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83화 (183/203)

< 183화_빌리 >

1.

“진짜?”

두호 형의 복귀전 소식.

“진짜 잘됐다!”

아름이 또한 그 소식에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잘 되긴 했지. 걱정스런 부분도 있지만.”

두호 형이 다시 한번 미들급 챔피언에 도전한다는 소식은 분명 기꺼웠으나 그 나이를 생각하면 걱정과 우려가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한국 나이로 45살. 만 나이로 해도 43살(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인 노장이었다.

물론 WFC 최고령 챔피언의 기록을 보자면 미국 나이로 45살까지 챔피언을 지냈던 선수가 있다지만 어쨌든 두호 형의 나이가 결코 적지는 않았다.

잠정 은퇴에 가까운 활동을 이어왔기에 WFC 웰터급 또한 잠정 챔피언이 탄생한 상태.

그런 상황에서 웰터급이 아닌 미들급 타이틀 도전이라는 건 말 그대로 ‘마지막 도전’을 의미하는 듯했다.

“하긴. 오빠도 나이가 있으니까.”

단순히 두호 형과 알고 지낸 시간만 따지면 아름이가 나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예전부터 두호 형을 봐 왔던 만큼 응원하는 마음과 걱정 또한 적지 않으리라.

“그래도 다행이지. 바로 타이틀전이니까.”

“그러게. 웰터급은 그러면 이제 포기하신 건가?”

“아무래도 그럴 거야.”

두호 형에 대한 타이틀전 관련 접촉은 학센이 미들급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학센 측에서 WFC에 지명 도전자로 두호 형을 끊임없이 언급해왔던 것.

하지만 두호 형은 내 전담 스텝진에서 코칭을 맡고 있었고 그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다. 특히 라무차와의 1차전 이후 집중 훈련 기간 동안 두호 형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이번 라무차와이 2차전이 내게는 아주 중요한 경기였기에 두호 형은 당연히 지도자로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할 거라며 학센과의 타이틀전을 몇 번이고 고사했지만 바로 곁에서 형을 지켜봤던 나는 알고 있었다. 두호 형의 속에 담긴 그 열망이라는 게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이번 라무차와의 2차전 시합 때 두호 형에게 다시 한번 도전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투의 말을 하기도 했었고.

“쩝. 괜한 말을 했나.”

하지만 막상 이렇게 두호 형이 복귀 소식이 현실로 들려오자 괜한 짓을 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학센과의 3차전.

이기면 당연히 좋겠지. 미들급 타이틀도 획득하고.

하지만 지면?

나이가 있으니 다음 시합을 노리기도 어려울 테고 그대로 은퇴해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은퇴한다면 ‘WFC 웰터급 챔피언’으로서 은퇴하게 되지만 이번 복귀전에서 패배하고 은퇴한다면 ‘WFC 미들급 챔피언 미달성’으로 은퇴하게 된다.

별것 아닌 차이 같지만, 생각보다 이 차이는 클 것이다.

승자로서 은퇴하느냐 패자로서 은퇴하느냐의 차이였기 때문에.

“자기가 옆에서 많이 좀 도와줘.”

“...응?”

“두호 오빠가 이제껏 많이 도와줬잖아. 그러니까 이번엔 우리가 힘이 되어주자고.”

“아니. 그 전에.”

날 불렀던 호칭 말이야.

“응? 아... 자기?”

“어... 어.”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3년.

양가 상견례까지 마쳤지만, 아름이에게 내 호칭은 ‘해서’였다.

동갑내기 커플이니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갑자기 ‘자기’라니.

“헤헤. 내 자기잖아. 자기라고 불면 싫어? 자기야?”

“...아니! 싫을 리가!”

이게 프러포즈의 파워인가?

자기라니.

단어도 너무 아기자기한 거 아냐?

완전 사랑스런 어감이다. 자기. 자기. 자기.

“풉. 이런 거로 이렇게 좋아하고. 우리 자기 귀여웡.”

“...”

