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90화 (190/203)

< 190화_수 싸움 >

1.

“빠르게 보고... 한 번에 본다구요?”

“그래. 내가 본 게 맞다면 말이야.”

나와 카이서스의 차이점이라.

훈련 일과 중에 기초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에 단순 훈련 스케줄 관련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갑자기 급발진 해주시는 조지 쌤이었다.

“카이서스는 내가 잘 알지. 그를 처음부터 키워낸 건 나였으니까. 그러니까 네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 이야기요?”

“눈이 아주 좋아. 그냥 조금 좋다 정도가 아니라 말도 안 되게. 그래. 아마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번씩 느리게 보인다거나 재빠른 움직임도 아주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아?”

“...”

한 번씩이 아니라 집중모드에 들어가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지가 말한 대로의 인지가 가능했다.

보통은 이런 집중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해줘도 잘 믿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 할텐데 조지는 오히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꽤나 정확하게 내 상태를 진단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라면 아마 한 번씩은 경험해본적이 있을거야. 가끔. 아주 가끔. 컨디션이 너무 좋고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상대의 움직임이나 호흡 하나까지도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순간이 있지.”

“...네.”

“나도 있었어. 마치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고양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 상대의 움직임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이고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숨결 하나하나가 고화질 사진을 보는 것처럼 뚜렷하게 보이는 경험.”

“...”

“나는 그 경험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했지. 아니. 시합이 끝나고 나면 그 순간이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만큼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순간이었으니까.”

조지가 말 하는 그 기적 같은 순간이라는 거. 아무리 봐도 내가 집중력을 끌어올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이 깨진 건 내가 은퇴하고 채 일 년이 되지 않았을 때지.”

“특별함이 깨져요?”

“그래. 내 평생 몇 번 맛보지 못한 그 순간을 밥 먹듯이 경험하는 소년을 만났으니.”

“...”

“그게 카이서스였어.”

역시.

카이서스도 나와 비슷한 인지체계를 가지고 있는 게 맞았다.

그리고 그걸 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개발. 발전시켜왔겠지.

“난 카이서스만이 특별한 줄 알았어. 그리고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지. 미스터 강. 널 보기 전까지는.”

“저도 카이서스만큼이나 특별한가요?”

“그럼. 특별하지! 카이서스만큼이나 특별해.”

손뼉만 치지 않았다뿐이지 아주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게 표정에 역력히 드러나는 조지.

“하지만 분명 두 사람은 조금 차이가 있어. 그래서 미스터 강. 네게 물어보고싶은거야.”

“뭐를요?”

“미스터 강. 그 동떨어진 세계에 임의로 들어갈 수 있어?”

“동떨어진 세계요?”

집중모드를 말 하는 건가?

“조지가 말한 것처럼 주변이 느리게 보이는 현상을 말 하는 거라면... 네. 집중력을 끌어올리면 가능해요.”

“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래. 얼마나 연습했지?”

“네?”

“참고로 카이서스는 처음 그 세계를 접한 이후 자유자재로 이용하기까지 3년이 걸렸어.

“엄...”

연습?

이거 그냥 집중만 하면 되던데...

이렇게 물으니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연습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데. 차라리 집중모드에 들어간 이후 그걸 훈련에 이용한 기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하기 편할 것 같았다.

“말하기 어려우면 안 해도 돼.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건 아니구요. 음... 연습을 해본 적이 없어서요. 어떤 연습을 말 하는 건지 생각 좀 하느라...”

“... 연습을 해 본적이 없다고?”

“네. 그냥 저는 이걸 집중모드라고 부르는데. 하하. 좀 유치하죠? 어쨌든. 말 그대로 그냥 조금씩 집중력을 올릴 때마다 주변이 조금씩 느리게 느껴져요. 물론 제 몸도. 의식만 깨어있는 느낌? 집중력을 최고치로 높이면 정말 주변도 제 몸도 멈춰있는 느낌이랄까. 그게 너무 답답해서 집중력을 아주 높인 상태로는 잘 유지하지 않아요.”

물론 집중력을 높이면 유지시간 한계도 빨리 다가오기 때문에 효율이 좋지도 않다는 건 굳이 말 하지 않았다.

어쨌든 조지는 명확한 아군은 아니었으니까.

“...”

조지는 내 대답에 무언가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대충 어떤 건지 감은 왔다.

카이서스는 3년 동안 연습했던 걸 나는 연습도 없이 날로 써먹는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만큼 내가 카이서스보다 재능이 좋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물론 만약에 조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큰 착각이었다.

내가 스트리트 파이트 오디션 때부터 이 ‘집중모드’라는 걸 미약하게나마 활용할 수 있었던 건 애초에 내가 집중모드를 잘 써먹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전엔 집중모드라는 이름을 붙이지도 않았고, 그냥 ‘제대로 집중하면 주변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정도의 감각일 뿐이었다.

