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_복귀 >
1.
-와아아아아아!!!
-강해서----!!!!
-휘이이익!!!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성.
-아름아! 사랑해!
그리고 그 열기에 부채질하는 오늘의 승자. 강해서의 전 세계적인 프러포즈까지.
WFC303 이벤트가 치러진 올림픽 경기장은 말 그대로 한여름의 열기를 무색캐 할 만큼 뜨거운 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
“...이게 말이 되나?”
예외가 있다면 딱 하나.
카이서스와 그의 프로모터 켄달이 앉아있는 케이지와 가장 가까운 객석 두 자리뿐이었다.
“라무차가. 그 라무차가 이렇게 무너진다고?”
조금 전까지.
몇 분. 아니 몇십 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라무차의 우세를 점쳤던 켄달은 시합이 끝나고 라무차가 내려간 케이지를 멍하니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
그리고 그 심정은 카이서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성격상 입 밖으로 말을 내뱉고 있지 않을 뿐이지 놀라긴 마찬가지였으니까.
‘라무차는... 확실히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어.’
겨우 몇 초 안 되는 짧은 공방이었지만.
몇 번 타격이 오가지도 않았지만.
카이서스는 모두 볼 수 있었다.
라무차의 스피드와 테크닉의 성장을.
‘켄달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어. 힘. 스피드. 테크닉. 모두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었으니까.’
그렇다고 동물적인 본능에 사람의 기술을 더해 오히려 라무차의 장점이 퇴색되었나?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라무차는 쓸모없는 군더더기들을 덜어내며 특유의 동물적인 본능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압도적인 차이가 나다니.’
1라운드 21초.
너무 짧은 순간이었기에 카이서스조차 강해서의 성장 폭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아름아! 나랑 결혼해줘!
아직도 촛불이 꺼지지 않은 케이크를 들고 서 있는 강해서.
‘그는 분명 이번 시합의 승리를 확신했던 게 분명해.’
보통 타격은 변수가 많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래플링은 실력이 고하에 따라 정석적으로 풀려나가는 부분이 많았기에 하수가 고수를 이겨내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말 그대로 변수가 생길만한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타격은 한참이나 실력이 부족한 선수가 요행으로 자신보다 월등히 윗줄의 실력을 갖춘 선수를 잡아내는 경우도 드물지만 한 번씩 연출되곤 했다.
그만큼 타격은 변수가 많다는 뜻이었다.
‘오랜만이야. 이렇게 소름이 돋았던 건.’
하지만 강해서는 분명 승리를 확신했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1라운드 승리를.
어떤 변수가 있더라도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승리의 확신.
‘상대 선수와의 실력 차이가 웬만큼 나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확신이지.’
6개월.
종잇장 차이도 나지 않을 만큼 비등했던 상대를 월등한 수준으로 뛰어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심지어 상대 선수 또한 놀라울 만큼의 성장세를 보였는데.
“... 비행기. 지금 바로 띄울 수 있지?”
“어? 지금? 바로?”
“그래. 지금 바로.”
승리 인터뷰 중인 강해서를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던 켄달은 카이서스의 요구에 깜짝 놀란 듯 되물었다.
“체류하지 않고? 바로 돌아갈 예정이야?”
장시간의 비행을 극도로 싫어하는 카이서스.
그는 먼 길을 온 만큼 처음 방문하는 한국에서의 여유로운 휴식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한국을 둘러보는 건 고사하고 비행기에서 내린 지 몇 시간 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니. 켄달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느긋하게 쉬고 있을 틈이 없을 것 같거든.”
강해서의 성장을 보며 다시 시작했던 훈련.
하지만 지난 라무차와의 1차전을 보고 나서는 솔직히 조금 느슨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 내가. 훈련을 게을리한 걸 후회하는 순간이 올 줄이야.”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젓는 카이서스. 그리고 그런 카이서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켄달.
“미스터 강. 그의 성장을 기다리려 했지만 이미 그는 내가 기다려야 할 수준이 아니야. 솔직히 지금이 성장의 끝인지 아니면 아직도 진행 중인 건지도 모르겠으니까.”
“카이서스...”
