? 마포까지?”

“그럼 좀 가까운 데로 알아보시지...”

“얌마. 내가 돈이 어딨냐? 동탄도 집값 비싸. 알아보러 간다고 해서 알겠다고는 했지만, 동탄 들어갈 돈도 빠듯하다. 인서울은 꿈도 못 꿔.”

“흐음... 눈을 조금 낮추면...”

“나 말고 형수한테 말해라. 경기도권 돌면서 눈만 높아져서 들어먹을지는 모르겠다.”

어깨를 두드리며 한숨을 푹 내쉬는 창섭 형.

하긴. 나와 아름이는 실질적으로 돈이라는 개념에서는 많이 벗어난 삶을 살고 있었다.

아마 아름이도 그렇겠지만 나도 내 통장에 얼마가 들어있는지 알지 못했다.

정확한 원 단위까지 모른다는 게 아니라 대충 얼마 정도가 들어있는지도 잘 모른다는 뜻이었다.

아마 몇십억쯤 있겠지?

그간 이런저런 광고와 스폰도 꽤 받았고 파이트머니와 승리 수당. 이벤트마다 수여하는 퍼포먼스 상금 등도 꽤나 챙겼다.

생각해보니 백억 단위로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돈이 있으면 뭐 하나. 밖으로 나갈 일도 없고 집-체육관-집-체육관의 반복적인 일상이었는데.

어쨌든 이런 사정은 아름이도 비슷했기에 우리의 데이트와 결혼식 준비는 그저 ‘무엇이 하고 싶은가’를 선택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금전 비용보다는 기회비용을 계산하고 선택하는 그런.

“부러운 새끼.”

“쩝.”

사실 맘 같아선 창섭 형의 신혼집 정도는 조금 보태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친하고 좋아하는 형이 근처에 있으면 좋으니까.

문제는 창섭 형이 그걸 달가워할지의 여부와 만약 창섭 형을 도와줬을 때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손을 벌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뭐해? 타.”

“넵!”

소모적인 상념에 빠진 사이 WFC에서 보내준 차량이 우리 앞으로 대기해 있었고 나와 창섭 형은 차를 타고 MGM 그랜드 아레나로 향했다.

“오늘 경기... 어떻게 될까?”

“...글쎄요.”

창섭 형도 나도 막연하게 두호 형이 이길 것이라는 낙관을 내어놓지는 않았다.

단순히 열심히 했다. 노력했다. 그러니 승리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두호 형이 패배하는 순간 열심히 하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격투기 시합은 분명 선수의 실력과 준비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만큼이나 크게 작용하는 것 중 하나가 그날의 컨디션과 운이었다.

사고는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었고 케이지 안에서는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빠듯한 일정이나마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두호 형을 격려해주고 응원하는 일 정도일 뿐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우리를 태운 WFC 차량이 MGM 아레나 주차장에 정차했고 나와 창섭 형은 직원 전용 통로를 통해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낯부끄럽지만 지금 내 얼굴은 미국 어디를 가더라도 알아볼 만큼 유명했다. 뉴욕에서도 웬만하면 체육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가 그거였다.

심지어 이곳 MGM 아레나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격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일 테니 굳이 그들 앞에 나서서 유명도를 체크할 필요는 없었다.

“오. 창섭아. 해서야. 왔냐?”

선수 대기실에 도착하자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긴 건 두호 형이었다.

“형!”

“새끼. 너도 시합 준비 때문에 바쁠 텐데 여기까진 뭐 하러 왔어.”

“에이. 그래도 형 시합은 직접 챙겨야죠.”

두호 형은 잠깐 못 본 사이에 몸이 확실히 좋아져 있었다.

아무래도 마무리 컨디셔닝을 성공적으로 마친 듯했다. 이제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인 리게인도 성공적인 것 같았고.

“태양이는 시합 준비 때문에 못 온다더라. 필승이도.”

“아아. 네.”

당연히 보일 거라 생각했던 필승 형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자 두호 형이 어떻게 알고 태양이네의 근황을 알려줬다.

필승 형은 지금 태양이를 캐어하고 있었는데 태양이의 WFC 첫 데뷔 무대가 다음 달 초에 코네티컷에서 열렸다.

넘버링 시합은 아니고 WFN이라고 해서 WFC Fight Night라는 WFC의 하부리그 격인 단발성 이벤트였는데 주로 신인이나 루키 등 네임벨류가 조금 떨어지거나 복귀전을 치르는 선수 등이 출전하는 이벤트였다.