이러든 저러든 격투기를 접하기 이전부터 무언가에 집중했을 때 이런 현상이 생긴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게 일반인들과는 조금 많이 다르다는것걸 인지하고 개발하게 된 게 격투기를 제대로 수련하면서의 일이었다.

“그래.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이리와 봐.”

“넵!”

잠깐 침묵을 지키던 조지는 이내 날 이끌고는 체육관 구석의 어질리티 트레이닝 툴로 날 데려갔다.

“평소 하던 것처럼 해봐.”

대기 중이던 코치진들과 함께 탄성이 별로 없는 고무공을 준비해 던지기 시작하는 조지 파울로.

-휙

-툭

-휙휙

-툭툭

-휙휙 휙휙

-툭툭 툭툭

나는 정해진 스팟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쏟아지는 고무공 세례를 피하거나 쳐내야했다.

-휙휙휙휙휙휙휙휙휙휙휙휙

처음엔 하나 둘 던져지던 고무공이 이제는 4명의 사람이 달라붙어 던지기 시작하니 말 그대로 비처럼 쏟아졌다.

‘치고. 치고. 저건 피하면서 이걸 치고...’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집중모드를 끌어올려 쏟아지는 고무공들을 하나하나 쳐내고 피하고 쳐내기 시작했다.

-툭툭 툭툭

탄성이 없기에 멀리 튕기지 않고 내 주변을 가득 메운 고무공들.

“...”

조지의 요청에 공을 던지던 코치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역시.”

오직 조지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미스터 강. 너는 눈이 정말 좋군.”

“하하. 감사합니다.”

“공이 날아드는걸 하나하나 다 체크했지?”

“네? 네.”

뭐가 먼저 던져졌는지. 뭐가 먼저 내 몸에 도달할건지. 한 번에 일곱 여덟 개가 되는 공이 던져졌어도 집중모드가 발휘된 상황에선 어렵지 않게 그 모든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주 빠르게 모든 걸 체크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보기엔 한 번에 모든 걸 본 것과 같이 보이겠지. 하지만 확실히 미스터 강 너는 한 번에 모든 걸 파악하는게 아니라 모든 움직임을 하나하나 따로 확인하는 것 같아.”

“어... 음. 맞아요.”

예전 카이서스의 복싱 체육관에서 주변시라는 걸 배우긴 했지만, 결국 내가 하는 방식은 주변시를 이용해 집중모드 상태에서 하나하나 정보를 체크하는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눈동자를 움직여가며 하나하나 확인했던 걸 이제는 주변시를 이용해 시선을 고정한 상태에서 하는 방식이랄까.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나?

“나는 모르지.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내가 아는 한 너와 카이서스만 가능한 일을 내게 물어보는 건 바보 같은 질문이야.”

“그러면 카이서스는 어때요?”

“카이서스? 카이서스는 한 번에 보지. 아까 말 했던 것처럼.”

한 번에 본다라.

내가 하나하나 확인하는 거랑 한 번에 보는거랑 무슨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카이서스는 말 그대로 전체를 봐. 그 녀석의 인지능력도 사람의 범주를 벗어났지. 예전에 카이서스가 그림을 한번 그린 적이 있어. 내게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지. 그가 10대 때의 일이야.”

갑자기 카이서스의 유년시절을 이야기하는 조지.

“카이서스는 갈 곳이 없었기에 후견인인 나와 함께 살았어. 어느 날 훈련을 마치고 집에서 쉬고있는데 카이서스가 종이에 펜으로 그림을 끄적이기 시작했어. 나는 그저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조악한 낙서정도를 할 거라 생각했지. 카이서스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 말이야.”

“그래서요?”

“그런데 말이야. 카이서스가 그린 게 뭐였는지 아나?”

“글쎄요?”

“처음 비행기를 타고 이곳 뉴욕에 올 때 봤던 도시의 모습이었어. 하늘에서 본 뉴욕의 모습.”

“...”

“그리고 그건 마치 사진으로 찍어낸 듯 완벽했지. 난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

... 그 정도면 카이서스는 복싱이 아니라 미술 쪽으로 전향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한번 본 풍경을 사진처럼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면?

“하하. 카이서스에게 창작의 센스는 없어. 미술을 가르쳐봤지만 모두 고개를 젓더라고. 다만 우리는 카이서스는 무언가에 집중했을 때 스스로 보는 시야에 들어온 모든 걸 한 번에 연산처리하고 기억해내는 능력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지.”

“그게 한 번에 본다는 의미였군요.”

“그래. 사실 내 기준에서는 너나 카이서스나 별 차이가 없어. 찰나의 순간에 모든 걸 다 보는 거니까.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이봐!”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옆에 대기 중이던 코치를 부르는 조지.