“아니면 뭐 듣고 싶은 호칭 있어? 달링? 여보?”

어... 그냥 자기가 좋은 것 같아.

달링은 너무 어려 보이고 여보는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달까.

“헤헤. 알았어. 내 자기야.”

그러면서 은근슬쩍 내 팔에 매달려 붙는 아름이.

아직 한창 더운 날씨였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얘는 땀도 안 나나?

*

-WFC 웰터급 챔피언 최두호! 학센과의 3차전?

-WFC 미들급 챔피언에 도전하는 최두호!

-두 유 노 최두호? 한국 격투기 부흥 1세대 최두호의 도전기!

-고령 파이터 최두호! 노장의 힘을 보여주나?

-WFC 최고의 흥행 파이터 학센! 첫 타이틀 방어전 상대로 최두호 지목? ‘늙은이를 관짝에 넣어주겠다!’

-최두호? 그는 내게 공포 영화 같은 존재. 죽었어야 할 존재가 죽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는 느낌. 이번에야말로 직접 땅에 묻어주겠다.

┗아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학센 이새끼는 진짜 찐이얔ㅋㅋㅋ

┗우리 갓-해서님도 트래쉬토크 잘 하지만ㅋㅋㅋㅋ 학센 이새끼는 드립 수위가 아주 신박해

┗근데 최두호 진짜 이젠 너무 늙었지 않음? 괜히 복귀했다가 ㅈㄴ 개털리는거 아니냐

┗그러게. 그래도 최두호하면 한때는 한국에서 제일 성공한 격투기 선수였는데

┗ㅇㅇ 몇년전만 하더라도 두유노 클럽에 들어있었지. 지금은 갓해서가 너무 압도적이라 안보일 뿐

┗ㅋㅋㅋㅋㅋㅋㅋㅋ 방구석 키보드워리어 새끼들ㅋㅋㅋㅋ 최두호가 60먹어도 너넨 왼손 하나로 이길거닼ㅋㅋㅋ 강해서가 ㅈㄴ 괴물새끼인거고 최두호만해도 전세계 어딜가도 인정받는다

┗당연한 이야기를하네ㅋㅋㅋㅋㅋ WFC 웰터급 챔피언 출신인데 누가 무시햌ㅋㅋㅋ 그냥 지금은 나이가 너무 들어서 걱정된다는거지

┗박수칠때 떠나라는 말을 잘 모르나봄ㅋㅋㅋㅋ 그냥 갓해서 말고는 좀 나대지마라 한국 선수들. 우린 갓해서만 있으면 된다!

┗그래도 난 최두호 응원함. 강해서가 진짜 대단하긴 하지만 나는 최두호 경기로 격투기를 접한 세대라.

┗어이쿠. 틀딱냄새가 어디서나나 했더니 여기서 나네. 아재요 관짝은 준비하셨는교

두호 형의 미들급 챔피언 도전 기사가 뜨고 나니 국내 격투기 커뮤니티에서도 이런저런 말이 많이 나왔다.

아무래도 지난 몇 년간 격투기 시장 자체가 커지면서 커뮤니티 또한 많이 커진 상황. 하지만 모두가 관심 가질만한 빅 이벤트는 그리 자주 성사되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두호 형의 타이틀전에 관심이 몰리는 듯했다.

-빠악

“얌마. 네 시합만 빅 이벤트고 두호 형 이벤트는 스몰 이벤트냐? 두호 형도 웰터급 챔피언이고 이번 이벤트도 미들급 타이틀전이야.”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그래? 근데 왜 난 네 목소리를 들은 것 같지?”

“아놔!”

내가 짜증을 내자 냅다 도망치는 필승 형.

저 형은 지난 스트리트 파이트 촬영 이후 틈만 나면 날 괴롭혀댔다. 출연 건 가지고 내가 조금 부려먹었다고 그걸 이렇게 앙갚음하다니. 에잉.

“학센. 학센이라.”

WFC 내에서도 PPV 순위 탑 5안에 드는 흥행 파이터.