나같은 경우는 브로일러 챔피언 출신이었기 때문에 바로 메인 이벤트라 할 수 있는 넘버링 매치로 데뷔를 했던 거지 대부분의 선수는 WFN을 통해 데뷔한다고 보면 됐다.

“이제 시합 얼마 안 남았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객석으로 가 있어.”

두호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안 코치님이 적절한 타이밍과 분위기에 그걸 끊어주셨다.

“넵! 두호 형. 우리는 자리로 가 있을게요.”

“후후. 그래.”

“형.”

“응?”

이제 선수 대기실을 떠나 관객으로 이번 이벤트를 관전하러 가야 하는 시간.

“알죠? 이번 시합에서 이기든 지든 형은 한국인 최초 WFC 챔피언이에요. 그리고 세계 최초로 WFC 3개 체급을 제패한 저를 발굴해낸 선수구요.”

자리를 뜨기 전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전했다.

“...고맙다.”

“고맙긴요. 파이팅 하세요!”

“그래.”

그렇게 짧은 해후를 마치고 관계자 관람석으로 이동한 나와 창섭 형.

이제 곧 두호 형과 학센의 3차전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

“시청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최두호 선수가 입장하고 있습니다!”

“최두호 선수. 복귀전이라는 부담감이 상당할 텐데도 아주 침착한 모습이 눈에 띕니다. 저런 부분이 최두호 선수의 가장 대단한 점이자 특별한 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어요.”

WFC 305는 지난 8월 WFC 303 이벤트 이후 넘버링 경기에서 한국인 선수가 메인 카드로 출전하는 첫 번째 경기였다.

“최두호 선수. 한국 나이로 벌써 4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전 WFC 웰터급 챔피언. 학센과는 웰터급과 미들급에서 각 한 번씩 매치를 가졌었고 2전 2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캐스터는 최두호가 입장하는 영상에 맞추어 선수 약력을 가볍게 브리핑했다.

“최두호 선수는 말이죠. 아시아 최초로 WFC 챔피언을 달성한 남자 선수입니다. 상징성이 있는 선수에요.”

그 뒤를 이어 김국현 선수는 팩트 전달이 아닌 조금 더 심화된 최두호의 정보들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최초의 중량급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후배인 강해서 선수에게 양보했다지만 그런 강해서 선수를 격투기 시장에 이끌어준 멘토 같은 선수가 바로 최두호 선수거든요?”

“그렇죠. 사실상 한국의. 지금은 아시아를 강타하고 있는 격투기 열풍의 시작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가 바로 최두호 선수죠.”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WFC 최고령 챔피언을 꼽아보자면 미국 나이로 45살. 한국 나이로 47살까지 기록되어있으니 최두호 선수는 아직 충분히 현역이라 할 수 있지요.”

시합 전부터 시청자들의 관심과 기대치를 적절히 자극할 수 있는 멘트들을 던지며 곧 시작될 경기를 기다리는 캐스터와 해설위원.

┕최두호!! 파이팅!!

┕두호 형 아작내고 와!!!

┕늙은이 뼈마디 나간다~ 학센이 이김~ 수고~

┕최두호 개늙어가지고 왜케 나댐? 그냥 쳐 은퇴하지 뭐 주워먹을거 있다고 ㅉㅉ

┕ㅇㄱㄹㅇ 아시아 최초 챔피언이라고 빨아줄 때 그냥 은퇴하지. 두 번이나 이겼던 상대한테 개털리고 강제 은퇴하겠네

┕채팅 분위기 왜 이럼? 최두호가 이길수도 있지

┕이기든 지든 당연히 최두호 응원해야하는 거 아님? 채팅들 ㅈㄴ 역겹네 진짜

┕강해서가 워낙 대단해서 그렇지. 강해서 없었으면 지금도 대한민국은 최두호 최두호 거리고 있었을걸? 아시아 최초 WFC 챔피언이 만만해보이낰ㅋㅋㅋ

┕응~ 개만만함~ 나 3대 600치는데 최두호 10초면 찢어발김~

┕찢어지는건 니 주둥이겠짘ㅋㅋㅋ 3대600 ㅇㅈㄹㅋㅋㅋ 최두호가 60살 먹어도 웬만한 일반인들은 다 찢을걸? ㅈㄴ 운동도 안해본 놈들이 입만털지 진짜.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스포츠온 TV의 실시간 채팅창은 최두호의 승패여부를 두고 한창 언쟁이 오가고 있었다.