“체육관에 연락해 둬. 외부로 나가 있는 코치진들 모두 콜업하라고. 그리고 체육관 내 일반 멤버들의 사용 시간을 조율해두라 그래. 당분간은 모든 포커스를 내게 맞출 수 있도록.”
이전처럼 단순히 규칙적인 훈련을 시작한 수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비로소 카이서스가 제대로 된 훈련을 마음먹는 순간이었다.
“켄달. 자네는 한국에 남아서 어떻게든 미스터 강의 체육관의 협조를 얻어내.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줘.”
“...걱정 말라고. 그게 내 일이니까!”
조금 전까지의 싸늘했던 분위기는 간데없이 카이서스와 켄달 두 사람 사이에는 기이한 열기가 맴돌고 있었다.
“나는 최고의 무대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 할 테니까.”
“...카이서스...!”
복싱황제.
최강의 사나이.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이라 불리는 카이서스가 진심으로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
“내가 미쳐...”
손아름은 정말 오랜만에 그의 연인의 시합을 응원하러 체육관을 찾았었다.
마침 이번 이벤트는 한국에서 치러지는 만큼 응원 자체에는 부담이 전혀 없었다.
다만 걱정되었던 건 남자친구의 부상.
라무차와는 지난 1차전에서도 치열한 혈투를 벌였던 만큼 이번에도 자신의 남자친구인 강해서가 많이 맞을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영상으로만 봐도 손발이 떨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그걸 눈앞에서 직접 본다면 정말 쓰러질지도 몰라. 손아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아름아! 사랑해!
손아름의 남자친구는 지난 시합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고 지금은 자신이 앉아있는 곳을 똑바로 바라보며 공개 프러포즈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전 세계적인...”
아무리 손아름이 파워 연예인이라도 이런 지극히 사적인 부분에서는 솔직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것도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된 상태라니.
-손아름! 손아름!
-강해서! 강해서!
이미 주변 관객들은 손아름을 알아채고는 어서 나가라는 듯 연호하고 있었다.
“휴우.”
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케이지를 향해 걸어 나가는 손아름.
’해서는 항상 이런 길을 걸었던 거구나.‘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들고는 마치 칭찬해달라는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연인. 강해서를 향해 걸으며 손아름은 저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했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
손아름이 케이지 문을 열고 들어오자 객석의 환호성은 절정에 달했다.
“아름아! 나랑 결혼해줘!”
그리고 옥타곤 안에 들어선 손아름에게 무릎 꿇으며 케이크를 들이미는 강해서.
-결혼해! 결혼해!
-결! 혼! 해! 결! 혼! 해!
-받아줘! 받아줘!
이미 자신이 라디오 공개 프러포즈를 했던 바 있는데 무슨 일을 또 이렇게 키운 건지.
손아름은 왠지 가슴이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객석의 요구에 케이크 위 촛불을 후- 하고 불어 끄는 순간.
-주르륵
“...어?”
저도 모르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꼈다.
“어... 아름아? 어... 시, 싫었어? 왜 울어...”
“...아니야.”
아름이의 눈물을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챈 강해서는 케이크를 내려두고는 바짝 다가서서 낮은 목소리로 손아름부터 챙겼다.
그제서야 아까의 답답함의 정체를 깨달은 손아름.
“그냥. 그냥 너무 좋아서. 벅차올랐나 봐.”
“난 또... 싫어서 그러나 했지.”
“싫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바보야.”
강해서의 팔뚝을 찰싹 때리는 손아름.
-우우우우!!!
-부럽다!!
-뽀뽀해! 뽀뽀해!
-뽀뽀해! 뽀뽀해!
객석에서 봤을 때는 그저 두 사람이 애정행각으로 보였을 행위.
한차례 야유가 지나고 나자 객석의 짓궂은 요구가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뽀뽀해! 뽀뽀해!
이제는 모든 객성의 구호가 통일된 상황.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스킨십조차 이런 상황이 되니 괜히 부끄러워진 강해서와 손아름이었지만 이내 서로의 눈을 바라본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개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
WFC 헤비급 챔피언 강해서.
헤비급 타이틀 1차 방어전. 1라운드 21초 KO 승.
하지만 이후 이 영상은 타이틀 방어전으로서의 기록보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조회된 너튜브 키스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2.
-캡틴 코리아 강해서! 1라운드 21초 만에 WFC의 비스트 라무차를 격파하다!
