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88화 (188/203)

< 188화_부족한 것 >

1.

“해서 너 고릴라 같아.”

“...뭐?”

“덩치 봐. 이렇게 보니까 진짜 크다. 우와...”

“...”

훈련을 마치고 아름이와 웨딩 촬영 사전 미팅을 하러 온 자리.

촬영 컨셉이나 이런 걸 정하면서 당일에 입을 촬영 의상 선정 타임에 아름이가 내게 돌주먹을 날렸다.

“고릴라라니. 하하. 이렇게 잘생긴 고릴라가 어딨냐?”

“어딨긴? 여기 있네? 우리 잘생긴 고릴라?”

“...”

아까 필승 형도 그랬지만. 고릴라는 내가 아니라 라무차 같은 애들한테나 써야 할 말이라니까? 난 아름다운 육체미를 가진 거고.

“우리 신랑님 옷은... 저희가 치수를 재서 약간 수선을 해야겠어요.”

“아. 네.”

아름이가 내게 고릴라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른 것 없었다.

웨딩 스튜디오에서도 놀랄 정도로 내 몸 사이즈가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맨날 운동복 입어서 몰랐는데. 이렇게 재보니까 진짜 신기하다.”

“신기하긴. 맨날 보면서.”

“어머! 맨날 보다니? 어제도 안 봤는데?”

“...”

“오늘은 보여주나?”

“...”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스튜디오라더니 애가 말이 거침이 없었다.

하긴. 결혼 발표까지 난 마당에 이정도 대화 수준이 특별할 건 없겠지.

“신랑님이 어깨나 가슴은 있는데... 허리는 워낙 잘록하셔서. 그리고 팔다리도 기시고. 저희도 이런 핏은 처음이라 어려운 숙제네요.”

“하하... 그런가요.”

“네. 보통은 어깨나 가슴둘레가 있으신 분들은 윗배나 허리도 어느 정도 사이즈는 있거든요. 신랑님 같은 비율은 보통 보디빌딩 하시는 분들이랑 비슷하실 정도라서. 사이즈는 더 크고.”

“아아. 네.”

“그래도 저희 스튜디오는 신랑 신부님 사이즈에 딱 맞는 촬영 의상을 주문하기 때문에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역시 비싼 곳은 비싼 값을 하는 건가 싶었다.

얼마 전 준현이와 이야기하며 스드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쪽은 스튜드에오 비치된 사이즈 맞는 옷을 골라 입는 식이었다고 했으니까.

“저희도 비치된 옷은 있습니다. 다만 이건 스타일을 보기 위해 걸쳐보는 용도구요. 실제 촬영 시에는 동일한 스타일의 사이즈 맞춤 의상을 입으실 거예요.”

“네. 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결혼은 처음이다 보니 이곳에서 가장 많이 내뱉은 단어가 ‘네’ 였다.

뭘 알아야 질문이나 의문문을 던지지.

“실장님. 그러면 이거랑 이거랑. 이런 컨셉으로... 아! 지난번에 누구 언니는 여기서...”

그런데 아름이는 아니었나 보다.

뭐가 그렇게 아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지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확인할 것도 많은지.

“자기야. 아까 입었던 거 있잖아? 그 두 번째 입었던 거. 카라 좀 얇았던. 응. 그거 다시 입고 와봐. 이 드레스랑 어울리나 보자.”

“머메이드에는 아까 입었던 금실 들어간 턱시도가 나으려나? 자기야. 아까 그 금실 턱시도 입어봐.”

마치 옷 갈아입히기 인형이 된 것처럼 옷을 입고 벗고를 수십여 차례.

일단 내가 입은 옷이 내게 잘 어울리는지부터 체크한 뒤 아름이가 리스트업 해둔 드레스와의 매칭도 시켜 봐야 했다.

드레스는 갈아입기가 어려우니 아름이가 새로운 드레스를 입을 때마다 나는 벗었던 옷도 다시 입어야 했으니 정말 지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헤헤. 그러면 당일 메이크업 팀은 저희 팀으로 부를게요. 의상도 오늘 정한 리스트 중에서 코디랑 같이 한 번 더 추리고요.”

그렇게 몇 시간을 입어보고도 코디와 다시 한번 웨딩드레스 월드컵을 해야 한다는 아름이.

“당연하지. 내 메이크업 팀이 내 얼굴은 제일 잘 알아. 스튜디오 메이크업팀도 전문가지만 내 팀은 몇 년간 내 얼굴을 만져준 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코디도 나랑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주는 전문가고.”

“그래. 그래. 우리 이젠 집 가는 거지 그러면?”

“헤헤. 밖에서 밥 먹고 들어갈까?”

“...그러자. 뭐 먹을래?”

주말에 웨딩 촬영이 끝나면 다시 몇 달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전에는 아름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주자는 다짐을 했기에 힘들고 지쳤지만, 콜을 외쳤다.

“으음. 우리 자기 오늘 힘든 것 같으니까... 장어 먹으러 갈까?”