시합 전부터 상대를 도발하거나 트래쉬토크를 날리는데 거침이 없는 스타일.

그런 그가 상대 선수로는 별 재미없는 두호 형을 지목했다는 건 두 가지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게 했다.

첫째로는 두호 형과의 2전 2패가 정말 하늘에 사무칠 정도로 큰 상처로 남았을 경우. 이 경우라면 흥행을 떠나서 두호 형이 정말 은퇴하기 전에 한 번쯤은 승리 전적을 만들고 싶을 수 있었다.

어쨌든 자신을 상대로 전승을 챙긴 선수가 그대로 은퇴해버리면 얼마나 높은 커리어를 쌓든 해당 선수에게는 영원한 패자로 남게 되니까.

두 번째는 학센의 컨디션 관리 부분일 수 있었다.

평소 돈 되는 시합만 원했던 학센의 성격상 그리 재미있지 않은 상대인 두호 형을 지목할 정도라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다. 단순히 나이가 있어 기량이 떨어졌을 걸 기대하고 만만해서 두호 형을 지목했다기에는 학센 또한 악바리 근성이 있는 파이터였으니까.

“미첼이랑 2차전 하는 게 엄청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네.”

나는 학센과 맞붙었던 적은 없지만, 미첼과는 한차례 타이틀전에서 시합을 가진 바 있었다.

그리고 지난 미들급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학센과 미첼의 경기를 얼마 전에 뒤늦게야 보게 되었는데 분명 이상한 점이 있었다.

“미첼이 컨디션 관리에 실패한 듯했으니까.”

감량의 여파인지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첼이 평소 기량을 내지 못했던 건 확실했다.

물론 미첼이 만전이었다고 해서 그가 이겼을 거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그래도 훨씬 치열한 혈투가 되었을 미들급 토너먼트 결승전.

하지만 미첼과 학센의 3월 경기는 김빠지게도 학센의 일방적인 우위로 펼쳐진 원사이드 시합이었다.

미첼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학센은 그 틈을 파고들 만큼 노련하고 유능한 선수였으니까.

이번 라무차와 내 시합을 보면 알겠지만, 경기에서 승패를 가르는 건 아주 작은 부분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부분으로 말도 안 되는 원사이드 시합이 펼쳐질 수도 있었고.

“제 기량을 회복한 미첼과 불안한 방어전을 갖느니. 자신에게 전승을 거두고 도망가려 하는 퇴물 파이터를 상대로 마지막 승리를 빼앗겠다. 뭐 그런 거겠지.”

한창 스마트폰에 학센의 영상을 띄워놓고 잡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아! 두호 형!”

훈련을 빡세게 한 타임 돌리고 온 두호 형이었다.

“편해 보인다?”

“하하. 저는 당분간 휴식 기간이라서요.”

지난 라무차와의 1차전 이후로는 날 향한 헤비급 탑 컨텐더 들의 타이틀 샷 요구가 꽤 있었다.

아무래도 챔피언이 교체되면 기존의 상위 랭커들 중 상성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의 도전이 이어지는 건 당연했다.

거기다 라무차와의 1차전은 졸전에 혈전이기도 했으니 기존의 챔피언보다는 꽤 만만해 보였겠지.

하지만 첫 방어전 상대로 라무차를 지목하고 그와의 2차전에서 1라운드 21초만에 KO를 시켜버리자 타이틀 샷을 요구하던 탑 컨텐더들이 어디 갔는지 싹 들어가 버렸다.

“빌리 있잖아 인마.”

“어후. 빌리. 하.”

그나마 지금도 내게 붙자고 덤비는 선수는 딱 한 명뿐이었다.

라이트헤비급 잠정 챔피언 빌리.

그와는 어느 정도 안면도 있고 또 속사정도 알고 있기에 한 번쯤 붙어주고 싶긴 했는데.

“포기. 포기. 못해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빌리와의 승부는 이제 불가능했다.

지금 내 평체는 110킬로 초반.