상대 전적이 2대0으로 압도적인 최두호가 승리하고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쥘 것이냐? 아니면 상대적으로 더 젊고 발전의 여지가 남은 학센이 3전 만에 복수에 성공하고 타이틀을 방어할 것이냐에 관한 대립.

“시청자 여러분. 1라운드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두 선수의 시합이 시작된 순간. 그 모든 대립은 의미가 없어졌다.

**

“야. 야. 시작한다.”

한창 아름이와 톡을 하다보니 어느새 두호 형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케이지 안에서 서로를 마주한 채 잠깐의 대치상태를 보이던 두호 형과 학센.

이제 막 1라운드가 시작된 참이었다.

-휘익. 휙.

-슥. 휘익. 터업!

지난 2차전에서는 서로의 킥 공격으로 경기를 열어갔다면 이번 시합은 시작부터 펀치 거리를 가늠하고 견제 펀치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었다.

“두호 형이 이번에 레슬링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던데. 잘 될까?”

“모르죠.”

일단 타격만 봤을 때는 비슷했다.

속도는 학센이 조금 더 빨랐고 파워는 역시 두호 형이 압도했다.

-휘익. 툭!

-텁!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서 견제 펀치를 날리며 두호 형 주변을 돌던 학센.

하지만 그의 스피드가 두호 형보다 조금 빠르다 뿐이지 나나 라무차처럼 압도적이거나 뛰어난 눈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기에 결국 두호 형에게 잡히고 말았다.

-흐읍!

-흡!

두 사람의 억눌린 기합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몸싸움이 들어간 두 사람은 서로 상대의 겨드랑이를 파기 위해. 조금 더 유리한 포지션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고 있었다.

그때.

-퍽!

-퍽! 퍽!

학센이 두호 형과의 유격을 벌이며 그 틈으로 바디 니킥을 차올렸다.

“니킥 계속 꽂히네? 저거 냅두면 문제 될 텐데.”

창섭 형은 두호 형의 데미지를 걱정했고.

“니킥 인지했어요. 노리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두호 형의 다음 수를 예측했다.

최근 복싱 이론과 카이서스의 영상을 분석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바로 ‘왜?’ 였다.

이 선수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이 선수는 ‘왜?’ 이런 함정에 빠진 걸까.

그런 관점에서 케이지 밖에서 본 두호 형은 최초 학센의 니킥을 맞았을 때 이후로는 거의 일부러 맞아주는 듯 그의 움직임에 맞춰 유격을 벌여주고 있었다.

-휘익!

그리고 다시 한번 학센이 몸싸움 도중 몸을 떨어뜨리며 라이트 니킥을 차올리려는 순간.

-휙!

두호 형 또한 유리한 포지션을 위해 힘 싸움 중이던 오른팔을 풀고 둘 사이의 벌어진 틈 사이로 상체를 숙여 넣었다.

-획!

그리고는 단숨에 낚아챈 학센의 오른 다리.

그다음 동작은 정말 그림에 그린 듯 완벽한 테이크다운이었다.

오른 다리를 오른팔로 낚아채고 왼손으로 학센의 오른쪽 어깨와 팔을 컨트롤하며 살짝 당겼다. 밸런스가 무너진 학센이 중심을 잡기 위해 두호 형의 당기는 힘에 저항하는 타이밍에 낚아챈 오른 다리를 들어 올리며 오른쪽 어깨로 학센의 몸통을 위로 밀어버리며 들어간 테이크 다운.

-쿵!

1라운드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

준비했던 그라운드로 학센을 끌고 들어간 두호 형은 이후부터는 2라운드는 없다는 심정으로 학센과의 그래플링을 시작했다.

-휙! 휙휙!

-텁! 휘익!

상위 포지션에서 사이드 포지션으로 옮겨 학센의 다리와 하반신 컨트롤을 찍어누르고는

-크흡!

어떻게든 일어나려는 학센의 백 포지션을 기어코 잡아내고는 골반과 다리 전반에 양발을 묶고는 양팔로 학센의 저항하는 팔을 거칠게 뜯어버리는 두호 형.

“이거...”

“끝났네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학센의 목에 제대로 백초크를 걸어버린 두호 형.

-스탑! 스탑!

곧이어 축 늘어진 학센과 함께 심판의 스탑 사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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