-1차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 2차전? 전문가들의 예측을 무시하며 단 21초만에 시합을 끝낸 강해서!
-’암표 사지 마세요. 빨리 끝날 거니까.‘ 뱉은 말을 지킨 강해서. 그의 승리 전략은?
-승리 인터뷰 대신 프러포즈? 시합 전에 켜둔 촛불이 채 꺼지기 전에 승리를 선물한 강해서!
-카이서스. 극비 내한 이후 다급히 귀국? 강해서의 경기를 찾았던 카이서스가 다급히 귀국한 이유는?
-아시아국가 전체 브랜드 평가 1위 달성한 한국인? WFC 헤비급 챔피언 강해서를 파헤치다!
-본 시합보다 길었던 역대급 프러포즈. 세기의 커플로 등극한 강해서와 손아름.
-WFC 미들급 챔피언 학센. ’미스터 강? 그는 로맨티스트이자 제대로 된 사업가. WFC에 몇 없는 제대로 된 선수.‘
-’손아름이 누구야? ‘강해서의 연인으로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리엘리 출신 배우!
-경기가 끝나고 쓸쓸히 퇴장하는 라무차. 그리고 그가 내려간 빈자리를 채우는 손아름(포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암표 사서 봤으면 후회할 뻔ㅋㅋㅋㅋ
┗ㅇㄱㄹㅇ 21초만에 떡 바를 줄 누가 알았겠엌ㅋㅋㅋㅋ
┗ㄴㄴㄴㄴ 시합보다 그 뒤에 프러포즈가 대박이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짴ㅋㅋㅋ 나 직관으로 좀 앞쪽 자리에서 봤는데. 1라운드 들어가기 전에 케익에 촛불 붙이길래 뭐하는건가 했더닠ㅋㅋㅋㅋㅋ 프로포즈하려고 촛불 킨거였음ㅋㅋㅋ
┗레알ㅋㅋㅋ 무조건 1라운드 안에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던거잖앜ㅋㅋㅋ 만약 1라운드안에 못끝내거나 뒤지게 얻어맞았으면 큰일날 뻔ㅋㅋㅋㅋ
┗국뽕이 진짜 ㅈㄴ 차오른다
┗해외 반응 영상들도 ㅈㄴ 많이 올라옴 ㅋㅋㅋ(링크) 한글 자막이다 보셈
┗크으... 주모! 여기 국뽕 한사발 가득 주소!!!
WFC303 이벤트가 끝나고 며칠.
인터넷상에는 아직도 지난 경기의 여운이 남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뭐 봐?”
“어? 아. 그냥.”
한창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고 있으려니 대뜸 얼굴을 들이미는 아름이.
그래봤자 키 차이와 덩치 차이가 있어서 아름이가 내 폰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우씨... 나도 보여줘. 뭐 보냐구.”
“하하. 그냥 인터넷 기사보고 있었어.”
지난 프러포즈 이후 뭔가 아주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어떤 벽마저도 허물어진 듯한 아름이.
솔직히 이미 그런 벽은 다 없앴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이벤트 이후 한층 더 가까워졌달까.
’프러포즈 하길 잘했지.‘
만약 아름이가 했으니 난 안 해도 되겠지 하고 진짜 안했으면 평생 시달렸을 게 분명했다.
“빨리 와. 오늘 할 거 많단 말이야.”
“아아. 알겠어.”
오랜만에 돌아온 일상과 여유로움.
지난 이벤트 때는 데미지는 고사하고 체력 소모랄 것도 없었고 시합 이후 시차 적응을 할 것도 없었기에 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밀린 데이트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해야 할 게 많기에 오늘 하루는 아름이의 계획에 맞춰 움직이기로 한 날.
이제는 정말 대놓고 손깍지를 끼고 공개 데이트를 해도 사람들이 신기해할지언정 놀라지는 않았다.
-톡! 톡!
그렇게 한창 아름이와 여의도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중 들어온 톡.
-필승 : 야.
-필승 : 두호 형 복귀할 것 같다.
-필승 : 학센이랑 3차전으로.
두호 형의 복귀 소식이자.
WFC 미들급 타이틀전을 두고 학센과의 3차전을 알리는 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