헤비급에 올라온 뒤로는 평체로 경기에 임했기에 감량도 증량도 없었는데 지금 와서 라이트 헤비급으로 체급을 내려가야 한다?

거의 20킬로 가까이를 감량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지금 이 몸을 어떻게 만든 건데...”

라이트헤비급에서 미들급은 최대 몸무게에서 최소 몸무게까지의 간극이 9킬로그램정도였다.

라이트헤비급 최대 몸무게 상태에서 미들급까지 감량하더라도 9킬로만 빼면 된다는 소리.

하지만 헤비급에서 라이트헤비급은 그 수준이 달랐다.

“하긴. 이번 라무차 전을 준비하면서 만든 근육들은 빼려고 해도 잘 안 빠질 거다.”

헤비급 체중에 스피드를 장착하기 위해 이전과는 수준이 다른 웨이트 훈련을 병행했다.

정말 지옥이 다시없는 순간들을 보내면서 만들어낸 근육들.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WFC 측에도 전달했어요.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은 포기하겠다고.”

“잘했다.”

“엊그제 카이서스의 프로모터가 안 코치님을 찾아온 것 같긴 한데... 별말이 없네요.”

“조율 중이겠지.”

“하하. 그렇겠죠.”

그나마 윤곽이 드러난 이벤트가 카이서스와의 복싱 이벤트였다.

몇 번 얼굴 본 적 있는 카이서스의 프로모터가 엊그제 체육관을 찾았기에 곧이어 카이서스와의 시합이 매칭되나 싶었는데 그 이후로 안 코치님에게서 별다른 언질을 들은 게 없었다.

그러면 최소 반년은 별 일정이 없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그러면. 진짜 한가하겠구나.”

“쩝. 그렇다고 그렇게 한가하진 않아요.”

지난 양가 상견례에서 올해를 넘기지는 말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날씨 좋은 가을쯤으로 날짜 이야기가 나왔다가 결국 11월 초로 결혼 날짜가 확정되었는데 나는 라무차와의 2차전 덕분에 결혼 준비에서 완전히 제외된 상태였다.

“아아. 식 준비?”

“넵...”

내가 신경 쓰지 않는 동안 아름이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선택지를 어마어마하게 준비만 해뒀었다.

“뭐 그리할 게 많은지...”

결혼 준비는 1년 동안 하면 1년이 바쁘고, 1달간 하면 1달이 바쁘다더니 그 말이 딱이었다.

이제 채 3달도 남지 않은 결혼식.

요즘은 자다가도 아름이 연락이 오면 5분 대기조처럼 달려가야 했다.

이럴 거면 그냥 같이 살자니까 그건 또 신혼의 로망을 깨는 거라며 싫단다.

“하하. 다 그렇지. 나도 그랬어.”

“...형수님도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말 바꾸고 그랬어요?”

“...아니?”

그러면 이해하는 척 하지 마세요...

어제는 이게 좋다고 했다가 오늘은 다른걸 들이민다구요.

그러면서 날짜가 지날수록 시간 없다고 날 쪼으는데 어후...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했다가 결혼 준비는 혼자 하냐며 왜 그렇게 관심이 없냐는 타박만 듣고...

아. 갑자기 울고 싶네.

-당근! 당근!

갑자기 설움이 복받치는데 울리는 스마트폰.

“...뭔 소리냐?”

“아. 톡 알림음을 바꿨어요. 당근! 당근! 귀엽지 않아요?”

“네 덩치를 좀 봐라. 귀여운 게 어울릴 덩친지.”

제가 그래도 한때는 한 귀여움 했거든요.

두호 형의 타박을 들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톡 알람을 확인하는데

-Billy : 미스터 강?

-Billy : 강해서 연락처 맞습니까?

저장되지 않은 친구에게서 온 톡이었다.

하지만 누군지는 단번에 알 수 있는 상대.

“얘도 양반은 못 되겠네.”

WFC 라이트헤비급 잠정 챔피언이자 날 향해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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