“아까 말한 거 가져와.”

그리고는 별안간 아까 말한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쿵!

코치진들이 가져온 건 공사장에서 쓸 법한 사다리와 검은 고무공이 가득한 바구니였다.

“여기 이 바구니 속에는 회색깔 공이 딱 하나 있어. 나머지는 모두 검은 색깔 공이지.”

“네.”

“이걸 코치들이 위에서 뿌릴 거야. 자네는 쏟아지는 공 중에서 회색 공 하나만 찾아내면 되네. 어때. 가능하겠어?”

“흠... 해보죠 뭐.”

어차피 이것 또한 훈련의 일환이라 생각하면 되니까.

“자! 갑니다!”

이번에는 글러브를 벗고 맨손으로 준비 자세를 잡았다.

코치진들은 사다리 양쪽으로 올라가 고무공이 가득한 바구니를 내 머리 위에서 떨어뜨렸고

“후우...”

이번에는 꽤나 집중력을 높인 상태로 떨어지는 공들을 확인했다.

‘검은색... 검은색... 저것도 검은색... 검. 검.. 검 검...’

나는 몸에 살짝 힘을 뺀 상태로 언제든 회색 공을 발견하는 순간 낚아챌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리고 수십여 개의 공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을 길게 늘어뜨려 하나의 회색공을 찾아나갔다.

‘검은색.. 검은색... 검... 찾았다! 회색!’

그렇게 검은 공들을 확인하다가 발견한 회색 공.

정확히는 검정색 공보다 조금 밝은 정도의 짙은 회색 공을 발견하고는

-휘익!

-탁!

정확히 손을 뻗어 그 공만 잡아내었다.

“우와....”

“미쳤다 진짜!”

“헐! 저걸 진짜 해낸다고?”

“말이 돼? 저거 맞아? 검은색 아냐?”

주변의 코치들도 혀를 내두르며 놀라는 사이.

“잘 했어. 어때? 할 만했어?”

“어... 네. 뭐.”

회색 공이 내가 훑기 시작한 곳 근처에 있었다면 조금이지만 더 빨리 찾아냈을 거다.

만약 마지막 쪽에 있었다면 조금 더 늦어졌겠지.

그래봤자 실제로는 정말 찰나의 차이였을테고 별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을 것 같았다.

“그래? 그러면 만약 공이 100개. 1000개가 된다면 어때?”

“...네?”

“그렇게 많은 공 사이에서도 단 하나의 회색 공을 찾아낼 수 있겠어?”

“음...”

조금 전처럼 경우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다면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겠지만 만약 몇 백 몇천개의 경우의 수를 두고 찾아내라면... 솔직히 자신 없었다.

“카이서스는 그게 가능해.”

“네?”

“카이서스는 너처럼 하나하나를 확인하는 게 아니니까. 떨어지는 공 전체를 한 번에 보고, 그 한번에 회색 공을 찾아내지.”

... 그게 말이 되나?

어떻게 사람 대가리로 그게 가능해?

“다른 사람이 볼 땐 미스터 강 너도 충분히 괴물이야.”

“...들어보니 카이서스가 더 괴물 같은데요.”

“하하하. 그건 모르지. 우리가 할 건 회색 공 찾기가 아니라 복싱이니까 말이야.”

“뭐. 그건 그렇지만요.”

그래.

이건 내가 모자라거나 부족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거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자네는 더욱 복싱을 배워야 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복싱은 수십 수백 가지의 정보를 찾고 파악하고 간파해야하는 수 싸움이라는 거. 말했었지?”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괜히 복싱을 영어로 sweet science 라고도 부르는 게 아니었으니까.

“카이서스는 너와 최소 동급이라 생각해야해. 그러면 승패를 나누는 건 얼마나 더 많은 수를 예측하고 간파하느냐의 싸움이겠지. 물론 둘의 수 싸움은 일반적인 복서들과는 완전 다른 개념이겠지만 말이야.”

“수 싸움이라...”

“그러니 오늘부터는 공부를 해야 해. 특히 자네는 카이서스와는 달리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수싸움을 해야하니까.”

“네?”

갑자기 공부라뇨?

“복싱엔 어떤 경우의 수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카이서스는 그 중 어떤 무기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매커니즘으로 활용하는지. 이봐!”

내게 말 하다말고 다시 코치를 부르는 조지.

“미스터 강을 데리고 가서 시청각 교육실에 집어넣어. 나중에 테스트를 봐서 통과하지 않으면 저녁까지 절대 못나오게 해.”

“네!”

...

뉴욕까지 복싱 훈련을 와서 지금은 어느덧 10월의 끝자락.

기초훈련을 벗어났다 생각했더니 이젠 복싱 이론 교육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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