“장...어?”

“낙지도 남자한테 좋대! 근처에 장어랑 낙지 잘 하는 데 있는데 거기 갈까?”

“...”

그냥 오늘 하루는 조금 지치고 힘든 채로 잠들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힘들겠지?

*

“짐은 다 챙겼냐?”

“넵!”

시간은 쏘아진 화살과 같았고 어느덧 뉴욕으로 출국하는 날짜가 다가왔다.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

“비행기에서 자면 되죠.”

나와 함께 뉴욕으로 출국하는 건 스트렝스&컨디셔닝 팀과 창섭 형 정도였다.

나머지는 복싱 이벤트에는 무용했기에 휴가랄까.

“뭐 한다고 그렇게 지친 거야? 체력도 좋은 놈이.”

“형도 상견례 했다 그랬죠?”

“어? 어.”

“그러면 조만간 알게 될 거예요.”

웨딩촬영이라는 놈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아침부터 시작된 촬영은 저녁 야경 컷까지 찍고 나서야 끝이 났는데, 그 과정에서 몇 번이고 리타이어를 외치고 싶었었다.

아름이야 화보나 지면 촬영을 워낙 많이 해봤을 테니 정말 완벽한 표정 연기를 보여줬지만, 문제는 나였다.

작가님이 요구한 감정이나 표정을 전혀 끌어올리지 못하는 것.

거기다 파트너인 아름이와의 수준차이가 너무 많이 나다 보니 계속 NG가 떴었다.

아름이 또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 내가 보기엔 충분히 잘 나온 사진도 몇 번을 더 찍었는지 모르겠다.

어후. 어쨌든, 지옥이었어. 지옥.

“제수씨는?”

“자고 있을 거예요. 요즘 휴식기라고 늘어져 있어요.”

보통 연말엔 이런저런 스케줄을 많이 잡았던 아름이였는데 이번 연말은 결혼식이 취소되었음에도 아무 스케줄도 안 잡고 휴식기를 선언했다.

만날 늘어져서 지내다 보니 살도 조금 붙은 것 같던데 이번 시합이 끝나면 빡세게 개인 PT를 한번 해줘야겠다.

“그래. 그럼 출발하자.”

“넵!”

어쨌든 이제 시합 전 해야 할 일들은 모두 끝냈으니 온전히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조지 파울로.

레전드 복서이자 그 카이서스를 발굴해낸 코치. 그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휴식!”

-후우!

-푸하!

-으아아! 드디어 휴식이다!

카이서스는 지난 강해서와 라무차의 2차전이 있었던 날 이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강도 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조금씩 조금씩 더욱 훈련의 강도를 높여가며 그 난이도를 올려가는 식으로.

그런데 그 수준이 그의 훈련을 서포트하기위해 붙은 여러 랭커급 복서부터 코칭 스텝들까지 모두 감량이라도 하는 듯 말라갈 정도로 혹독했다.

“언제봐도 살벌하구만.”

“오! 켄달! 왔어?”

켄달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카이서스의 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외부로 나가 있던 전담팀을 모두 불러들여 제대로 된 훈련을 시작한 지 근 2달.

카이서스는 이미 전성기의 자신을 이미 넘어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폼이 올라와 있었다.

“어쩐 일이야?”

“아아. 재밌는 소식이 하나 들어와서 말이야.”

켄달은 카이서스의 프로모터일 뿐이었지 그의 코칭 스텝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매칭이 잡힌 이후부터는 프로모션을 위한 업무가 바빴고 그만큼 훈련 시간에 카이서스를 찾는 일은 드물었다.

그가 연락도 없이 체육관을 찾았다는 건 분명 용건이 있다는 뜻이었다.

“재미있는 소식?”

“그래. 뉴욕에 있는 친구에게서 막 전달받았지.”

“뉴욕?”

“그래. 뉴욕. 조지 파울로가 이번에 아주 재미있는 선수를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이 방금 막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지.”

“오 마이 갓. 조지가?”

“그래.”

카이서스가 아버지처럼 따르는 멘토.

복싱 레전드 조지 파울로가 카이서스의 이벤트 매치 상대인 강해서의 코칭을 담당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복싱계를 단 하루 만에 뒤흔들었다.

“하하. 이거. 조지가 제대로 내게 한 방 먹이려나 보군.”

하지만 카이서스는 그런 소식에도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아주 기꺼운 표정이었다.

“조지는 날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봤던 사람이야. 그만큼 날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지.”

“그렇군.”

“그는 나의 고독을 알아. 그가 미스터 강을 불러들였다면... 하하. 이거. 이렇게 쉬고 있을 틈이 없겠어. 이봐! 다들 일어나! 휴식 끝!!”

켄달과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별안간 팀원들을 모두 일으키는 카이서스.

“조지. 그 양반이 미스터 강을 불러들였다는 건. 미스터 강이 날 쓰러뜨릴 가능성이 조지에게는 보였다는 거거든. 조지는 진심으로 내 패배를 염원하는 사람 중 하나니까 말이야. 하하하.”

