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79화 (179/203)

< 179화_라무차 전 임박! >

1.

-♪♬...

높이 솟은 빌딩 숲 사이로 저물어가는 붉은 노을.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

-...우와아아아... 손아름 씨 노래 잘하는 건 알았지만 정말 소름 돋았어요!

-강해서 선수! 지금 이 라디오 듣고 계시죠? 이런 프러포즈를 받다니! 정말 감동이겠어요!

그렇게 아름이의 노래가 끝나고 나자 현실이 다시 밀어닥쳤다.

-오늘의 고백송. 오늘은 특별히 손아름 씨가 직접 프러포즈 송을 불러주셨는데요. 혹시 이렇게 출연 결심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어진 짤막한 인터뷰.

이건 나도 궁금했다.

갑자기 이런 라디오 프러포즈라니. 그것도 아름이가 직접.

-헤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프러포즈는 무조건 남자가 해야 하고 여자는 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강해서 씨는 8월 시합 일정 때문에 한창 바쁜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어요.

-그분 성격에 분명 프러포즈를 신경 쓰고 있을 텐데 그냥 제가 먼저 프러포즈해버리면 편하게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겠다 싶어 신청했어요.

-아! 그리고 그분이 먼저 공개적으로 결혼 발표를 했으니 저도 공개적으로 프러포즈 한 거구요!

...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아름이는 참 생각이 깊었다. 나보다 적어도 한두 발짝은 앞서있달까.

“부러운 새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이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자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창섭 형.

그러고 보니...

“형은 알고 있었죠?”

“당연하지.”

오늘 어떻게든 5시 전에는 마쳐야 한다고 난리를 피우던 모습들.

그리고 오히려 생각보다 빨리 마치게 되자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고 하던 모습들.

마지막으로 블루투스가 고장 났다며 라디오를 틀던 창섭 형의 모습들까지.

라디오 프러포즈를 받고 나니 모든 게 아귀가 맞춰지는 듯했다.

“너도 참 너다. 아름 씨한테 눈치 없다는 이야기 들은 적 없냐?”

“...”

이건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나는 스스로 눈치가 있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그 기준치는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흠. 흠...

“아름 씨한테 잘해 인마.”

“하하. 당연하죠.”

이런 여자친구가 어디 있다고.

그건 그렇고.

“형도 여자친구분이랑 오래 사귀지 않으셨어요?”

필승 형은 몰라도 창섭 형은 꽤나 오래 사귄 여자친구분이 있었다.

형도 나이가 나이니만큼 이제 슬슬 결혼 생각도 하실 것 같은데...

“...나도 프러포즈해야 하는데. 망할. 나도 연예인이었으면 좋겠다. 부러운 새끼.”

“하하. 뭐가 부러워요 또.”

“넌 아름 씨가 대신 했으니까 프러포즈 안 해도 될 거 아냐. 난 해야 한다고. 거기다 이번 프러포즈로 또 인터넷에 기사 뜨고 하면 여자친구도 볼 텐데... 휴우.”

“아...”

하긴.

창섭 형 여자친구분은 나도 몇 번 뵌 적 있고 오다 가다 아름이도 몇 번 뵌 적 있었다.

아무래도 주변 아는 사람이 성대하게 프러포즈하면 창섭 형에게도 부담이 가긴 하겠지.

“그래도... 이건 아름이가 프러포즈한 거니 그나마 낫지 않을까요? 여자가 먼저 프러포즈 한 거니.”

여자가 프러포즈를 성대하게 받은 것보다는 상황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걸 신경 쓰는 애가 아니야... 라디오 사연 프러포즈라는 거에만 포커스를 맞출 거란 말이다.”

“...”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창섭 형의 연애 사정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듯싶었다.

큰소리는 못 내고 사시는구나.

“힘내요. 사실 저라고 뭐 다르겠어요... 프러포즈 받은 거로 평생 이야기 듣고 살아야 하는데.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 그것도 그렇다. 아름 씨가 그런 거로 계속 말할 성격은 아니지만, 주변에선 계속 이야기할 수 있겠네.”

... 아름이도 이야기할 성격이에요...

시작부터 주도권은 넘기고 시작하는 결혼이랄까...

뭐. 그래도 생각 깊고 배려심 깊은 아름이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게 싫지만은 않았지만... 아버지나 장인어른의 모습을 보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게 조금 슬프긴 합니다.

“그래서. 체육관으로 바로 가?”

아름이의 라디오 프러포즈가 끝나고 난 뒤.

창섭 형은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어디로 데려다줄지 물었다.

“저는...”

-톡! 톡! 톡!

그에 그냥 집으로 가달라고 말하려던 때. 아름이로부터 톡이 도착했다.

-아름 : 헤헤. 라디오 들었지?

-아름 : 들었는데 왜 반응이 없을까아아?(빠따 들고 선 토끼 이모티콘)

-아름 : 나 오늘 스케줄 라디오 이거밖에 없었거든? 이제 집으로 간다?

-아름 : 집에 가면 우리 해서가 날 딱 기다리고 있게찌?(기대하는 토끼 이모티콘) 아! 집에 가면 와인 있으니까 치즈랑 세팅 해둬♡

-아름 : 나 내일 스케줄 없어! 집에서 봐♡ 사랑해(하트 던지는 토끼 이모티콘)

“... 아름이... 지브로가즈새여...”

“엉?”

“아름이 집으로... 가달라구요...”

“아아. 새끼. 알겠다.”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다 안다는 듯 엄지를 추켜세우는 창섭 형.

형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러유.

프러포즈는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걸...

2.

-뻑! 뻐억!

“큽!”

한창 패드워크를를하던 도중 미트를 잡아주는 코치가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괜찮아요? 잘못 맞았나?”

난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미트 바깥으로 잘못 맞았나 확인했다.

“노. 노. 노. 클린 히트였어. 그것보다 패드워크 방식을 바꿔야 할 것 같아.”

그리고는 스트라이킹 코칭팀 스텝들은 지난번부터 생각했던 내용이라며 훈련 방식의 변경을 말해왔다.

“솔직히 지금 미스터 강의 패드워크를 받아주는 코치진들의 상태가 말이 아니야. 손목이며 팔뚝이며 성한 곳이 없어. 이제는 미트 들라고 하면 다들 손사래부터 친다니까.”

“정상적인 타격력이 아니야. 높은 온스의 글러브를 끼우고 두꺼운 패드로 받아내도 무슨 자동차에 들이받히는 느낌이라고.”

“특히 킥 같은 경우엔 말 그대로 듣도보도 못한 파워야. 태권도 킥이라 그랬나? 킥이 강한 선수들을 여럿 봤지만, 미스터 강 만한 파워는 처음이라고.”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는 스트라이킹 팀의 고충들.

스파링이 아닌 패드워크에선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 킥과 펀치들을 쳐댔으니 비교적 작은 체구의(그래도 모두 100킬로에 육박하는 거구의 코치들이었다.) 스트라이킹 팀 코치들이 참다 참다 폭발한 듯했다.

“패드워크 스케쥴을 조금 줄이고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할 것 같아. 이대로는 코치들이 다 그만둘 판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미스터 강의 코칭팀이라는 영광을 포기할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야.”

이제는 체육관 밖으로 후텁지근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더운 날씨가 찾아들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 곧 컨디셔닝에 들어가야 하니 조금만 더 버텨줘.”

두호 형은 그런 스트라이킹 팀을 달래며 남은 훈련 기간 동안 스케줄 변동이 최대한 없도록 조정했다.

“이제 곧 7월이야. 시합까지 겨우 한 달 남았어. 며칠만 참아줘.”

“으음... 솔직히 처음 팀 계약했던 내용으로는 모두가 불만이 많긴 해. 미스터 강의 팀이라는 게 명예롭긴 하지만 우리 팀원들 모두 한 집의 가장들이라고.”

두호 형의 조율에도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는 간극.

“계약 내용을 조금 조정하죠. 스트라이킹 팀에서 고생하는 부분도 있으니까.”

“오! 미스터 강이 그렇게 신경만 써준다면 나머지 불만이야 내가 다독일 수 있지.”

그에 스트라이킹 팀에 추가적인 보너스 개념의 수당을 추가지불하는 것으로 겨우 상황을 일단락 지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외부 고용 팀의 경우 소속감이나 일체감보다는 금전적인 부분들이 중요했기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게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나저나. 어떤 스트라이킹 팀을 섭외하더라도 다들 기겁을 하고 도망갈 것 같은데. 솔직히 해서 네 타격이면 조용히 샌드백이나 쳐야 해.”

그런 모습을 모두 지켜본 필승 형의 한마디.

“그래도 어떻게 샌드백만 쳐요.”

“나도 네 미트는 잡아주기 겁난다. 한 세트만 받아줘도 손목이 아작나는 느낌이야.”

“그 정도예요?”

“그래. 특히 네가 집중상태에서 타격을 칠 때는 가끔 손이 멀쩡하게 있는지 확인할 정도야. 진짜 손목 아래로 통째로 날아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

지난 라무차 전 준비 때부터 시행해온 ‘집중 모드’ 상태에서의 훈련.

이 훈련은 라무차 전 이후로 급속히 탄력받아 지금은 풀 타임으로 3라운드. 그래플링 같은 고강도 힘 싸움 상태에서도 1라운드 정도는 가까스로 버틸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완전 클린 히트. 미스터 강의 타격은 예전에도 좋았지만, 지금은 정말 군더더기 없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깔끔하고 확실한 타격 포인트를 잡아내고 있어.”