자신의 패배를 입에 담으면서도 한껏 상쾌하게 웃어 보이는 카이서스.

그리고는 지치지도 않는지 다시금 훈련을 이어갔다.

“... 카이서스. 자네가 질 가능성이 있다고? 그게... 가능해?”

그리고 켄달은 지금도 랭커급 복서들 틈바구니에서 묘기와 같은 몸놀림을 보여주며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카이서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2.

“또요?”

“또는 무슨. 아직 한참은 더 해야 해. 빨리 가서 거울 앞에 서!”

“끄응...”

전설의 복서.

카이서스를 키워낸 코치.

그 이름값에 기대하며 뉴욕을 찾은 지도 근 일주일.

“자. 다시. 원투.”

“...”

지금 나는 거울을 보며 원투 펀치를 뻗어내고 있었다.

“집중해! 집중!”

“...넵!”

물론 주구장창 원투만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스텝도. 쉐도우도. 그 외에 미트질이나 위빙 등 기초 훈련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거였다.

기초.

“언제까지 기초만 합니까? 시합이 이제 2달 정도밖에 안 남았다고요!”

“그러면 기초 말고 뭘 더 해!”

이놈의 기초. 기초. 기초!

내가 지금 여기 앉아서 복싱 기초나 하고 있을 짬밥이 아니잖아!

“이런 멍청한 놈. 카이서스와 복싱으로 붙겠다는 놈이 스트레이트도 제대로 못 뻗으면서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아니! 어쨌든 때려서 맞추고 쓰러뜨리면 되는데 뭐가 문제에요!”

“그래. 말 잘했다. 네놈 시합 영상들 내가 다 찾아봤어. 넌 바디 컨트롤도 좋고. 스피드도 좋고. 파워도 좋고. 타격 센스도 좋아.”

“...”

갑자기 칭찬 공격이라니?

또 윽박만 지를 줄 알았는데 내 장점들을 칭찬해주니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그것들은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하는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걸 하려고 해?”

“...네?”

“복싱 체육관에 왔으면 복싱을 해! 넌 복싱에 필요한 모든 걸 갖췄지만 정작 복싱은 갖추질 못했으니까.”

“...”

“이 상태로 링 위에 올라선다? 그래. 지금 이 상태로도 널 이길 수 있는 복서는 거의 없을 거야. 그런데 카이서스에겐 안 통해. 적어도 사각 링 안에서 넌 그 라무차라는 고릴라 놈이랑 다를 게 없으니까.”

“...”

여기서도 고릴라 소리를 듣네.

요즘 고릴라랑 뭔 일이 있나...

“라무차 그놈도 MMA를 흉내 내긴 했지만 결국은 제 놈 하고 싶은 대로 휘두를 뿐이었지. 어설픈 기술과 압도적인 피지컬로 찍어누른 거야.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어... 그렇죠?”

라무차는 MMA의 룰 안에서 움직였지만, 그 움직임이나 스타일은 ‘짐승’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비정석적이었다.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움직임도 많았고 테크닉의 완성도와 디테일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 네 꼴이 딱 그래. 어설프게 복싱을 배우긴 했어. 슬러거니, 스워머니 하며 스타일도 흉내 내고. 그런데 기초가 없어. 그냥 네 센스와 피지컬로 그럴싸하게 흉내를 내는 정도지.”

“...”

머리가 띵하네.

조지의 말을 들으니 단박에 이해가 됐다.

솔직히 내가 거울 앞에서 복싱 원투를 연습한 건 이곳 체육관에 와서가 처음이었다. 내가 복싱을 제대로 접했을 때는 이미 WFC에서 내 위치가 결코 낮지 않았으니까 누구도 내게 복싱의 기초를 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이봐. 너 등산을 해본 적 있냐?”

“네? 어... 네.”

한국 사람이면 당연히 등산 경험 한두 번이야 있죠.

“네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찍었어. 그렇다고 집 앞산 정상을 공짜로 오를 수 있어?”

“...네?”

“에베레스트 정상을 찍었던 사람도 다른 산의 정상에 오르려면 그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부터 해야 해. 그래야 다른 산을 또 오를 수 있지.”

“...”

“물론 에베레스트를 올랐던 경험이 있으니 동네 뒷산이야 훨씬 수월하게. 빠르게 오를 수 있겠지. 중요한 건 한 분야의 정상을 찍었다고 해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는 가장 밑바닥부터 첫걸음을 떼야 한다는 거야.”

“...네.”

“대답만 철석같이 하지 말고! 움직여!”

“넵!”

“다시 원투부터!”

“넵!”

10월 초의 어느 날.

카이서스와의 이벤트 매치가 2달. 두호 형의 타이틀전이 한 달여 간 남은 시점.

-훅. 훅.

-원! 원투!

나는 복싱 레전드 아래에서 처음부터 복싱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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