특히 타격팀장의 말처럼 타격 자체가 깔끔해졌다.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린 세상에서는 내 인지력과는 별개로 내 움직임 또한 느려졌고 내 움직임의 불필요한 움직임들 또한 명확히 보였으니까.

솔직히 내 타격에 그렇게나 많은 군더더기가 있는 줄은 몰랐다. 실전이 아닌 훈련에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스스로의 모습.

그것들을 하나씩 수정해나가다 보니 타격 자체가 말도 못 할 정도로 발전했다.

“확실히 말 할 수 있어. 지금의 미스터 강은 지난 라무차 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야. 물론 그전에도 욕이 나올 정도로 괴물이었다지만 지금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괴물이 되어버렸어.”

“하하. 너무 진지하게 말 하시면 조금 섭섭해요. 아무리 농담이라도 사람한테 괴물이라니.”

“응? 농담이라니? 진심이야. 예전엔 반쯤 농담으로 괴물이라 했다면 지금은 진짜 ‘몬스터’라고 생각한다고. 크으. ‘비스트’와 ‘몬스터’의 만남이라. 나는 몬스터에 한 표 던지지.”

날 보고 몬스터라 부르는 스트라이킹 팀장.

원더보이나 갓해서 같은 별명은 들어봤어도 몬스터는 썩 유쾌하지 않은데 말이야.

“어쨌든. 앞으로 한 달 뒤. 세계가 경악하겠군. 규격 외의 몬스터를 맞이해서 말이야.”

후텁지근한 공기 중에 물기가 유독 많이 느껴지는 6월 말의 어느 날.

전담팀 중 스트라이킹 팀과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날의 이야기였다.

*

“해서야!”

“강해서 씨?”

“강해서 선수!”

훈련의 막바지.

한여름의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7월의 마지막 주.

나는 한창 훈련 중일 때 보다 더욱 바쁜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잡지 인터뷰.

-티비 인터뷰.

-WFC 공식 인터뷰.

라무차 또한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받고 있다 보니 국내 언론 및 매체에서는 나와 라무차에 끊임없이 컨텍을 해왔고 결국 몇몇 매체를 통해 공식 인터뷰를 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이벤트는 ‘오픈 워크아웃’과 ‘계체 이벤트’, ‘시합전 기자회견’ 등이 있었다.

“오픈 워크아웃. 참석할 거지?”

“당연히 해야겠죠.”

지난 라무차 전에서는 오픈 워크아웃에 불참했지만 내 나라에서 진행하는 팬 서비스에까지 불참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름이도 오기로 했어요.”

“오올. 예비 신랑.”

오픈 워크아웃에 아름이가 온다고 이야기하자 필승 형이 또 개구진 표정으로 날 놀려댔다.

“공개 프러포즈도 받고. 좋겠다? 예비 신랑?”

“고만해요.”

“9월에 웨딩사진 찍는다고? 뭔 자신감이냐? 얻어맞고 얼굴 퉁퉁 부으면 어쩌려고?”

“... 스트리트 파이트 끝났다 이거죠?”

“짜샤. 네가 나한테 한 걸 생각해.”

“형이 저한테 한 걸 갚아준 것뿐이라니까요?”

오늘도 필승 형과 투닥거림은 끊이질 않았다.

이제는 거의 루틴에 가깝달까.

필승 형 또한 시합이 다가올수록 일부러 이렇게 장난을 걸곤 했다. 일종의 스트레스 완화와 긴장감 완화의 일환이었는데, 이때의 필승 형은 장난을 치긴 하되 항상 먼저 한발 물러서거나 져주곤 했다.

“그나저나. 기사 봤냐?”

“무슨 기사요? 저 시합 직전엔 뉴스란 안 보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하는 말이지. 카이서스가 이번 경기 보러 한국을 찾는다더라. 인터뷰까지 했더만.”

“... 카이서스가요?”

“그래.”

그 엉덩이 무거운 양반이 어쩐 일로 한국까지?

실제로 카이서스는 본인의 방어전 스케줄도 웬만하면 미국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조율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복싱 경기도 아닌 MMA 경기를 보러 한국까지 온다니.

“지난 시합 때는 카이서스가 말도 없이 갔다며?”

“뭐. 그랬죠.”

급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원래 그런 성격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날의 내 시합에 실망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먼 길 오는 만큼. 제대로 된 선물을 줘야겠죠.”

라스베이거스에서 서울까지 약 12시간 비행. 왕복 24시간을 들여서 오는 건데. 최선을 다해줘야지.

“그냥 집에서 티비로 볼걸. 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어 줄 겁니다.”

비행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자리에 더 앉아있고 싶어지게 만들어줘야겠다.

그래도 부자니까 비행깃값을 아까워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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